궁궐

[경복궁 ㅡ 신무문으로]

드무2 2026. 2. 10. 07:35
728x90

[경복궁 ㅡ 신무문으로]

 

 

 

 

경복궁 신무문

 

 

 

 

 

 

 

 

 

 

 

 

 

경복궁 景福宮

 

조선 왕조 개국 4년째인 1395년 (태조 4)에 처음으로 세운 으뜸 궁궐이다. "하늘이 내린 큰 복" 이라는 뜻으로 경복궁 景福宮이라 이름지었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목멱산 (지금의 남산)을 안산으로 삼아 풍수지리적인 터잡기에서도 한양의 중심을 차지했다. 정문인 광화문 남쪽으로 관청가인 육조거리 (지금의 세종로)를 조성하고, 그 연장선 위에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등 주요한 궁궐 건물들을 일렬로 놓아, 왕조국가인 조선의 상징 축으로 삼았다.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불타 없어진 후, 1610년 제2의 궁궐인 창덕궁은 재건하였으나 경복궁은 270년 이상 폐허로 남게 되었다.1867년 (고종 4)에 비로소 왕조 중흥의 큰 업적을 이루기 위해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691,921㎡의 광활한 대지에 약 500여 동의 건물들을 건립하였으며 조선 왕실의 전통과 현실을 조화시켜 전체적으로는 규칙적 배치를 따르면서 부분적인 변화를 가미하였다. 중건된 경복궁은 정무공간을 중심부에 두고, 좌우 뒤편으로 왕족의 생활공간, 그리고 곳곳에 정원시설들이 배치되어 하나의 작은 도시를 이루었다.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어 중심부의 일부 건물들만 남았고, 광화문을 비롯한 외전 일부를 헐어내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의 정면을 막기도 했다. 1990년부터 복원사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원래의 홍례문과 행각을 복원했고, 왕과 왕비의 침전 및 왕세자가 기거한 동궁을 비롯하여 궁궐의 정문인 광화문도 다시 복원하여 경복궁의 원래의 모습을 회복 중이다.

 

 

 

 

1395    경복궁 창건

1592    임진왜란으로 불타 폐허로 남겨짐

1867    경복궁 중건

1873    건청궁 일곽 창건

1915    물산공진회 개최를 위해 동쪽 건물들 철거

1926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로 남쪽 구역 크게 훼손

1990    경복궁 복원 사업 시작

1997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2010    광화문 원형 복원

2010    경복궁 복원사업 1차 완료 (원형의 25% 복원)

 

 

 

 

 

 

 

 

 

 

 

 

 

 

 

 

 

 

 

廣臨門

 

 

 

 

 

 

 

 

 

 

 

 

 

 

 

 

 

 

 

 

 

 

集玉齋

 

 

 

 

 

 

 

 

  • 稱物納照 鏡心彌光 (칭물납조 경심미광) : 사물의 이치를 비추어 살피니, 거울 같은 마음 더욱 빛나네.

 

 

 

 

  • 寶花留硏 筆墨生香 (보화류연 필묵생향) : 귀한 꽃은 벼룻가에 머물고, 붓과 먹에서는 향기가 난다.

 

 

 

 

  • 太華夜碧 人聞淸鐘 (태화야벽 인문청종) : 태화산은 밤에도 푸르고, 사람들은 맑은 종소리를 듣는다.

 

 

 

 

  • 西山朝來 致有爽氣 (서산조래 치유상기) : 서산에 아침이 오니 상쾌한 기운이 이네.

 

 

 

 

  • 玉樹凌霄 雲煙煥采 (옥수능소 운연환채) : 옥 같은 나무는 하늘을 찌르고, 구름과 안개는 빛이 나네.

 

 

 

 

  • 洒潤含膏 雲氣多壽 (쇄윤함고 운기다수) : 윤기 있는 비가 기름진 땅을 적시니, 구름 기운은 장수하네.

 

 

 

 

 

 

 

 

 

 

협길당 (協吉堂)

 

 

 

 

 

 

 

집옥재 작은 도서관 관람 안내

 

궁궐 속 작은 도서관

고종의 서재로 사용되었던 집옥재를 작은 도서관으로 개방합니다.

독서와 휴식의 역사문화체험공간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많은 협조 바랍니다.

ㅡ 도서는 열람만 가능합니다. (대출 불가)

ㅡ 도서관 내에서는 정숙해 주시고, 다른 관람객을 위해 관람 질서를 지켜주세요.

※ 문화유산 보존관리를 위하여 최대수용인원 (50명)을 초과할 경우 입장이 제한될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 집옥재 문화행사가 있는 날에는 내부 개방이 잠시 중지됩니다. (사전안내)

 

◆ 개방기간 : 2025. 4. 2. (수) ~ 10. 31. (금)

◆ 이용시간 : 10 : 00 ~ 16 : 00

◆ 개방지역 : 집옥재 · 팔우정

 

 

 

 

 

 

 

집옥재 일원

 

1876년 경복궁에 큰불이 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옮겼다가 1888년에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와 주로 건청궁에 기거했다. 이미 창덕궁에 지어졌던 집옥재 (集玉齋), 협길당 (協吉堂) 등을 1891년에 건청궁 서편으로 옮겨 와 자신의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했다. 집옥재는 양 옆벽을 벽돌로 쌓고 내부를 중 2층으로 만들었으며, 팔우정 (八隅亭)은 팔각형의 2층 정자이다. 이 건물들은 중국풍의 요소들이 많이 섞여 궐내에서 이국적인 지역을 형성하며, 복도를 통해 하나의 내부로 연결된다.

 

 

 

 

 

 

 

 

 

 

 

 

 

 

 

 

필성문 (弼成門)

 

 

 

 

 

 

 

 

 

 

추수부용루 秋水芙蓉樓

 

 

 

 

 

 

 

장안당 (長安堂)

 

 

 

 

 

 

 

 

 

 

 

 

매화나무

 

사군자의 첫머리에 들어가는 매화는 옛 선비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나무였지요. 대표적으로 퇴계 이황은 매화 사랑이 얼마나 각별하였던지 죽음을 맞는 마지막 순간에도 매화 물 주기를 걱정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매화는 가장 일찍 꽃 피는 봄의 전령사이며 매실은 약재료로 유명합니다. 꽃이 필 때는 매화나무, 열매가 달릴 때는 매실나무라고 할 뿐 같은 나무입니다.

 

ㅡ 신한은행 임직원 일동 기증 ㅡ

 

 

 

 

 

 

 

 

 

 

 

 

 

 

 

 

 

 

 

 

 

 

 

 

 

 

 

 

옥호루 (玉壺樓)

 

 

 

 

天門日射黃金榜 (천문일사황금방) 황궁 (皇宮) 문엔 햇빛이 황금 편액을 비추고,

 

 

 

 

春殿晴矄赤羽旗 (춘전청훈적우기) 봄 전각엔 저녁 해가 적우기 (赤羽旗)를 비추네.

 

 

 

 

雙闕瑞煙籠菡萏 (쌍궐서연농함담) 대궐의 상서로운 연기는 연꽃을 감싸고,

 

 

 

 

九城初日照蓬萊 (구성초일조봉래) 도성 (都城)의 아침 해는 봉래궁 (蓬萊宮)을 비추도다.

 

 

 

 

綵扇平分雉尾齊 (채선평분치미제) 고운 부채 반으로 나뉘니 치미선 (雉尾扇)이 가지런하네.

 

 

 

 

碧簫雙引鸞聲細 (벽소쌍인란성세) 벽옥 (碧玉) 퉁소 쌍으로 끄니 난새 소리 가느다랗고,

 

 

 

 

곤녕합 (坤寧閤)

 

 

 

 

 

 

 

 

 

 

 

 

 

 

 

 

향원정과 건청궁 香遠亭 · 乾淸宮

 

고종 내외가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간섭에서 정치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1873년 건청궁 乾淸宮을 궁궐 안 북쪽에 별도로 조성했다. 침전인 곤녕합, 옥호루와 왕의 사랑채인 장안당 등으로 구성되었다. 곤녕합은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시해된 역사적 비극의 장소다. 후궁 영역의 뒤 정원으로 만들어진 연못 안에는 원래 취로정 翠露亭이 있었는데 건청궁을 창건하면서 그 자리에 향원정을 새로 지어 건청궁의 앞 정원이 되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