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 작가 이종구 개인전]

이종구, 불이 (不二)_불,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 x 130cm. / 학고재
둘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둘인 세계
반가사유상 만나며 내면 통찰
살포시 미소 지은 국보 금동반가사유상 옆에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검은 화폭 속 두 화면이 짝을 이룬 그림. 오른쪽 화면을 채운 불길은 중생의 번뇌를 태우고 지혜를 밝히는 성스러운 빛이다.
1980년대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투쟁하듯 농민의 얼굴을 그렸던 민중미술 작가가 확 달라진 그림으로 돌아왔다. 서울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서 8년 만에 열리는 이종구 (72) 개인전 ‘사유 (思惟)’ 에서다. 신작 회화 38점을 통해 밖이 아니라 내면으로 향하는 시선을 보여준다.

이종구, '사유_월인천강' (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180 × 180cm. / 학고재
코로나 팬데믹과 건강 악화가 변화의 계기가 됐다. 두 번의 큰 수술을 받고 죽음의 문턱에 섰던 작가는 생로병사와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면서 반가사유상에서 해답을 얻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을 수십 번 찾았다. “반가사유상 앞에 서면 완벽한 조형성에 감동하고, 깊은 사유와 해탈한 모습에서 또 감동을 받게 된다. 예술적 감동과 종교적 감동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전시장엔 두 개의 캔버스를 하나로 붙인 작품이 대부분이다. 한쪽엔 반가사유상을 그리고, 다른 쪽엔 인간의 육체나 흐르는 물, 불꽃 등을 그려 넣었다. 그는 “삶과 죽음, 고통과 평화는 서로 다른 게 아니고 의존하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관계” 라며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불교의 불이 (不二) 사상을 회화로 구현하려 했다” 고 말했다.

이종구, '사유_생로병사2' (2024).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 × 130cm. / 학고재
화가의 자화상 두 점을 나란히 배치한 그림도 있다. ‘사유_생로병사2’ 는 왼쪽엔 환자복을 입고 수액 거치대를 잡고 있는 모습, 오른쪽엔 회복 후 다시 사회 활동을 시작한 순간을 담았다. 그는 “환자일 땐 살려고 링거를 붙잡고 있었는데, 퇴원하니 생계를 위해 휴대전화를 잡고 있게 되더라” 며 “이게 삶이구나 생각하게 됐다” 고 했다.
한때 “현장에서 그림으로 싸웠던” 민중미술 투사는 이제 외부가 아닌 내면을 본다. 이종구는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혐오도 불이 사상에서 보면 하찮은 인간의 욕망과 집착에 불과한 것” 이라며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내면에 있는 부처를 발견하면 전쟁이나 싸움도 없어지지 않겠냐” 고 했다. 7월 4일까지. 무료.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6년6월 17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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