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함께하는 석탄시대] 01
지역과 함께하는 석탄 시대
2024. 4. 26. FRI ㅡ 9. 22. SUN
장소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로비 휴게실
Special Exhibition
Nostalgic Energy
Source :
Coal
지역과 함께하는
석탄
시대
태백산 등어리요 낙동강 줄기
여기는 삼척이라 우리의 탄광
3억 톤 불이 되어 열을 뿜을 제
이 살림 뻗으리라 삼천만 행복
동해로 가는 배야 돛을 걷어라
하늘이 주신 보배 우리의 선물
한 덩이 또 한 덩이 피땀에 젖어
이 강산 살찌리라 삼천만 행복
싸이랭 들려온다 일터로 가자
오늘도 어제같이 씩씩한 걸음
철암봉 우뚝하다 우리의 기백
정기에 빛나는 새나라 동력
「삼탄가」
지역과 함께하는 『석탄시대』 展을 열며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내 최대 규모의 탄광 장성광업소와 도계광업소가 올해와 내년 차례로 문을 닫습니다. 산업 성장의 동력이자 서민의 연료였던 석탄의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문경 · 보령 · 태백석탄박물관과 함께 찬란했던 대한민국의 석탄시대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자원이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석탄은 유일하게 경제적 이용이 가능한 화석연료입니다. 따라서 산업 발전의 소중한 동력원인 석탄 생산을 큰 폭으로 늘리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지하에서 긴 시간을 열과 압력을 견뎌 탄생한 석탄과 같이 광부들은 무덥고 깜깜한 탄광 속에서 쉼 없이 일하며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뒷받침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전국의 광업소는 서서히 사라져 갔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남겨진 석탄산업유산을 어떻게 기억하고 보존해 나갈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문경석탄박물관
'문경'은 우리나라 석탄산업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곳입니다. 근대화의 시작과 함께 광산이 개발되어 지난 반세기 동안 국내 제2의 탄전지대로서, 현대사의 질곡 桎梏을 함께 한 석탄역사의 산 현장입니다. 산업 발달과 에너지 사용의 패턴 변화로 석탄산업이 사양화되면서 1994년 은성광업소를 마지막으로 우리 문경 지역의 광업소가 모두 폐광되어 점차 그 흔적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번 공동기획전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석탄산업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경제부흥의 최일선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광부들의 삶의 애환과 노고를 담아 감사를 전하며 문경지역 광업의 역사 속에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보령석탄박물관
"보령에 정말 탄광이 있었어요?" 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일반인들에게 보령은 머드축제로 유명한 관광도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 보령은 충남 최대의 탄광도시였습니다.
보령의 석탄산업은 1940년대 말에 시작하여 1980년대 화력발전으로 최전성기를 보내고 1994년 마무리되었습니다. 평범한 농어촌이었던 보령은 갑자기 탄광도시가 되었고, 폐광 이후에는 곧장 관광도시로 변화해 갔습니다. 석탄산업 유산의 보존에도 힘써왔지만, 극심한 변화와 시간의 보존에도 힘써 왔지만, 극심한 변화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탄광도시 보령」은 시민들의 기억에서도 희미해진 영화가 되었습니다.
이번 공동기획전이 온 세상의 동력이었던 석탄과 그 시대를 조망하고, 폐광지역이 함께 연대하여 석탄산업유산을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석탄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태백석탄박물관
'태백' 하면 떠오르는 것을 물으면 많은 이들은 석탄, 연탄, 광부, 탄광 등이라 대답합니다.
과거 중요 에너지자원으로서 생활 연료 공급과 기간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석탄의 최대 생산지였던 태백은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시행으로 현재 거의 모든 탄광이 폐광됨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흔적과 정취들이 곳곳에 서려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막장에서의 힘겨웠던 기억이 떠오르는 아픔의 흔적이오, 또 다른 이에게는 어릴적 뛰놀던 추억이 회상되는 즐거운 기억일 것입니다.
오는 6월 말 태백의 마지막 탄광인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가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번 공동기획전을 통해 경제 발전에 초석이 되었던 서민연료 석탄과 산업전사로 불리운 광부들의 희생과 헌신을 다시금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무연탄
고생대 | 94 × 38 × 29㎝ | 태백석탄박물관
석탄 증산으로
경제부흥 이룩하자
석탄은 산업의 원동력이자 생활필수품입니다. 광복 직후 남한 지역은 석탄 생산량이 매우 적어 연료난에 시달렸습니다. 따라서 석탄 증산은 대한민국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였습니다. 정부는 먼저 1950년 대한석탄공사를 설립해 생산과 공급을 일원화했습니다. 국제연합한국재건단 (UNKRA)의 개발지원금을 투입해 탄광 시설을 복구하고 수송을 위한 철도를 부설하여 석탄산업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 결과 석탄 생산은 해마다 증가하여 마침내 석탄의 자급자족을 달성하였습니다. 1966년 연탄파동으로 연탄 가격이 폭등하자 정부는 유류 위주의 연료정책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이에 석탄산업이 침체를 거듭하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1973년 발생한 제1차 석유파동으로 다시 석탄 증산 정책이 추진되었습니다.
석탄의 시대,
전설의 시작
우리나라 탄광개발은 1903년 평양광업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일제의 국권침탈로 평양광업소는 일본 해군성으로 이관되어 자원 수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일제는 지속적으로 지질조사를 실시하며 체계적으로 한반도 자원을 파악했습니다. 광복으로 석탄산업의 주권을 되찾았지만 남한지역에는 산업과 생활에 필요한 석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복구했고, 수송을 위한 산업 철도를 부설하며 생산증대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50년대 석탄 증산에 공로가 있는 광부에게는 대통령이 직접 모범광부 표창을 했습니다.
석탄광고
진고개 산일상회에서 평양석탄과 일본석탄을 많이 무역하여 서울 용산, 제물포에 지점을 갖고 큰 장사를 하는데 그 상회에서 파는 석탄은 품도 좋고 값도 싸며, 올해는 일본 석탄이 작년보다 비싼 고로 미리 주문하면 싸게 살터이요. 평양 무연탄도 풍범선으로 많이 실어다가 파니 누구든지 겨울에 쓸 석탄을 미리 와서 주문하면 석탄을 싸게 살 터이니 날씨가 추워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속히 와서 주문하시오.
진고개 제 이번지 산일상회
용산 산일상회 지점
제물포 산일상회 지점
『독립신문』 1897. 9. 11
평양광업소 개광 초기 생산현황
연도 | 생산량 (톤) | 생산금액 (원) | 직원 (명) | 광부 (연인원) | 임금 (전 / 일) |
1908 | 46,487 | 232,435 | 49 | 300 (108천) | 48 |
1909 | 53,493 | 267,465 | 43 | 500 (180천) | 50 |
1910 | 70,151 | 350,755 | 35 | 800 (288천) | 55 |
주) 노동시간은 1일 11시간
『대한석탄공사 50년사』, 2001
조선가행광산분포도
일제강점기 조선광업회가 발행한 광산 운영 분포와 광물자원의 분포 안내지도이다. 금과 은, 동, 납, 철, 석탄 등 광물을 생산하는 광산을 색깔별로 표기하고 있다. 지도 우측에는 광물별 광산 생산액과 운영중인 광물별 광산의 비율을 보여주는 그래프가 있다. 지도에서 회색은 석탄을 생산하는 탄전 지역을 나타내는데 유연탄은 둘레를 한 줄로, 무연탄은 두 줄로 표기했다.. 태백과 문경지역에 당시 무연탄이 생산되고 있었음을 지도를 통해 알 수 있다.
1934
광산물의 가액 안내 도표
석탄을 비롯한 주요 광물의 가치에 상당하는 금액을 안내하는 도표이다.
1927 문경석탄박물관
『탄전조사보고서』
조선총독부 연료선광연구소에서 발행한 책으로 태백지역 탄광개발의 시초가 된 보고서이다.
1940 태백석탄박물관
채탄 · 운반 | 지주 · 발파 | ||
외래어 | 순화용어 | 외래어 | 순화용어 |
사끼야마 | 숙련광원 | 가베시메 | 벽손질 |
고구찌 | 갱구 | 와꾸 | 쉬틀 |
고도 | 갱도 | 하리 | 관목 |
홍고도 | 본갱도 | 아시 | 각주 |
가다방 | 수평갱도 | 아시모도 | 각주자리 |
오로시 | 사갱 | 으찌바시 | 타주 |
다데꼬 | 수직절상 | 기꼬 | 목적 |
노보리 | 승갱도 | 마와꾸 | 간쉬 |
후르고도 | 고갱도 | 나루기 | 성목 |
답바 | 수직거리 | 쥬나기 | 계목 |
『탄광관용어집』
탄광에서 사용하는 관용어를 모은 책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탄광문화가 한국에 넘어오면서 용어에 일본식 표현이 다수 남아 있다.
1943
국제연합한국재건단의 탄광복구를 위한 지원장비 수송 | 1955 | 국가기록원
함백광업소 개광식 | 1955 | 국가기록원
함백광업소는 영월화력발전소의 안정적인 연료확보를 위해 개광했다.
대한석탄공사법 제1장 제1조
대한석탄공사는 정부가 지정하는 석탄광산을
운영관리하며 석탄의 생산가공과 분배의 업무와 부대사업을
경영함을 목적으로 한다.
영월화력발전소 | 1958 | 국가기록원
삼탄가
삼탄가는 광복 직후 삼척탄광에서 부른 노래이다. 가사에 "우리의 탄광", "삼천만 행복" 등 광복으로 탄광주권을 찾은 당시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1950년대 태백석탄박물관
삼탄가
1 태백산 등어리요 낙동강 줄기
여기는 삼척이라 우리의 탄광
3억 톤 불이 되어 열을 뿜을 제
이 살림 뻗으리라 삼천만 행복
2 동해로 가는 배야 돛을 걷어라
하늘이 주신 보배 우리의 선물
한 덩이 또 한 덩이 피땀에 젖어
이 강산 살찌리라 삼천만 행복
(후렴)
싸이랭 들려온다 일터로 가자
오늘도 어제같이 씩씩한 걸음
철암봉 우뚝하다 우리의 기백
정기에 빛나는 새나라 동력
『영월탄광급발전사업실태조사보고서』
제헌국회의원 백남채, 김진구, 김수선, 최석화가 제출한 영월지역 탄광 및 발전사업 실태조사 보고서이다. 당시 시급한 전력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된 국가 예산 검토와 신년도 예산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1949
『대한석탄공사법안』
대한석탄공사 설립을 위해 국회에 제출된 법안의 원안이다. 정부는 공사 설립을 통해 생산과 공급을 일원화하여 효율적인 자원 관리를 추진했다.
1950
『국유광산평가조사복명서』
국유화된 광산의 가치를 평가하고 조사결과를 기입하는 보고서 양식이다.
1950년대
'전시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역과 함께하는 석탄시대] 03 (0) | 2024.06.20 |
---|---|
[지역과 함께하는 석탄시대] 02 (0) | 2024.06.19 |
[폼페이 유물전 ㅡ 그대, 그곳에 있었다] (0) | 2024.05.31 |
[후소의 옛 터, 양성관 가옥] (0) | 2024.05.27 |
[수원 교동유적] (0) | 2024.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