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념관 등

[국립항공박물관] 01

드무2 2022. 5. 23. 10:12
728x90

[국립항공박물관] 01

 

 

 

1층 항공역사관 입구

 

항공역사관

Aviation History Hall

 

세계의 항공역사

History of World Aviation

 

 

 

국립항공박물관

 

 

 

1층 입구

 

 

 

항공역사(1F)

신화의 하늘에서 인간의 하늘로 변화된 세계 항공사의 발전과정 및 대한민국 항공역사를
이끈 위인들과 사건들, 실물 항공기 전시 공간

 

 

 

 

 

 

하늘은

신성한 신들의 공간

인간에게는

간절한 염원의 공간

 

 

 

세계의 항공역사

“ 하늘은 신성한 신들의 공간, 인간에게는 간절한 염원의 공간 ”

동서양을 아우르는 하늘에 대한 인류의 인식변화, 하늘을 날기 위한 도전과 성공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 공간

 

 

 

 

 

 

인간, 새들의 자유에 도전하다

Humankind, Challemges the Freedom of Birds

 

태초부터 인간은 하늘에 관해 동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하늘은 신만이 사는 신성한 곳이며 하늘을 나는 것은 신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신이 사는 하늘은 경배와 염원의 공간으로 인식되었지만 인간의 사고가 점차 발달함에 따라 동경과 이용의 공간으로 인식이 변화되었고, 마침내 도전의 공간으로 바뀌게 되었다.

 

인간이 최초로 하늘에 띄운 것은 연(Kite)이었다. 연은 새가 하늘을 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바람을 이용하여 물체를 하늘 높이 띄우는 것으로서 비행의 기본적인 원리를 알게 해 주었다.

하늘을 날아 보겠다는 도전 정신은 동서양 모두 15~16세기를 지나면서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서양에서는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많은 새를 직접 해부하여 날갯짓 운동 구조를 파악하였고, 사람도 날갯짓 운동을 한다면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의 연구는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새를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초로 새의 비행 원리를 관찰하여 과학적으로 분석하였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었다.

 

한편 16세기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 당시 사방이 포위된 진주성의 소식을 외부로 전달하기 위해 '정평구鄭平九'라는 사람이 하늘을 나는 수레, 즉 '비거飛車'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기록에 따르면 비거는 큰 날개를 바탕으로 바람을 이용했고, 사람이 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15~16세기가 되면서 하늘을 날고 싶어한 인간의 꿈은 '공상의 세계'에서 '기술의 세계'로 진화하게 되었다.

 

 

 

 

 

 

 

 

 

三國史

 

 

 

 

 

 

『삼국사기』(한국)

Samguksagi(History of the Three Kingdoms)(Korea)                                                  시대 1145년 | 분류 도서

 

삼국사기 권41 열전 김유신 조에는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하늘을 이용한 기록이 있다. 647년 비담의 난이 일어났을 때 월성에 유성이 떨어져 여왕이 패할 징조라 여겨 민심이 흉흉하였다. 이에 김유신이 불을 붙인 허수아비를 연鳶에 매달아 올려 어제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 갔다는 소문을 내게 하여 병사들의 사기를 올렸다고 한다.

 

 

 

 

 

 

 

 

 

 

 

 

西漢演義

 

 

 

 

 

 

『서한연의』(중국)

Legend of Chu and Han(China)                                                                               시대 1612년 | 분류 도서

 

중국 진秦나라 말기, 항우와 유방의 대립을 그린 역사소설 『서한연의』에는 하늘을 이용한 연鳶에 대한 내용이 있다. 초나라 군과 한나라 군의 마지막 전쟁터에서 초나라 군사들이 한나라 군사들에게 둘러싸여 대항하고 있을 때 유방의 책사인 한신이 소가죽으로 만든 커다란 연을 띄우고 그 아래에 궁수를 태워 공격하거나 피리 잘 부는 사람을 태워 초나라 음악을 연주하게 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사면초가四面楚歌'이다. 『서한연의』는 『초한지』의 원전이다.

 

 

 

 

 

 

 

 

 

 

 

 

Le philosophe sans prétention ou l'homme rare

 

 

 

 

 

 

 

 

 

『소박한 철학자, 혹은 희귀한 사람』(프랑스)

The Unpretentions Philosopher, or Rare Man(France)                                                 시대 1775년 | 분류 도서

 

프랑스에서 1775년 발행한 항공과학소설로 원제는 『Le philosophe sans prétention ou l'homme rare』이다. 유토피아를 찾아 수성에서 '전기' 비행 기계를 타고 지구에 온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로 수성인이 타고 온 비행기계장치의 그림이 묘사되어 있어 당시 사람들의 하늘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하늘을 나는 수레, 비거飛車

Flying Wagon, Bigeo

 

비거飛車는 임진왜란 때 전라도 김제의 정평구鄭平九가 만들었다고 하는 하늘을 나는 장치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규경(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나온 「비거변증설飛車辨證說」에 "정평구의 비거는 임진년에 진주성에서 사용되었고, 2명 이상의 사람이 탈 수 있었으며, 약 10m 높이로 12km(30리)까지 조종해 하늘을 나는 비행장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책 『조선어문경위(1923)』에도 기록이 남아 잇어 하늘을 날았던 비행장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다 설계도와 비행기 제원 등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 실제 모습은 알 수 없다.

 

 

 

 

 

 

 

 

 

 

 

 

다빈치 코덱스 아틀란티쿠스

Atlanticus Codex                                                                                          시대 1478~1519년 | 분류 도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기노트로 기계과학, 수학, 천문학, 물리학, 지리학, 식물학, 해부학 등 다 빈치의 천재적인 모습을 스케치와 메모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기계과학 분야에서 하늘을 날기 위해 연구한 스케치, 메모가 잘 남아 있다.

 

 

 

 

 

 

 

 

 

 

 

 

김제군지

The Book about Gimje - gun Published in 1918                                                         시대 1918년 | 분류 도서

 

비거飛車 발명가인 정평구鄭平九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는 김제군지金堤郡誌이다. 정평구는 조선 선조 때 전라도 김제 출신의 인물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진주성 전투에 참전하였다. 왜군에 의해 진주성이 고립되었을 때 오늘날의 글라이더와 유사한 비행장치인 비거를 만들어 적의 포위망을 뚫고 외부로 왕래하며 연락을 햇다고 전해진다.

 

 

 

朝鮮語文涇渭

 

 

 

조선어문경위

The Grammar of Joseon Language                                                                          시대 1923년 | 분류 도서

 

권덕규가 일제강점기인 1923년 저술한 책으로 조선어의 문법과 역사적 변천, 특징 등을 서술한 국어 연구서로 이 책에는 임진왜란 때 정평구가 비거(飛車, 비행하는 수레)를 발명하여 사람들을 구출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새의 비행에 관한 코덱스

Codex on the Flight of Birds                                                                                  시대 1505년 | 분류 도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연구노트 중 새의 비행에 관련된 내용을 연구한 자료이다. 다 빈치는 새의 비상도와 해부도를 담은 이 자료를 통해 날개를 움직여서 하늘을 비행하는 '날개짓 비행장치(오르니 솝터)'와 나사의 원리를 이용하여 수직으로 비행하는 '헬리콥터 비행장치(날틀)'를 스케치로 남겼다.

 

 

 

 

 

 

 

 

 

 

 

 

오르니솝터

Ornithopter                                                                                            시대 1505년 | 분류 비행장치(모형)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새의 비행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스케치로 남겼던 '오르니솝터'이다. 오르니솝터는 새(Ornithos)와 날개(Pteron)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합성어로 새의 날개를 날개짓을 연구해 날개를 움직여 하늘을 비행하는 장치를 스케치로 남겼다.

 

 

 

 

 

 

 

 

 

 

 

 

헬리콥터 비행장치(날틀)

Vehicle which Applies the Princople of the Screw to Fly Vertically                                시대 1505년 | 분류 모형

 

레어나르도 다 빈치가 '새의 비행에 대하여'라는 논문에 남긴 '헬리콥터 비행장치(날틀)'이다. 나사가 회전하며 오르내리는 것에 착안하여 수직으로 비행하는 장치를 스케치로 남겼는데, 오늘날의 헬리콥터를 연상시킨다.

 

 

 

새를 연구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Studied Birds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하늘을 날 수 있는지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공기의 성질과 그 흐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한 그는 새를 해부하여 새의 날갯짓 운동을 분석하였다.

또한 새의 비상도와 해부도를 담은 논문 「새의 비행에 대하여(1505)」를 통해 날개를 움직여서 하늘을 비행하는 '날개치기 비행장치(오르니솝터)'와 나사의 원리를 이용하여 수직으로 비행하는 '헬리콥터 비행장치(날틀)'를 스케치로 남겼다.

나아가 그는 "어떤 물체든지 공기를 잘 이용하면 공기가 그 물체에 주는 힘으로 날 수 있다. 이는 마치 새가 날개를 이용하여 하늘을 날고 배가 물 위를 떠가는 것과 똑같은 원리이다······. 새는 수학적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기계이며, 그 모든 운동을 인간 능력으로 구현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였다.

다 빈치의 주장은 지상에서만 행동하는 인간의 힘과 체중에 대한 비율을 너무 과대평가하였으며, 극히 복잡한 새의 날갯짓 운동을 너무 과소평가하였다. 하지만 비행원리를 수학적으로 접근하였다는 측면에서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꿈을 실현하는 데 획기적인 기초를 제공하였다.

 

  "새는 수학적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기계이며 그 모든 운동을 인간 능력으로 구현할 수 있다,"  

 

 

 

 

 

 

오르니솝터 스케치

 

 

 

다 빈치가 구상한 비행장치 스케치

 

 

 

헬리콥터형 날틀

 

 

 

 

 

 

 

 

 

인간, 중력 극복에 성공하다

Humankind Triumphs Over Gravity

 

처음으로 사람을 하늘 높이 실어보낸 것은 공기였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공기보다 더 가벼운 기체를 넣은 기구라면 하늘을 떠 다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기체를 찾는 일이었는데 그 해답은 더운 공기였다.

 

1783년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는 종이로 큰 기구를 만들어 그 속에 더운 공기를 가득 채운 후 두 사람을 태우고 하늘로 떠 올라 파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것은 인간을 태운 물체가 하늘로 날아오른 최초의 기록으로 몽골피에는 인류 최초의 유인 비행을 성공시킴으로써 인간의 두 발이 더 이상 대지에 머무르지 않아도 되는 경이로운 경험을 선사하게 된다. 이후 샤를과 로베르는 비단에 고무를 입혀 만든 기구 비행을 실험하게 되는데, 이 기구에 더운 공기가 아닌 수소를 채웠으며 이것이 더 실용적임을 입증하였다.

 

기구의 문제점은 바람이 부는 대로 아무데로나 떠돌아 다닌다는 것이다. 기구 발명 이래 약 70년 후 증기기관이 발명되자 이를 이용한 새로운 비행장치인 비행선이 등장하였다. 1852년 앙리 지파르는 이것을 조종할 수 있도록 시가 모양의 기구를 만들어 증기기관으로 동력을 공급하였다. 그 후 최초의 대형 항공기는 가솔린기관과 단단한 공기주머니를 갖춘 '비행선'이었다. 1920년대까지 대형 비행선들이 대서양을 횡단하며 여객을 실어날랐다. 몽골피에의 열기구 이후 비행선은 근대에 비행기가 개발되기 전 유일한 장거리 유인 비행 수단이었다.

 

 

 

 

 

 

최초의 유인 비행,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

First Manned Flight, the Hot Air Balloon of Mongolfier Brothers

 

1783년 몽골피에 형제의 거대한 첫 번째 열풍선이 떠올랐다. 그 해 9월 파리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서 종이와 천을 붙인 지름 13m의 열풍선이 최초로 살아 있는 생물체(양, 오리, 수탉)를 태워 비행하였다. 11월 파리 서쪽 불로뉴의 숲에서 부피 2만㎥, 무게 45kg의 거대한 열기구는 두 사람을 태우고 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하늘로 올라갔다. 높이 950m까지 올라간 열기구는 때마침 불어 온 바람을 타고 약 25분 동안 8km를 비행하였다. 이로써 몽공피에 형제는 최초로 유인 비행에 성공한 인물이 되었다.

 

1783년 12월, 뜨거운 공기보다 수소의 비중이 7배 더 가볍다는 것을 알아낸 프랑스 과학원은 열기구에서 한발 더 나아간 수소 기구를 개발햇으며, 자크 샤를과 니콜라스 루이스는 이 수소기구를 타고 유인비행에 성공하였다. 인류 최초의 수소풍선 유인비행이었으며, 열기구보다 더 오랫동안 자유롭게 날았다. 그들은 공기의 압력과 온도를 측정하기 위해 압력계와 온도계를 가져갔는데, 이는 지표면이 아닌 대기 중에서 실시한 최초의 기상측정이라는 기록이 되었다.

 

 

 

몽골피에 열기구의 원리

Principles of Hot Air Balloons by Montgolfier

 

프랑스 리옹 근처에 있는 제지업자 집안의 형제인 조제프 미셀 몽골피에와 자크 에티엔 몽골피에는 어느 날 우연히 굴뚝에서 올라가는 연기를 보다가 실험을 하게 되었다. 1783년, 불 위에 종이봉투를 올려두면 상승하는 연기와 함께 종이가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몽골피에 형제의 인류 최초의 유인 비행

 

 

 

몽골피에 형제의 양, 오리, 수탉 비행

 

 

 

샤를과 로베르의 인류 최초의 수소풍선 유인 비행

 

 

 

 

 

 

 

 

 

이탈리아 항공 화보

Photobook of Italian Aircrafts                                                                      시대 1938년 | 분류 도서(사진류)

 

1938년 이탈리아에서 발행된 항공기 관련 화보집으로 1487~1875년까지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스페인에서 개발된 열기구, 비행장비 항공기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항공학을 위한 그림과 인쇄물

Prints & Drawings for Aeronautics                                                                          시대 1924년 | 분류 도서

 

1924년 영국에서 발간된 책으로 루나르디의 열기구 등 여러 비행체들의 그림과 도면이 수록되어 있다.

 

 

 

 

 

 

 

 

 

하늘정복

The Conquest of the Air                                                                                        시대 1909년 | 분류 도서

 

프랑스에서 발행된 월간지 하늘정복(La conquête de l’air)의 1909년 2월호이다. 하늘정복은 1890년에서 1933년까지 발행된 항공잡지로 몽골피에(Mongolfière) 형제부터 윌버 라이트(Wibur Wright)까지 그림과 사진으로 다양한 비행장치를 이용해 하늘정복한 사례를 단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루나르디의 비행

Lunardi's Flight                                                                                       시대 1785년 | 분류 기록물(그림류)

 

몽골피에의 열기구에 자극을 받은 이탈리아의 발명가 루나르디가 수소가스를 사용해 제작한 비행기구를 그린 그림이다. 루나르디는 새의 날개를 모방하여 2개의 가벼운 날개를 장착했지만 실제로는 아무 기능을 할 수 없었다.

 

 

 

 

 

 

몽골피에 동판화

Copperplate Print of Montgolfier Brothers                                               시대 1800년대 | 분류 기록물(그림류)

 

몽골피에 형제가 제작한 열기구의 모습을 동판으로 찍은 그림.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 비행은 획기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림으로 소장하기를 원했다.

 

 

 

 

 

 

 

 

 

LZ - 126

LZ - 126(20 Original Photographs of American Airships)                          시대 1923~1924년 | 분류 도서(사진류)

 

다양한 비행선의 사진이 실린 화보집으로 대부분 체펠린 비행선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보집의 제목인 'LZ - 126'은 체펠린이 개발한 비행선의 이름이다.

 

 

 

 

 

 

 

 

 

LZ - 126

LZ - 126(20 Original Photographs of American Airships)                          시대 1923~1924년 | 분류 도서(사진류)

 

다양한 비행선의 사진이 실린 화보집으로 대부분 체펠린 비행선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보집의 제목인 'LZ - 126'은 체펠린이 개발한 비행선의 이름이다.

 

 

 

체펠린의 비행선

Zeppelin's Airship

 

열기구는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1852년 프랑스 앙리 지파르는 방향을 조종할 수 있는 비행선을 만들었다. 그는 수소를 사용한 유선형 기구에 증기 엔진으로 프로펠러를 회전시켜 최초의 동력비행에 성공하였다.

1898년 9월. 산토스 뒤몽은 기구와 내연 기관(엔진)을 결합한 최초의 현대적인 비행선 제작에 성공했으며 1900년 7월. 체펠린은 뒤몽의 비행선보다 6배 크기(길이 128m, 지름 11.7m)의 거대한 경식 비행선 LZ - 1호를 개발하였다.

초기 비행선은 대부분 두꺼운 천으로 만든 유선형의 가스 주머니에 수소를 채워 넣는 방식이었기에 모양이 쉽게 변하고, 화재 위험이 커 대형화하는 데 한계가 잇었다. 그러나 체펠린의 비행선은 금속으로 선체 골격을 잡은 후 알루미늄 합금인 두랄루민으로 유선형의 외관을 만들었기 때문에 선체를 크게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바람의 압력에도 모양이 변하지 않았으며, 엔진을 많이 얹어도 견딜만큼 튼튼하여 속도가 크게 향상되었다. 체펠린은 이 비행선을 활용하여 '독일비행선여행주식회사'라는 최초의 비행선 운송사를 만들어 1910년 7월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여객용 정기 교통수단으로 운영하였다.

 

 

 

최초의 경식 비행선, 체펠린의 LZ - 1호(1900. 7.)

 

 

 

기구와 내연기관을 결합한 뒤몽의 비행선 6호(1901. 9.)

 

 

 

19명의 기자와 승객을 태운 LZ - 7호(1910. 7.)

 

 

 

 

 

 

 

 

 

튈를리 공원의 체험

Experience at Tuileries Garden                                                                                시대 1783년 | 분류 도서

 

몽골피에 형제가 당시 프랑스 왕인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앞에서 자신들이 만든 열기구를 시연했던 일화를 기록한 책이다. 튈를리는 시연을 했던 베르사유 궁전 내부에 있는 공원의 이름이다.

 

 

 

 

 

 

체펠린비행선의 세계일주

World Tour of Zeppelin Airship                                                                               시대 1932년 | 분류 도서

 

1929년 체펠린은 자신이 만든 비행선 'LZ - 127'을 타고 유럽을 출발해 미국, 일본, 러시아를 거친 후 다시 유럽으로 돌아오는 세계일주를 하였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정리한 것으로 1932년 발행되었다.

 

 

 

날개를 갖고 바람을 이용하다

Utilizing Wind with Wings

 

1809년 영국 과학자 조지 케일리가 발표한 『공중 비행에 대하여』는 새가 하늘을 날 때 날개에서 발생하는 양력의 워리를 과학적으로 밝혀낸 최초의 논문이었다. 그는 연이 뜨는 원리를 양력 이론으로 설명했는데 특히 날개의 단면을 유선형으로 하면 더 큰 양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였다. 그는 이처럼 연에 관한 독창적인 실험을 통하여 날개가 공중으로 들어 올려지는 방법을 연구하여 세계 최초의 글라이더를 제작하였고 그 뒤로 많은 사람이 조지 케일리의 이론을 이어 받아 글라이더를 제작하여 활공 비행을 시도하였다. 이 양력 이론은 비행 안전성 및 조정성 연구와 더불어 이후 항공인들에게 오늘날 비행기와 같은 모양을 암시하게 하였고, 이런 이유로 조지 케일리는 '항공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다.

 

조지 케일리가 연구한 고정날개 비행이론은 현대의 모든 항공기에 적용되고 있다. 그의 선각자적인 이론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가 성공하기 백년 전에 이미 양력의 발생을 이론화한 것으로 그의 글라이더는 비행기의 모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 시기 글라이더는 공중에서 마음대로 조종하지 못하고 그저 나는대로 내버려두는 수준이었다. 1890년대에 와서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이 현재의 행글라이더와 비슷한 작고 가벼운 글라이더를 만들어 균형잡힌 조종 비행을 하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이 성공은 릴리엔탈이 '하늘을 나는 인간(Flying man)'이라 불리는 계기가 되었다.

 

 

 

 

 

 

항공의 아버지,

조지 케일리

Father of Aviation, George Cayley

 

"······새가 날개를 퍼덕이는 힘은 사람의 팔다리 힘보다 7~8배 세기 때누에 사람이 새를 흉내 내서 날개를 퍼덕인다 해도 날 수는 없다. 또 새가 날개를 움직이는 것은 공중에 뜨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도 있다. 새의 날개 단면을 보면 활처럼 휘어있는데 덕분에 양력을 받기에 좋으며 새의 꼬리날개는 공중에서도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조지 케일리(1809), 『공중비행에 대하여』

 

 

 

영국의 조지 케일리는 비행체에 작용하는 힘을 뜨는 힘과 앞으로 나가는 힘으로 분리해 생각한 최초의 인물로 움직이지 않는 날개의 원리를 확립하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다. 고정된 날개를 일정한 속도로 전진시키면 날개에 양력이 발생하여 공기보다 더 무거운 비행장치라도 뜨게 할 수 있다는 고정날개식 항공기의 기본 원리를 확립한 것이다. 그는 1799년 고정날개 비행기계 형태를 디자인한 이후 1804년 수평 꼬리날개와 수직 꼬리날개가 있는 간단한 글라이더를 개발하였으며 이후 최초로 고정익 비행기와 유사한 글라이더를 고안하며 '추진력, 공기역학, 안정성과 제어, 구조' 등 4가지 핵심요소를 제시하였다. 또한 1849년 3겹 고정 날개 글라이더 '올드 플라이어'에 손녀을 태워 비행하는 데 성공하면서 그의 항공이론으로 날갯짓 비행장치가 아닌 첫 고정날개를 가진 비행장치가 개발되었다.

 

 

 

1799 고정날개 비행기계

(은쟁반에 새겨진 고정날개 비행기계 콘셉트)

현대 비행기의 기원이 된 디자인으로 상승을 위한 고정날개와 추진력을 위해 분리된 기계장치 디자인 비행의 안정을 위해 수평 수직 꼬리를 결합

 

 

 

1809 연 글라이더

연을 이용한 주날개와 십자형의 꼬리날개가 특징

최초 고정날개 비행기 모형

 

 

 

1849 올드 플라이어(Old Flyer)

10세 어린이를 태워 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최초 유인항공에 성공

 

 

 

 

 

 

 

 

 

 

 

 

 

1809 헬리콥터 장난감

상반회전 프로펠러

 

 

 

 

 

 

1852 조종가능 글라이더(Governable Parachutes)

조종이 가능한 글라이더 형태의 비행(낙하) 장치

 

 

 

 

 

 

 

1849 올드 플라이어(Old Flyer)

3겹의 고정날개가 특징. 십자형의 2개 꼬리 날개가 기체를 안정시키는 기능을 한다

 

 

 

 

 

 

 

1804 연 글라이더

항공사상 최초 공기보다 더 무거운 물질로 비행기계를 구상. 수평꼬리날개와 수직꼬리날개가 있다.

 

 

 

1799 고정날개 비행기계

2개의 고정날개 사이에 조종사가 있는 그림(좌) 고정날개 비행기계 그림(우)

 

 

 

 

 

 

 

 

 

1843 전환식 비행기(Aerial Carriage)

2개의 프로펠러와 둥근 날개가 특징. 실제 만들지는 않았다.

 

 

 

 

 

 

 

 

 

 

 

 

 

 

 

항공학을 위한 그림과 인쇄물

Prints & Drawings for Aeronautics                                                             시대 1924년 | 분류 기록물(그림류)

 

1924년 영국에서 발간된 책으로 루나르디의 열기구 등 여러 비행체들의 그림과 도면이 수록되어 있다.

 

 

 

 

 

 

 

 

 

다빈치 코덱스 아틀란티쿠스

Atlantic Codex                                                                                             시대 1478~1519년 | 분류 지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기노트로 기계과학, 수학, 천문학, 물리적, 지리학, 식물학, 해부학 등 다빈치의 천재적인 모습을 스케치와 메모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기계과학 분야에서 하늘을 날기 위해 연구한 스케치, 메모가 잘 남아 있다.

 

 

 

 

 

 

새 모양의 글라이더 비행

Flight of a Bird Shaped Glyder                                                                                시대 1889년 | 분류 도서

 

1889년 독일에서 출판된 오토 릴리엔탈에 대한 책 '새 모양의 글라이더 비행'의 초판본이다. 글라이더 시험비행에 쓰인 최초의 그림과 사진들이 포함되어 있다.

 

 

 

 

 

 

 

 

 

오토 릴리엔탈의 비행사진

Photograph of the Flight of Otto Lilienthal                                         시대 1891~1896년 | 분류 기록물(사진류)

 

오토 릴리엔탈이 자신이 만든 글라이더를 타고 비행하는 모습이다. 릴리엔탈은 1891년 글라이더를 발명한 후 1896년 비행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여러 차례 시험비행을 실시하였는데, 그때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비행인간'으로 알려진

항공의 개척자

오토 릴리엔탈

The Pioneer of Aviation Known as a Flying Man, Otto Lilienthal

 

"비행기를 발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늘을 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To invent an airplane is nothing. To build one is something. But to fly is everything.

 

영국의 과학자 조지 케일리의 항공이론에 영향을 받은 많은 항공 선구자 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독일인 오토 릴리엔탈이었다. 릴리엔탈은 체계적인 양력 이론을 바탕으로 날개를 만든 뒤 방향 유지를 위해 수직 꼬리날개를 달았다. 1891년에는 직접 개발한 꼬리날개가 있는 단엽 글라이더를 타고 350m를 활공하여 최초의 글라이더 유인비행에 성공하였다. 그의 설계로 인해 최초로 안정적인 활공비행을 반복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오늘날의 행글라이더와 같이 몸을 움직여 무게 중심을 이동하는 방법으로 조종하였다.

릴리엔탈 최고의 공헌은 공기보다 더 무거운 비행기를 개발한 것이다. 그는 시험 비행 중 언덕에서 거센 바람으로 뒤집혀 추락한 이후 "작은 희생은 반드시 치러야 한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하였다.

릴리엔탈은 1896년 비행사고로 사망하기까지 5년 동안 18종류의 글라이더 개발과 2,000회의 실험비행을 통해 날개의 양력, 풍압의 중심, 기체의 안정성 등에 관한 귀중한 자료를 남겨 동력 비행기 개발의 기초를 닦았다.

 

 

 

 

 

 

새의 꼬리날개를 적용한 미익형 고정날개로 비행시험(1894)

 

 

 

진보한 미익과 복엽의 항공역학적 설계를 도입한 복엽 글라이더로 비행시험(1895)

 

 

 

 

 

 

라이트 형제,

드디어 비행기 시대를 열다

Wright Brothers Finally Open the Era of Airplanes

 

조지 케일리의 양력 이론에 오토 릴리엔탈 같은 모험가들의 도전이 더해지면서 엔진을 단 동력 비행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내 그 꿈을 현실로 만든 사람들은 미국인 라이트 형제였다.

1903년 라이트 형제의 인류 최초 유인 동력 비행성공은 조지 케일리의 비행원리 발표 이후 약 100년 만의 쾌거이자 인류 역사상 대사건이었다. 비행기를 제어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비행성공의 본질임을 간파한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의 회전과 상승 · 하강을 제어할 수 있는 방향타(Rudder)와 승강타(Elevator)를 발명하여 자신들의 비행기에 적용하였다. 또한 세계 최초의 풍동실험(비행기 모형을 통해 기류변화 등 공기역학을 파악하는 실험), 수백 중의 날개모양 단면실험, 동력항공기 설계를 위한 양력과 항력의 데이터 축적 등을 실시했다. 또한 프로펠러 설계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전혀 없던 당시에 직접 가설을 세워 오늘날 경비행기에 적용되는 수준의 효율적인 프로펠러를 제작하였다. 그리하여 1903년 12월 17일 세계 최초로 안정적 제어가 가능한 비행기를 내놓았고, 이 비행기는 미국을 항공기술 분야의 선두주자로 만들어 놓았다.

 

 

 

 

 

 

 

 

 

 

 

 

비행선과 비행기에 사용되는 엔진도면

Engine Blueprint of Airships and Airplanes                                                            시대 1908년 | 분류 기록물

 

프랑스의 정기간행물인 '토목공학(Le Genie Civil)'에 수록된 비행장치의 도면 중 비행선과 비행기에 사용되는 엔진을 도면으로 소개한 것이다.

 

 

 

 

 

 

프랑스 잡지 '토목공학'의 기사

An Article of a French Magazine 'Le Genie Civil'                                                     시대 1908년 | 분류 기록물

 

프랑스 정기간행물인 '토목공학(Le Genie Civil)'에 소개된 항공의 발전 관련 내용이다. 파르망, 블레리오의 실험과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도전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라이트 형제 최초 비행 기념 은쟁반

Commemorative Silver Plate of Wilber and Orville Wright's First Flight                      시대 1978년 | 분류 기념품

 

라이트 형제의 최초 비행 75주년을 기념하여 1978년 AOPA(항공기 소유자 조종사협회)에서 제작한 은쟁반이다.

 

 

 

 

 

 

비행기발달사

History of Aircraft Development                                                                             시대 1894년 | 분류 도서

 

1894년에 미국인 샤뉴트(Chanute)가 저술한 당시 최고의 항공기술서로, 라이트 형제에게 많은 영감과 지식을 준 책이다. 샤뉴트는 오토 릴리엔탈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라이트 형제와 비행제작을 같이 하기도 했다.

 

 

 

 

 

 

첫 번째 비행 - 라이트 형제는 어떻게 비행기를 만들었을까?

First to Fly : How Wilbur and Orville Wright Invented the Airplane                               시대 2002년 | 분류 도서

 

라이트 형제에 대한 소개와 라이트 형제가 고안한 비행기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는 책이다.

 

 

 

 

 

 

 

 

 

 

 

 

 

 

 

 

 

 

 

 

 

 

 

 

 

라이트비행기의 조종 및 제작방법

Operation and Production Method of the Wright Airplane                                          시대 1909년 | 분류 도서

 

라이트 형제가 제작한 비행기의 조종법과 제작 방법이 기록된 도서와 엽서

 

 

 

 

 

 

라이트 형제 관련 엽서

Postcards about Wright Brothers                                                        시대 1908년 추정 | 분류 기록물(엽서류)

 

윌버 라이트가 1908년의 비행하는 모습을 담은 엽서

 

 

 

 

 

 

 

 

 

 

 

 

 

 

 

라이트 형제 최초 비행 기념 주화

Commemorative Coins of Wilbur and Orville Wright's First Flight               시대 1960년 추정 | 분류 기념품(주화)

 

라이트 형제의 최초 비행을 기념하여 1960년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념주화이다.

 

 

 

 

 

 

 

 

 

라이트 형제의 유인동력비행기

Wright Brother's Manned First Power Plane

 

라이트 형제는 약 200회의 풍동 실험, 그리고 1,000번이 넘는 활공 실험 끝에 개발한 길이 6.4m, 폭 12.3m, 총중량 275kg, 4기통의 가솔린 엔진이 얹어진 복엽기 '플라이어'호를 타고 3m 높이로 12초 동안 36m를 비행하는 데 성공하였다. 4번의 비행 실험을 통해 최장 비행시간 59초, 최장 비행거리 260m, 평균 속도는 시속 50km 전후를 기록하였다. 라이트 형제의 성공은 '사람이 조종 가능한 동력기계 장치를 최초로 하늘을 날았다,'는 역사적 대사건으로 당시 비행선을 통해 항공산업에서 앞서 있던 유럽을 제치고 미국이 항공산업을 선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자동차 전문서적 '모토바겐' 중 '항공기술'

The Chapter on Aviation Technology in Motor Specialty Book 'Der Motorwagen'            시대 1909년 | 분류 도서

 

1909년에 독일에서 출판된 자동차 관련 전문서적인 '모토바겐(Der Motorwagen)'에서 다룬 '항공기술' 관련 내용이다. 라이트 형제가 고안한 첫 번째 모델의 제작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연 비행, 풍동실험, 그리고 1,000번의 실험비행

 

인공적으로 공기를 흐르도록 만들어 공기 압력을 관찰하는 실험장치(풍동)를 통해 글라이더 제작(1901~1902)

 

 

 

글라이더에 줄을 매달아 연처럼 실험비행(1901)(왼쪽 위)

 

 

 

수직러더(방향타)를 적용하여 비행기 좌우 안정성을 조종하는 무동력 글라이더 실험비행(1902)(오른쪽)

 

 

 

가볍고 힘 좋은 가솔린 엔진과 프로펠러

 

 

 

직접 제작한 12마력 4기통 자동차 엔진 : 자전거 체인과 기어 바퀴를 사용하여 엔진의 힘을 프로펠러에 전달(왼쪽 아래)

 

 

 

 

프로펠러 : 비행기 위쪽에 위치, 회전하면서 공기를 앞으로 밀어내며 추진(위)

 

 

 

날개의 일부분을 움직여서 실제로 조종할 수 있는 고정날개와 조종시스템

 

 

 

1908년 부아쟁 형제가 개발한 복엽기, 최초로 일주비행에 성공한 후 날개에 도움 날개를 단 부아쟁표준형을 개발하여 대량 생산하는 기록을 세웠다.(아래)

 

 

 

 

 

 

 

 

 

 

 

 

 

 

 

 

 

 

 

 

 

 

기술 특허전쟁과 유럽항공의 발전

Technology Patent Dispute and the Development of European Aviation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동력비행에 성공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비행기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경쟁도 치열해졌다. 1906년 5월 22일 라이트 형제가 '나는 기계(New and Useful Improvement of Flying Machines)'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인정받았고, 얼마 후 근소한 차이로 유인동력비행에 성공(1908)했던 같은 미국인 '글렌 커티스'를 특허 침해로 제소하기에 이른다. 이에 커티스도 맞소송으로 대응하면서 비행기 개발 경쟁은 법적분쟁으로 비화되었다.

 

비행기 제작을 선도하던 미국이 특허전쟁으로 주춤하는 사이 유럽에서는 군비경쟁의 시작과 함께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 비행할 수 있는 비행기들이 개발되어 점차 둘의 차이는 줄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유럽과 미국 각지에서 각종 비행대회가 잇달아 열려 속도, 고도, 거리에 대한 기록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 시기 비행가로는 라이트 형제, 산토스 뒤몽, 글렌 커티스, 부아쟁 형제, 루이 블레리오와 앙리 파르망 등이 유명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인간의 도전정신, 무기가 되다

The First World War, the Human Challenge Spirit Becomes Weapons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비행기는 도전 정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신문물일뿐 실용성은 없었다. 그러나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걱국은 대포의 사거리 확장으로 비행기를 이용하게 되었고, 이 폭격기를 격추하기 위해 전투기가 출현하였다. 이어서 전투기 간의 공중전(dog fight)이 시작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각국이 비행산업과 과학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비행기 개발국들 대부분이 오늘날까지도 항공산업을 주도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비행기는 전쟁의 주요 무기로 부상하게 되었고, 항공기술과 산업측면에서도 놀라운 발전을 보게 되었다. 또한 유럽 각국은 전쟁 후 불필요해진 군용기들을 운송산업에 투입하였는데 이는 민간항공운송산업이 발전하는 동기가 되었다. 이렇게 발달하기 시작한 민간항공수송은 이후 항공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군용기를 개조한 비행기로서는 수요를 충족할 수 없게 되어 민항기 제조산업의 발전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커티스 A - 1 호

Curtiss A - 1                                                               시대 1911년 | 규격 273 × 353mm (축척 1 : 32) | 분류 비행장치(모형)

 

'커티스 A - 1호'는 1911년 미국인 글렌 커티스에 의해 수상기로 개발되었고, 미국 해군이 정찰기로 채택하여 실용화되었다. 이후 육상기로 개조되기도 했는데, 1917년 조선에서 최초로 펼쳐진 곡예비행에서 미국인 아트 스미스가 사용한 기체 역시 '커티스 A  - 1호'의 개량형이다.

 

 

 

 

 

 

글렌 커티스 - 준 버그(좌) | 라이트 형제 - 플라이어(우)

 

글렌 커티스는 라이트 형제가 날개 비틀기를 이용해 구현한 롤 기동제어를 에일러론(보조날개)을 통해 모방했다. 1908년 7월 4일 커티스가 준 버그(June Bug)에서 비행한 역사적인 1km 비행 후에 라이트 형제는 에일러론 장치를 이용하여 롤 기동제어가 가능한 비행기를 비행하거나 판매하는 것을 경고했다.

 

 

 

글렌 커티스 - 준 버그

 

 

 

라이트 형제 - 플라이어

 

 

 

산토스 뒤몽 - 14비스(왼쪽 위)

1906년 'Santos-Dumont No. 14-bis'라는 이름의 비행기를 제작하여 유럽 최초로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체로 비행에 성공했다.

 

 

 

루이 블레리오 - 블레리오 11(왼쪽 아래)

1909년 프랑스 항공분야의 선구자인 루이 블레리오는 직접 제작한 'Blériot XI'로 최초 영불 해협을 비행하여 국가간 무역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부아쟁 - 파르망1 복엽기(오른쪽)

1909년 부아쟁 형제가 개발한 복엽기. 부아쟁 형제는 1907년 유럽 최초 순환비행에 성공한 후 날개에 도움날개를 단 부아쟁표준형을 개발하여 대량 생산하는 기록을 세웠다.

 

 

 

비행기, 무기가 되다

Airplanes, Became Weapons

 

전쟁 초기에 항공기는 주로 정찰 임무를 담당하며 적의 위치를 탐색하는 데만 이용되었고, 무장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찰 비행 중 적기와의 조우가 잦아지자 조종사들은 권총을 휴대하고 공중에 올라가 서로 권총으로 대결하는 공중전이 벌어졌으며 곧이어 기관총을 항공기에 탑재하여 본격적인 공중전을 벌이게 되었다.

전쟁이 본격화되자 1915년 후반부터 비행기는 공중전, 정찰, 폭격, 적진 공격, 지상부대 옹호 등 그 역할에 맞춰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 초기 공중전에서 사용된 기관총은 전투기 앞에 있는 프로펠러가 손상되지 않도록 비행기의 옆이나 뒤에서 발사하였다. 이후에 회전하는 프로펠러 사이로 실탄을 발사할 수 있는 동조기관총이 개발되어 공중전에서 더욱 위력을 발휘하였다. 이때부터 정찰기에서 전투기로 역할이 확대되어 많은 항공전의 영웅들이 탄생하였다.

 

 

 

비행기 사진 편지지와 엽서

Letter Paper and Postcard of Aircraft Pictures                                                  시대 1909~1914년 | 분류 기록물(엽서류)

 

비행기의 사진으로 만든 편지지와 엽서이다. 당시는 비행기가 개발된 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비행기 사진이 매우 귀했다. 그래서 비행기 사진이 들어간 편지지와 엽서는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다. 사진의 비행기는 미국에서 비행기 개발로 라이트 형제와 경쟁했던 글렌 커티스의 비행기들이다.

 

 

 

비행기

Aircraft                                                                                                                                              시대 1914년 | 분류 도서

1914년 독일에서 출판된 초창기 비행기에 대해 설명한 책으로 제목이 비행기(Flugzeuge)이다.

 

 

 

나침반(위)

Compass                                                                                                                      시대 1914~1918년 | 분류 조종사용품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실제 사용되었던 나침반이다. 당시 비행기에는 항행장비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조종사는 방향 파악을 위해 직접 나침반을 소지하고 있어야 했다.

 

 

 

육분의(아래)

Sextant                                                                                                                                       시대 1917년 | 분류 항법장치

육분의는 선박에서 별자리를 관측하며 방향을 찾던 항해도구이다. 비행기가 등장한 초기 항공시대에는 많은 것들을 선박에서 차용하였는데, 비행기 역시 방향을 찾기 위해서는 육분의를 활용하였다.

 

 

 

1 러시아의 폭격기 승무원이 당시 가장 흔했던 폭격 방법을 선보이고 있다. 목표물이 나타나면 손으로 폭탄을 떨어뜨린다.(왼쪽 위)

 

 

2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활동하던 비행기는 프랑스 모레인솔니에기처럼 아직 발달이 덜 되었고 무장도 부족했다. 프랑스 2인승 경비행기에 기관총을 정착한 것처럼 당시에는 적군의 비행기를 격추할 목적으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총이 프로펠러로 발사되는 일을 막기 위해 기관총을 높이 장착했다.(왼쪽 아래)

 

 

3 제1차 세계대전 중에 권총으로 적기를 쏘고 있는 초기 공중전 장면(가운데)

 

 

4 폭탄을 손으로 던지고 있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의 폭격 장면(오른쪽 위)

 

 

5 독일의 포커 E III 단엽기가 숲에서 정비를 받고 있다. 총알이 돌고 있는 프로펠러 날개를 통과해 발사되도록 해주는 프로펠러 동조기관총을 장착한 최초의 비행기이다.(오른쪽 아래)

 

 

 

제1차 세계대전 초기와 말기의

전투기 생산량 비교를 통한 비행기의 발달

The Development of Airplanes Through the Fighter Production Output Comparison Between the Start and the End of the First World War

 

비행기는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실용화되었다. 전쟁 무기로써 비행기의 활용가치가 높아지자 참전국들은 성능이 우수한 비행기들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각국의 항공기술은 전쟁을 통해 비약적으로 성장하여 우수한 비행기가 잇달아 개발되었다. 비행기에 관한 모든 최고 기록은 군용항공기들이 보유하고 있다.

 

 

 

 

 

 

 

 

 

 

 

 

비행기의 황금시대

항공기술의 발전, 수송을 시작하다

The Golden Age of Airplane. The Development of Aviation Technology. Began the Air Transport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비행기의 가치와 필요성을 깨닫게 된 각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비행기를 활용하기 시작해 항공기술의 발전이 가속되었다. 국토가 넓었던 미국은 비행기를 통한 우편물 수송이 활발했는데 주요 도시 간의 정기 항공우편노선이 개설될 정도였다. 미국인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성공 역시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것이었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은 뉴욕에서 출발해 정확히 파리에 도착함으로써 비행기도 대륙간의 도시와 도시를 이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첫 사례가 되었다. 이후 각국은 비행기로 승객이나 화물을 운반하는 항공수송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기존의 기록 경쟁을 위한 비행기 개발에서 실용성과 적재량 향상으로 개발 방향이 전환되었고, 이런 현상은 보잉, 더글라스, 록히드 등의 제작사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상업용 비행기가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프랑스항공, 유나이티드항공, 영국항공, 루프트한자 등 많은 운송사의 설립을 촉진하였다.

 

 

 

항공수송의 시작

Start of Air Transport

 

본격적으로 여객기가 탄생하고 정기항공수송이 시작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유럽에서였다. 전쟁 이후 대부분의 군용기가 필요 없게 되자 그증 일부 폭격기가 민간 수송기로 개조되었다.

최초의 정기 여객기는 폭격기나 2, 3인승 비행기를 단순히 여객용으로 전환한 것에 불과해 소음과 진동, 기체 요동이나 추위 같은 불편함이 매우 컸다. 영국과 프랑스를 시작으로 민간 수송기를 이용한 수송이 활발해지자 독일은 항공사상 최초로 금속제 단엽여객기 융커스 F-13을 개발되었다. 이는 목제 복엽기가 주류를 이루던 당시로서는 항공기술의 획기적인 진보를 보여준 것이었다. 또한 독립된 객실과 별도의 조종실을 갖추었고, 뛰어난 내구성과 우수한 비행 성능으로 널리 사용되면서 유럽 전역에 항공수송 사업이 확산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1 비커스 비미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여객기로 가장 많이 전환된 비행기.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좌석을 갖추었고, 1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었다.(왼쪽 위)

 

 

2 세계 최초의 금속제 여객기 융커스 F - 13

   전체를 금속으로 만든 첫 번째 비행기로 근대 수송기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동체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외관을 골판지처럼 만들었다.(왼쪽 아래)

 

 

3 항법 및 계기 비행장치가 장착된 융커스 G - 24

   항공수송이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기술적 진보가 일어났다. 보다 더 안전하고 편리한 비행을 위해 항법장치를 장착해 세계 최초로 야간 비행에 성공하였다.(오른쪽 위)

 

 

4 보잉 314(클리퍼)

   장거리 항로 개척에 선구자 역할을 한 비행정이 개발되어 많은 승객을 태우고 대서양과 태평양 항로 개척에 크게 기여하였다.(오른쪽 가운데)

 

 

5 보잉 307(스트라토라이너)

   보잉사는 항공기 기내 압력을 지상 대기압과 같도록 조절해주는 여압실을 갖춘 보잉 307을 만들었다.(오른쪽 아래)

 

 

 

 

 

 

도면이 있는 비행기 우표

The Great Historic Aircraft of the World Mint Stamp Collection                             시대 1982년 | 분류 기록물 및 우표류

 

제1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비행기의 도면과 우표이다. 비행기가 점점 상용화되면서 일반인들의 궁금증과 소유욕을 충족하기 위해 비행기 관련 다양한 기념품들이 제작되었다.

 

 

 

 

 

 

비행기 삽화 담배카드

Airplane Illustration on Cigarette Cards                                                                       시대 1935년 | 분류 기록물(그림류)

 

1930년대 영국에서 제작되었던 '비행기 삽화 담배카드'를 모은 앨범이다. 담배가 갑으로 생산되던 초기에는 포장이 튼튼하지 못해 담배가 자주 부러졌다. 이에 담배값을 빳빳하게 버티게 하려고 단단한 종이로 카드를 만들어 포장의 앞뒤에 넣고 다녔는데 이것이 담배카드이다. 이후 담배카드에는 광고나 생활정보 등이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이 삽화는 당시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던 비행기의 정보를 넣은 것이다.

 

 

 

 

 

 

 

 

 

액체 나침반

Liquid Compass                                                                                                     시대 1930~1940년대 | 분류 조종사 용품

 

미국에서 제작된 항공용 액체 나침반이다. 액체 나침반은 자석과 눈금이 적힌 방위표를 액체 속에 넣은 나침반으로 일반 나침반에 비해 진동에 의한 흔들림이 적었기 때문에 비행기에 많이 탑재되었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기사

An Article of Lindbergh's Transatlantic Flight                                                                              시대 1927년 | 분류 신문

 

1927년 5월 22일자 뉴욕 타임즈에 실린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비행을 다룬 기사이다. 뉴욕 전체가 린드버그의 비행을 축하해주며 라디오, 소방 사이렌 등으로 기쁨을 표현했고, 극장에서는 관람객들이 환호하는 동안 잠시 영업을 멈추기도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Lindbergh Does It! To Paris in 33 1/2 Hours; Flies 1,000 Miles Through Snow and Sleet; Cheering French Carry Him Off Field

 

 

 

Crowd Roars Thunderous Welcome


Breaks Through Lines of Soldiers and Police and Surging to Plane Lifts Weary Flier from His Cockpit


Aviators Save Him From Frenzied Mob of 100,000


Paris Boulevards Ring With Celebration After Day and Night Watch -- American Flag Is Called for and Wildly Acclaimed

 

 

 

By EDWIN L. JAMES

 

 

 

Special Cable to The New York Times

 

 

 

Paris, May 21 -- Lindbergh did it. Twenty minutes after 10 o'clock tonight suddenly and softly there slipped out of the darkness a gray-white airplane as 25,000 pairs of eyes strained toward it. At 10:24 the Spirit of St. Louis landed and lines of soldiers, ranks of policemen and stout steel fences went down before a mad rush as irresistible as the tides of ocean.

"Well, I made it," smiled Lindbergh, as the little white monoplane came to a halt in the middle of the field and the first vanguard reached the plane. Lindbergh made a move to jump out. Twenty hands reached for him and lifted him out as if he were a baby. Several thousands in a minute were around the plane. Thousands more broke the barriers of iron, rails round the field, cheering wildly.

 

 

Lifted From His Cockpit

 

As he was lifted to the ground Lindbergh was [text unreadable] with his hair unkempt, he looked completely worn out. He had strength enough, however, to smile, and waved his hand to the crowd. Soldiers with fixed bayonets were unable to keep back the crowd.

United States Ambassador Herrick was among the first to welcome and congratulate the hero.

A New York Times man was one of the first to reach the machine after its graceful descent to the field. Those first to arrive at the plane had a picture that will live in their minds for the rest of their lives. His cap off, his famous locks falling in disarray around his eyes, "Lucky Lindy" sat peering out over the rim of the little cockpit of his machine.

 

Dramatic Scene at the Field

 

It was high drama. Picture the scene. Almost if not quite 100,000 people were massed on the east side of Le Bourget air field. Some of them had been there six and seven hours.

Suddenly a message spread like lightning, the aviator had been seen over Cherbourg. However, remembering the messages telling of Captain Nungesser's flight, the crowd was skeptical.

"One chance in a thousand!" "Oh, he cannot do it without navigating instruments!" "It's a pity, because he was a brave boy." Pessimism had spread over the great throng by 10 o'clock.

The stars came out and a chill wind blew.

 

Watchers Are Twice Disappointed

 

Suddenly the field lights flooded [text unreadable] glares onto the landing ground and there came the roar of an airplane's motor. The crowd was still, then began to cheer, but two minutes later the landing glares went dark for the searchlight had identified the plane and it was not Captain Lindbergh's.

Stamping their feet in the cold, the crowd waited patiently. It seemed quite apparent that nearly every one was willing to wait all night, hoping against hope.

Suddenly- it was 10:16 exactly- another motor roared over the heads of the crowd. In the sky one caught a glimpse of a white gray plane, and for an instant heard the sound of one. Then it dimmed , and the idea spread that it was yet another disappointment.

Again landing lights glared and almost by the time they had flooded the field the gray-white plane had lighted on the far side nearly half a mile from the crowd. It seemed to stop almost as it hit the ground, so gently did it land.

And then occurred a scene which almost passed description. Two companies of soldiers with fixed bayonets and the Le Bourget field police, reinforced by Paris agents, had held the crowd in good order. But as the lights showed the plane landing, much as if a picture had been thrown on a moving picture screen, there was a mad rush.

 

Soldiers and Police Swept Aside

 

The movement of humanity swept over soldiers and by policemen and there was the wild sight of thousands of men and women rushing madly across half a mile of the not too even ground. Soldiers and police tried for one small moment to stem the tide, then they joined it, rushing as madly as anyone else toward the aviator and his plane.

The first people to reach the plane were two workmen of the aviation field and half a dozen Frenchmen.

"Cette fois, ca va!" they cried. (This time it's done.)

Captain Lindbergh answered:

"Well, I made it."

An instant later he was on the shoulders of half a dozen persons who tried to bear him from the field. The crowd crushed about the aviator and his progress was halted until a squad of soldiers with fixed bayonets cleared a way for him.

It was two French aviators- Major Pierre Weiss and Sergeant de Troyer -- who rescued Captain Lindbergh from the frenzied mob. When it seemed that the excited French men and women would overwhelm the frail figure which was being carried on the shoulders of a half dozen men, the two aviators rushed up with a Renault car and hastily snatching Lindy from the crowd, sped across the field to the commandant's office.

Then followed an almost cruel rush to get near the airman. Women were thrown down and a number trampled badly. The doors of the small building were closed, but the windows were forced by enthusiasts, who were promptly ejected by soldiers.

 

Five Minutes of Cheering for Nungesser

 

Spurred on by reports spread in Paris of the approach of the aviator, other thousands began to arrive from the capital. The police estimate that within half an hour after Captain Lindbergh landed there were probably 100,000 storming the little building to get a sight of the idol of the evening.

Suddenly he appeared at a window, waving his helmet. It was then that, amid cheers for him, came five minutes of cheering for Captain Nungesser.

While the gallant aviator was resting in the Aviators' Club part of the crowd turned toward his airplane. It had landed in the pink of condition. Before the police could intervene the spectators turned souvenir mad, had stripped the plane of everything which could be taken off, and some were even cutting pieces of linen from the wings when a squad of soldiers with fixed bayonets quickly surrounded the Spirit of St. Louis and guarded it while mechanics wheeled into a shed, but only after it had been considerably marred.

While the crowd was waiting, Captain Lindbergh was taken away from the field about midnight, to seek a well-earned repose.

The thing that Captain Lindbergh emphasized more than anything else to the American committee which welcomed him and later to newspapermen, was that he felt no special strain.

"I could have gone one-half again as much," he said with conviction.

 

Excited Crowds Block Paris Traffic

 

Not since the armistice of 1918 has Paris witnessed a downright demonstration of popular enthusiasm and excitement equal to that displayed by the throngs flocking to the boulevards for news of the American flier, whose personality has captured the hearts of the Parisian Multitude.

Thirty thousand people had gathered at the Place de Opera and the Square de Havre, near St. Lazare station, where illuminated advertising signs flashed bulletins on the progress of the flier. In front of the office of the Paris Matin in the Boulevard Poissonniere the crowds quickly filled the streets, so that extra police details had the greatest difficulty in keeping the traffic moving in two narrow files between the mobs which repeatedly choked the entire street.

From the moment when the last evening editions appeared, at 6:30 o'clock, until shortly after 9 there was a curious reaction, due to the fact that news seemed to be at a standstill. The throngs waited, hushed and silent, for confirmation.

It was a tense period when the thought in every mind was that they were witnessing a repetition of the deception which two weeks ago turned victory into mourning for the French aviators Nungesser and Coli. Suppose the news flashed from the Empress of France that the American flier was seen off the coast of Ireland proved false, as deceiving as the word flashed that Nungesser's White Bird had been sighted off Nova Scotia.

 

Wait Tensely for News

 

During a long, tense period no confirmation came. The people stood quietly, but the strain was becoming almost unbearable, permeating through the crowd. Pessimistic phrases were repeated. "It's too much to think it possible." "They shouldn't have let him go." "All alone, he has no chance if he should be overcome with exhaustion."

To these comments the inevitable reply was, "Don't give up hope. There's still time."

All this showed the French throng was unanimously eager for the American's safety and straining every wish for his ultimate victory.

A French woman dressed in mourning and sitting in a big limousine was seen wiping her eyes when the bulletins failed to flash confirmation that Lindbergh's plane had been sighted off Ireland. A woman selling papers near-by brushed her own tears aside exclaiming:

"You're right to feel so, madame. In such things there is no nationality -- he's some mother's son."

Something of the same despair which the crowds evinced two weeks ago spread as an unconfirmed rumor was circulated that Lindbergh had been forced down. Soon after 9 o'clock this was turned to a cheering, shouting pandemonium when Le Matin posted a bulletin announcing that the Lindbergh plane had been sighted over Cherbourg.

 

Crowd Delirious With Joy

 

The crowd applauded and surged into the street, halting traffic in a series of delirious manifestations which lasted for ten minutes with cries of "Vive Lindbergh," "Vive l'Americain." The news was followed by a general rush for taxicabs and subway stations, thousands being seized simultaneously with the idea of going to Le Bourget to witness the arrival of the victorious airman.

All roads leading toward the air field were jammed with traffic, though thousands still clung to their places before the boulevard bulletin boards. Other throngs moved toward the Etoile, lining ways of access to the hotel where it had been announced the American's rooms were reserved, in the hope of catching a glimpse of the international hero, the first to make Paris from New York by air, as he passed in triumph from the airdrome.

 

Landing Excited Crowd to Frenzy

 

Ovation after ovation followed the news of Lindbergh's startling progress through France, the crowds steadily augmenting until they filled the entire block. The throng was estimated at 15,000 people. After Cherbourg word was flashed that the plane had traversed Louvirs, then the outskirts of Paris.

In a perfect frenzy the huge crowd hailed the announcement that Lindbergh had landed at Le Bourget. Straw hats sailed in the air, handkerchiefs fluttered and a roar of cheers and clapping spread through the throng and was carried along down the boulevards, where the crowds seated in the cafe terraces rushed into the streets and joined in the demonstration. The cheering was renewed again and again.

 

Stars and Stripes Wildly Applauded

 

From the tops of motorbuses, stopped in the traffic, joyful figures demonstrated their glee, the police abandoning their efforts to restrain the throng and joining in the general elation.

From the first recheering of "Vive l'Americain" rolled up a mighty shout, "The flags," the same cry which two weeks ago gave rise to the false rumor of an anti-American demonstration, when it was falsely reported that a mob demanded the removal of the American flag from the Matin office.

 

"Vive l'Americain" the Cry

 

For several minutes this cry was renewed until the proprietor of a motion picture house unfurled a little American flag, which was greeted with cheer upon cheer and which became the mightiest pro-American demonstration seen in France since the days of the war, when, as the Yankee troops landed, three large American flags beside the French Tricolor hung from Le Matin's window in the glare of searchlights.

There could be no mistaking the sincerity of these cheers which were prolonged as a Frenchman in the crowd rushed up to the American demonstrators, wringing their hands in congratulations.

Extra papers telling the tale of the American's triumph in bulletin form sold as fast as the newsmen could distribute them.

The throng slowly dispersed in a general procession toward Montmartre, where many hundreds were to spend the remainder of the night in a celebration.

 

Flier's Navigation Called Uncanny

 

What appealed to the French aviators as the uncanny part of Captain Lindbergh's performance was his lack of navigating instruments. Old and experienced airmen, in conversations during their wait for him said he had one chance in a thousand because, while he might head in a given compass direction in leaving America, the winds might put him many hundreds of miles out of his path.

Guesses were made that he might land in Spain, in Portugal, in Northern Africa or in Ireland or even Norway. But the flier landed at Le Bourget as simply as you please and as accurately as if he had half a dozen navigators aboard.

 

Traffic to Le Bourget in Record Jam

 

When the news of Captain Lindbergh's arrival reached Paris tens of thousands of people started for Le Bourget Field. They met the crowds starting to come home and there ensued the worst traffic tangle the French Capital has had. The police estimate that 12,000 automobiles became involved in the tangle and many of the cars did not get back to the city until after 3 o'clock this morning.

For two hours there was a hopeless mix-up with no movement in any direction. The emergency traffic police brought from Paris worked nearly all night in straightening out the mess.

French papers estimated that at midnight 150,000 people were trying to get to or from Le Bourget and there were frequent exhibitions of temper which acted as a great contrast to the enthusiastic joy which greeted the arrival of the American hero.

Soon after Lindbergh landed an employe of the Bourse telegraph office arrived with more than 700 cablegrams for him, but the employe was unable to get within half a mile of the addressee.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기사

An Article of Lindbergh's Transatlantic Flight                                                                              시대 1927년 | 분류 신문

 

1927년 5월 22일자 브루클린 데일리 이글에 실린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비행을 다룬 기사

 

 

 

 

 

 

 

 

 

 

 

 

린드버그 자서전 'WE'

'WE', the Autobiography of Lindberg                                                                                            시대 1927년 | 분류 도서

 

찰스 린드버그의 자서전으로 대서양을 횡단하던 당시의 경험담과 '세인트루이스의 정신'호에 대한 설명, 항공미래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담겨 있다.

 

 

 

 

 

 

 

 

 

린드버그의 저서

'비행과 삶(Of Flight and Life)'

'Of Flight and Life' by Lindbergh                                                                                                   시대 1948년 | 분류 도서

 

찰스 린드버그가 저술한 책으로 대서양 횡단에 대한 감회와 함께 통제되지 않은 과학발전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국가간의 항공기술 경쟁은 결국 국가안보의 위협이 될 것이고, 이로 인한 무기로써의 무분별한 비행기 개발은 인류의 미래를 망치게 되는 악순환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린드버그의 이 우려는 제2차 세계대전과 동서냉전시대를 거치면서 현실이 되었다.

 

 

 

 

 

 

장거리 항공로 개척과 제작 기술의 발전

Long - distance Route Development and Development of Manufacturing Technology

 

1927년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비행 성공 이후 비행기는 여러 국가에서 운송분야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에 여객 운송을 위한 다양한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여 외부 온도가 차단되는 객실이 표준으로 자리잡았고, 외관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된 금속제 마감으로 고공, 고속에서도 더욱 안전하고 경제적인 비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고도 11,000m 이상 고공비행 및 여압장치, 무선전화, 자동조종장치 등 각종 항공계기가 개발되어 야간 및 계기비행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1930년대 후반들어 이러한 기술들이 집약된 대형 수송기 DC - 3의 등장은 항공수송의 혁명을 가지고 와 새로운 항공시대를 여는 전환성이 되었다.

 

 

 

DC - 3 조종실 내부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Lindbergh's Transatlantic Flight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기로 활용됐던 비행기의 실용화는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린드버그가 6천 달러를 들여 직접 제작한 길이 8m의 '세인트루이스의 정신(Spirit of St. Louis)'호는 무전기와 방향탐지기조차 없이 오직 나침반 하나에만 의지한 채 1927년 5월 20일 오전 7시 2,750파운드의 연료와 약간의 비상식량, 그리고 물만 싣고 미국 뉴욕의 루스벨트 비행장을 출발하였다. 그리고 대서양을 지나 무려 약 5,809km나 되는 뉴욕 - 파리를 평균 시속 172km로 33시간 30분이 걸려 5월 21일 오후 10시에 프랑스 파리 르부르제 공항 활주로에 도착하는 무착륙 장거리 단독 비행에 성공하였다.

물론 이전에도 대서양을 횡단한 사람들은 존 올콕과 아서 브라운(1919. 6)을 시작으로 66명이나 있었지만, 그들은 단순 대서양 횡단이 목표였던 데 반해 린드버그는 뉴욕과 파리라는 정확한 출발지와 도착지를 갖고 성공했기 때문에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성공이야말로 진정한 장거리 비행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장거리 비행 시대를 열다

Lindbergh's transatlantic flight opened the era of long - distance flight

 

 

 

찰스 린드버그와 비행기 '세인트루이스의 정신'

 

 

 

대서양 횡단 항해를 떠나는 찰스 린드버그를 보기 위해 모인 뉴욕 시민들

 

 

 

린드버그의 대륙간 대서양 무착륙 횡단 비행 도전 성공을 기념하여 1927년 6월 17일 발행된 기념 우표

 

 

 

 

 

 

 

 

 

 

 

 

세인트루이스의 정신

Spirit of St. Louis                                                       시대 1927년 | 규격 402 × 632mm(축척 1 : 24) | 분류 비행장치(모형)

 

1927년 찰스 린드버그가 세계 최초로 뉴욕 - 파리 간 단독 무착륙 비행에 성공할 때 조종한 비행기이다. 린드버그의 이 비행기는 샌디에이고에 있는 라이언항공사(Ryan Airlines)에서 제작하였는데, 이 비행기를 만드는데 세인트루이스에 있던 린드버그의 지지자들의 후원이 컸기 때문에 그들에게 감사하는 의미에서 '세인트루이스의 정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DC - 3

Douglas DC - 3                                                           시대 1935년 | 규격 270 × 404mm(축척 1 : 72) | 분류 비행장치(모형)

 

근대 민간항공 비행기의 원조라고 불리는 21인승 쌍발 여객기로 1935년 미국의 더글러스사가 개발하였다.

 

 

 

 

 

 

근대 수송기의 원조, DC - 3

Origin of Modern Transporter, DC - 3

 

운송사들이 승객들의 장거리 비행을 위한 기내 인테리어 추가를 요구함에 따라 기존 DC - 2 객실의 폭을 60cm 넓히고, 좌석을 21개로 늘린 새로운 기종이 DC - 3였다. DC - 3은 유압으로 작동되는 접이식 착륙장치, 더욱 효율적인 프로펠러, 진동을 흡수하는 완충기, 더 얇아진 날개를 갖추고 있었다. 날개폭도 약 3m가량 확장되어 조종이 훨씬 쉬워졌다. 특히 승객을 21명까지 태울 수 있어 항공 역사상 처음으로 운임만으로 운항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민항기였기에 1939년 당시 미국 수송기의 75%를 차지하였다.

 

 

 

DC - 3 좌석 배치도

 

 

 

DC - 3 객실 내부

 

 

 

 

LA와 뉴욕을 야간 비행했던 DC - 3 DST 내부

 

 

 

 

 

 

 

 

 

 

 

 

 

 

 

 

 

 

 

 

 

 

 

 

728x90

'박물관 기념관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립항공박물관] 03  (0) 2022.06.01
[국립항공박물관] 02  (0) 2022.05.30
[한양도성박물관] 01  (0) 2022.05.11
광고, 세상을 향한 고백  (0) 2022.04.19
내 일로 내일을 꿈꾸다  (0) 2022.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