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행 ㅡ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09)]
산수도 8폭 병풍山水圖
조선 후기 420 × 200
이한철(李漢喆, 1812 ~ ?)
어진화사 이한철의 그림이다. 이한철은 신원 이의양(李義養, 1768 ~ ?)의 아들이자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 ~ 1856)의 제자이다. 남종문인 화풍의 산수화 양식으로 그렸다. 19세기 말 장승업 화풍 및 근대 화단의 시작 시점의 화풍을 가늠할 수 있다.
나전 이층농螺鈿二層籠
조선
나전 용 종황무늬 탁자螺鈿龍鳳文卓子
조선
나전으로 용과 봉황으로 삼면을 장식한 탁자이다. 1층에는 두 개의 서랍, 2층과 3층에는 여단이 문이 있으며, 4층에는 선반이 있다. 여단이 문 안쪽에는 비단을 붙여 마감했다.
나전 오륜행실도 탁자장螺鈿五倫行實圖 卓子欌
20세기 65 × 105
한 단으로 구성된 나전 탁자장으로 장식에 효심에 관한 중국 설화를 삽화로 선택한 것이 특징이다. 미닫이 서랍장에는 『심국지三國志』 「오지吳志」에 나오는 맹종읍죽孟宗泣竹에 대한 내용이 장식됐으며, 여닫이 서랍장에는 중국 동진東晋의 간보干宝가 쓴 설화집인 『수신기搜神記』 내용인 왕상빙리(왕상부빙)가 표현됐다.
나전 패물함螺鈿佩物函
40.2 × 24.1
나전 연상硯床
조선 39.7 × 27.5 × 26.6
문방사우 중 벼루, 먹, 연적 등을 모아놓는 문방가구이다. 서랍은 산수누각무늬로 산수화의 느낌이 나도록 했으며 전체적으로 십장생 문양이 새겨져 있다.
기와에 새겨진 문양
기와는 집의 지붕을 덮는 건축자재이다. 백제 한성기 기와는 암 · 수키와와 수막새 등이 있다. 한성기의 수키와는 무늬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며, 암키와는 격자무늬 · 선무늬가 있다. 수막새에는 풀꽃 무늬草花文, 나뭇가지 무늬樹木文, 동전 무늬錢文, 마름모 무늬菱形文, 연꽃 무늬蓮花文 등 여러 가지 무늬를 새겼으며, 민 무늬無文도 있다. 불교가 융성하기 시작한 웅진기부터는 수막새에 연꽃 무늬가 대부분이고 사비기에는 바람개비 무늬巴文도 있다. 이러한 무늬들은 대부분 중국 문양에 영향을 받아 새겼으나, 점차 우리나라 고유 문양으로 발전했다.
포도 넝쿨무늬 암막새葡萄唐草文平瓦當
통일신라 24 × 29 국립전주박물관
드림새면 좌우에서 한줄기의 당초 줄기가 중앙으로 뻗어 있는데 좌우 대칭이다. 줄기에서 분지된 가지 끝에는 잎과 열매를 매달아 장식하고 있다. 중앙에는 커다란 포도송이가 있고 넝쿨은 2 ~ 3개의 넝쿨손이 하트형으로 표현돼 단순화된 모습을 보인다.
동경
중국은 고대인의 중요한 생활용품 중에 하나였던 동경을 아시아에서 최초로 만들고 사용한 나라이다. 당나라부터 동경 제작기술이 절정을 맞이했으며, 다양한 양식 중에 해수포도문동경이 대표적인 양식이었다. 이 양식은 통일신라시대에 당나라와의 교역 물품들과 함께 우리나라에 유입됐으며, 고려시대에는 중국만의 양식에서 벅어나 한반도 특유의 동경 양식으로 발전됐다. 초기 철기 시대 주요 항구 유적에서 발굴되는 중국식 동검으로 이 당시 한반도와 중국 사이에 해양루트가 발달된 것을 알 수 있다.
해박무늬 거울海舶紋銅鏡
중국 금金 16.3 중국항해박물관
동경 양쪽 끝에 굽이치는 파도가, 중간 오른쪽에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범선이 새겨졌다. 선수와 선미에는 여러 명의 사람이 앉아 있다. 뱃머리 방향으로 한 마리의 승천하는 용이 수면 위로 솟구치고, 물 속의 물고기들이 튀어 오르는 모습을 표현했다.
「황비창천」이 새겨진 항해도 무늬 거울"煌丕昌天"海舶紋銅鏡
중국 금金 17.7 중국항해박물관
황비창천경은 본래 고려시대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돛을 올린 배가 파도를 타고 힘차게 항해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고려시대부터 독자적인 형태로 점차 발전하여 중국의 동경보다 훨씬 두껍고 정교해졌다.
「황비창천」이 새겨진 항해도 무늬 거울"煌丕昌天"海舶紋銅鏡
고려 18.7
'밝게 빛나고 창성한 하늘煌丕昌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청동거울이다. 파도가 치는 바다, 구름, 배가 항해하는 모습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그 조각의 섬세함과 세련된 이미지는 높은 예술성을 자랑하고 있다. 이 청동거울은 고려시대 해상교류가 활발히 진행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공예품의 전파와 독자적 발달
공예
한반도와 중국은 금속공예 · 칠기 등과 같은 공예품으로 서로의 아름다움을 건네었다. 삼국시대에는 특히 금과 은 세공기술이 뛰어나 사신을 통해 중국 왕조에 예물로 전해지기도 했다. 고려 시대는 공예 기법 중 입사入絲와 타출打出 부문에서 중국의 장인들도 따라 하지 못할 정도로 창의적이고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했다. 특히 고려시대의 공예는 다른 부문과는 달리 귀족들의 일상생활 기구나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도구 들을 중심으로 눈부신 발전을 보였다.
한편, 중국에서 유입된 옻칠 문화는 한반도의 나전공예와 융합되어 나전칠기라는 독특한 예술품으로 탄생됐다. 고려시대부터 발달한 나전은 당시 송나라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매우 높았는데 패각류를 재료로 가공하여 꾸미는 방법으로 문양을 꾸미는데 한계가 없다는 장점이 있었다. 나전칠기 제작기법은 현대까지 계승되어 이어져 오고 있으며 장식품과 가구류와 같은 곳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한반도와 중국을 오가는 공예품의 아름다움은 재창조되어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이어져 왔으며, 이러한 예술적 가치는 지속되어 오고 있다.
도자기
중국 도자기가 한반도에 끼친 영향은 신석기시대 말부터 시작해 청동기 시대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민무늬 토기無文土器 제작 방식에서 한나라의 토기 기술의 영향으로 회청색 경질 토기가 발생한 것이 그 시초이다. 4 ~ 5세기 및 6 ~ 7세기 무렵부터는 중국 남부의 최대 청자 도요지인 월주요越州窯에서 생산된 청자(고월자) 자기들이 한반도에 유입되어 제작 기술과 그 문화가 한반도 및 일본 등지의 청자 생산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고려시대부터는 한반도에서도 고품질의 청자와 백자가 생산됐다. 초기에는 강진과 같이 항로가 발달한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청자 가마가 분포했다. 송나라와의 적극적인 대외무역으로 강소성江蘇省 경덕진요景德鎭窯의 청백자류 등의 기형이나 장식기법, 문양 소재들이 받아들여졌으나, 이후 12세기 고려 만의 독창적인 상감청자가 발달하며 중국 자기의 영향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이후 제작기법보다는 문양장식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여의두문대如意頭文帶나 동체 중간에 화창을 설정하고 문양을 베푸는 등 다양한 형식으로 발전 계승됐다.
청자 이후 발전한 분청사기는 상감청자가 퇴조하면서 나타난 자기로, 청자에 백토로 분을 발라서 만든 자기이다. 분청사기는 고려 말 상감청자에서 유래했으며, 조선 전기인 16세기 중엽까지 만들어졋다. 따라서 상감청자와 마찬가지로 중국에는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자기라는 특징이 있다.
청자 해무리굽
강진 및 해남 일대의 초기 청자 가마터에서 중국의 해무리 굽 청자와 유사한 청자들이 출토되고 있어 중국으로부터 해상교류를 통해 청자 제조기술이 유입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초기에는 중국의 해무리굽 형식으로 제작됐으나, 점차 고려 만의 독자적인 형식으로 변화해 굽 접지면이 좁은 한국식 해무리 굽이 발전했다. 이러한 청자완 제작기법은 이후 백자에도 활용됐다.
연꽃무늬 청자 그릇靑磁陰刻蓮瓣文盌
고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청자 해무리굽 완 편靑磁玉璧底盌片
고려 국립광주박물관
분청사기와 백자철화
분청사기는 상감청자가 퇴조하면서 나타난 자기로, 청자에 백토로 분을 발라서 만든 자기이다. 따라서 상감청자와 마찬가지로 중국에는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자기이며 조선 초기에 많이 생산됐다. 철화백자는 조선 백자의 일종으로서 푸른 색을 띄는 청화백자와는 달리 먹으로 그린 듯한 검은색이 특징이다. 17세기 이후로 활발히 제작됐으며 조선 만의 독창적인 도자기이다. 17세기 임진왜란으로 고급 재료인 청색 안료가 급감하자 이를 대체하기 위해 값싼 철분을 섞어 검은 빛을 내는 안료로 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18세기 청화의 생산이 증가하는 상황 속에서 청색 안료와 철분을 함께 사용하여 중국 도자기의 성격을 벗어난 조선 만의 독자적인 도자기로 성장했다.
용무늬 분청 상감 매병粉靑象嵌漁龍文梅甁(왼쪽)
조선 초기 32 × 9.6
물고기무늬 분청 병粉靑漁文梅甁(오른쪽)
조선 초기 30 × 7
물고기무늬 분청 상감 매병粉靑沙器象嵌魚文梅甁
조선 초기 27.4 × 5(왼쪽)
국화 물고기무늬 분청 그릇粉靑菊花漁文碗
조선 초기 8 × 17(오른쪽)
구름 용무늬 철화 백자 항아리靑華白磁雲龍文壺
조선 53.5 × 15.7
청자 귀 달린 항아리靑磁六耳附壺
고려 18.4 × 8.6 한성백제박물관(왼쪽)
청자 귀 달린 항아리靑磁六耳附壺
고려 18 × 11.5 한성백제박물관(오른쪽)
1. 청자 화형 잔靑磁花形盞
고려 5.8 × 8 국립광주박물관
2. 국화 무늬 청자 화형 잔靑磁陰刻菊花文10花形盞
고려 7.3 × 8.3 부산광역시립박물관
3. 국화무늬 상감 청자 잔靑磁象嵌菊花文盞
고려 5.6 × 7.7 × 4.1 국립광주박물관
청자 정병靑磁淨甁
고려 국립공주박물관
청자 그릇靑磁 盌
고려 7 × 17.6 × 7.2 국립광주박물관
1. 운학 국화 넝쿨무늬 청자 상감그릇靑磁象嵌雲鶴菊花唐草文盌
고려 6.5 × 16.2 국립중앙박물관
2. 보상화 넝쿨무늬 청자 철화 뚜껑靑磁鐵畵寶相唐草文蓋
고려 4.6 × 14.6 국립광주박물관
3. 구름무늬 청자향로靑磁陰刻雲文香爐
고려 9.4 × 20.5 국립광주박물관
용무늬 청화 백자 항아리靑華白磁龍文壺
조선 46.5 × 14.3
선학 화초무늬 청자 백자 그릇靑花仙鹤花草文碗
중국 명明 4.2 × 6.5 중국항해박물관
그릇 입구가 넓고 비스듬한 호를 그리며 아래로 좁아지는 형태다. 원형 굽이 받치고 있다. 안쪽 면의 구연부에는 청화 무늬가 한 바퀴 둘러져 있고, 안쪽 바닥에는 청화무늬 두 바퀴와 절지화 무늬를 메워 넣었다. 외벽에는 선학과 화초가, 바닥에는 두 바퀴의 청화 무늬와 두 마리의 물고기가 새겨졌다.
화조무늬 청화 백자 잔靑花枯枝花鳥文杯
중국 명明 13 × 7 중국항해박물관
입구가 넓고 몸통은 곡선을 이루며 배가 불룩한 형태로 둥근 굽이 받치고 있다. 컵 내부의 구연부에는 청화 무늬가 한 바퀴 둘러져 있고 겉에는 청화무늬와 꽃, 가지, 새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겉 바닥부에는 한 바퀴의 청화무늬가 둘러져 있다.(왼쪽)
개광절지화훼무늬 청화 백자 주전자靑花开光折枝花卉文注子
중국 명明 13 × 4.2 중국항해박물관
주전자의 뚜껑에는 청화구슬꼭지가 달려 잇고, 뚜껑 표면에는 청화 화훼 무늬가 그려져 있으며 주변에는 넓은 청화 줄이 둘러져 있다. 주전자의 입구는 넓고 목은 짧으며, 몸체는 가운데가 불룩하고 아래로 갈수록 좁아진다. 목 부분에는 청화 줄이 한 바퀴 둘러져 있고, ㅁ모체에는 청화로 절지 화훼 무늬가, 바닥부에는 꽃잎 무늬가 그려져 있다.(오른쪽)
넝쿨무늬 백자 병白磁陽刻唐草文甁
중국 송宋 16 × 4.6 × 6.7 부산광역시립박물관(왼쪽)
국화무늬 백자 대접白磁陰刻菊花文大接
중국 송宋 6.2 × 17 × 6 부산광역시립박물관(오른쪽)
시유도기施釉陶器
백제 59 한성백제박물관
유약 바른 도기 항아리
서울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유약을 바른 항아리(시유도기施釉陶器)이다. 이 항아리는 도기질의 태토에 녹색 혹은 황갈색의 저온유약을 입혀 만들어졌으며, 중국 서진西晉과 백제의 교류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백제는 일찍부터 다량의 중국자기와 시유도기가 수입되었던 지역으로, 그릇을 고급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사비백제시대에 이르러서는 흑색와기와 칠 바른 토기와 함께 적어도 6세기 중반 경에는 녹유도기綠釉陶器를 제작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 흑갈유 사이호黑褐釉四耳壺
고려 국립공주박물관(왼쪽)
2. 흑유 사이호黑釉四耳壺
고려 부산광역시립박물관(오른쪽)
시유도기施釉陶器
백제 54.8 × 58.7 한성백제박물관
연꽃잎무늬 청자그릇
모란 넝쿨무늬 청자대접
번개무늬 청자 잔靑磁陰刻雷文盞
고려 8.2 × 5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왼쪽)
연꽃잎무늬 청자 잔靑磁陰刻蓮瓣文盞
고려 6 × 7.2 국립전주박물관(가운데)
청자 잔靑磁盞
중국 남북조 6.8 × 5 부산대학교박물관(오른쪽)
연꽃잎무늬 청자그릇靑磁陽刻蓮瓣文盌
중국 남조 8 × 16 한성백제박물관
연꽃잎무늬 청자그릇靑磁陽刻蓮瓣文盌
중국 남조 7.5 × 12.2 한성백제박물관
연꽃잎무늬 청자그릇靑磁陽刻蓮瓣文盌
중국 남조 5.5 × 10 국립문화재연구원
토끼털무늬 잔
건요建窯는 복건성福建省에 있는 송나라 흑유자기의 산지이다. 이곳에서 제작된 토끼털무늬로 장식한 찻잔인 토호잔兎毫盞이 매우 유명하다. 건요 흑유잔은 차 문화의 흥기를 배경으로 대개 공품貢品으로 궁정에서 자주 쓰였으며 일본과 고려, 동남아 등지로 수출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신안선에서 건요의 토호잔이 대량으로 발견되어 그 당시 교역품으로 각광받았음을 알 수 있다.
흑자 토끼털무늬 대접黑瓷兎毫紋碗
백제 4.4 × 9.1 × 3.4 / 5.5 × 13.3 × 3.7 / 7 × 13 한성백제박물관
동물 모양 주전자
계수호鷄首壺는 청자 닭 모양 항아리가 불러지는 도자기 양식으로 중국 삼국시대 동오東吳 지역에서 등장한 후 당나라까지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제사 및 부장 용기로 쓰이다가 동진 시대 이후부터는 주전자로 사용하는 등 실용성이 강조됐다. 닭머리가 새겨진 이유는 중국에서 좋은 일을 상징하는 길吉자와 닭을 상징하는 계鷄의 발음이 비슷하여 만들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하남 감일동 유적에서 발굴된 계수호와 호수호虎首壺는 주전자처럼 머리 물이 흐르는 것이 특징이며, 특히 호랑이 모양 항아리인 호수호는 중국에서도 잘 찾아볼 수 없는 최고급 도자기이다. 이 당시 이 도자기를 받은 백제인의 계급이 상당히 높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청자 닭 모양 주전자靑磁鷄首壺
중국 육조六朝 14.3 한성백제박물관
어깨에 닭머리 모양의 주둥이가 달린 청자 주전자는 동진대(317 ~ 420)에 만든 것으로 편평한 입술, 낮은 목, 많이 구부러진 손잡이가 특징이다. 이러한 생김새는 남조 계수호와 구분된다.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흑유 계수호와 형태적으로 같은 양식임을 알 수 있다.
태평성시도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는 중국의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중국적인 요소와 조선적인 것이 혼재해 있는 양상을 보이지만 중국의 생활양식과 문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조선적인 특징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회화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원근법, 건축 표현법, 인물의 묘사법 등이 조선 후기 회화 양식과 공통점을 보이기 때문에 이 작품의 제작 시기는 조선 후기 정도로 비정할 수 있다.
계정고사도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인조仁祖 시대에 조선 궁중에서 활동한 중국인 화원인 맹영광(孟永光, 1590 ~ 1648)의 작품이다. 계정고사도溪亭高士圖는 그의 그림 중에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으로, 가을바람이 부는 산속 정자에 앉아 있는 노인을 그린 그림이다.
맹영광은 볼모로 심양에 체류했던 소현세자昭顯世子, 김상헌金尙憲 등과 교유하며, 소현세자가 귀국할 당시 함께 조선으로 들어와서 활동했다. 조선 화단에 중국 궁중회화 양식을 선보인 인물로 유명하다.
안견필 몽유도원도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중국의 회화 특징 중 하나인 화풍을 이어가는 풍조는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안견필安堅筆 화풍이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이어진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중국회화의 전통성은 원나라 화가 조맹부(趙孟頫, 1254 ~ 1322)가 그림을 그리는 것에 있어 예스러운 뜻이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는 복고주의적 입장에서 '귀존고의'를 지향했던 철학으로부터 시작됐다. 화북지방의 침식이 심한 황토산을 주로 그린 북송시대 화원인 곽희의 산수화풍은 고려와 북송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고려로 유입됐다. 특히 곽희(郭熙, 1023 ~ 1085)의 화풍이 고려에 이어 조선 초기까지 큰 영향을 끼쳤으며 안견파 화풍 형성의 밑거름이 됐다.
이녕필 산수도
고려 국립중앙박물관
고려 회화의 대가인 이녕李寧은 1124년 추밀사樞密使 이자덕李資德을 따라 수행화원으로 북송에 갔다가 휘종徽宗의 요청으로 실경산수화인 '예성강도禮成江圖'를 그렸는데, 서화에 뛰어났던 휘종이 이 그림을 보고 크게 상찬하였던 점으로 미루어 그 수준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천수사남문도天壽寺南門圖」와 함께 우리나라 실경산수화의 태동과 발전과정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주달의 서찰
청나라 과천추사박물관
청나라 문인인 주달周達이 김정희에게 보낸 서찰이다.
추사담계필담
19세기 과천추사박물관
청나라 학자 옹방강과 추사 김정희가 1810년 1월 29일 전후 주고 받은 필담서이다. 당시 24세의 젊은 추사가 77세의 대학자 옹방강에게 가르침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중국과 한국은 말로는 통하지 않았으나 글로는 통했다. 동시 통역처럼 급하게 붓을 날려 서로의 뜻을 전한 귀중한 자료다.
주달 서간
1823년 국립중앙박물관
청나라의 학자 주달周達이 추사 김정희의 동생인 서예가 김명희(金命喜, 1788 ~ 1857)에게 보내는 간략한 편지 2통이다. 김명희가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에 왔을 때 보낸 것이다.
첫 번째 편지에는 약곡 이이운 · 송파가 이평천에게 연락한 사실을 적고 있다.
두 번째 편지에는 소기少沂 이념증伊念曽에게 연락을 취했으니, 오후에 찾아가라는 말과 함께, '시품詩品'에 발문跋文을 적어 보낸다고 적고 있다.
전시를 만든 사람들
총괄 김태만
기획 윤석홍, 백승옥
전시기획 - 김윤아, 백승옥
전시진행 - 이정은, 신소명, 엄그림, 전은정
지 원 - 서영남, 전경호, 권현경, 김재휘, 김현주
자료출납 - 이경희, 방민규, 김효영, 박솔희, 강설원
보존처리 - 윤정은, 양슬기, 장윤정
번 역 - 박미영, 김보람, 한누리
시공 및 디자인 - (주)노아어소시에이츠
출품기관
국립공주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전주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부산대학교 박물관
부산박물관
중국항해박물관
하남역사박물관
한성백제박물관
화성시역사박물관
자료협조
경주최씨 문중
과천시 추사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범어사 성보박물관
불암사 성보박물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선암사 성보박물관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이자원(개인)
프랑스국립도서관
하남역사박물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양대학교 박물관
공동전시 - 국립해양박물관國立海洋博物館 중국항해박물관中國航海博物館
참여의 벽
한국과 중국 간에 존재하는 바다는 양 국가의 단절이 아닌 또 하나의 문명교류 공간이었습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한국과 중국에 존재하는 항구를 직접 연결해 봄으로써 미래지속가능한 새로운 길을 이어가 봅시다.
우리가 만들어갈
한 · 중 교류의
새로운 길을 이어가 봅시다.
和合
전시를 나가며
바다, 단절이 아닌 화합和合이 되다.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진 한반도와 중국의 교류는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항해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에 서해에서 바라본 바다는 하염없이 막연한 공간이었지만, 도전과 발명 정신으로 개척된 바닷길은 문명을 교류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되었습니다.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면 두려워도 피할 수만은 없었던 선조들의 도전은 점차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고 발전하여 항로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이어졌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육로를 대신하여 빠르고 많은 양의 문물을 교류할 수 있는 바닷길은 틀림없이 한중 문명교류 속에 존재하는 공백을 채워주는 문화적 교류 공간이었습니다. 단절을 소통으로 변화시킨 한국과 중국 사이의 바닷길은 앞으로도 한중 문명교류의 실리적인 화합 공간으로써 지속된 것입니다.
한국해양대학교 한바다호
해양박물관을 떠나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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