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좋은 글 .../최영미의 어떤 시

[감사]

드무2 2024. 3. 2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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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일러스트 = 양진경

 

 

 

감사

 

저 푸른 하늘과

태양을 볼 수 있고

 

대기를 마시며

내가 자유롭게 산보를 할 수 있는 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이것만으로 나는 신에게 감사할 수 있다

 

ㅡ 노천명 (1912 ~ 1957)

 

 

 

그렇지 그렇고 말고. 내 발로 걸을 수 있고, 저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나이가 들수록 포기가 빨라지고 욕망도 흐지부지, 내가 뭘 원했는지도 잊고 살며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된다.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다.

젊어서는 노천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최근에 그의 시선집을 읽고 그 투명한 언어에 실린 쓸쓸한 마음의 풍경에 측은지심을 느끼며 그에게 빠져들었다.

근대 최초의 여성 문인인 김명순도 그렇고 노천명도 그렇고, 앞서간 여성들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신문사 기자로 일하며 친일 시를 발표하고, 6 · 25전쟁 당시 서울에 남았다가 부역 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파란만장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노천명 선생의 시와 삶을 생각하는 가을날, 가슴이 아리다.

 

 

최영미 시인 · 이미출판 대표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10월 16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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