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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선 풍경화, 가까이선 추상화 서양화가 이광호 'BLOWㅡUP' 展]

드무2 2024. 5. 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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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선 풍경화, 가까이선 추상화 서양화가 이광호 'BLOWㅡUP' 展]

 

 

 

서양화가 이광호가 그린 뉴질랜드 남섬 습지 그림. 가로 12m 넘는 벽면을 메울 정도로 거대한 풍경 그림이지만, 60개의 프레임으로 조각내 구획한 후 하나씩 따로 그려서 이어 붙인 것이다. 따로 떼어낸 그림은 풍경화가 아닌 추상화 같다. 오른쪽 위 빈 자리에 해당하는 그림은 전시장 맞은 편에 걸려 있다. / 국제갤러리

 

 

 

12m 대작 풍경화, 따로 떼면 추상화 60점··· "위 빈 자리는 관객 상상에"

 

 

 

뉴질랜드 남섬 습지 여행하고 영감

하나의 이미지를 60개로 나눠 그려

전시장 맞은편에 빈 자리 그림 걸어

 

"화가가 그림 그릴 때 필요한 매너는

누구도 못 따라 할 자신만의 붓질

이번 작품, 나의 매너 연구한 결과"

 

 

 

서양화가 이광호 (56 ·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는 2017년 뉴질랜드 남섬을 여행하다 우연히 습지를 발견했다. 그가 그리고 싶은 신비로운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세밀하게 붓질한 듯한 수풀, 하얀색 · 붉은색 · 초록색이 어우러진 이끼, 수풀 사이 웅덩이에 비치는 하늘과 구름의 모양···. 습지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는 여러 번 더 그곳을 찾아가 사진 수천 장을 찍었다.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전시장 벽면을 가득 메운 초대형 풍경화는 거기서 고른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전체가 하나의 그림이지만, 다가가서 보면 60개 캔버스로 조각나 있다. 하나의 이미지를 가로 12m 넘는 벽면을 채울 만큼 크게 확대한 뒤, 60개 화폭으로 쪼개 하나씩 따로 그린 것이다. “사진 이미지를 극대화해서 보다 보면, 수풀 한 줄기가 가진 의미는 사라지고 추상적인 조형 요소만 남게 돼요. 각각의 캔버스가 파노라마처럼 전체 풍경의 일부이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작품인 거죠.”

 

 

 

‘BLOWㅡUP’ 전을 열고 있는 이광호 작가. 뒤에 걸린 그림은 대형 풍경화를 이룬 60점 중 오른쪽 위 빈 자리에 해당하는 부분을 확대해 그렸다. / 박상훈 기자

 

 

 

이광호 개인전 ‘BLOWㅡUP’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캔버스를 다 이어 붙인 전체 풍경은 저도 전시장에 와서야 처음 봤다” 고 했다. 멀리서 보면 극사실화, 가까이서 보면 추상화 같은 이 독특한 그림에 2030이 매료됐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거대한 풍경화를 배경으로 찍은 셀카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속속 올라온다. 전시 제목은 작가가 영감받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영화 ‘BlowㅡUp’ (1966)에서 따왔다. 시선의 욕망과 시각적 진실에 의문을 던지는 영화처럼, 의도적으로 화면을 확대 (blowㅡup)해 추상성을 부여한 것이다.

 

 

 

작업실에서 습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광호. / 국제갤러리

 

 

 

한때 영화감독을 꿈꿨다는 그는 장윤현 감독의 영화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접속’ ‘텔 미 썸딩’ ‘이중간첩’ 의 이미지 보드를 만들었다. 특히 심은하 주연의 범죄 스릴러 영화 ‘텔 미 썸딩’ 때는 감독 요청으로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품은 15세기 네덜란드 화가 헤라르트 다비트의 그림 ‘캄비세스의 재판’ 을 100호로 똑같이 그렸다. 유화를 새롭게 발견하고, 회화의 방법론을 고민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다. 그는 “‘어떻게 하면 나만의 회화적 감성을 드러낼 수 있는가’ 에 대해 항상 골몰하는데 결국은 ‘어떻게 칠하느냐’ 의 문제인 것 같다” 고 했다.

작가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는 영화 ‘킹스맨’ 대사처럼, 화가에게도 매너가 있다” 고 말한다. “회화에서 매너란 타인에게 전수 가능한 테크닉과 달리,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화가 고유의 붓질을 말합니다. 가수의 음색이나 소설가의 문체 같은 거죠. 이번 전시는 저만의 매너를 구현하기 위한 ‘붓질 연구’ 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이광호, 'Untitled 4819ㅡ62' (2023). Oil on canvas. 170 × 150cm. / 국제갤러리

 

 

 

이광호, 'Untitled 4819ㅡ24' (2023). Oil on canvas. 90 × 81cm. / 국제갤러리

 

 

 

두 가지 포인트를 놓치면 안 된다. 하나는 오른쪽 위. 캔버스 60개 중 하나가 비어 있다. 작가는 한 점을 떼어내고, 떼어낸 작품의 확대 버전을 그려서 반대편 벽에 걸었다. “빈 공간은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거죠. 프레임 밖의 풍경, 나아가 전시 공간 밖으로 공간이 무한히 확장되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또 하나는 맨 왼쪽 아래. 작가의 아바타인 꿩이 수풀 속에 숨겨져 있다. “꿩은 위급한 상황에서 머리만 덤불에 박고 숨는다는데, 그 모습이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마치 저 같기도 해서 풍경 속에 그려놓는다” 고 했다. 그래서 꿩을 보면 작가의 마음이 보인다. 우울할 때 그린 그림엔 꿩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감 넘칠 땐 꿩도 위풍당당하다. 이번 그림에선? “꿩이 자꾸만 프레임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죠. 제가 그런 상태인가 봅니다 (웃음)”. 28일까지.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4년 1월 22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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