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진, 한지에 인화하는 독창적 기법 "詩를 쓰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다"]

이정진, ‘Unseen # 62 (2024)’. 아이슬란드의 경외로운 자연을 담은 연작이다. 우뚝 솟은 원뿔 모양 산 형상이 수면 위로 반사돼 대칭을 이룬 순간을 포착했다. 109 × 152cm. / PKM 갤러리
아이슬란드 원초적 풍경 담은··· 한 폭 '수묵화' 같은 사진
사진가 이정진 (65)은 2년 전 아이슬란드 땅을 처음 밟았다. “공포스러울 정도로 거칠고 다이내믹한 자연” 이 그를 맞았다. “왜 이제야 여길 왔을까 싶을 정도로, 발을 내딛는 순간 ‘나의 영토’ 라는 직감이 들었다. 극단적인 날씨 변화와 속도가 내 어깨를 막 흔들어대는 것 같았다.” 그는 원초적인 시공간에 몸과 정신을 맡긴 채, 풍경이 온전히 자신을 통과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서울 삼청동 PKM 갤러리에서 6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 ‘Unseen / Thing’ 에 이 사진들이 나왔다. 검은 화산암과 흰 눈, 역동적인 공기, 거품이 이는 파도와 거친 바위가 태초의 자연처럼 흑백 사진에 녹아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먼저 발표한 이 사진들은 가디언과 FT 매거진 등 주요 외신에서 “우리 내면의 모든 울림을 담아낸 풍경” 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가디언은 별 다섯 개 중 네 개를 주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풍경은 실존적 불안과 은유적인 사색의 표현” 이라고 평했다.

이정진, 'Unseen # 55' (2024). 하얀 거품 같은 파도가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가르며 끝간 데 없이 이어진다. 109 × 152cm. / PKM 갤러리
사진이지만 회화처럼 보인다. 거친 목탄화 같기도, 짙은 수묵화 같기도 하다. 하얀 거품 같은 파도가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가르며 끝간 데 없이 이어지고, 우뚝 솟은 원뿔 모양 산 형상이 수면 위로 반사돼 대칭을 이룬다. 흐릿하게 번진 수평선, 검은 화산암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자연과 마주하며 형성된 내면 풍경에 가깝다. 작가는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다” 며 “경계에 있는 상태 자체를 받아들여 달라” 고 했다.
한지 (韓紙)에 사진을 인화하는 독특한 아날로그 기법을 고수하고 있다. 촬영은 한 달 만에 끝났지만, 후속 작업이 열 달 걸린 이유다. 풍경을 촬영한 다음 한지에 붓으로 감광 유제를 바른 뒤 그 위에 인화하고, 이를 다시 디지털로 스캔하고 보정 작업을 거쳐 인쇄한다. 그는 “느리고 지난한 과정이지만, 이 느린 속도가 깊이와 바닥을 보려는 정신과 맞닿아 있다” 고 했다. 한지에 감광 유제를 바르면 마치 피부처럼 깊은 곳에서 이미지가 배어 나오는 질감을 만들어낸다. “한지의 물성은 관람자가 사진을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하도록 만드는 힘을 지녔다” 고 했다.

사진가 이정진 개인전 ' Unseen / Thing' 전시장 전경. / PKM 갤러리

사진가 이정진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사막’ (1990 ~ 1995) 시리즈를 냈고, 2010 ~ 2011년 ‘This Place’ 프로젝트에 유일한 아시아 작가로 참여하며 국제 사진계의 주목을 받았다.
토기, 숟가락 등 익숙한 사물을 포착한 ‘Thing’ 시리즈도 이번 전시에 함께 나왔다. PKM 갤러리는 “두 작업에는 20여 년의 시차가 있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 가시적인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고 했다. 23일까지. 무료.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6년 5월 15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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