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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상주여행 제1일(용흥사)

드무2 2022. 4. 2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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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상주여행 제1일(용흥사)

 

 

 

집사람의 고향친구들 부부와 상주여행을 했다.

집사람 친구 중 한 분의 시댁이 상주여서 그 분의 남편이 고향 본가에 내려가 살고 있어 그곳으로 여행을 가게 됐다.

초행길이라 기대감을 갖고 출발하였다.

 

여행일 : 2022년 4월 23일 토요일

교통편 :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상주행 천일고속머스(우등)를 타고 11시 10분 출발(상주까지의 소요시간은 약 2시간 30분) 비용은 1인 19,200원

 

 

 

상주로 내려가는 고속버스 안

 

 

 

상주에 도착 후 점심을 칼국수로 간단하게 먹고 약간의 산행을 하였다.

 

 

 

산행길 초입에 있는 연악구곡 안내도

연악구곡(淵岳九曲)

 

제1곡 탁영담(濯纓潭)

제2곡 사군대(使君臺)

제3곡 풍   암(楓   巖)

제4곡 영귀정(詠歸亭)

제5곡 동   암(東   巖)

제6곡 추유암(楸遊巖)

제7곡 남   암(南   巖)

제8곡 별   암(鱉   巖)

제9곡 용   추(龍   湫)

 

 

 

구곡(九曲)의 기원은 송나라 주자(朱子)가 무이산에서 구곡(九曲)을 설정하여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남긴데서 유래.

우리나라에서는 산수가 빼어난 계곡의 바위(巖) · 대(臺) · 담(潭) 등에 퇴계(退溪) · 율곡(栗谷)의 문하생들이 성리학의 적통을 이으려는 뜻에서 설정하였음.

보통 하류 1곡(曲) → 상류 9곡(曲)으로, 이곳의 총거리는 대략 10리 정도임.

 

■ 연악구곡 : 남계(南溪) 강응철(康應哲, 1562~1635) 『남계집(南溪集), 1601년』

■ 논문 : 김정찬 (상주고교 교사, 지방문화재 전문위원)

 

 

 

 

 

 

상주시 종합 관광안내도

 

 

 

 

 

 

 

 

 

용흥사로 오르는 길에 뒤돌아 본 모습

 

 

 

용흥사로 오르는 일행들

 

 

 

연악산용흥사사적비명(淵嶽山龍興寺事蹟碑銘)

 

 

 

 

淵 嶽 山 龍 興 寺 事 蹟 碑 銘

 

商山 三嶽의 淵嶽은 세칭 甲長山이니 龍興寺가 앉은 자리는 鶴이 비상하고 龍이 승천한 龍淵의 길장지다. 절의 창건은 신라 문성왕 원년(839) 佛國龍興을 염원한 眞鑑禪師에 의한 것이라 口傳하니 이는 선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최초로 尙州露嶽長栢寺에 머문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고려말 이전의 자취로는 명종4년(1174) 상주에 우거했던 林椿의 遊龍興寺詩에 나타난 고승 碓師와 海雲房淸風閣古塔의 존재가 전부요 고려말 이후 절의 성쇠는 1805년에 지은 龍興寺重修上樑文으로 그 대강을 알 수 있다. 여말 懶翁和尙이 極楽寶殿을 營度함에 왕국의 福慶地가 크게 열리고 龍象이 구름같이 모여 동국제일의 형승이요 영남의 으뜸 가람으로 번창하였으나 조선 개국으로 法橋가 끊길 듯한 긴 수난에 龍吟은 그칠 날이 없었다. 그러나 불국수호의 信心은 샘솟듯하여 인조 25년(1647)에는 法心印和대사가 극락보전에 木造阿彌陀三尊佛을 모시고 初營하였으며 숙종 6년(1680)에는 思祐弘洽대사가 二重修함에 홍흡스님이 84년 三佛會樹佛幀을 봉안하였고 이때 極楽寶殿後佛幀도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숙종 33년(1707)에는 思俊道仁대사가 三重修하고 순조 5년(1805) 惟坦元希대사가 四重修할 때 煥月定和대사가 중수상량문을 닦았다. 이 밖의 사적은 直指寺末寺篇과 尙州文化遺蹟 등의 책에서 간추린다. 임진년 10월에는 속암 永修庵에서 官兵將과 義兵將 등이 참배한 가운데 명장 鄭起龍이 尙州假判官의 벼슬을 받음으로써 龍興洞은 호국의 결의장이 되었다. 1711년에는 李埈의 蒼石集이 본사에서 판각되었으며 1799년 性宇대사가 주지로 있을 때의 종루 龍華閣과 蓮坡陟貞대사가 머물던 속암 道成庵은 淵嶽文會의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극락보전에 봉안했던 1806년과 1836년 조성의 現王幀과 神重幀은 잃었다 되찾아 현재는 직지사에 모시었다. 1955년 淸道 雲門寺의 비구니 鍾德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일심정성 中興佛事에 진력하더니 1967년에는 故 朴正熙 대통령의 자씨 朴在熙 청신녀의 化主로 극락보전 해체보수의 숙원을 이루었고 이때 절의 유일한 사적기 중수상량문도 얻었으며 68년에는 滿月寮를 중수하고 삼존불 改金과 16나한상 塗粉을 마친 뒤 용흥사 중창비를 세웠다. 게다가 1976년 6월 30일에는 불화를 잃은 극락보전 신중탱 틀 속 유리함에 寶藏된 眞身舍利를 친견하게 되었으니 잃고 얻음이 다 空임을 이로서도 徵驗하였고 78년에는 금당의 현왕탱과 신중탱을 조성 봉안하였다. 1981년에는 상좌 慈月堂 善用 스님이 주지의 중책을 맡음으로써 六重修의 지극한 불사는 지속되어 이듬해 3월에는 五層眞身舍利塔을 기공하여 재일교포 金喆裕 불자의 大供養과 신도 동참 시주로 10월에 준공하니 龍淵은 法悅로 넘치고 淵嶽은 佛光에 드밝았다. 83년에는 白雲禪院을 개설하였고 1990년에는 금당의 후불탱을 문화재 보수 전문인에게 맡겨 원형보존 처리하였으며 95년 만월료를 중수하였다. 2003년 4월 1일에는 삼불회 괘불탱을 寶物로 지정 받아 용흥사는 佛寶刹이자 文化財 寶庫로 빛을 더 하였다. 주지 正法 스님은 오늘의 용흥사가 진감선사 창건이래 千年化城의 성지기는 번갈아 香華를 받들고 유 무명의 四衆佛心은 기름이 되어 불멸의 法燈을 밝힌 공덕으로 남은 것임을 믿어 事蹟碑를 세워서 龍興의 因業을 살피게 하고 나아가 내일을 가리키는 標石을 삼고자 하였다. 이에 스님의 뜻을 따라 절의 내력을 살폈지만 천 년의 자취로는 연악에 떨어진 한점 깃털에 지나지 않으나 다시 만만세에 용흥사가 불광에 빛나는 三寶의 福田이 되기를 비는 마음 時調에 담는다. 商山 甲長 淵嶽山 상서러운 터전에 천년가람 龍興寺 法音도 길을 연다. 한마음 피어난 蓮꽃, 향그러운 佛道場 聖寶는 자비의 햇살 三佛會는 三世에 닿고 佛道는 시공은 넘어 心法으로 밝아온다. 菩提心 밝히는 정성 용흥에 피는 曼陀羅.

 

불기 2548년 서기 2004년 8월 30일

 

글 : 문학박사 權泰乙 시조 : 시인 朴贊善

 

 

 

용흥사 오르는 길 오른쪽에 있는 연못-벚꽃 잎이 수면에 떨어져 있다.

 

 

 

왼쪽에는 연꽃 연못 - 연산홍이 피어 있다.

 

 

 

연산홍과 항아리

 

 

 

담 안의 용흥사가 보인다.

 

 

 

용흥사 입구에 서 있는 나무.

 

 

 

연등이 걸려있는 용흥사 극락보전 앞마당.

 

 

 

白雲禪院

 

 

 

 

 

 

극락보전 앞 5층 석탑

 

 

 

극락보전

 

 

 

극락보전 앞 석등

 

 

 

용흥사 삼불회 괘붕탱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용흥사 삼불회 괘불탱 龍興寺 三佛會 掛佛幀

Hanging Painting of Yongheungsa Temple (Buddha Triad)

보물, 상주시 지천1길 223-35

Treasure

 

용흥사 삼불회 괘불탱은 수화승 인규印圭가 4인의 화승들과 함께 1684년강희23년에 제작하였고, 높이 1,010cm, 폭 655cm의 대형 화면은 삼베 19폭을 이어서 완성하였다. 시주자는 일반인과 승려로 총 64명이 참여하였으며, 대규모 불사였음을 알 수 잇다. 중앙에 사바세계 석가모니불 · 동방유리광세계 약사불 · 서방정토세계 아미타불로 구성된 삼불三佛이 설법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화면 하부에는 삼불의 협시보살이 위치한다. 화면 상부에는 십대제자, 타방불, 용왕 · 용녀, 팔부중, 역사 등이 표현되었고, 화면의 각 모서리에는 사천왕을 배치하였다. 사찰 법당 외부에서 많은 대중들이 모여 법회의식을 열 때 거는 이 대형 불화는 삼불과 권속들의 배치가 조화롭고, 화면 구성이 안정적이며 불 · 보살의 복식은 화려한 문양으로 장엄되었다. 조선 후기 삼불회도 중에서는 가장 시기가 이른 작품으로 중요한 성보 문화재이다.

 

 

 

극락보전 주련

 

(右)

極樂堂前滿月容극락당전만월용

        극락당 앞 보름달 같은 얼굴

 

(左)

玉毫金色照虛空옥호금색조허공

        옥호와 금빛 얼굴이 허공을 비추네

 

 

 

극락보전 주련

 

(右)

若人一念稱名號약인일념칭명호

        만약 누가 일념으로 아미타불을 부른다면

 

(左)

頃刻圓成無量功경각원성무량공

        경각에 한량없는 공덕이루리라

 

 

 

극락보전 현판

 

 

 

 

 

 

 

 

 

극락보전 앞 석등

 

 

 

석등에 올라앉은 동자승들

 

 

 

석등에 올라앉은 동자승들

 

 

 

나한전

 

 

 

나한전 주련

 

(右로부터)

塵墨劫前早成佛진묵겁전조성불

        진묵겁 전에 이미 성불 하였지만

 

爲度衆生現世間위도중생현세간

        중생 제도 위해 세간에 오시니

 

巍巍德相月輪滿외외덕상월륜만

        외외하신 덕상을 보름달처럼 원만하셔

 

於三界中作道師어삼계중작도사

        삼계 가운데 스승이시네

 

 

 

 

 

 

 

 

 

 

 

 

집사람과 친구들

 

 

 

 

 

 

진달래꽃(평소에 보던 것과 다르게 이곳의 진달래꽃 색은 좀 옅은 편이다)

 

 

 

 

 

 

 

 

 

계곡을 건너는 다리

 

 

 

 

 

 

 

 

 

 

 

 

 

 

 

 

 

 

집사람 친구 부부(초대한 부부)

 

 

 

 

 

 

집사람 친구 부부

 

 

 

우리 부부

 

 

 

 

 

 

얼굴바위

 

 

 

 

 

 

계곡 물에 떨어진 꽃잎

 

 

 

 

 

 

도룡뇽알

 

 

 

 

 

 

 

남근석일까? 부도탑일까?

 

 

 

 

 

 

제9곡 용추(龍湫)

바위 아래에 용(龍)이 물에 잠겨 있을 만한 곳이라서 이름을 얻음.

 

 

 

 

 

 

 

 

 

 

 

 

 

 

 

 

 

 

제8곡 별암(鱉巖)

바위가 자라를 닮아서 이름을 얻었으며, 임하 이경유와 백하 황반로의 시(詩)가 있음.

(지난 날, 용흥사에 물 맞으러 간다는 곳임)

 

 

 

초대 부부의 남편이 키우는 청계

 

 

 

옆집의 담옆으로 넘어온 꽃

 

 

 

양촌 2길 36-1

 

 

 

집 전경

 

 

 

다래

 

 

 

오후 산책길에 만난 우사

 

 

 

겹벚꽃 아래에서

 

 

 

 

 

 

 

 

 

친구 세 명이 공교롭게 음력 3월이 생일이라네

 

 

 

 

 

 

 

 

 

 

 

 

 

 

 

다 함께 찰칵

 

 

 

 

 

 

저녁을 먹는 동안 찾아온 들고양이

 

 

 

생일 케익을 자르는 집사람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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