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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일러스트 = 이철원
눈사람
밤새 내린 눈으로 사람을 만들었다
눈과 사람 사이에 오간 찰나의 생명
잠깐 살다 가는 것은
사람이나 눈사람이나 마찬가지
눈 코 입 달아 놓고
그새 휜 등을 쓸어 본다
밤새 녹아 없어진 사람들이 많았다
ㅡ 피재현 (1967 ~)
시인은 깨끗한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어 세워 둔다. 눈과 코와 입도 달아 놓고, 불룩한 배도 뒷등도 있으니 영락없이 사람의 형상을 갖추었다. 그러곤 눈사람이 점차 녹아서 사라지는 것을 시간을 두고 바라본다. 그처럼 잠깐의 시간 동안 살다 가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 시를 이 여름의 초입에 읽고 있으니 모든 게 눈사람 같다. 얼굴의 표정을 바꾸듯 꽃의 색깔을 바꾸며 피어 있는 수국이나 그 꽃에게 갔다 공중을 휘청거리며 날아가는 노랑색 나비도 눈사람이다. 새의 유리알 같은 울음소리도 눈사람이요, 손바닥보다 훨씬 큰 무화과나무 잎사귀에 떨어지는 소낙비 빗방울도 눈사람이요, 텃밭의 푸릇푸릇한 풀과 상추도 눈사람이다. 내 마음속에서 물결처럼 움직이는 감정도 눈사람이요, 나의 이름도 눈사람이다. 피재현 시인은 “무슨 일인지 묻지 않고 / 일단 함께 울어 주는 일” 이 숭고한 일이라고 썼다. 모든 존재를 추운 겨울에 잠깐 살다 가는 눈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섭섭해하거나 밉게 여길 일이 좀 덜해질 것이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6년 6월 8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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