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잠긴 방문]

그래픽 = 박상훈
잠긴 방문
잠긴 방문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이 있네
그는 방금 방문을 잠그고 나온 사람이네
열쇠를 안에 두고 방문을 잠근 사람이네
아무도 없는 방문 안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방문 안의 세계를 향하여, 그는 걸어가야 하네
어딘지 모르는 열쇠 가게를 향하여 걸어가야 하네
ㅡ 이윤학 (1965 ~)
열쇠를 방에 두고 나오면서 그만 문을 잠그고 나오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혹은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찾느라 한참을 어수선하게 헤매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일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어서 우리는 참 난감해한다.
이 시를 여러 번 읽다 보면 “방문 안의 세계” 가 어떠한 곳인가를 궁리하게 되고, 궁리를 거듭할수록 “방문 안의 세계” 가 꽤 여러 겹의 의미를 지니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곳은 내가 날마다 일상적으로 머무는 곳이면서, 조금 전까지의 일이나 생활이 있는 곳이다. 또한 비단 같기도 하고 불 같기도 한 내 감정, 간직한 비밀, 풀리지 않은 의문과 오해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깥에서 들여다보면 그곳에 애초부터 열쇠가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쇠를 두고 나온 탓에, 또 다른 열쇠를 만들려고 열쇠 가게를 찾아 허둥지둥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확대해서 보자면 우리의 행위와 마음도 하나의 방 (房)이라고 할 수 있고, 열쇠는 바로 그곳에, 그 당처 (當處)에 있는 셈이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6년 6월 22일 자]

728x90
'詩, 좋은 글 ... >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제비 가족] (0) | 2026.07.14 |
|---|---|
| [눈사람] (0) | 2026.07.10 |
| [비가 시를 고치니 좋아라] (0) | 2026.06.27 |
| [나무] (1) | 2026.06.19 |
| [여름비] (0) | 2026.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