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유영국 회고전' 전시 공간 꾸민 양태오 디자이너]

서울시립미술관 '유영국 :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장을 디자인한 양태오 태오양 스튜디오 대표가 개방형 공간이 활짝 열리는 4부 섹션에 앉아 있다. 유영국의 소품 29점을 한데 모아 벽면에 3단으로 전시했다. 그는 “유영국 작가가 젊은 시절 일본에서 전시했을 때 나무 진열대 위에 작품을 놓았던 사진을 참조했다” 고 했다. 오른쪽엔 작가가 서울 등촌동 작업실에서 실제 쓰던 의자가 전시됐다. / 장련성 기자
"가구도 바닥도··· '유영국 작가라면' 생각하고 만든 공간"
유 작가의 1964년 첫 전시 재현하고
창 여럿 만들어 山 겹겹이 보이게 해
"내 안의 산 찾아 위로받아 가시길"
“전시 공간 디자인이 너무 좋아서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무료 전시라고 믿기 어려운 최고의 디스플레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리는 ‘유영국 :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에 쏟아진 관람객들의 찬사다. ‘한국 추상회화의 선구자’ 유영국 (1916 ~ 2002) 탄생 11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역대 최대 규모 회고전에 N차 관람이 이어지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거장의 산맥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유영국 회고전의 첫 섹션. 1964년 마흔여덟에 열린 유영국의 생애 첫 개인전 전시장을 재현했다. 사진 김상태. /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공간 디자인을 맡은 디자이너 양태오 (45 · 태오양 스튜디오 대표)를 지난 17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유영국 작가를 좋아해서 작년 말 미술관 측 의뢰를 받고 너무 기뻤다” 는 그는 “여경환 학예연구사의 전시 기획과 구성안이 워낙 탄탄해서 처음 설명을 들을 때부터 머릿속에 공간이 그려졌다” 고 했다.
ㅡ 1964년 마흔여덟에 열린 유영국의 생애 첫 개인전으로 전시의 문이 열린다.
“전형적인 연대기 순을 탈피한 전시 흐름이 좋았다. 첫 개인전이 열린 시공간으로 안내한 뒤, 시간을 역행했다가 다시 순행하도록 입체적으로 구성했더라. 당시 첫 전시를 소개한 다큐멘터리에 동료 작가가 ‘마치 설산을 마주하는 것 같아 충격받았다’ 는 인터뷰가 나온다. 대작이 흔치 않던 시대에 100호짜리 거대한 그림들이 압도한 거다. 그런 디테일을 공간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ㅡ 공간 표현에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전체 디자인은 물론 각 섹션의 포인트와 벽면, 가구, 바닥까지 작가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유영국이라면 이 공간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계속 생각했다.”

2부 섹션에선 1930 ~ 1940년대 아방가르드 실험기 작품들의 비대칭적인 선을 어두운 배경의 X자 형태 공간으로 표현했다. 사진 김상태. / 서울시립미술관

유영국의 추상 언어가 확립된 시기의 작품을 보여주는 3부 공간. 벽에 창을 내 공간과 공간 사이로 유영국의 '산' 이 풍경처럼 드러난다. / 장련성 기자

파란색 카페트가 깔린 4부 섹션. 산과 바다를 마주하는 사유의 공간이다. 사진 김상태. / 서울시립미술관
ㅡ 전시가 5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각각의 공간을 어떻게 구성했나.
“1부에선 흰색 벽면에 전시된 대형 작품을 통해 1964년 전시장을 재현했다. 2부에선 1930 ~ 1940년대 아방가르드 실험기 작품들의 비대칭적인 선을 어두운 배경의 X자 형태 공간으로 표현했다. 유영국의 추상 언어가 확립된 3부에선 사각형 공간 안에 창을 여러 개 냈다. 유영국이 작업실 창을 통해 산을 바라보듯 관객들이 그의 산을 겹겹이 바라볼 수 있게 의도했다.”
ㅡ 개방형 공간이 활짝 열리는 4부가 인상적이라는 평도 많다.
“산과 바다를 마주하는 사유의 공간이다. 바닥엔 파란색 카펫을 깔았고, 실제 작업실도 재현했다. 서울 약수동과 등촌동, 방배동으로 옮겨가며 실제 쓰던 의자와 이젤 등을 전시했다.”
ㅡ 만년의 심상 추상 세계를 보여주는 마지막 5부에선 나무 벽면이 도드라진다.
“시간을 관통해 쓰이는 나무 벽을 통해 유영국이 시대를 뛰어넘어 미래에도 공명할 수 있는 작가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양태오는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과 국립한글박물관 등을 세련된 감각으로 재탄생시켜 주목받았다. 영국 출판사 파이돈이 선정한 ‘세계 100대 인테리어 디자이너’ 에 올랐고, 지난해엔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에서 열린 호안 미로 개인전에서 우리 한옥의 ‘차경 (借景 · 경치를 빌림)’ 개념을 반영한 공간 구성으로 호평받았다.

만년의 심상 추상 세계를 보여주는 5부 공간. 나무 벽면을 통해 유영국이 시대를 뛰어넘어 미래에도 공명하는 작가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사진 김상태. / 서울시립미술관

유영국 회고전 전시 공간 디자인을 맡은 디자이너 양태오가 전시장 입구에 서 있다. 왼쪽 사진은 '한국 추상회화의 선구자’ 유영국의 젊은 시절 모습. / 장련성 기자
유영국은 정해진 일상의 시간표에 맞춰 “기계같이” 그림을 그렸다. 매일 아침 9시에 붓을 들고 저녁 6시에 내려놓는 하루를 평생 반복했다. 1980년대 심장 박동기를 달고 여덟 번의 수술과 30여 회 입 · 퇴원을 겪으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양태오는 “작업 루틴이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 며 “수술을 마치고 와서도 작업실에 앉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작가를 알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이정표가 있는 삶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이렇게 영감을 주는구나 싶다” 고 했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유영국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양태오는 “예전엔 어두운 녹색 바탕의 흰색 선을 보면 산속의 안개인가 했는데, 작가의 태도를 깊이 알게 되면서 흰색 빛이 힘든 삶에서 다가온 한 줄기 희망처럼 보인다” 며 “관람객들도 그의 작품에서 위로를 받고 ‘내 안의 산’ 을 찾으시면 좋겠다” 고 했다. 10월 25일까지. 관람료 무료.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6년 6월 22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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