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일러스트 = 이철원
나무
바람과 햇빛에
끊임없이 출렁이는
나뭇잎의 물살을 보아라.
사랑하는 이여,
그대 스란치마의 물살이
어지러운 내 머리에 닿아
노래처럼 풀려 가는 근심,
그도 그런 것인가.
사랑은 만 번을 해도 미흡한 갈증 (渴症),
물거품이 한없이 일고
그리고 한없이 스러지는 허망이더라도
아름다운 이여,
저 흔들리는 나무의
빛나는 사랑을 빼면
이 세상엔 너무나 할일이 없네.
ㅡ 박재삼 (1933 ~ 1997)
박재삼 시인의 시편에는 “사랑하는 사람아” 라고 호명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작품이 적지 않다. 이 시에서도 그처럼 누군가를 마음속에 두고 부르면서 나무를 통해, 구체적으로는 “나뭇잎의 물살” 을 통해 내심 (內心)에서 물결처럼 흔들리고, 넘쳐나고, 설레는 사랑의 느낌을 노래한다. 특히 싱그러운 초록의 나뭇잎이 이리저리 일렁이는 그 겉모양을 ‘스란치마’ 에 빗댄 대목은 크게 감탄하게 한다. 스란치마는 입었을 때 발이 보이지 않을 만큼 폭이 넓고 긴 치마인데, 스란치마에 빗댐으로써 나뭇잎들이 이룬 부피의 풍성함과 바닥에 드리운 시원하고 그윽한 그늘의 범위까지를 상상하게 한다. 이를 통해 시인이 사랑의 광휘를 찬탄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박재삼 시인은 시 ‘첫사랑 그 사람은’ 에서 “첫사랑 그 사람은 / 입맞춘 다음엔 / 고개를 못 들었네. / 나도 딴 곳을 보고 있었네” 라고 썼다. 이 또한 신록처럼 풋풋한 사랑의 시행이라고 하겠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6년 6월 1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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