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 06
콥트어 오스트라카
메샤 비석
복제품
코덱스 시나이티쿠스
복제품
라틴문자, 바다를 따라 세계로
대리석 유골함 항아리
이 유골함은 로마 상류층의 장례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다. 그리스도교 양식의 장례 문화가 도입된 로마 제정 시대 (기원전 27 ~ 기원 후 476) 중기에서 말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아내인 루크레티아 이아누아리아 (Lucretia lanuaria)가 죽은 남편인 루크레티우스 헤르마디온 (Lucretio Hermadion)을 위해 제작했다. 유골함의 양쪽에 서 있는 어린 신은 잠이 든사랑의 신 쿠피도 (Cupido Dormiens)를 표현한다. 양 어깨에 달린 날개와 한 손에 아래에 새겨져 있는 사랑의 화살들을 담고 있는 화살통을 통해 알 수 있다. 쿠피도 신은 금 화살과 납 화살을 사용한다. 금 화살은 사랑을 불 지피고, 납 화살은 사랑을 꺼트린다. 사랑을 불 지필 수도 사랑을 꺼트릴 수도 없는 정도로 깊게 잠이 든 쿠피도의 모습은 더는 사랑을 나눌 수 없는 남편을 표현한다.
유골함에 사용된 글씨체는 로마의 비문과 주요 관청이나 기념물 및 기념비에 사용된 대문자세련체 (Capitalis Elegans) 혹은 대문자 기념비체 (Capitalis Monumentalis)이다. 이 글씨체는 글자의 모양이 전체적으로 네모난 모양을 띠고 있기에, 대문자 네모체 (Capitalis Quadrata)로 불리기도 한다. 기념물이나 비문에 새기는 글씨체로, 제작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화려하고 웅장한 스타일을 자랑한다.
[안재원]
파나무와 I세의 하다드상
삼알왕국의 왕인 파나무와 I세 (Panamuwa I, 재위. ? ~ ?)가 고대 근동의 대표적 풍우신 (風雨神)인 하다드 (Hadad)에게 바치기 위해 만든 신상이다. 파나무와 I세는 대략 8세기 초반기를 다스리던 임금으로, 이 신상은 그의 재위 직후인 기원전 750년경에 비와 바람을 다스리는 풍우신은 기원전 2천년대부터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았고, 특히 전쟁을 연상시키는 비바람, 천둥, 번개 등을 부렸기에 정치적으로도 무척 중요한 존재로 여겨졌다. 실제로 파나무와는 신상에서 최고신 엘 (El), 불과 역병의 신 레셰프 (Rešep), 태양신 샤마쉬 (Šamaš) 등을 언급하지만 하다드를 가장 중요하게 언급한다. 파나무와 I세는 하다드상의 건립을 통해 자신의 지위와 정당성을 과시하고자 한 듯하다.
1890년 독일 발굴팀이 진치를리 (Zincirli) 북쪽 7㎞에서 삼알왕국의 공동묘지와 이 신상을 찾았다. 본래 4m가 족히 넘는 크기로 추정되나, 크게 훼손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본문 일부가 누락되어 완전한 해독에 어려움이 있다.
[주원준]
예하우밀크 비석
예하우밀크 비석은 비블로스 (Byblos)의 왕 예하우밀크 (Yehawmilk, 재위. ? ~ ?)가 바알 여신 (Ba'alat)을 위한 신전을 지을 때 세운 비석이다. 비블로스 비석으로도 알려져 있다. 비문은 고대 페니키아 문자로 적혀 있다. 글자의 모양이나 문맥으로 미루어 비블리스의 비석 가운데 후대의 것으로 분류된다. 1869년 농부가 나무를 심던 중에 우연히 비석을 발견하였는데, 이후 근처 신전이 발굴되고 60년 후 프랑스 고고학자 모리스 뒤넝 (Maurice Dunand, 1898 ~ 1987)이 비석의 오른쪽 아래 깨진 부분 (현재 베이루트 박물관 소장)도 발굴하여 본문을 완전히 해독할 수 있게 되었다. 비석 뒷면이 거칠게 마감되어 있는 이유는 이 비석을 본문에서 언급하는 '신전 문 (portico)'에 고정했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기원전 1천년대 후반기에 페르시아는 신바빌로니아와 이집트를 모두 멸망시키고 식민지로 삼아 명실공히 고대 근동 세계를 통일한 대제국을 이루었다. 지중해 동편의 항구도시 비블로스의 정치, 문화, 종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주변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페르시아 시대에도 마찬가지여서 이 비석 상단이 모티프를 설명해 준다.
본문에서는 비블로스의 옛 이름인 '구발 (gbl)'이 사용되었다. 비석 상단의 그림에 중요 인물들이 등장한다. 왼쪽에는 "구발 (비블로스)의 바알 여신"이 앉아 있고 오른쪽에는 예하우밀크 왕이 제물을 올리고 있다. 또한 맨 위에는 본문에서 언급하는 "날개 달린 태양"이 있다.
태양과 예하우밀크 왕은 페르시아 양식으로, "구발의 바알 여신"은 이집트의 하토르 여신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본문에서 언급하는 구발의 임금 예하우밀크 (JHWMLK)의 이름은 "밀크 신께서 살아 있게 해주소서"란 뜻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과 같이 "나를 살아있게 해주소서 (9행)"라고 기도한다. 그의 아버지 야히루바알 (JHRBL)의 의미는 논쟁 중이고, 그의 할아버지 오리밀크 (RMLK)는 "밀크 신은 나의 빛이시다"는 뜻이다.
[주원준]
메샤 비석
'메샤 비석'은 모압 (약 기원전 13세기 ~ 기원전 400년)의 왕인 메샤 (Mesha, 재위. ? ~ ?)가 '케리호 (QRHH) 신전'의 완공을 기념하여 세운 비이다. 모압 왕국은 고대 이스라엘의 이웃 왕국이다.
1868년 요르단 디반 (Dhiban)에서 발견됐다. 발견 당시 비석을 차지하기 위한 열강들의 경쟁으로 부족 내부에서 불안과 갈등이 심화되자, 소유자였던 베두인 (Bedouin) 족장은 비석을 파괴해버렸다. 이로 인해 전체 명문의 3분의 1 이상이 소실됐으나 이후 1873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비석의 앞면에는 고대북서셈어 계열의 모압어가 페니키아문자로 새겨져 있다. 메샤왕이 이스라엘의 아합 (Ahap, 기원전 871 ~ 기원전 851)과 겨루어 승리했다는 내용이다. 메샤 비석은 고대근동학 및 성서고고학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이는 모압왕국의 역사와 언어를 보여 주는 유일한 유물로서 가치를 지닌다.
[주원준]
콥트어 오스트라카
오스트라카란 깨진 토기 조각인 도편 (陶片) 혹은 작은 석회암 조각인 석편 (石片)을 의미하는 오스트라콘 (ostracon)의 복수형이다. 오스트라콘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서기관들이 간단한 문장을 적거나 화가들이 연습 삼아 습작을 그리는 데 자주 사용되었던 파피루스 (papyrus)가 상대적으로 비싸고 입수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간단한 메모나 짧은 서신 등은 주로 오스트라콘에 기록되었다.
4점의 오스트라카는 고대 이집트의 아메네모페트 (Amenemopet)란 인물이 이집트 테베 (Thebes)에 조성한 분묘에서 발견되었다. 아메네모페트는 신왕국 시대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2세 (Amenhotep II, 기원전 1427 ~ 기원전 1400) 치세에 총리대신으로 활동했던 인물인데, 그의 분묘는 매장지로 사용되지 않고 콥트교 수사들의 은신처로 이용되었다. 이 오스트라카 역시 콥트교 수사 프란제 (프란게, ϤⲢⲀⲚⲄⲈ / Frange)와 이 지역에서 생활했던 수사들이 남긴 것들로, 작성된 내용은 대부분 편지글이다.
이들 중에서 가장 명확히 판별할 수 있는 문자 유물은 프란제가 보낸 서신이다. 이 서신에서 그는 영위하고 있는 금욕적인 생활의 이모저모를 설명하는 한편, 다양한 물품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 프란제가 빈 단지와 함께 서신을 티시에에게 보내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과거 사용된 적이 없는 신왕국 시대의 귀족 분묘에서 종교적 수행을 하며 매우 소박한 음식을 먹었다는 점, 엄격한 수행생활로 인해 현재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이집트 서부 테베 한 언덕에 위치한 성 마르코 교회 (Topos of Saint Mark)의 마르코 신부가 쓴 편지가 있다. 공동체 최고 장상인 마르코 신부가 서신전달자들과 관련한 문제로 (아마도 다른 공동체의) 재정담당인 파트케에게 보낸 편지로, 수신자가 재정담당인 사실로 미루어 재정과 관련된 문제일 법하다. 마르코 신부는 편지 말미에 파함과 게드온이라는 다른 재무담당에게도 인사한다. 서신전달자, 재무담당 등 당시 은수공동체의 직무와 생활상을 반영하는 표현들이 드물지 않게 나온다. 겸양과 공경의 표현들도 눈에 띈다. 그리스어 차용어가 많이 쓰였다.
또한 엘 (리야)의 편지가 있다. 이 유물은 도편 전문이 재구성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파악하기 어려우나, 편지글인 점만은 분명하다. 테르미시온 (트레미시스, tremissis)이라는 화폐 단위가 두 번이나 쓰인 것으로 보아 물품 구입과 관련해 보낸 편지로 추정된다. 서신 형식은 프란제의 서신과 비슷하다. '저... 가 쓰고 인사합니다'로 시작하여, '주님 안에서 평안하십시오'라는 끝인사로 마무리하는 형식이다. 편지 발신인의 이름이 잘려 있어 누구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엘리야'일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모세가 페신테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도편 뒷면에 끝인사와 함께 편지의 수신인과 발신인이 기록되어 있는데, 수신인은 수도자로 짐작되는 페신테, 발신인은 스스로를 '가장 작은 자'라 칭하는 모세이다. 몇몇 단어들과 인명들만 파악이 가능한 상태로, 물품 등을 청구하거나 특별한 부탁을 할 때 쓰이는 동사가 두 번 나온다. 이 동사의 명사형도 확인된다. 해당 본문이 특정 사안에 대한 '요청' 서신 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 본문에 '그가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라는 표현이 있어, 해당 편지는 재요청 편지일 가능성도 있다. 혹은 물품 전달 등에 착오가 생겨 중재를 요청하는 편지일 수도 있다. 요청 서신에 대한 중재 목적의 답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외에 본문에서 다른 인명도 눈에 띈다. '내 형제 요한'이라는 구절인데, '내 형제'는 친형제 뿐 아니라 동료 수도자를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렇듯 오스트라카는 개인적 이유로 작성된 서신이라는 점에서 실생활에서 콥트문자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흥미로운 유물이다. 여기에는 고독한 삶을 추구했던 수사들의 생활상과 함께 당시 주민들의 음식 · 의복 · 질병 · 육체노동 · 여행 등 다방면에서 이들의 생활을 재구성할 수 있는 소중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유성환, 송혜경]
코덱스 시나이티쿠스
코덱스 시나이티쿠스는 언셜체 (Uncialis)를 사용하여 양피지에 필사된 그리스어 성서로, 구약성서 대부분과 신약성서 전부를 담고 있다. 원래는 구약성서도 전부를 담고 잇었으나 부분적으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단어와 단어를 떼어쓰지 않고 계속 이어서 쓰는 이어쓰기 (scriptio continua) 방식으로 필사되었다.
현재 영국도서관 (British Library), 라이프치히 대학교 도서관, 성 카타리나 수도원 (Saint Catherine's Monastery), 러시아국립도서관 (National Library of Russia) 네 곳의 도서관에서 나누어 소장하고 있으며, 영국 국립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양이 제일 많다.
언셜체는 4세기에서 8세기까지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성서와 기독교와 관련된 문헌 (성경 주석서 등)을 필사할 때 사용된 대표적 서체다. 이 서체는 대문자체인데 소문자체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서체로 라틴문자 서체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코덱스 시나이티쿠스는 비록 일부가 소실되기는 했지만,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전체를 담고 있는 내 개 밖에 안되는 언셜체 코덱스 중 하나이다. 나머지 세 개는 코덱스 바티카누스 (Codex Vaticanus), 코덱스 알렉산드리누스 (Codex Alexandrinus), 코덱스 에프라이미 (Codex Ephraemi) 이다. 이 네 개의 코덱스 중에서 코덱스 시나이티쿠스에 있는 신약성서는 현존하는 그리스어 신약성서 판본 중 제일 오래된 것이다. 또한 텍스트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수정작업과 주석이 달려 있어서, 성서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장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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