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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중공군 개입한 첫 전투 한국전쟁서 국제전으로

[6·25 전쟁 60년] 중공군 개입한 첫 전투 한국전쟁서 국제전으로 중앙일보가 연재하는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을 보면 1950년 10월 말에 벌어진 운산전투는 ‘동아시아 국제전쟁’의 서막이었다. 당시 중공군 포로가 처음 잡힘으로써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국군 1사단을 이끌고 평안북도 운산에 진출한 백선엽 사단장은 일선에 나가 있던 15연대에서 붙잡은 중공군 포로를 통해 중국의 개입을 확인했다. 김대일씨 참전한 운산전투 중국어를 할 줄 알았던 백 사단장은 포로를 직접 심문한 뒤 1사단을 지휘하고 있던 미 1군단의 프랭크 밀번 군단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다. 밀번 군단장도 현장에 도착해 중공군 포로를 심문했다. 밀번은 이 사실을 바로 도쿄(東京)에 있던 유엔군 총사령부의 더글러스 맥아더..

6 · 25전쟁 60년 2021.05.28

[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⑬ 12월 맥아더의 철수 결정

[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⑬ 12월 맥아더의 철수 결정 백선엽 사단장이 이끄는 국군 1사단이 1950년 12월 5일 평양 동부 지역을 지나 남으로 후퇴하고 있다. 중공군 2차 공세에 밀린 국군 1사단은 사리원을 거쳐 임진강까지 퇴각했다. 곧이어 시작된 중공군 3차 공세로 이듬해 1월 4일 서울을 공산세력에 다시 내준 것이 ‘1·4 후퇴’다. [백선엽 장군 제공] 전황(戰況)이 다급해졌다. 1950년 12월 초, 국군 2군단이 무너지면서 동쪽으로 내려오는 중공군의 기세가 막힘이 없었고, 그 서쪽을 방어하던 미 2사단이 큰 타격을 받고 넘어졌다. 청천강 방어선을 지키기 힘든 상황이 됐다. 이제 평양과 원산을 잇는 라인에 방어선을 새로 설치해야 했다. 미군, 퇴각하며 군수품 태워 … 평양..

[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⑫ 인디언 태형(笞刑)

[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⑫ 인디언 태형(笞刑) 인디언이 적군을 잡았을 때 가하는 형벌이 있다. 먼저, 전사(戰士)들이 두 줄로 길게 늘어선다. 그 다음 적군 포로를 그 사이로 지나가게 하고는 두 줄로 늘어선 전사들이 그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형벌이다. 이를 ‘인디언 태형(gauntlet)’이라고 부른다. ‘죽음의 협곡’ 벗어나니 한 중대는 170명 중 10명만 살아 1950년 11월 30일, 평안남도 개천군 군우리 남쪽의 길고도 좁은 계곡에 빠졌던 미군이 중공군에 당한 게 바로 이 인디언 태형을 연상케 한다. 미군은 빠져나가기에는 너무 힘들 정도로 깊은 늪 속에 빠졌다. 이곳에서 미 2사단은 2개 연대와 포병부대, 사단직할부대, 공병대대 등의 전력을 상실했다. 1950년 11월 ..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⑪ 병사가 많았던 옛 땅 군우리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⑪ 병사가 많았던 옛 땅 군우리 중공군들이 1950년 11월 30일 평북 개천 군우리 남쪽의 계곡에서 퇴각하는 미 2사단 병력을 공격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미군들이 나중에 ‘시련의 길’로 불렀던 이 지역에서 미 2사단은 2개 연대와 공병대대 등 전체 병력의 3분의 2가 궤멸하는 타격을 입었다. [백선엽 장군 제공] 중공군은 전력이 약한 상대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왔다. 화력이 우세한 미군을 피해 전쟁 내내 국군을 집중 공격했다. 국군이 여러 면에서 미군에 뒤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 2사단, 10㎞ 길고 긴 협곡으로 퇴각 … 비극은 시작됐다 2차 대공세를 펴는 중공군의 노림수는 우선 동쪽 전선에 있었다. 국군 2군단이다. 2군단은 운산 전투가..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⑩ 11월 말 공격 그리고 후퇴, 후퇴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⑩ 11월 말 공격 그리고 후퇴, 후퇴 국군 1사단이 1950년 10월 평양으로 진격할 당시 백선엽 사단장(가운데)이 미 공군연락장교로 와 있던 윌리엄 메듀스 대위(오른쪽)와 작전을 논의하고 있다. 박천에서 중공군의 저격을 당했던 메듀스 대위는 후일 미 공군참모차장(대장)에 올랐다. [백선엽 장군 제공] 갑자기 총탄이 스쳐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 직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옆에 있던 미군 공군연락장교 윌리엄 메듀스 대위가 가슴을 부여안더니 쓰러졌다. 1950년 11월 하순의 일이다. “밀리면 끝” 단내 나도록 독려 … 뚫릴 뻔한 전선 사흘간 버텨 평안남도 입석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전력까지 보충했던 국군1사단 병력을 이끌고 청천강을 건..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⑨ 전장에서 만난 영웅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⑨ 전장에서 만난 영웅 1950년 10월 평양에 처음 입성한 국군 1사단의 공을 기려 프랭크 밀번 미1군단장(오른쪽)이 평양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백선엽 사단장에게 은성무공훈장을 걸어주고 있다. 백 사단장의 키는 1m75㎝ 남짓, 밀번 군단장이 5~6㎝ 정도 작아 보인다. [백선엽 장군 제공] 이 대목에서 미군의 한 지휘관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6·25전쟁 기간 중 미군의 제2차 세계대전 영웅들을 수없이 만났다. 더글러스 맥아더, 월턴 워커, 매튜 리지웨이, 제임스 밴 플리트, 맥스웰 테일러 등이다. 당대 최고 엘리트인 그들과 전쟁을 함께 치르면서 나는 미군의 뛰어난 시스템과 노하우, 지략을 배웠다. 군사 스승 밀번, 작전까지 바꿔 ‘한..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⑧ 달콤한 휴식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⑧ 달콤한 휴식 운산 전투 며칠 뒤인 1950년 11월 초 연예인 위문단이 평양 북쪽의 평안남도 안주군 입석에 주둔했던 국군 1사단을 찾아 공연을 하고 있다. [백선엽 장군 제공] 우리는 미군의 희생을 뒤로하고 평안북도 운산에서 청천강 남쪽으로 내려왔다. 평양 북쪽의 평안남도 안주군 입석(立石: 영변 주변의 입석과는 다른 지역)이라는 곳에 도착해 재정비를 했다. 청천강 남쪽에는 반격을 위한 교두보가 만들어졌다. 청천강을 자연적인 방어선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곳에는 청천강을 건너 서북쪽인 신의주 방향으로 진격하다가 별다른 피해 없이 후퇴해 내려온 미 24사단, 평북 구성 방향으로 진출하다 역시 무사히 퇴각한 영국군 27여단이 방어막을 형성했다. ..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⑦ 드러난 중공군의 얼굴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⑦ 드러난 중공군의 얼굴 6·25전쟁에 개입한 중공군 13병단의 병사들이 1950년 10월 말쯤 평안북도 운산에서 국군 1사단을 공격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중공군 1차 공세’로 불리는 당시 공격으로 미군은 1개 대대 병력과 적잖은 무기를 잃었으나 국군 1사단은 비교적 온전하게 운산 지역을 빠져나왔다. [백선엽 장군 제공] 1950년 11월 초가 되면서 중공군의 1차 공세가 일단 주춤해졌다. 국군 1사단은 운산 남쪽의 입석(立石)이라는 곳으로 후퇴했다. 교전을 해보니 중공군의 실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됐다. 그들은 생각보다 강했다. 중공군, 생각없이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군대 아니었다 중국에서 생활해 본 경험이 있는 나는 중공군의 습..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⑥ 미 8기병연대 3대대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⑥ 미 8기병연대 3대대 1950년 11월 1일 새벽 1시쯤이었다. 나는 길을 재촉했다. 영변의 국군 1사단 사령부를 향해 지프를 달렸다. 밤길을 달리는 지프 뒤로 스쳐가는 바람이 차가웠다. 불안감과 초조함이 스쳤다가 지나가는 바람처럼 끊임없이 내 얼굴로 불어닥치고 있었다. 운산으로 나가 있던 3개 연대의 철수는 순조로울까. 이들은 8기병 연대처럼 무지막지한 공격에 노출된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밤새 포탄 1만3000발 엄호했지만 미군 600명 전사 · 행불 그러나 운산 쪽에선 포성이 끊이지 않고 들려 왔다. 윌리엄 헤닉 미 10고사포단장의 고사포와 박격포들이 불을 뿜고 있는 소리였다. 다행이었다. 아군 포병이 지원 사격..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⑤ 급박했던 후퇴 명령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⑤ 급박했던 후퇴 명령 1950년 10월 말 벌어진 운산 전투에서 중공군에 포로로 잡힌 미군의 모습이 중공군 사진사의 앵글에 담겼다. 중국이 펴낸 전사자료집에 등장하는 사진이다. 잡힌 포로들은 그해 10월 31일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패한 미 1기병사단 소속 8기병연대 3대대 대대장과 부대원들로 추정된다. [백선엽 장군 제공] 후퇴를 건의하는 미군 10고사포단장 윌리엄 헤닉 대령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나와 대구 북방의 낙동강 전선에서 처음 만나 이곳 최전선까지 함께 전투를 겪어왔다. 그전까지 그는 늘 여유가 있었고, 차분한 사람이었다. 당황하는 기색은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날 운산에서 본 그의 표정은 예전과는 확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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