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념관 등

[박정희대통령기념관] 03

드무2 2021. 5. 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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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대통령기념관] 03

 

 

문경공립보통학교 현판

 

대구사범학교 성적표

대구사범학교 재학 당시(1932~1937) 성적표로서 체육과 교련과목 외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

 

대구사범학교 교모

 

대구사범학교 교복

 

금강산의 추억

 

1934년 5월 대구사범학교 3학년이었던 박정희는 70여 명의 동기생들과 함께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금강산까지는 철원에서 기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당시 학생들은 금강산의 절경에 감동하여 각자 글들을 남겼는데 박정희는 민족의 아픈 현실과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글을 쓸 정도로 남다른 열일곱 청년이었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 너는 세계의 명산!

아! 네 몸은 아름답고 森嚴(삼엄)함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데

다 같은 삼천리 강산에 사는 우리들은

이 같이 헐벗었으니 과연 너에 대하여 머리를 들 수 없다.

금강산아, 우리도 분투하야 너와 함께 천하에 찬란하게······."

 

온정리에서 정희 씀

 

대구사범학교 재학시절 교련수업 때 사용하던 수통

 

대구사범학교 재학시절 교련수업 때 사용하던 모의소총

 

대구사범학교 재학시절 교련수업 때 사용하던 철모 그리고 나팔

 

사진은 대구사범대학 4기생 나팔수 때의 박정희(오른쪽 끝이 박정희)

 

나팔의 1인자 The Trumpet Player

 

대구사범학교 시절 박정희는 나팔을 좋아하였다. 동급생들은 그를 '나팔의 1인자'라고 불렀고 고향에 내려갈 때도 나팔을 가지고 다니며 불곤하였다. 문경보통학교 교사 시절에는 '박 선생'하면 '새벽 나팔소리'가 연상될 정도였다. 때로는 마을 청년들을 모아 악단을 만든 뒤 출장 공연까지 다니기도 하였다. 나팔은 박정희에게 친구와 같은 존재였고 퍼져나가는 나팔소리와 함께 가슴속 깊이 품고 있던 군인의 꿈을 키워 나갔다.

 

어머니와 박정희

 

계란

어려운 가정형편에 박정희의 학교 수업료를 내기 위해 어머니는 계란을 모아 팔기도 하였다.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시절

 

문경공립보통학교는 1912년 4월 12일 4년제 학교로 개교하였다. 1950년 8월 1일 문경국민학교로 개칭되었고 1996년 4월 1일 지금의 문경초등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 2018년 2월 9일 104회 졸업식을 맞으면서 그동안 13,93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박정희는 1937년 4월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3년간 근무하였다. 교사 박정희는 아이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쳤고, 태극기와 우리나라의 역사를 가르쳐 주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에게는 학비까지 챙겨주는 따뜻한 선생님이었다.

 

문경공립보통학교 부임 시절1937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한 박정희는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박정희 오른쪽에 있는 강신분은 "선생님은 워낙 착실하여 일본인 교사들과도 원만한 사이였다."고 회상하였다.

 

동료 교사들과의 악기 연주

 

악기 연주에 소질이 있어 종종 동료교사들과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위 사진 가운데가 박정희)

 

 

- 계속

 

 

www.youtube.com/watch?v=1xZC9pJ_K8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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