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립박물관] ㅡ 부천향토역사관
부천시립박물관
부천시립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이어져오는 부천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리고 계승하며 다양한 문화콘텐츠의 가치를 제고하여 시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이 되고자 합니다.
유물의 수집・보존 ・연구활동을 통해 지역의 역사문화를 올바르게 발굴하고 확립하여 문화적 긍지를 높이겠습니다.
더불어 다양한 전시 및 문화교육활동을 통해 살아있는 생활문화공간이 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출처 : 부천시립박물관>
www.bcmuseum.or.kr
주소 : 경기도 부천시 소사로 638
☎ 032. 684. 9057~8
관람안내 Visitor Information
운영시간 09 : 00~18 : 00 (전시관람 09 : 30~17 : 30, 입장마감 17 : 00)
휴관일 1월 1일, 설날 · 추석 당일, 월요일, 법정공휴일 다음날
관람료
구분 | 개인 | 단체 (20인 이상) | ||
어린이, 청소년 | 일반 | 어린이, 청소년 | 일반 | |
[통합권] 부천시립 / 활박물관 |
1,400 | 2,400 | 900 | 1,900 |
부천시립박물관 | 1,200 | 2,000 | 800 | 1,600 |
부천활박물관 | 600 | 1,000 | 400 | 800 |
부천펄벅기념관 | 무료 | |||
무료입장 | 영 · 유아 : 만 6세 이하 미취학 아동 / 노인 : 만 65세 이상 장애인 : 장애인 카드 소지자 (인솔자 1인 포함) / 국가유공자 |
입장권
부천시립박물관 안내 팜플렛
부천시립박물관 안내도
부천시 유네스코 창의도시
부천향토역사관
부천 고강동에서 출토된 선사유물들과 부천 작동에 있던 화유옹주(1740~1777년, 조선왕조 영조의 열 번째 딸) 묘에서 출토된 조선후기 유물들을 통해 살펴보는 부천의 역사관
<출처 : 부천시립박물관 안내 팜플렛>
http://www.bcmuseum.or.kr/vrmuseum/VR_Museum_01.html
부천향토역사관
1998년 6월 25일
부천향토사료실, 부천시립중앙도서관 지하 1층에 개실
(79㎡, 고강동 출토유물 50점, 화유옹주 출토유물 24점)
2000년 5월 18일
부천향토역사관 도당동에 개관
(220㎡, 고강동 출토유물 49점, 화유옹주 출토유물 26점, 서적 21권)
2017년 6월 20일
부천향토역사관, 부천옹기박물관에 이전 개관
발굴 유물로 보는 부천의 역사
선사시대
구석기시대
고강동 선사유적 부천지역 최초 구석기 유물 발견 (여러면석기)
청동기 / 초기철기시대
고강동 선사유적 적석환구유구 (반달돌칼)
삼국시대
고구려 B.C 37년~688년
부천지역 최초의 지명 주부토(主夫吐)
주부토 기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757년 (경덕왕 16)
장제군으로 개칭
통일신라 676~935년
고강동 선사유적 석곽묘 / 도장무늬토기
고려시대
940년 (태조 23)
수주(樹州)로 개칭
995년 (성종 14)
단련사(團練使) 파견
1150년 (의종 4)
안남도호부로 승격
1215년 (고종 2)
계양도호부로 개칭
1308년 (충렬왕 34)
길주군으로 승격
1310년 (충선왕 2)
부평부로 강등
조선시대
1413년 (태종 13)
부평도호부 설치
도호부 관아
1777년 (정조 1)
화유옹주묘 발굴
옥제연리문쌍이잔
근 · 현대시대
1895년 (고종 32)
인천부에 속한 부평군
1899년
경인철도 개통 소사역 설치
소사간이역
1914년
부천군 신설 (계남면, 오정면, 소래면 일부가 부천시 영역)
1931년
계남면이 소사면으로 개칭
1967년
경인고속국도 착공
1973년
소사읍 일원이 부천시로 승격
1990년
중동지구 택지 개발사업
2016년
원미구, 오정구, 소사구 폐지
발굴 유물로 보는 부천의 역사
[01]
선사시대 취락유적에서 조선시대 무덤유적까지
고강동 선사유적은 한강유역의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취락유적이다. 7차에 걸친 발굴에서 총 21기의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주거지에서 출토된 돌도끼, 돌촉, 반달돌칼 등의 생활도구를 통해 청동기시대의 농경 · 수렵 · 채집 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의 구멍무늬토기 (기원전 10~8세기경)와 늦은 시기의 덧띠토기 (기원전 3세기경)가 같이 출토되고 있어 청동기시대 전반에 걸친 문화의 변화상을 밝혀줄 수 있는 발굴유적이기도 하다.
청동기시대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석곽묘, 조선시대의 건물지 등도 발굴되었다. 이를 통해 고강동지역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역사적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강동 선사유적 이외에 부천지역에서 발견되는 유적의 대부분은 조선시대의 분묘다. 청주 한씨, 밀양 변씨 같은 조선시대 명문세가의 분묘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화유옹주묘, 경숙옹주묘 등 조선시대 귀족의 분묘에서 발굴된 부장품은 조선시대 궁중과 양반가의 생활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그 가치가 높다.
[참고]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02]
한강유역의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주거지
고강동 선사유적 중 주거지는 대부분 구릉 정상부 평탄지나 완만한 경사면에 입지한다. 경사면을 'ㄴ'자로 굴토해 조성한 것으로, 장축 방향은 능선에 평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부는 등고선 방향과 직각을 이루기도 한다. 평면 형태는 세장방향 · 말각장방형 · 장방형이 확인되며, 장방형이 대부분이다.
규모는 대체로 20~30㎡의 범위에 있으나, 7호 · 10호 · 13호와 같은 세장방형 주거지의 경우는 60㎡가 넘는다. 이 가운데 5차 조사에서 확인된 13호 주거지는 장축 길이 18.9m, 너비 3.5m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13호 주거지는 고강동 선사유적에서 확인된 주거지 가운데 가장 대형으로 한강유역에서 발견된 세장방형 주거지 중에서도 초대형급에 속한다.
1호 · 2호 · 13호 주거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거지 내부에서는 기둥 구멍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고강동 선사유적 주거지의 특징적인 요소로 파악되고 있다. 주거지의 바닥면은 일부 점토를 다진 흔적이 확인되나, 대부분 생토면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화덕자리가 발견된 경우는 많지 않은데, 8호 · 10호 · 18호 주거지에서 확인되었다. 발견된 화덕자리는 바닥을 그대로 사용한 무시설식이거나 땅을 약간 굴토하여 만든 수혈식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제 1, 3, 5차 발굴조사 보고서
[03]
청동기시대의 제사유적
ㅡ 적석환구유구
고강동 선사유적 중 적석환구유구는 청룡산 최정상부인 해발 91.6m 지점에서 발굴되었다. 가운데에는 적석시설(積石施設)이 있고 이것을 중심으로 원형을 이루며 도랑 [溝]이 둘러 있다. 적석시설은 말각방형의 평면형으로 한 변의 길이가 6m 가량이며, 적석의 가운데 부분이 다소 불룩한 형태를 띤다.
도랑은 적석시설과 10m 내외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원형으로 돌아간다. 도랑의 지름은 도랑 바깥선을 기준으로 약 30m이며 전체 길이는 63m이다. 조랑의 서쪽 일부는 끊어져 있는데, 이는 출입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도랑의 폭은 3~4m 가량이나 경사가 급한 남동쪽은 1m 내외이며, 깊이는 약 80~100cm 정도이다.
적석환구유구는 고강동 선사유적에서 가장 높은 곳에 독립적으로 위치하는 입지적 특성, 제기형토기가 출토된 점, 바닥면에 불탄 흙 [燒土]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제사유적으로 파악된다.
이 적석환구유구는 2000년 발굴조사 당시에는 그 예를 찾기 어려웠던 제사유구로서 청동기시대의 의례와 종교, 사회문화를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제4차 발굴조사 보고서
[01] 홍수로 드러난 거대한 선사주거지
■ 고강동 선사유적
형태
· 경인고속도로가 구릉의 중앙부를 동서로 관통하면서 구릉이 남북 방향으로 양분
· 북쪽 - A지구, 남쪽 - B · C 지구
발굴유구
· A 지구 : 해발 68.9m의 주능선을 따라 완형 또는 일부 파괴된 주거지 11기 위치
· B 지구 : 해발 91.9m의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주거지 10기, 적석환구유구(積石環溝遺構),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석곽묘, 조선시대 건물지 발굴
· C 지구 : 수주로 서쪽 능선 일대에서 민묘 1기, 적석유구 1기, 유구 3기 확인
위치
· 고강동과 작동에 위치한 해발 91.6m의 청룡산 정상부와 주변 능선
발견된 시기
· 1995년 여름에 발생한 홍수로 인하여 유적과 유물들이 발견되기 시작
발굴조사
· 1996년부터 2005년까지 한양대학교 박물관과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등이 7차례에 걸쳐 실시
구멍무늬토기
청동기 | 부천향토역사관 소장
구멍무늬토기는 고강동 선사유적지 발굴 유물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복제품)
민무늬토기
청동기 | 고강동 선사유적 3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강동 선사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인 민무늬토기와 간석기류 등을 청동기시대 뿐 아니라 초기 철기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어 한강 유역의 초기 국가 단계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사진으로 보는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발굴현장 1차
사진으로 보는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발굴현장 2 · 3차
사진으로 보는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발굴현장 4차
사진으로 보는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발굴현장 5차
사진으로 보는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발굴현장 6차
사진으로 보는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 발굴현장 7차
[02] 농경생활을 영위한 청동기시대
구분 | 구석기시대 | 신석기시대 | 청동기시대 |
도구 | 뗀석기, 불사용 시작 | 간석기 뼈도구 빗살무늬 토기 |
민무늬토기 간석기 (칼, 도끼) 청동기 (거울, 도끼, 동검) |
식생활 | 사냥, 물고기잡이, 채집 | 농경, 목축시작 | 농경발달 |
주생활 | 정착생활, 움집 | 더 얕은 움집 / 야산이나 구릉 | |
의생활 | 가락바퀴, 뼈바늘 | ||
사회 | 무리사회 / 평등사회 | 씨족이 모여 부족형성 / 평등사회 |
사유재산 지배 / 피지배 계층구분, 인구증가 |
신앙 | 애니미즘, 토테미즘 | 제정일치 | |
예술 | 동굴벽화, 조각품 |
신석기시대부터 대부분의 지역에서 갈돌과 갈판이 사용되기 시작하다가 본격적인 농경에 접어드는 청동기시대에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갈판 위에 음식물 (곡물이나 야생열매)을 놓은 후 갈돌을 이용해 가루를 만들었으며 갈돌과 갈판은 한 짝을 이루어 사용되었다.
갈판
청동기 | 고강동 선사유적 6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곡식이나 야생열매를 갈 때 쓰는 받침돌로 갈돌과 한 쌍을 이룬다.
갈돌
청동기 | 고강동 선사유적 6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갈판 위의 곡식이나 야생열매를 갈 때 쓰는 봉으로 갈판과 한 쌍을 이룬다.
[03] 정교해진 간석기 제작
■ 석기의 변화
청동기시대라는 명칭 자체는 금속재질이 이용된 시기임을 의미하지만, 실제로 금속제춤이 일상생활에서 널리 이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금속은 귀한 재료였고 이를 가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금속제품은 꾸미개나 의기(儀器) 등 지배자의 상징물로 이용되었고, 농사를 짓거나 집을 짓는 등 일상적인 활동에는 돌로 만든 석기가 주로 이용되었다.
석기의 제작방법과 돌을 다루는 기술은 시대에 따라 발전하였다. 신석기시대에는 도끼의 날 같은 일부 필요한 부분만 갈아서 도구를 만들었지만, 청동기시대에는 석기 전체를 매끄럽게 갈아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숫돌[砥石]은 석기의 날을 갈아 세우는 데 사용하는 중요한 제작도구이다.
숫돌
청동기 | 고강동 선사유적 3, 4, 6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간석기의 형태를 잡거나 완성된 도구의 날을 세우는 데 사용한 도구이다.
온 습도계
[04] 청동기 생활상을 보여주는 도구
반달돌칼 [半月形石刀]
용도 곡식수확용
형태 장방형 · 배 모양 [舟形] · 물고기 모양 [魚形] · 삼각형 등
가락바퀴 [紡錘車]
용도 실을 만드는 방적구의 원시적 형태
형태 원판형 · 구형 · 반구형 · 원통형 · 절두원추형 [截頭圓錐形] 등
간돌검 [磨製石劍]
용도 실생활 및 의기용
형태 15~30cm 길이의 검신(劍身)과 자루의 조합, 검신의 단면은 마름모꼴 또는 볼록렌즈 모양
간돌도끼 [磨製石斧]
용도 목재 다듬기 및 벌채, 의기용
형태 날의 모양에 따라 양날 도끼 [兩刃石斧]와 외날도끼 [單刃石斧]로 구분하며 바퀴날도끼 또는 달도끼 [環狀石斧]와 톱니날도끼 [多頭石斧] 등 특수한 형태의 도끼도 있음
간돌화살촉 [磨製石鏃]
용도 화살이나 작살의 끝에 붙여 사냥도구나 무기로 사용
형태 화살대와 결합하는 슴베의 유무와 형태에 따라 크게 무경식(無莖式) · 유경식(有莖式) · 유엽식(柳葉式)으로 구분
간돌화살촉
청동기 | 고강동 선사유적 1, 2, 4, 5, 6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살대와 결합하는 슴베부분 [莖部]의 유무에 따라 슴베 없는 화살촉과 슴베 있는 화살촉으로 나누어진다.
간돌칼
청동기 | 고강동 선사유적 1, 2, 6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돌을 가공하여 찌르거나 베는 데 사용한 도구이다. 검 끝에 슴베가 달려 있어 나무 등의 자루를 끼워 쓴 것과 손잡이가 일체형으로 달려 있는 것으로 분류된다.
반달돌칼
청동기 | 고강동 선사유적 1, 3, 5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곡식의 이삭을 따는 도구로 몸체 가운데 두 개의 구멍에 끈을 끼워서 그 사이에 손을 넣어 잡고 사용하였다. 한쪽 날을 더 날카롭게 갈아 이식을 자르기 편하도록 만들었다.
간돌끌
청동기 | 고강동 선사유적 1, 4, 5, 6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나무에 구멍을 뚫거나 다듬는 데 쓰이는 도구이다. 너비가 비교적 좁고 긴 네모난 연장으로, 길이와 폭의 비율이 3 : 1 이상으로 폭에 비해 길이가 긴 소형의 외날도끼 [單刃石斧]이다.
간돌도끼
청동기 | 고강동 선사유적 4, 5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둥근 자갈이나 몸돌 혹은 큰 돌조각을 때려 내어 다듬거나 갈아서 만든 도끼
바퀴날도끼
청동기 | 부천향토역사관 소장
'달도끼'라고도 한다. 타격용 무기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한편 톱니날도끼와 함께 권위를 상징하는 의식용구로 보는 견해도 있다. (복제품)
톱니날도끼
청동기 | 고강동 선사유적 4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날이 여럿으로 나누어져 있는 모양으로 톱니날도끼, 별도끼 등으로 불린다. 바퀴날도끼와 함께 의식용으로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가락바퀴
청동기 | 부천향토역사관 소장
선사시대 옷감을 짜는 기술을 알 수 있는 도구이다. 구멍에 긴 막대를 끼워 넣고 축을 늘리는 방법으로 실을 꼬아서 뽑는데 사용하였다. (복제품)
간돌창날
청동기 | 고강동 선사유적 6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자루에 연결하여 사용하는 사냥과 전쟁용 도구이다. 우리 나라에서 발견되는 간돌창날은 20cm 미만의 소형으로 형태상 화살촉과 돌칼의 중간형태를 보이고 있다.
간돌자귀
청동기 | 고강동 선사유적 4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나무를 깎거나 다듬는 도구로 날의 한쪽 면을 갈아 만든다. 도끼는 날과 자루가 평행하지만, 자귀는 날과 자루가 직각 방향으로 연결된다.
[05] 청동기 문화상을 보여주는 토기
구멍무늬토기
시기 청동기시대 전기
형태 입술바로 아래에 작은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돌아가면서 나 있는 토기
지역 평안남도와 황해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 동북지역에서 전파
특징 구멍무늬토기와 골아가리 구멍무늬토기 [口脣刻目文孔列土器]는 11개 주거지에서 출토되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 하며, 고강동 선사유적의 연대를 BC 10~8세기 경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이다.
제기형토기 (굽다리접시토기)
시기 청동기~초기철기시대
형태 사발이나 바리 밑에 높은 굽이 달린 형태로 한자 '두(豆)'의 모습을 띠고 있어 두형(豆形) 토기라 칭함
지역 한반도 동북지역
특징 고강동 선사유적의 제사 유구인 적석환구유구의 환구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에 제기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제기형 토기로 이름 붙여졌다.
덧띠토기
시기 청동기시대 후기
상한 BC 5~4세기 경, 하한 기원 전후 추정
형태 아가리에 원형 또는 삼각형의 점토 띠를 말아 붙인 토기
지역 남한 지방에서 유행
특징 고강동 선사유적에서 출토된 점토대토기는 모두 원형 점토대토기이다. 모두 파편이어서 정확한 기형을 추정하기가 어렵다. 동체부는 하단에서 상부로 수직에 가깝게 급경사를 이루어 안쪽으로 올라가며, 그 끝에 원형의 점토대가 집 합되어 있다.
골아가리 토기 구연부 조각
청동기 | 고강동 선사유적 2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구멍무늬토기는 골아가리 무늬와 결합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형태는 한반도 전역에 분포한다.
덧띠토기 조각
청동기 | 고강동 선사유적 5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단일 유적에서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의 구멍무늬토기와 늦은 시기의 덧띠토기가 함께 출토되어 있어 청동기시대 전반에 걸친 문화의 변화상을 밝혀 줄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
제기형토기
청동기 | 고강동 선사유적 4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환구유구(環溝遺構)의 중간층에서 3점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토기문화는 물론, 제의 행위와 관련된 당시의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 구연부 조각
청동기 | 고강동 선사유적 3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구멍무늬 토기와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가 11개 주거지에서 출토되어 출토된 토기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토기 바닥 부분
청동기 | 부천향토역사관 소장 (복제품)
[06] 통일신라시대 도장무늬토기의 유행
고강동 선사유적에서 확인된 석관묘는 총 11기이다.
특히 5차 조사에서 확인된 3기의 석곽묘는 토기류의 부장품이 출토되었고 대형판석을 세워 입구를 막은 후 뒷부분을 보충한 횡구식으로 추정되고 있다.
도장무늬 토기병, 유재합, 연질 발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 유물을 토대로 신라가 한강 유역에 진출한 후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여 그 시기를 7~8세기로 보고 있다.
도장무늬 토기는 통일신라시대부터 등장하여 유행했다.
선무늬 [線文], 점선무늬 [點列文], 물결무늬 [波狀文], 원호무늬 [圓弧문], 편자무늬 [馬蹄形文], 꽃무늬 [花形文], 구름무늬 [雲文], 달개무늬 [瓔珞文], 물방울무늬 [水滴形文] 등 다양한 무늬가 새겨졌다.
도장무늬가 새겨진 그릇 종류도 굽다리사발 [臺附盌], 뚜껑 [蓋], 병 [甁]류, 사발, 바리 [鉢], 장군 [橫缶], 뼈단지 [骨壺] 등 다양하다.
토기병
통일신라 | 고강동 선사유적 5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보통 500~1000℃ 이하에서 구워진다. 평평한 바닥에서 길게 뻗어 올라간 몸체는 어깨 상단 부분에서 최대 지름이며, 목은 짧고 입구가 넓게 벌어져 있다.
도장무늬 토기병과 뚜껑
통일신라 | 고강동 선사유적 5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무늬가 새겨진 도장으로 토기의 표면에 무늬를 찍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이다. 주로 무덤 및 절터, 궁터 등의 생활유적에서 출토되며 부장품, 뼈항아리, 일상용기 등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07] 조선시대 귀족문화를 보여주는 부장품
■ 화유옹주묘의 부장품
화유옹주
· 영조와 귀인 조씨 (1707~1780) 사이에서 태어난 영조의 열번째 딸
· 1753년 황인점 (黃仁點, 1732~1802)과 혼인
· 1777년 (정조 1) 화유옹주 사망
· 1802년 (순조 2) 황인점 사망 후 화유옹주와 합장
부장품
· 화유옹주와 황인점의 무덤에 함께 묻힌 유물
· 1991년 6월 묘를 옮기기 위한 작업 도중 출토
· 옥제 비녀 13점, 금동제 비녀 5점, 도자기 등 총 30여 점 출토
· 실제 사용시기와 사용자가 알려진 부장품들로 조선후기 왕실의 생활공예와 외명부 여성의 높은 생활수준을 보여준다. 부장품 중에는 중국 청나라의 공예품도 함께 발견되었는데 남편 황인점이 중국 청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
청화백자잔
18세기 | 화유옹주묘 부장품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아담한 크기의 청화백자잔이다. 구연은 밖으로 벌어졌으며, 굽은 좁고 낮은 형태이다. 잔의 표면에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풀무늬를 간결하게 그려 넣었다. (복제품)
청화백자풀꽃무늬합
18세기 | 화유옹주묘 부장품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아담한 크기의 백자합이다. 표면에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당초 무늬를 시문하였다. (복제품)
귀 달린 옥 잔
18세기 | 화유옹주묘 부장품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옥으로 만든 쌍이잔(雙耳盞), 손잡이에 동물형상이 양각되어 있다. (복제품)
황채장미무늬병
18세기 | 화유옹주묘 부장품 | 국립고공박물관 소장
장미 덩굴과 꽃이 그려진 백자병이다. 바깥 면 전체를 노란색으로 칠하였다. (복제품)
녹색유리병
18세기 | 화유옹주묘 부장품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녹색 유리로 만든 긴 목의 팔각병이다. 바닥에 '건륭년제(乾隆年制)' 명문이 인장 모양으로 음각되어 있다. (복제품)
청화백자연꽃무늬합
18세기 | 화유옹주묘 부장품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연꽃 문양을 시문한 백자합이다.
합의 몸체에는 연잎을, 뚜껑에는 연밥을 표현하였다. (복제품)
도금은담배합과 청동물부리
18세기 | 화유옹주묘 부장품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뚜껑과 몸체가 일체형인 은제함이다. 윗면에 원수문(圓壽紋)과 원복문(圓福文)이 음각되어 있다.
물부리는 담뱃대의 입으로 무는 부분인데, 담뱃대의 다른 부위인 대통과 설대는 같이 출토되지 않았다. (복제품)
은주전자
18세기 | 화유옹주묘 부장품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참외모양 [瓜形]의 은주전자이다. 손잡이는 동아줄을 꼬아 놓은 것과 같은 형태이다. 손잡이와 뚜껑 꼭지에 줄을 연결해 뚜껑이 분실되지 않도록 하였다. (복제품)
도장무늬 그릇과 뚜껑
통일신라 | 고강동 선사유적 4, 5차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아가리 지름보다 낮은 높이에 둥글 넙적하며 뚜껑이 있는 그릇이다. 뚜껑에는 굽다리 모양의 꼭지가 달려있고 안에는 소형 돌기가 있으며, 꼭지를 중심으로 3줄의 이중 동심원단(同心圓段)을, 그 밑으로 이중의 음각선(陰刻線)을 시문하였다.
2층으로 올라가는 경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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