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좋은 글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비가 시를 고치니 좋아라]

드무2 2026. 6. 2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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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시를 고치니 좋아라]

 

 

 

일러스트 = 이진영

 

 

 

비가 시를 고치니 좋아라

 

시를 고칠 때 비가 오니 좋아라

종이에 쓴 글자들을 툭툭 건드려

사람은 사랑이 되고 마을은 마음이 되고

동일은 통일이 된다

비가 시를 고치니 좋아라

땅에서 스멀거리던 입술들

묘지 위에서 죽은 풀들도

이슬이 데리고 가 구름 되고 또 내려오시네

나의 아비도 빗방울로 다녀가시네

새의 날개로 후루루루 내려오시네

좋아라 다시 만나 좋아라

땅을 기어가던 호박꽃도 옆구리에

빗물 한덩어리 모으시네

 

이도윤 (1957 ~)

 

 

 


 

시인은 시를 짓다 퇴고를 위해 육필의 원고를 펼쳐놓았는데, 때마침 점점이 떨어지는 빗방울이 초벌로 쓴 시의 원고에 떨어졌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글씨가 빗방울에 젖고, 차차 번져 다른 뜻을 지닌 글자가 되었을 테다. 그런데 빗방울이 고쳐놓은 글씨의 의미가 그럴싸하다. 빗방울이 다듬어 고친 의미가 거칠거나 뻣뻣하지 않고 마치 물방울처럼 둥글둥글하고, 시심 (詩心)이 훨씬 부드럽고 순해졌다. 시를 보는 눈이 제법 높다고 하겠다.

빗방울은 시의 자구 (字句)를 수정할 뿐만 아니라, 시인으로 하여금 작고한 아버지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슬이 구름이 되었다 빗방울로 떨어지듯이 아버지께서 생사윤회를 해서 시인의 곁에 다녀가시는 듯한 생각을 갖게 된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시를 읽으니, 이도윤 시인의 시 세계를 일러 “내면과 조응하는 고요한 희망의 언어” 라고 평한 문장에 수긍하게 된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6년 5월 25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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