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좋은 글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염소]

드무2 2026. 4. 17. 14:29
728x90

[염소]

 

 

 

일러스트 = 이진영

 

 

 

염소

 

 

산사태에 묻혔다가 살아나온 염소

온몸에 진흙 뒤집어쓴 채 눈도 못 뜨고 서 있다

 

텃논 물꼬 본다고 큰물에 휩쓸렸다가

집채만 한 나뭇등걸 붙잡고 살아오신 염소

 

물비린내 범람하는 들판을 바라보며

울지도 못하고 떨고 있는,

 

아버지

 

함순례 (1966 ~ )

 

 


 

 

폭우로 산의 흙이 무너져 내렸는데, 그 질척질척한 흙을 몸에 다 뒤집어쓴 채 간신히 살아온 염소가 있다. 집 가까이에 있는 논에 물이 넘치지 않았는지, 논둑이 허물어지지 않았는지 보러 갔다가 큰물에 휩쓸렸다 살아오신 아버지가 있다. 들판은 곳곳이 꺼지고, 쓸려 내려온 것들이 군데군데 어지러이 얽혀 있고, 털썩 주저앉아 들판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있다. 다른 시에서 표현한 것처럼 ‘온몸으로 진창을 밀고’ 살아오신 아버지!

이 시에 등장하는 아버지처럼 내 아버지도 세차게 좍좍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 계셨다. 물이 넘나들도록 만들어 놓은 물꼬를 보기 위해 아버지는 깜깜한 밤에 삽을 어깨에 메고 빗속을 뚫고 황급히 논밭으로 가셨다. 이리저리 물길을 내고, 물길을 돌리려고 밤새 들판에 계셨다. 비가 그치면 다시 논둑을 쌓고 벼와 작물을 일으켜 세우셨다. 호우와 폭염이 번갈아가며 이어지고 있다. 이 시를 읽으니 들일을 하는 분들이 걱정이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5년 8월 4일 자]

 

 

 

 

 

728x90

'詩, 좋은 글 ... >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짜 낚시꾼]  (0) 2026.05.15
[어제보다 조금 더]  (0) 2026.04.26
[샹그릴라]  (1) 2026.04.13
[매미가 운다]  (0) 2026.04.08
[생존]  (0) 2026.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