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바람의 길목 DMZ] 02

드무2 2026. 6. 2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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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길목 DMZ] 02

 

 

 

 

 

 

 

 

 

 

 

 

 

경계를 넘어 이어지는 땅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라 여겨지는 비무장지대는 예부터 지금까지 사람과 자연이 함께 공존해 온 공간입니다. 한반도를 가른 선은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익숙한 경계가 되었지만, 분단의 역사는 불과 수십 년에 불과합니다.

 

한때 번성했던 이 땅 위의 기억은 지금도 비무장지대 안에서 고향에 돌아갈 날을 고대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이어져 있습니다. 남과 북의 긴장이 완화되던 시기에는 금단의 경계를 넘어 평화를 위한 방법을 함께 모색하며 서로 돕고 협력하였습니다. 우리는 끊어진 길을 다시 잇고, 더 넓은 세계로 향하는 길목에서 새로운 왕래의 가능성을 기대해 봅니다.

 

 

 

 

 

 

 

 

 

 

People in the DMZ                                                                   

비무장지대의 사람들

 

 

 

 

 

 

 

눈 덮힌 비무장지대

 

비무장지대에 인접한 마을에서 바라본 북녘이다. 실향민들은 철책 너머 고향땅에 돌아갈 날을 고대하며 살아간다.

 

최병관 | 1998

 

 

 

 

 

 

 

 

 

 

대성동과 기정동

 

정전협정 체결 당시, 남북은 비무장지대 내에 민간인 거주 마을을 각각 한 곳씩 두기로 합의하였다. 남한의 대성동, 북한의 기정동 마을이 남게 되었다.

 

구와바라 시세이 | 1965

 

 

 

 

 

 

 

기정동의 옛 풍경

 

남측에서 바라본 북한의 기정동 마을이다. 1960년대에는 사람들이 실제 거주했으나, 현재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선전 마을' 로 알려져 있다.

 

구와바라 시세이 | 1965

 

 

 

 

 

 

 

대성동의 옛 풍경

 

북측에서 바라본 대성동 마을이다. 대부분 초가집이었으나, 북한과의 체제 선전 경쟁 속에서 주택이 개량되기 시작했다.

 

구와바라 시세이 | 1964

 

 

 

 

 

 

 

통행증을 모자에 단 대성동 주민

 

대성동 주민의 모자에 유엔사가 발급한 통행증이 부착되어 있다. 당시 마을 안팎으로 출입하기 위해서는 이 통행증을 제시해야만 했다.

 

구와바라 시세이 | 1965

 

 

 

 

 

 

 

신분증을 맡기는 대성동 주민

 

당시 대성동 논민이 거주지에서 벗어나 농지로 가기 위해서는 유엔사에서 발급한 신분증을 맡기고 들어가야만 했다. 군사분계선을 넘는 돌발상황 등이 발생했을 때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1970

 

 

 

 

 

 

 

군용트럭을 타고 이동하는 대성동 주민

 

비무장지대에서 거주하는 대성동 주민들의 일상에서 지금도 여러 제약이 따른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대성동 주민들은 1주일에 단 한 번, 군용트럭으로만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구와바라 시세이 | 1964

 

 

 

 

 

 

 

 

 

 

 

 

 

비무장지대 신분증

 

당시 대성동 주민은 유엔사가 제작한 신분증을 소지해야 한다. 1969년이 되어서야 한국 정부가 발급한 주민등록증을 받을 수 있었다.

 

1955

 

 

 

 

 

 

 

대성동과 기정동 국기게양대

 

비무장지대 내 한국과 북한의 두 마을은 서로의 체제 선전을 위해 각각 99.8m, 160m까지 국기게양대를 높이며 경쟁하기도 했다. 한국은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국기게양대를 더 이상 높이지 않았다.

 

김녕만 | 1992

 

 

 

 

 

 

 

판문점 인근의 농민과 미군

 

정전회담이 진행되던 역사적 순간에도 판문점 인근 마을 주민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농사를 지으며 일상을 이어갔다. 저 멀리 유엔사 소속 미군의 모습은 일상과 긴장이 공존하는 판문점 일대를 보여준다.

 

NARA | 1951

 

 

 

 

 

 

 

대성동 주민과 미군

 

대성동은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사가 관할하는 곳이다. 2004년에 마을 경비의 임무가 한국군으로 이양되었지만, 여전히 이곳의 최종 권한과 책임은 유엔사에 있다.

 

구와바라 시세이 | 1964

 

 

 

 

 

 

 

대성동 주민과 군인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대성동에서는 군인들이 순찰을 돌며,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주민들은 매일 저녁 인원 점검을 받으며 살아간다.

 

박종우 | 2009

 

 

 

 

 

 

 

 

 

 

실향민

 

두 실향민이 비무장지대 너머 고향을 바라보며, 돌아갈 수 없는 현실에 하염없이 울고 있다.

 

최병관 | 1998

 

 

 

 

 

 

 

 

 

 

 

 

 

 

 

 

 

 

 

 

 

 

 

 

 

 

 

 

 

 

 

 

 

 

 

 

 

The Place People Left Behing                                                                                 

사람이 떠나간 자리

 

 

 

 

 

 

 

 

 

 

철원 광삼역 전기철도 선로

 

철원에서 금강산으로 향하던 철길은 사라지고, 철길이 지나던 그 자리에 지금은 풀만이 무성하다.

 

최병관 | 1997

 

 

 

 

 

 

 

 

 

 

철원 풍천원

 

후고구려 (훗날 태봉)를 세운 궁예가 도성을 쌓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비무장지대 내에 위치하고, 수많은 지뢰가 묻혀 있어 아직까지도 해당 유적지의 조사 및 발굴이 어렵다.

 

박종우 | 2010 (아래)  국립중앙박물관 | 1916 (위)

 

 

 

 

 

 

 

 

 

 

 

 

 

 

 

 

 

 

 

철원 김화읍

 

철원은 한때 비옥한 농지가 많은 곡창지대였다. 이제는 그 흔적만이 남아 있다.

 

최병관 | 1997 (아래)   국립중앙박물관 | 1916 (위)

 

 

 

 

 

 

 

 

 

 

 

 

 

 

 

 

 

연천 고랑포구

 

임진강에 접해 있는 고랑포구는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1930년대에는 경성과 개성을 잇는 물류 거점이었다. 전쟁 이후 접경지대가 되면서 인적이 드물어졌다.

 

박종우 | 2009 (아래)   연천군청 | 1930년대 (위)

 

 

 

 

 

 

 

 

 

 

서로를 마주보던 순간들

                                                                      Moments of Encounter

 

 

 

 

 

 

 

대화를 나누는 남북적십자회담 위원

 

군사분계선인 연석을 사이에 두고 회담의 주요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석을 넘지는 못하지만 서로의 일상과 안부를 묻기도 하였다.

 

김녕만 | 1992

 

 

 

 

 

 

 

 

 

 

경비를 서는 군인들

 

판문점에서 회의가 있을 때면 공동경비구역 내 한국군과 북한군이 서로 마주보고 경비를 선다. 양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정전 상태를 관리하는 회의 또는 남북교류를 위한 회의 장소로 활용되었다.

 

김녕만 | 1990

 

 

 

 

 

 

 

 

 

 

한국선수단의 귀환

 

평양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대회 경기를 치른 후 한국선수단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지나 귀국하였다. 평양과 서울에서 한 차례씩 열린 남북통일축구대회는 남과 북이 스포츠를 매개로 직접 교류한 경기였다.

 

김녕만 | 1990

 

 

 

 

 

 

 

 

 

 

회담을 취재하는 기자들

 

정전 상태를 관리하는 회의 진행 당시, 기자들이 회담장 밖에서 취재하고 있다. 한국 기자들은 취재 목적에 한하여 잠시 군사분계선을 넘기도 했다.

 

김녕만 | 1990

 

 

 

 

 

 

 

마주보고 있는 남북

 

판문점에서는 남북이 마주하는 일이 거의 없도록 운영되나, 우연히 서로 마주보는 상황이 생겼다. 찰나지만 남북이 함께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김녕만 | 1992

 

 

 

 

 

 

 

북한선수단의 방문

 

서울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대회 2차전 참석을 위해 북한선수단이 판문점에서 북한 주민들이 환송하고 있다.

 

김녕만 | 1990

 

 

 

 

 

 

 

작별인사를 나누는 남과 북

 

판문점에서 회의를 마친 후 남측 연락관이 군사분계선 연석 위에 서서 북측 관계자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김녕만 | 1992

 

 

 

 

 

 

 

함께 앉은 남북 기자들

 

남북 기자들이 판문점 내 벤치에 함께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남측 기자는 'Press' 완장을, 북측 기자는 '기자' 완장을 차고 있다.

 

김녕만 | 1984

 

 

 

 

 

 

 

우산 아래 남북 기자들

 

판문점에서 갑작스레 비가 내리자 남북 기자들이 급히 한 우산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김녕만 | 1989

 

 

 

 

 

 

 

 

 

 

A Step toward Peace                                                           

평화를 향한 한 걸음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는 두 정상

 

두 정상이 넘고 있는 연석은 군사분계선 표시를 위해 만들어졌다. 폭 50㎝, 높이 5㎝의 낮은 문턱이지만 쉽게 넘을 수 없는 경계이다.

 

연합뉴스 | 2018

 

 

 

 

 

 

 

 

 

 

무장해제한 판문점 군인

 

2018년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몇 가지 조치를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공동경비구역 내 군인이 권총을 소지하지 않고 경계임무를 섰다. 북한 측이 2023년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한 이후 양측은 다시 무기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 2022

 

 

 

 

 

 

 

 

 

 

 

 

 

감시초소 철수

 

남북은 2018년 군사합의에 따라 가장 가까이 마주보고 있는 비무장지대 감시초소를 철거했고, 남북이 공동으로 현장을 확인했다.

 

연합뉴스 | 2018                                                                                                                                                영상 제공 : KBS

 

 

 

 

 

 

https://www.youtube.com/watch?v=KJtXldqqGpI

 

 

 

 

 

 

 

북으로 가는 첫 길목

 

임진각에서 도라산역으로 이어지는 임진강 철교이다. 전쟁으로 끊어진 뒤 임시 복구되었다가, 경의선 복원사업을 통해 다시 세워졌다. 현재 도라산역의 다음 역인 북한의 판문역까지는 이어지지 못한 채 북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최병관 | 1997

 

 

 

 

 

 

 

 

 

 

 

 

 

 

 

 

죽음의 계곡에서 희망의 계곡으로

 

도라산역에서 개성으로 가는 비무장지대 내 경의선 철길이다. 전쟁 당시 미군 1개 중대가 전멸하여 '죽음의 계곡' 으로 불리던 이곳은 경의선 복원사업으로 철길이 새로 놓이면서 '희망의 계곡' 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최병관 | 1997, 2003

 

 

 

 

 

 

 

 

 

 

 

 

 

 

 

 

 

 

 

 

 

https://youtu.be/hM_T1iNnR4c

 

다큐인사이트 비무장지대 1부 고지에서

 

 

 

https://youtu.be/iUWOUyny-Nk

 

다큐인사이트 비무장지대 2부 경계에서 600일

 

 

 

https://youtu.be/BVv7tnenT4Q

 

보이지 않는 선 다시 경계에서

 

 

 

 

 

 

 

Reconnected Eailway                                                       

다시 잇는 철길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시범운행

 

2000년 한국과 북한은 전쟁으로 끊어진 경의선과 동해선 철길을 복원하기로 합의하였다. 두 철길이 복원된 후, 문산역에서 북한의 개성역까지, 그리고 북한의 금강산역에서 한국의 제진역까지 시범운행을 하였다.

 

연합뉴스 | 2007 (상)

경향신문 | 2007 (하)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

2007. 5. 17

 

 

 

 

 

 

 

 

북남철도련결구간

렬차시험운행

2007. 5. 17

 

 

 

 

 

 

 

 

 

 

인사를 나누는 남북 승무원

 

연합뉴스 | 2007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는 동해선 열차

 

연합뉴스 | 2007

 

 

 

 

 

 

 

 

 

 

DMZ 너머, 새로운 세계로

                                                            Over the DMZ : New Connections

 

 

 

 

 

 

 

 

 

 

Shared Laughter and Tears                                                                    

함께 울고 함께 웃다

 

 

 

 

 

 

 

소떼 방북

 

실향민이었던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은 1998년 소떼 1,001마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으로 향했다. 그의 방문은 남북한 금강산 관광사업의 계기가 되었다.

 

연합뉴스 | 1998

 

 

 

 

 

 

 

금강산 육로 시범관광

 

금강산 관광 초기에는 동해에서 배를 타고 갔지만, 2003년 9월부터는 버스를 타고 직접 비무장지대를 넘어 금강산으로 갈 수 있었다.

 

현대아산 | 2003

 

 

 

 

 

 

 

 

 

 

남북 고향 방문단 · 예술단

 

북한의 수재물자를 보내논 것을 계기로 관계가 개선되어 최초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더불어 예술단 공연 행사가 열렸다.

 

경향신문 | 1985

 

 

 

 

 

 

 

대성동에 내린 북한 수재물자

 

1984년 북한이 한국을 돕기 위해 보내온 수재물자는 대성동에 임시로 내려진 후 다시 전국으로 운송되었다.

 

김녕만 | 1984

 

 

 

 

 

 

 

북한에서 오는 수재물자

 

1984년 한국에 수해가 발생하자 북한이  수재물자를 보내왔다. 수재물자를 실은 트럭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내려오고 있다.

 

김녕만 | 1984

 

 

 

 

 

 

 

 

 

 

 

 

 

 

 

 

 

 

 

 

 

 

 

 

 

 

 

 

 

 

 

 

 

 

 

 

 

 

 

 

 

 

 

 

 

 

 

 

 

 

 

 

 

 

 

 

 

 

 

 

 

 

 

 

 

 

 

 

 

 

 

 

 

 

 

 

 

 

 

 

 

 

 

 

 

 

 

 

 

 

 

 

 

 

 

 

 

 

 

 

 

 

 

 

 

 

 

 

 

 

 

 

 

 

 

 

 

 

 

 

 

 

 

 

 

 

 

Walking the DMZ Again                                                           

다시 걷는 DMZ

 

 

 

 

 

 

 

DMZ 철조망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비무장지대 철조망 조각을 6 · 25전쟁 50주년 기념푼으로 제작하였다.

 

2000

 

 

 

 

 

 

 

DMZ 평화의 길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가 언젠가는 평화의 공간이 되어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걷기여행길' 을 조성하였다.

 

고성군청 | 2019

 

 

 

 

 

 

 

 

 

 

바람의 길목에서

                                                         On the Path for Peace

 

 

 

 

비무장지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냉전의 유산입니다. 보이지 않는 이념의 선을 비롯해 이 땅 위에 그어진 여러 경계를 넘어 대화하고 교류해 온 여정은 평화공존을 위한 작은 단초이자, 진정한 냉전의 종식을 향한 발걸음입니다. 서로를 가로막은 경계를 마주하고, 때로는 멈춰 섰지만, 다시 연결을 시도하는 순간들이 쌓이면서 이 땅은 조금씩 바뀌어 갑니다. 보이지 않더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그 흐름과 움직임, 평화와 공존을 향한 우리의 바람은 서서히 남북의 길목을 더욱 넓혀줄 것입니다.

 

 

 

 

총          괄 한수

전 시 총 괄 김현정

전 시 기 획 이지혜, 권기준, 도우현, 여선영

전시디자인 박지은

전 시 지 원 문근실, 이명주, 이도원, 이정윤, 박시원, 오경운, 윤동희, 이수재

참 여 작 가 구와바라 시세이, 김녕만, 박종우, 최병관

자 료 협 조 경향신문, 고성군청, 국가기록원, 국립중앙박물관, 눈빛출판사, 연천군청, 연합뉴스, 조선일보, 철원문화원,

                 철원역사문화연구소, 통일부 UNITV, 한국사진기자협회, 현대아산, NARA, KBS

전 시 연 출 (주) 이리스공간그룹

전 시 영 상 미디어팩토리

홍   보   물 삼십칠도커뮤니케이션

영 문 번 역 Timothy V. Atk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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