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 딸이 말하는 '내 아버지 유영국' 유진 이사장 · 유자야 이사 인터뷰]

한 관람객이 전시장 마지막 섹션에 나란히 걸린 유영국의 1994년 작 두 점을 감상하고 있다. 왼쪽은 ‘산-Blue’, 오른쪽은 ‘산-Red’.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절대적인 평온과 숭고함에 이른 만년의 대작들이다. 캔버스에 유채, 각 260 × 200㎝. / 뉴시스
과묵했던 아버지··· 추상 그린 이유도 '말 없어 좋다'
"아버지께 '왜 산 그리시냐' 물어보니
산에는 무엇이든 다 있다 하셨다
평생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려
유영국展, 2주 만에 4만명 넘게 찾아
‘한국 추상회화의 선구자’ 유영국 (1916 ~ 2002) 탄생 110주년을 맞아 열리는 역대 최대 규모 회고전이 초반부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지난달 19일 개막한 ‘유영국 :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장은 평일·주말 할 것 없이 관람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최근 수년간 열린 전시 중 가장 뜨거운 반응” 이라며 “3일까지 보름 만에 누적 관람객 4만3943명, 하루 평균 2930명이 찾았다” 고 했다.
유족들은 “너무 감격스럽다” 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생전 이 전시를 보셨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좋은 전시를 열어주셔서 감사하고 무한한 영광입니다.” 전시장에서 장남인 유진 (76)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명예교수)과 차녀 유자야 (78)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를 만나 ‘내 아버지 유영국의 삶과 철학’ 을 들었다.

이번 전시에는 유영국의 미공개 유화 15점이 처음 나왔다. 맨 오른쪽에 걸린 ‘작품 (Work · 1989)’ 이 최초 공개작이다. 100 × 81cm. / 고운호 기자
◇ “천재가 아니라서 산을 그린다”
유진 : 아버지께 ‘왜 산을 그리세요’ 여쭤본 적이 있다. 그때 하신 얘기다. 피카소 같은 사람은 워낙 천재라서 뭘 그려도 다 잘 그리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다고. 그래서 고향 울진의 산을 평생 그리셨다. 산에는 무엇이든 다 있다고 하셨다. 산은 항상 같은 것 같지만 항상 다르다. 산을 테마로 하되 기하학적으로도 그리고, 색면으로도 그리고 여러 변화를 가했다. 동양화로서의 전통이 아버지 그림에도 있다.
유자야 : 서울 약수동 적산가옥에 살던 시절, 아버지 화실이 아주 작았다. 겨울엔 너무 추워서 난방비 아끼려고 안방 앞 좁은 마루에서 소품을 그리셨다. 화실 출퇴근 시간은 엄격하게 지키셨다.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기계처럼’ 그림을 그렸다. 술 마신 후엔 그림을 안 그린다는 게 원칙이었고, 그때는 형광등이 없을 때라 밤에는 그림을 안 그리셨다. 밤에 보는 색과 낮에 보는 색이 다를 수 있다고, 그 시간을 피하셨던 게 기억 난다.

전시장에서 만난 차녀 유자야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 (왼쪽)와 유진 이사장. / 고운호 기자
◇ 어부 · 양조장 주인으로, 사업가 유영국
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경성 제2고보를 거쳐 일본 도쿄 문화학원으로 유학한 유영국은 1943년 태평양전쟁 때 귀국해 고향에 정착했다. 결혼도 하고 가정도 일궜다. 스스로 ‘잃어버린 10년’ 이라 표현할 정도로 작업에 매진하지 못했던 시기다. 하지만 그는 어부로, 양조장 주인으로 사업 수완을 발휘한다. 울진에서 해방을 맞고 6 · 25 전쟁을 겪는 동안, 그가 만든 소주 ‘망향 (望鄕)’ 은 실향민 어부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유진 : 울진에 할아버지 배가 있었다. 도쿄에서 활약하던 모던 보이가 갑자기 고기잡이 배를 하겠다고, 본인이 어부들도 직접 모았다. 그 동네에서 어획고가 가장 높았다.
유자야 : 아버지가 사업가적인 기질이 있었다. 만선이 아니면 안 돌아오셨다. 양조장 할 때도 돈은 굉장히 많이 버셨는데 아버지는 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셨다. 결국 1955년 사업을 접고 온 가족 데리고 상경하셨다. ‘금산도 싫고 금논도 싫다. 나는 화가가 될 것’ 이라고 하셨다.

유영국 탄생 110주년 회고전 ‘유영국 :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장에서 관계자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맨 오른쪽 그림이 방탄소년단 RM의 소장품인 '작품 (Work · 1968)' 다. / 뉴시스
◇ 과묵했던 아버지
유영국은 과묵한 화가였다. 아무도 추상화를 알아주지 않던 시절, 처음부터 추상을 시도한 이유도 “말이 없어 좋다” 는 것이었다. 1977년 심장 쇼크가 왔다. 심장 박동기를 달고 여덟 번의 수술과 30여 차례 입 · 퇴원을 겪으면서도 “아프다” 는 말 한마디 한 적 없었다.
유자야 : 항상 아프셔서 아버지가 너무 가여웠다. 병원으로 밥 날라드리고 “아버지 힘드시죠?” 여쭤도 늘 “괜찮다” 고만 하셨다. 돌아가신 뒤 보니까 아버지가 그림 그릴 때 쓰던 안경이 일곱 개 나왔는데, 마지막 안경의 렌즈 두께가 1㎝가량 되더라. 그런데도 한 번도 눈이 불편하다는 얘기를 하신 적이 없다.

유영국 탄생 110주년 회고전 ‘유영국 :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장에서 한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 고운호 기자
유진 : 그만큼 직업정신이 철두철미하셨다. 1992년인가, 거동이 불편하셔서 이제 좀 쉬었다 하시라고 했더니 “환쟁이가 그림 그리다 죽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 고 소리를 치셨다. 화실은 자기만의 방이었다.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사람을 집으로 초대하거나 많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많이 알면 마음이 복잡해진다고, 그만큼 심플하게 사신 거다.
유자야 : 평생 구도자처럼 그림을 그리셨다. 혼자 등불을 켜고 앞길을 찾아가는 격이었으니 힘들고 외로우셨을 거다. 그걸 몇십 년 하신 아버지가 존경스럽다.

일본 유학 시기의 유영국 . 1930년대 말 ~ 1940년대 초. /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번 전시는 유화 115점, 드로잉, 부조, 사진 등 총 178점의 작품과 아카이브를 총망라했다. 미공개 유화 15점도 처음 나왔다. 10월 25일까지. 관람료 무료.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6년 6월 4일 자]

'전시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바람의 길목 DMZ] 02 (0) | 2026.06.29 |
|---|---|
| [바람의 길목 DMZ] 01 (0) | 2026.06.25 |
|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오늘 개막] (0) | 2026.06.20 |
| [강영순 展] (1) | 2026.06.16 |
| [도솔산 선운사 ㅡ 선 禪에 들고 구름에 눕다] 04 (1) | 2026.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