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五賢人의 날 참석차 제주여행] 03
탑동의 아침 (2일차, 2023년 9월 23일, 금요일)
제주해녀와 뱃사공
태우를 이용하여 해산물을 채취하며 삶의 역경을 이겨낸 제주해녀
요광성 (搖光星)
북두칠성 제칠도 (北斗七星 第七圖)
주성안에 있다 삼성이 처음 나왔을 때 삼도를 나누어서 차지하였는데 북두성을 모방하여 대를쌓고 나누어 거처하였기 때문에 칠성대라 한다
칠성대는 탐라시대부터 전해내려 온 최고 (最古)의 유적으로 탐라사회의 결속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한 문화상징이었으며 탐라왕의 호칭인 성주 (星主)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칠성대는 북두칠성을 항로지표로 삼아 동아지중해를 누비며 주변국과의 교역을 통해 삶을 영위했던 해상왕국 탐라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탐라는 가히 별의 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제칠도인 요광성은 증보탐라지와 파한록에 따르면 칠성동 길 좌측 (북쪽)에 있다고 기록돼 있다.
북두칠성과 12간지
예부터 북두칠성은 하늘을 상징하고, 나아가 천체기상과 더불어 사람의 12간지 (干支)를 관장한다고 여겨 왔다. 도장경 등에 따르면 첫째 별인 탐랑성은 쥐띠, 거문성은 소띠와 돼지띠, 녹존성은 범띠와 개띠, 문곡성은 토끼띠와 닭띠, 염정성은 용띠와 원숭이띠, 무곡성은 범띠와 양띠, 마지막 별인 파군성은 말띠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는 것이다. 민간에서 정화수를 떠 놓고 하늘에 빌었던 민간신앙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제주동문시작 1번 출입구
제주동문시장 내 동진식당
고기국수로 아침식사
50년 전통 고기국수 동진식당 (☎ 064ㅡ757ㅡ0427)
물허벅을 진 아낙네
동문로터리 해병탑
고등학교 때는 이 건물에 탁구장이 있었는데...
동문로터리에서 버스를 타고 함덕해수욕장으로 이동
함덕리 설촌 유래 咸德里 設村 由來
함덕서우봉해변으로 유명한 함덕리는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약 14㎞에 위치한 말발굽형 해안마을이다. 함덕리 인근 신석기시대 유적을 통해 2,000 ~ 1,500여년 전부터 사람들이 거주 또는 왕래했던 흔적을 알 수 있고, 함덕리 서편 해안일대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7세기 후반이래 마을이 들어섰으며 이후 17세기 이르기까지 계속 마을이 형성되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 원종14년 (1273년) 여 · 원 연합군이 함덕포로 상륙 작전 실시, 고려 충렬왕 26년 (1300년) 도내 14개현 중에 함닥현이 설치된 사실은 함덕포가 13세기 후반 이전부터 대규모 인력과 선단의 입 · 출항이 가능한 시설을 갖춘 포구였으며 그 당시 상당한 규모의 마을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태종16년 (1416년) 함덕현이 제주목에 속한 직촌의 위상을 지닌 함덕현촌으로 편제되었으며, 17세기 중반 '궨못' 일대 형성된 고여지리는 저지촌을 일컫는 마을인데 『제주읍지 (1780년대)』에는 함덕리만 표기된 것으로 보아 고이지리가 행정적으로 함덕리에 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제주읍지』에는 함덕리가 제주목 좌면에 소속되어 있었고 『삼군호구 가간총책 (1904)』에는 신좌면에 편입되어 있었다. 1914년 신흥리가 분리되었으며, 1935년 조천면에 편입되었고 1985년 조천읍에 소속되었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한 함덕리는 현재 서쪽으로부터 1구, 2구, 3구, 4구 (1972년 3구에서 분구), 5구 (2002년 4구에서 분구)로 구분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자연마을로 거듭 발전해 나가고 있다.
정토사
범종루 梵鐘樓
함덕알젠?!
고도물
용천수 (땅에서 솟아나온 물)
글씨 : 유찬
서우재당
멜을 몰아주는 영감 (도채비)을 기리는 신성한 집
글씨 : 소율
소래물
과거 제사용, 음식물을 씻는데 사용했던 생활용수
글씨 : 진섭 쌤
포제청
마을의 조상신을 모셔 놓은 곳 (함덕리 4구)
글씨 : 명경 쌤
함씨할망
마을에 은덕을 베푼 함덕 전설의 할머니
그씨 : 유건
한모살
크고 넓은 모래밭
글씨 : 효은
해수욕장
제주도 3대 해수욕장
글씨 : 미니 쌤
서우봉
물소가 바다에서 올라가는 모습을 담은 오름
글씨 : 윤솔
팔선진
8개의 지인망 그물 선단을 구성한 주민협동조직
글씨 : 태연
댓돌쉼땅
마을의 휴식공간
글씨 : 현준
와막
가마터 (기와를 굽던 곳 : 평사동기왓굴)
글씨 : 지아
오일장
함덕리 5일장 재래시장
글씨 : 라엘
함께한 이들 : 배진섭, 박지영, 한명경, 김준수, 최민희, 최하영, 김서화
라엘, 유찬, 유건, 소율, 효은, 윤솔, 태현, 현준, 지아, 서우
민섭, 준하, 채환, 예슬, 연아, 민진, 해인, 예현, 예나
함덕해수욕장
정주석 돌하르방
2019, 돌하르방 미술관 관장 김남홍作
우리네 안녕과 평화를 염원하며 수만번의 망치질로 탄생했던 돌하르방이 오늘날 다양한 모습으로 거듭나 이곳을 지킵니다. 정주석은 옛 제주의 대문으로, 구멍 세 개가 뚫린 정주석과 그 사이를 잇는 통나무 (정낭) 세 개가 모여 비로소 완성됩니다. 멀리 외출을 나갈 땐, 세 개의 통나무를 걸쳐 놓아 이웃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기능을 가집니다.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이웃들이 함께 집을 돌보았던 옛 제주마을 공동체 문화가 담겨 있습니다. 척박한 환경이지만 서로를 돌보며 지냈던 제주인들의 마음을 정주석 구멍 하나하나를 통해 바라봅니다.
북촌 돌하르방 미술관
함덕에서 성산방향 5분 거리
문의 064ㅡ782ㅡ0570
동양의 음양오행 (陰陽五行) 사상을 공간적 짜임새로 형상화하여 완벽한 사랑을 상징
火水木金土 ㅡ 五行의 섭리 속에 남과 여, 음양의 조화가 빚어지게 됨을 조형물 속 커플의자에 마주 앉아 손 맞잡고 확인하는 자리
네 귀퉁이에 제주석 조형물은 12달 4계절에 피어나는 상상 속의 돌바람꽃 돌에서 바람이 일어나 모든 꽃들을 피어나게 한다는 의미
사계
해동민박
문의 : 010ㅡ5693ㅡ3465
북촌정원
동화원
북촌리
해동
(북1길)
저류지 안내문
● 저류지명 : 북촌본동 재해3저류지
● 저류지 관리번호 : 5
● 위치 : 조천읍 북촌리 1581
● 저류지 면적 / 용량 : 2,154㎥ / 7,539㎥
● 저류지 조성년도 : 2010년 11월
● 시설물 목적 : 집중호우 시 주변지역 침수피해 예방
위험경고
ㅡ 본 저류지는 집중호우 시 빗물을 저류하여 주변지역의 침수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시설물입니다.
ㅡ 저류지 내 물건적치 등 저류지 기능을 저해하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맙시다.
ㅡ 무단출입 시 안전사고 위험이 있으므로 출입을 금지합니다.
ㅡ 쓰레기 등 각종 폐기물을 버리거나 소각하는 행위는 금지합니다.
※ 무단으로 공유재산을 사용 · 수익할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북촌 작은 유리잔
010ㅡ2267ㅡ1818
북촌 어촌계
친환경 해녀 탈의장
제주 조천 북촌마을 4 · 3길
머릿돌
이곳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북촌해동지역의 침수재해를 방지하고자 상류에서 유입되는 빗물을 바다로 배수시켜 주변 농경지 및 주택을 보호하기 위해 북촌리 1445, 1424, 1425번지에 배수공사를 완공하게 되었다.
공사명 : 북촌해동 재해위험지구정비공사
2008년 5월 착공
2008년 9월 준공
시행자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공자 : 삼록건설
북촌리민 일동
비취빛 물결 영롱이는 해동마을
해동은 북촌리 설촌의 원류이며, 북촌리 7개 자연부락 중의 한 취락으로서 서우봉 기슭에 삶의 터전을 이룬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옛 지명은 「허댕이」 이며 1910년부터 비취빛 물결 영롱이는 바다마을의 의미로 '해동 (海洞)' 이라 이름지어졌다.
이곳엔 서북풍을 막아 주는 서우봉과 풍부한 수산자원의 보고인 달여도 닷거리 해안이 있으며 곳곳에 양질의 담수용천 (우왕물, 생이 고냥물 등) 이 솟아나고 있어 사람들이 살기에 천혜의 자연조건을 지닌 곳이라 볼 수 있다.
본 마을 북촌리는 한라산을 기점으로 하여 정북에 위치하며 자연적인 포구가 발달하여 예전에는 이곳을 북포리 (北浦里) 라 불렀다.
이곳의 고두기 엉덕 바위그늘 유적에서 약 3,000여년 전의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북촌은 오랜 옛날부터 최소 단위 집단으로 사람들이 살아온 것으로 짐작된다.
해동의 주거영역이었던 검석개에는 고려 원종 때 환해장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삼별초란 때 몽고군과 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음을 미루어 보아 이미 해동에는 1270년 이전에 서우봉 기슭과 대섶 일대에 소집단 취락이 형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무렵 최초로 정착한 사람으로 「이씨, 윤씨, 공씨」 의 3성씨이며, 차츰 번성하면서 거주환경을 북포리 (뒷개) 로 넓혀 나갔다.
태평양전쟁 때는 일본군들이 서우봉 기슭의 동쪽해안 절벽에 20여개의 진지굴을 파놓았는데, 그 당시 40여 동의 해동주민을 본동으로 소개되었다가 해방 이후에 도로 찾아오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해동동민 일동은 북촌리 설촌의 원류라는 자긍심을 드높이고,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참다운 삶의 모습으로 인화단결하여 향후 마을발전을 위한 힘찬 도약을 다짐하면서 머릿돌을 세운다.
2008. 7. 북촌리민 일동
오시오 민박 OSHIO MIN BAK
오늘은 쉬어 가세
010ㅡ9457ㅡ0484
LOVE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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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덕지점
해동수산
제주 조천 북촌마을 4 · 3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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