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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한국 근현대 자수' 展]

드무2 2024. 10. 1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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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한국 근현대 자수' 展]

 

 

 

최유현 국가무형문화재 자수장이 30대 초반 제작한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1968)을 관계자가 감상하고 있다. 한국화 거장 서세옥 (1929 ~ 2020)에게 밑그림을 요청해 그 위에 직접 수를 놓았다. 다채로운 색으로 촘촘하게 메운 실이 새의 깃털을 연상시킨다. / 연합뉴스

 

 

 

실로 그린 예술은 모란과 봉황 뿐 ? 추상화도 수놓는다

 

 

 

19세기 말 이후 자수 170점 전시··· '현모양처 전유물' 편견 깨

日유학생 귀국해 신식 자수 보급, 여성의 경제적 자립에 기여

이화여대 '자수과' 생기며 부흥기 맞아··· 남성 장인들도 다수

 

 

 

실과 바늘, 전통 예술, 규방 공예, 교양 있는 여인들의 취미···. 자수 (刺繡)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자수는 오랫동안 주류 미술사의 관심 밖에 있었고, 이름을 기억하는 자수 작가도 손에 꼽힐 정도다.

지금 덕수궁에 가면 이런 편견이 단번에 깨진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1일 개막한 ‘한국 근현대 자수 :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은 19세기 말 이후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 흐름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해온 대한민국 자수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자수가 국립미술관 전시의 주인공이 된 건 처음이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혹은 도제식으로 전승되던 전통자수는 근대기에 들어서면서 여성 공교육 및 산업화의 중요한 영역으로 부각됐고, 미술사적으로는 기술과 예술 사이에서 부단히 인정 투쟁을 벌였다” 며 “규방 공예로만 인식되던 한국 자수의 미학과 역사성을 확장하는 전시” 라고 밝혔다. 다음은 4가지 편견을 깨는 이번 전시 감상법.

 

 

 

박을복, ‘국화와 원앙’ (1937). 박을복자수박물관 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① 자수는 현모양처 전유물? → 여성의 경제적 자립 이끈 혁명이었다

 

조선시대 규방 공예에서 탈피한 계기는 일본 유학파들이 생기면서부터. 일본 여자미술전문학교 (女子美 · 조시비)에서 유학한 신여성들이 귀국해 전국 여학교, 기예학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들은 전통 자수와 전혀 다른 새로운 자수를 보급했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사회활동에 참여하면서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다.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부터 공예부가 신설되며 ‘미술 공예’ 의 발판을 마련했다. 대표적 인물이 한국 자수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박을복 (1915 ~ 2015), 나혜석의 조카로도 알려진 나사균 (1913 ~ 2003) 등이다.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특히 박을복의 자수사 (史)는 곧바로 우리나라 근대 자수사라 할 정도” 라며 “박을복의 작품은 별도의 방을 만들어 공개했다” 고 했다.

 

 

 

김혜경, '정야' (1949). 이화여대 첫 입학생인 작가의 졸업 작품이다.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과 디테일이 현대 미디어아트 못지 않다. 유족 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② 단순 기능? → 추상도 끌어들인 예술

 

해방 후 이화여대에 국내 처음으로 자수과가 생기면서 부흥기를 맞았다. 전시장에 걸린 최초 입학생 김혜경의 졸업 작품 ‘정야’(1949)는 벽난로 앞에서 불을 쬐며 독서를 하고 있는 여성을 소재로 했다. 당시 미술대학 교수 김인승(1910~2001)에게 밑그림을 받아 작가가 직접 수를 놓았다. 두껍고 치밀한 스티치로 표현한 따뜻한 실내, 주위로 퍼져 나가는 난로의 온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다.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 섬세한 명암 대비가 현대 미디어아트를 연상케 할 정도”라고 감탄했다.

 

 

 

송정인, 'O - 3' (1973). 작가 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1960년대 이후 자수는 추상이라는 새로운 조형 언어도 적극 수용한다. 독학으로 예술 자수의 경지를 이뤄낸 송정인의 ‘작품 A’ (1965), 김인숙의 ‘계절 Ⅱ’ (1975) 등은 경계를 뛰어넘은 혁신을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시장에서 한 관계자가 국가무형문화재 자수장 최유현의 '팔상도' (1987 ~ 1997)를 감상하고 있다. / 뉴시스

 

 

 

③ 돈 안 되는 공예? → 과거엔 최고 혼수품

 

1960년대엔 미술품보다 자수가 인기였다. 수출용으로 많이 만들었고, 혼수 및 예단, 기념품, 실내장식용으로 수요가 많았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솜씨 좋은 여성들이 수방에 모여 각종 자수품을 제작했다. 미술관은 “자수 잘 놓는 여성들은 집을 몇 채씩 살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다” 고 했다. 하지만 1980년대 기계 자수가 등장하면서 전통 자수는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자수를 공예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는 198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으로 지정된 한상수다. 그의 자수 병풍 한 점이 1970년대 한남동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고 한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출품됐던 조선 왕실 '보료'. 궁녀들이 수를 놓은 궁수다. 미국 필드 자연사박물관 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④ 여자들만 만들었다? → 남성 장인도 있다

 

전통 자수는 대부분 제작자 이름을 알 수 없다. 여성 제작자들이 많지만 19세기 말 ~ 20세기 초 평안도 안주 지역에는 전문적인 남성 자수 장인 집단이 있었다. 이들이 수를 놓은 안주수는 실을 최대 16겹까지 꼬아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장인 이름을 병풍에 새긴 것도 안주수의 특징. 안제민의 불교자수 작품과 양기훈 (1843 ∼ 1911)이 원화를 그린 ‘자수 송학도 병풍’ 등이 안주수 작품으로 소개된다.

이번 전시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필드 자연사박물관, 일본민예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등 국내외 60여 기관과 개인이 소장한 근현대 자수, 회화, 자수본 170여 점과 아카이브 50여 점이 출품됐다. 8월 4일까지. 관람료 2000원 (덕수궁 입장료 1000원 별도).

 

허윤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24년 5월 8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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