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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 07

드무2 2023. 7. 3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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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 07

 

 

 

 

 

 

 

 

 

 

 

 

아람문자, 사막을 건너 초원으로

 

아람문자는 고대 근동近東 세계에서 공용문자로 사용되었던 문자이다. 아람문자를 최초로 사용한 아람인이 육상 무역에 종사하던 상업 민족이어서 교역을 통해 아람문자는 주변 지역에 널리 퍼졌다. 기원전 6세기 경에 페르시아제국이 아람어를 국제 공용어 lingua franca로 선포함에 따라, 아람문자도 공식 문자가 되어 고대 근동 전역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그러나 기원전 332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대왕이 페르시아제국을 무너뜨리자, 아람문자도 페르시아제국과 함께 그리스문자에 지위를 내주고 서서히 소멸의 길을 걸었다.

아람문자는 동방 세계로 전파되어 근동의 히브리문자 Hebrew script, 아랍문자 등에 영향을 주엇고, 아람문자에서 파생된 문자들은 다시 중앙아시아로 전파되어 소그드문자 Sogdian script, 고대 튀르크문자 Old Turkic script, 突厥文字 등의 기원이 되었다.

 

 

 

 

 

 

연구자 노트

 

○ 사용 시기 : 기원전 11섹 ~ 기원후 12세기

○ 사용 지역 : 레반트 북부, 아나톨리아, 메소포타미아

○ 기록 언어 : 아람어

 

아람문자는 기원전 11세기부터 역사에 등장하여 페르시아제국에서 국제 공용어로 사용되었으나, 헬레니즘 이후 기원후 12세기까지는 일부 지역에서 명맥을 유지하였다.

아람문자를 처음으로 사용한 아람인들은 기원전 16세기 경 아나톨리아 남부 및 시리아 사막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셈계 민족이다. 기원전 12세기 이전 아람인들의 역사는 확실하지 않다. 이들은 도시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로서 변방을 떠돌다가 기원전 11세기 ~ 9세기에 레반트 북부를 중심으로 도시국가를 세웠고 문헌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기원전 11세기 ~ 기원전 9세기 동안 그들은 레반트 북부를 중심으로 고잔 (Gosan 2열왕 17. 6 ; 18, 11 등), 삼알 (Sam'al), 아르팟 (Arpad 2열왕 18, 34 ; 19. 13 등), 비트 아디니 (Bit Adini), 비트 바히아니 (Bit Bahiani) 등 도시국가를 건설하였다. 아람어로 '비트'는 '집' (house)을 의미하므로 '비트 X'는 'x의 집 (가문)' 이란 뜻이다. 조상이나 부족의 이름을 따라 지은 것으로 추측한다. 이들은 기원전 9세기부터 신아시리아 제국이 이 지역을 정복하고 민족 이주정책을 펴자, 나라를 잃고 제국 곳곳으로 흩어져야 했다. 기원전 1천년대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사용된 고대 아람문자는 페니키아문자를 거의 그대로 차용하여 썼다. 아람문자는 총 22개의 자음 기호로 구성되었다. 고대 아람문자는 지역별로 차이를 보이며, 아직 통일된 형태를 갖추지는 못하였다.

기원전 9세기 ~ 7세기경까지 아람인들은 신아시리아 (NeoㅡAssyria, 기원전 911 ~ 기원전 609 / 612 ?)와 신바빌로니아 왕국 (Neo Babylonian Empire)의 통치를 받으며, 나라를 잃고 제국 곳곳으로 흩어졌다. 7세기경이면 아람인들의 나라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아람인들은 신아시리아 제국과 신바빌로니아 제국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았다. 그래서 아람인의 별명이 '고대 근동의 유다인'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인들과 아람인들은 작은 나라의 백성으로서 서로 공감했던 듯하다. 아람어는 간단한 알파벳, 단순한 문법, 아람인 특유의 끈끈한 네트워크를 무기로 '교역의 언어'가 되어 고대 근동 전역으로 확산된다. 급기야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패권을 장악한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1세가 아람어를 제국의 언어로 선포하니, 아카드어를 이어 고대 근동의 국제공용어 (lingua franca)의 지위를 확보한다. 이때에 비로소 아람어는 철자와 문법 등이 통일되고, 그 문자인 아람문자도 제국의 공식문서에 사용되어 고대 근동 전지역에서 국제공용어의 지위를 얻었다.

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제국에 이르기까지 고대 근동세계의 공용문자로 사용된 아람문자는 4세기경 서서히 소멸의 길을 걸었다 기원전 332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헬레니즘 (Hellenism)의 시대를 열자 아람어는 국제공용어의 지위를 그리스어에 내어준다. 하지만 문어와 구어에서 여전히 활발하게 사용되었고 지역에 따라 공식언어의 지위를 놓치지 않는다. 팔미라, 나바테아, 고대 시리아 등의 언어가 후기 아람어에 속한다. 이 후기 아람어의 일부는 유다교 (유다 아람어), 사마리아교 (Samaria, 사마리아 아람어), 동방 정교회 (Eastern orthedox church, 고대 시리아어) 등에서 공식언어로 사용되었다. 가장 늦게는 기원후 12세기까지 일상어로 사용된 기록이 있다. 후기 아람어는 문법과 철자는 물론이고 문자에서도 차이가 난다. 현대의 아르메니아가 이들의 직접적 후손이다.

아람문자는 같은 셈계 언어를 기록하던 근동지역의 히브리문자, 나바테아문자 (Nabatean script), 시리아문자, 아랍문자 등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이 문자들은 다시 중앙아시아로 전파되어 유목민족들이 사용한 소그드문자, 고대 투르크문자의 탄생에 기여했다. 페니키아문자가 서방세계로 전파된 데에 반하여 아람문자는 동방세계의 비 (非)한자 계통문자의 출발점이 되었다.

 

[주원준]

 

 

 

 

 

 

 

 

 

 

 

 

킬라무와 석비

복제품

 

 

 

 

 

 

 

 

 

 

 

 

쿠란

 

 

 

 

 

 

 

 

 

 

 

 

 

 

 

쿠란

 

쿠란은 이슬람교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경전이다. 이는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전해진 알라의 계시를 집대성한 책이다. 신의 말씀이 아람어로 계시되었기에 쿠란은 아랍어와 아랍문자의 확산과 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쿠란은 맘루크왕조 (Mamluk Dynasty, 1250 ~ 1517) 시기 이집트 또는 시리아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문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은 각각 맘루크와 오스만 (Osman) 양식으로 장식되었다. '절 (節, Aya)'을 표시한 장미꽃 모양의 로제트 (Rosette)는 일카니드 (Ilkhanid) 쿠란의 특지이다. '장 (章, surah)' 제목의 금채 (金彩) 장식은 다마스쿠스 (Damascus) 쿠란에서 주로 보인다. 뒷면의 와크프 (waqf) 표시는 이 책이 기부금으로 제작되었음을 암시하는데, 정교한 문체와 그 장식을 통해 왕실에서 고용한 필경사가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쿠란은 나스크체, 술루스체 (thuluth), 무학카크체 (muhaqqaq)와 같이 다양한 서체들이 사용되어 주목된다. 무슬림들은 신의 말씀이 담긴 쿠란의 필사를 중요한 종교적 행위로 여겼다. 이러한 필사의 전통은 오랫동안 지속되며 아랍 서체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윤은경]

 

 

 

 

 

 

 

 

 

 

 

 

 

 

 

 

 

 

 

 

 

 

 

 

 

 

 

아야 소피아 / 튀르키예 이스탄불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블루 모스크) / 튀르키예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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