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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

일러스트 = 백형선
여름비
잃어버린 우산은
빗소리 속에 두기로 해요
같은 것을 찾아
빗속을 헤매지 않기로 해요
젖은 마음을
내일로 가져가지 않기로 해요
깊은 잠을 자기로 해요
여름의 일을 가을까지 데려가는 건
엄두도 내지 않기로 해요
ㅡ 유병록 (1982 ~)
우산을 두고 오거나 잃어버린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비가 오다가 뚝 그친 후에는 자기도 모르게 우산을 분실하는 경우가 잦다. 실물 (失物)이 된 우산을 두고두고 생각하기도 한다. 시인은 우산을 잃어버렸거든 지난 빗속에, 빗소리 속에 남기거나 버리자고 말한다.
이 시에서 우산은 일종의 비유라고 이해할 수 있을 테다. 마음에 걸려서 언짢고 꺼림칙한 일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을 텐데, 근심과 우려 같은 것이 해당할 것이다. 시인이 “젖은 마음” 이라고 표현한 대목의 속뜻이 이러할 것이다. 우리는 해결되지 않은 일이 있어 속을 태우고, 체증 (滯症)을 앓는 듯이 답답하고 활기가 없어지곤 한다.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기도 한다. 젖은 마음이 도통 보송보송하게 마르지 않는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난 일을 끌어와서 괴로워하는 일이 없이, 미래를 당겨와서 염려하는 일이 없이 내가 발 딛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고스란히 살았으면 한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6년 5월 18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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