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들/2025년

[2025ㅡ003 연표로 보는 서양미술사] 03

드무2 2025. 2. 16.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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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ㅡ003 연표로 보는 서양미술사] 03

 

 

 

 

 

 

 

1538년

도발적인 시선을 던지는 여성

 

 

 

 

<우르비노의 비너스>

티치아노 베첼리오, 캔버스에 유채, 119 × 165㎝,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1540년

예수회 승인.

예수회는 성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와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등이 파리에서 만든 가톨릭 남자 수도회다. 이그나티우스가 사망하던 1556년엔 회원이 거의 1천여 명에 육박했고, 전 세계에 사도들이 파견되어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주도했다.

 

 

 

 

1626 ~ 1650년에 예수회에서 성 이그나티우스를 기념하여 로마에 건축한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

 

 

 

1540 ㅡ 1545년경

시간이 벗겨내는 사랑의 진실

 

 

 

 

<비너스와 큐피드의 알레고리>

아뇰로 브론치노, 목판에 유채, 146.1 × 116.2㎝, 런던 내셔널 갤러리

 

 

 

1545년

반종교개혁.

종교개혁으로 인한 위기의식에서 시작된 가톨릭교회 내부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1545년 트리엔트에서 공의회를 개최하여 종교개혁 세력에 대항하는 여러 자구책을 마련했다. 이런 움직임은 17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1546년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 사망.

 

 

 

1548년

영웅적 기마상의 모범

 

 

 

 

<카를 5세의 기마상>

티치아노 베첼리오, 캔버스에 유채, 335 × 283㎝,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아우크스부르크에 모인 제후들.

 

 

 

펠리페 2세 네덜란드를 통치하다

 

 

 

1556년

펠리페 2세, 스페인 왕위를 계승하다

 

 

 

 

티치아노, <펠리페 2세>, 1550년경

 

 

 

1565년

네덜란드의 성상 파괴 운동

 

 

 

 

에마누엘 데 비테, <암스테르담 구교회의 내부>, 1661년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오래된 이 교회는 원래 가톨릭 성당이었으나 16세기 신교의 예배당으로 변경되면서 원래 있던 장식물들이 치워졌다.

 

 

 

1568년

네덜란드, 스페인에 대한 독립전쟁 시작

 

 

 

1568년

일상을 담은 장르화의 발전

 

 

 

 

<농부의 결혼식>

대大 피터르 브뤼헐, 패널의 유채, 114 × 164㎝, 빈 미술사 박물관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대학살 (위그노 대학살)이 벌어지다. 위그노는 프랑스의 칼뱅파 신교도들을 일컫는다. 아들 샤를 9세를 대신해 섭정을 하던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자신의 딸 마르그리트와 나바라 왕국의 왕으로, 신교도였던 헨리케 3세의 결혼식에 참석한 뒤 잠시 머물고 있던 신교도들을 불시에 공격, 학살했다. 결혼식 후 6일 만인 8월 24일 성 바로톨로메오 축일에 일어난 일이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는 치열하고 지루한 신구교 간의 싸움터로 변했다. 결국 1589년 나바라 왕국의 헨리케 3세가 앙리 4세라는 이름으로 왕위에 오르며 부르봉 왕조 시대를 열게 된다.

 

 

 

1573년

파격적인 상상력

 

 

 

 

사계 중 <여름>

주세페 아르침볼도, 캔버스에 유채, 76 × 63.5㎝, 파리 루브르 박물관

 

 

 

1573년

"화가에게도 창작의 자유가 있다"

 

 

 

 

<레위가의 향연>

파올로 베로네세, 캔버스에 유채, 555 × 1280㎝,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1586년

개성 강한 필치의 그리스 화가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엘 그레코, 캔버스에 유채, 480 × 360㎝, 스페인 톨레도 산토 토메 교회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배하다. 바다의 패권을 두고 벌인 세 차례의 해전에서 패하면서, 이후 스페인은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1592 ㅡ 1594년

긴장감을 높이는 독특한 구도

 

 

 

 

<최후의 만찬>

틴토레토, 캔버스에 유채, 365 × 568㎝, 베네치아 산조르조 마조레 성당

 

 

 

1594년

운하 건설 도중 폼페이의 유물 발견. 그러나 본격적인 발굴은 18세기 중반에서야 시작된다.

 

 

 

1594년경

앙리 4세의 반지 선물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의 자매>

퐁텐블로 화파, 캔버스에 유채, 96 × 125㎝, 파리 루브르 박물관

 

 

 

1598년

앙리 4세는 낭트 칙령을 발표하여 프랑스 내 위그노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한다.

 

 

 

1599년경

극적이고 동적인 바로크 미술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카라바조, 캔버스에 유채, 145 × 195㎝, 로마 국립 고전 미술관

 

 

 

1609년

갈릴레이, 기존의 망원경을 획기적으로 개량하여 목성의 위성과 태양의 흑점 등을 관측하다.

 

 

 

1610년

프랑스의 앙리 4세가 광신적인 가톨릭교도에 의해 암살당하자 아들 루이 13세가 왕위에 오른다.

 

 

 

1617년경

활달하고 대범한 바로크의 대가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

페테르 파울 루벤스, 캔버스에 유채, 222 × 209㎝,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1618년

보헤미아의 왕이자 헝가리의 왕,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페르디난트 2세가 1555년에 제정된 아우크스부르크 협약을 무시하고 개신교도들을 탄압,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요구하면서 전 유럽이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이 전쟁은 끝없는 소모전을 펼치다가 1648년에 가서야 종식되었고, 베스트팔렌에 모여 아우크스부르크 협약을 충실히 준수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1620년경

최초의 아카데미 회원이 된 여성 화가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캔버스에 유채, 146.5 × 108㎝,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1637 ㅡ 1639년

고대 조각상에 색을 입혀놓은 듯한 그림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

니콜라 푸생, 캔버스에 유채, 85 × 121㎝, 파리 루브르 박물관

 

 

 

1640년경

평범한 사람들의 축제

 

 

 

 

<왕이 마신다>

야코프 요르단스, 캔버스에 유채, 156 × 210㎝, 브뤼셀 벨기에 왕립 미술관

 

 

 

1641년

'그림 같은' 풍경 그림

 

 

 

 

<성 우르술라의 승선>

클로드 로랭, 캔버스에 유채, 113 × 149㎝, 런던 내셔널 갤러리

 

 

 

1642년

스냅사진 같은 단체 초상화

 

 

 

 

<야간 순찰>

렘브란트 판 레인, 캔버스에 유채, 379.5 × 453.5㎝,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1643년

프랑스의 왕 루이 13세가 갑자기 사망하자 다섯 살밖에 안 되는 나이에 루이 14세가 왕위를 계승한다.

 

 

 

1644년

그림 값보다 비쌌던 튤립

 

 

 

 

<꽃이 있는 정물>

한스 블론기어, 패널에 유화, 27.4 × 20.7㎝ 네덜란드 하를렘 프란스 할스 미술관

 

 

 

1647 ㅡ 1652년

강렬한 신비 체험의 순간

 

 

 

 

<성 테레사의 환희>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 대리석, 높이 350㎝, 로마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1648년

30년 전쟁이 끝나고 베스트팔렌 조약 체결.

이 조약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권력이 약화되고 스페인은 네덜란드를 잃었으며, 프랑스의 영향력이 커지게 된다.

 

 

 

1648년

프랑스 왕립 회화 · 조각 아카데미가 설립된다. 흔히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라고 부르는 이 조직은 프랑스의 왕, 즉 국가가 미술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었다. 루이 14세는 특히 푸생이나 라파엘로 등을 좋아했는데, 이들은 색채보다 완벽한 데생을 중시하던 화가들이다. 아카데미는 작품의 주제 역시 신화, 종교, 영웅 등이 등장하는 역사화를 선호했고, 정물화 등을 경시했다.

 

 

 

 

1656년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시녀들>

디에고 벨라스케스, 캔버스에 유채, 318 × 276㎝,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1640 ㅡ 1672년경

인생의 덧없음을 상기시키는 정물화

 

 

 

 

<바니타스>

알베르트 얀스 판 데 스코르, 캔버스에 유채, 63.5 × 73㎝,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1660 ㅡ 1680년경

베르사유 궁전 건설.

파리에서 약 18킬로미터 떨어진 곳, 루이 13세가 사냥용으로 지은 별장을 루이 14세가 웅대한 궁전으로 건축한 것이다.

배수가 좋지 않아 악취가 진동하고 나무가 자라기도 어려운 땅에 건축가 루이 르 보가 첫 삽을 꽂았지만 1년 만에 사망, 쥥 아르두맹-망사르가 그 뒤를 이었다. 루이 14세의 허세 많은 성격에 어울리는, 호화롭고 웅장한 궁전으로, 내부는 물론 앙드레 르 노르트가 설계한 궁전 건물 바깥 서쪽으로 뻗은 정원의 아름다움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베르사유 궁전은 그 규모만큼이나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절대 군주 루이 14세의 초상이라 할 수 있다.

 

 

 

 

 

 

1659년

거장의 마지막 나날

 

 

 

 

<베레모를 쓰고 옷깃을 세운 자화상>

렘브란트 판 레인, 캔버스에 유채, 84.4 × 66㎝, 워싱턴 국립 미술관

 

 

 

 

자화상을 많이 남긴 것으로도 유명한 렘브란트의 자화상들.

패기만만했던 34세 때의 자화상과 그가 죽던 해인 1669년 그린 자화상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

 

 

 

1665년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소녀의 모습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캔버스에 유채, 44.5 × 39㎝,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1667년

1648년에 창립된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가 최초로 공식 전시회를 계획하다. 루브르의 사각방, 살롱 카레 salon carre에서 열렸다고 해서 살롱전이라 부른다. 살롱전은 날이 갈수록 그 규모와 권위가 커져서 19세기에 유럽에서 미술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할 관문으로 여겨지게 된다.

 

 

1670년

리처드 러셀스가 저서 『이탈리아 여행 The Voyage of Italy』에서 처음으로 '그랜드 투어' 라는 말을 사용하다. 그랜드 투어는 1660년경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영국 상류층 자제들의 대륙 여행을 뜻한다. 이들은 짧게는 몇 달부터 길게는 몇 년씩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적지를 비롯하여 베네치아, 피렌체, 파리 등의 도시를 직접 체험하곤 했다. 고대에 대한 깊은 관심은 고전주의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1685 ㅡ 1694년경

천상에 이른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천장화

 

 

 

 

<성 이그나티우스의 영광>

안드레아 포초, 프레스코 천장화, 로마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

 

 

 

1713년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기다. 러시아 서쪽, 핀란드 만과 접한 이 도시는 유럽으로 가는 창으로 여겨졌다.

 

 

 

1715년

루이 14세의 증손자 루이 15세가 다섯 살의 나이로 프랑스 왕위에 오르다. 루이 14세의 조카인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가 섭정을 하다가, 열세 살이 되는 1723년부터 실질적인 왕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1717년

장식적이고 유희적인 로코코 미술

 

 

 

 

<키테라섬으로의 출항>

장ㅡ앙투안 바토, 캔버스에 유채, 129 × 194㎝, 파리 루브르 박물관

 

 

 

1728년

무심한 일상에 대한 환기

 

 

 

 

<홍어>

장ㅡ시메옹 샤르댕, 캔버스에 유채, 114 × 146㎝, 파리 루브르 박물관

 

 

 

1730년

현지의 풍경을 그린 '기념품'

 

 

 

 

<북쪽에서 바라본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카날레토, 캔버스에 유채, 75.9 × 119.7㎝, 미국 패서디나 노턴 사이먼 갤러리

 

 

 

1738년

이탈리아 헤르쿨리네움 근처에서 우물을 파던 한 농부가 파묻힌 도시 폼페이의 유물을 발견하다. 그로부터 10년 후 부르봉 왕가의 나폴리 왕인 카를로 3세는 스위스 출생의 군사 기술자 카를 베버의 책임하에 폼페이를 전면적으로 발굴할 것을 지시한다. 파묻혀 있던 고대 로마의 유적이 발굴되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에 대한 동경과 관심이 드높아졌다.

 

 

 

1740 ㅡ 1748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마르틴 판 마이텐스, <마리아 테레지아>, 1742년경.

 

 

 

 

빌헬름 캄프하우젠, <프리드리히 2세>, 1870년

 

 

 

1756 ㅡ 1763년

7년 전쟁

 

 

 

 

이아생트 드 라 페냐, <호크키르히 전투>, 1759ㅡ1760년경

1758년 프로이센군과 오스트리아군이 작센주의 호르키르히에서 교전하여 양측 모두 엄청난 피해를 입은 전투. 프리드리히 2세가 패한 최악의 전투 중 하나다.

 

 

 

1763 ㅡ 1764년

18세기 문화 예술의 후원자

 

 

 

 

<자수틀 앞에 앉아 있는 마담 퐁파두르>

프랑수아ㅡ위베르 드루에, 캔버스에 유채, 217 × 156.8㎝, 런던 내셔널 갤러리

 

 

 

1769년

와트, 증기기관 특허 취득

 

 

 

1774년

루이 16세, 프랑스 왕위를 계승하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

위 : 앙투안ㅡ프랑수아 샬레, <루이 16세>, 1788년

아래 :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룅, <마리 앙투아네트> 1778년

 

 

 

1776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13개의 주가 모여 독립을 선언하다

 

 

 

 

미국 독립 선언문과 그 초안을 작성한 토머스 제퍼슨 (렘브란트 필, <토머스 제퍼슨>, 1800).

 

 

 

1784년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동경

 

 

 

 

<호라티우스 형제들의 맹세>

자크ㅡ루이 다비드, 캔버스에 유채, 330 × 425㎝, 파리 루브르 박물관

 

 

 

1789년

파리 시민들 바스티유 감옥 습격, 프랑스 대혁명 시작

 

 

 

 

장ㅡ피에르 우엘, <무너지는 바스티유 감옥>, 1789

 

 

 

1794년

로베스피에르 처형

 

 

 

179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다

 

 

 

 

자크ㅡ루이 다비드, <황제 나폴레옹>, 1812년

 

 

 

나일강 하구 마을에서 로제타석 발견

 

 

 

 

고대 이집트 문자 해독의 열쇠가 된 로제타석.

 

 

 

나폴레옹의 치세의 주요 사건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의 함대 33척과 영국 넬슨 제독의 함대 27척이 트라팔가르 앞바다에서 벌인 해상 전투.

넬슨은 총에 맞아 전사했지만 결론적으로는 프랑스ㅡ스페인 연합이 크게 패했다.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로마제국 해체.

 

 

 

1808년

스페인 침략. 나폴레옹은 마드리드를 점령하고, 자신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스페인의 왕으로 임명했다.

 

 

 

1814년

대 對 프랑스 동맹에 패배하여 파리 함락. 나폴레옹은 퇴위당하여 엘바섬으로 추방된다.

 

 

 

1815년

나폴레옹, 엘바섬을 탈출하여 복위하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과 프로이센 연합군에 패배하여 세인트헬레나섬으로 유배. 1821년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1805 ㅡ 1807년

진짜 같은 가짜 상황을 기록하다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자크ㅡ루이 다비드, 캔버스에 유채, 621 × 979㎝, 파리 루브르 박물관

 

 

 

1808년

이국 취향의 여성 누드에 심취한 신고전주의자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

장ㅡ오귀스트ㅡ도미니크 앵그르, 캔버스에 유채, 146 × 97㎝, 파리 루브르 박물관

 

 

 

1819년

처절한 생과 사의 순간

 

 

 

 

<메두사호의 뗏목>

테오도르 제리코, 캔버스에 유채, 491 × 716㎝, 파리 루브르 박물관

 

 

 

1827년

동방의 이국적 정취 속 비극적 장면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외젠 들라크루아, 캔버스에 유채, 392 × 496㎝, 파리 루브르 박물관

 

 

 

1842년경

거친 붓질과 아우성치는 색채

 

 

 

 

<눈보라 속의 증기선>

윌리엄 터너, 캔버스에 유채, 91 × 122㎝, 런던 테이트 브리튼

 

 

 

1847년

아카데미풍의 조각 같은 인물들

 

 

 

 

<쇠퇴기의 로마인들>

토마 쿠튀르, 캔버스에 유채, 472 × 772㎝, 파리 오르세 미술관

 

 

 

1848년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창한 이 작은 책자는 세계의 근현대사를 뒤흔들게 된다.

 

 

 

1849년

"내게 천사를 보야다오. 그러면 천사를 그리겠다"

 

 

 

 

<오르낭의 매장>

귀스타브 쿠르베, 캔버스에 유채, 472 × 772㎝, 파리 오르세 미술관

 

 

 

1851년

런던에서 최초의 만국박람회가 개최되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제품 생산이 다양하고 대량화되면서 판매처 확보를 위해 '박람회' 가 고안되었다. 영국은 이 박람회를 위해 크리스털 팰리스, 즉 수정궁을 건설했다. 건축가 조지프 팩스턴은 하이드파크 내에 철골과 유리로 길이 563미터에 폭 12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온실 같은 건축물을 1년 만에 완성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1936년 화재로 인해 전소, 지금은 사진으로나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수정궁의 전경, 1854년

 

 

 

1855년

바르비종의 숲으로 간 화가들

 

 

 

 

<퐁텐블로 숲 광부의 오두막>

테오도르 루소, 캔버스에 유채, 34.2 ×  42.1㎝, 마드리드 티센ㅡ보르미네사 미술관

 

 

 

1857 ㅡ 1859년

가난한 자들의 고단한 삶

 

 

 

 

<만종>

장ㅡ프랑수아 밀레, 캔버스에 유채, 55.5 × 66㎝, 파리 오르세 미술관

 

 

 

1859년

찰스 다윈, 자연선택을 통한 종의 진화를 주장한 저서 『종의 기원』을 출간.

 

 

 

1861년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 북부와 존속을 주장한 남부의 대립으로 미국 남북 전쟁 발발.

 

 

 

1863년

낙선전의 화제작

 

 

 

 

<풀밭 위의 점심식사>

에두아르 마네, 캔버스에 유채, 208 × 264.5㎝, 파리 오르세 미술관

 

 

 

1863년

시선을 감추는 여성

 

 

 

 

<비너스의 탄생>

알렉상드르 카바넬, 캔버스에 유채, 130 × 225㎝, 파리 오르세 미술관

 

 

 

1870년

프로이센ㅡ프랑스 전쟁 (보불전쟁) 발발하다.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독일 통일에 반대하는 프랑스와 벌인 전쟁이다. 전쟁에 승리한 프로이센은 1871년 1월,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방에서 독일 제국의 성립을 선포했다. 국왕이었던 빌헬름 1세가 초대 독일 제국 황제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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