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등(누죽걸산 :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의왕역 → 왕송호수 → 철도박물관] 01

드무2 2024. 11. 2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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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왕역 → 왕송호수 → 철도박물관] 01

 

 

 

의왕역 이야기

 

 

토요둘레길 동행자 : 차선균, 현관철

 

 

 

 

 

 

 

 

의왕역 대합실

 

 

 

 

 

 

의왕 왕송호수를 배경으로

 

 

 

간식도 먹고

 

 

 

 

 

 

 

 

 

레일바이크

 

 

 

 

 

 

 

 

 

 

 

 

왕송 수질개선시설 안내

(산소 공급 및 녹조제거제 정량살포시설)

 

정량살포시설이란?

 

◎ 평상시에는 쾌적한 수생태 환경조성을 위해 산소를 공급하고 녹조 발생 시기에는 응집 · 침전 약품을 정량 살포하여 수질오염 저감을 위한 시설입니다.

 

⇒ 약품 살포 시 수변에 덩어리 또는 띠 형태로 농축된 물질은 미관상 오염물질로 보일 수 있으나, 이는 녹조 및 오염물질을 응집하는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자동차가 레일바이크를 끌고 간다

 

 

 

KTX 쉼터

 

 

 

 

 

 

 

 

 

 

 

 

레일바이크, 호수열차 운행시간표

 

 

 

 

 

 

 

 

 

 

 

 

미카 3 ㅡ 161 증기기관차 | Mika 3 ㅡ 161 Locomotive

 

● 이 차량은 견인력 973마력 (HP)의 텐터형 증기기관차로, 1940년 8월에 일본에서 제작되어 부산 ~ 신의주 등 전국의 주요 철도 간선에서 운행되었다.

 

● 이후 디젤기관차의 등장으로 운행을 잠시 중단하였다가, 1981년 10월 1일 동해남부선에서 관광열차를 견인하였고, 1983년 4월 29일 운행이 종료되었다.

 

 

 

 

 

 

 

 

 

 

 

 

 

 

 

필름속에 담긴 한국철도

 

 

 

 

 

 

 

 

 

 

 

 

경인철도 기공식 1897. 3. 22.

조선은 1896년 3월 29일 미국인 사업가 모스 (James R. Morse)에게 경인철도 부설권을 허가했다. 모스는 허가 취소 시한을 6일 앞둔 이듬해 3월 22일에야 우각현 (牛角峴, 인천 동구)에서 기공식을 치를 수 있었다.

 

 

 

 

 

 

 

 

 

한강철교 부설 광경 1899년경

경성 ~ 인천 간 경인철도의 최대 난공사 구간은 한강철교였다. 대홍수로 공사가 중단되자 1899년 9월 18일 노량진 ~ 인천 간 임시영업을 개시했고, 이듬해인 1900년 7월 8일 드디어 경인철도를 전선 개통시켰다.

 

 

 

 

 

 

 

 

 

원산을 출발하는 경원선 측량대 1911. 4. (위)

경부 · 경의선과 달리 경원선은 비교적 늦게 완공됐다. 러일전쟁이 이미 일본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에 급히 서두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한반도를 차지한 일본은 자원 확보를 위해 경원선 건설을 다시 시작했다.

 

 

경의선 평양역 전경 1920년대 중반 이후 추정 (아래)

그림엽서에 소개되었던 평양역 전경, 조선총독부 철도국을 상징하는 마크가 전면 중앙에 붙어있다. 이 휘장은 1935년 5월까지 사용되었다.

 

 

 

 

 

 

 

 

 

 

 

 

조선해방자호 운행 1946. 5. 20.

광복 후 일본인 고급인력이 모두 철수하면서 철도 운영은 공황상태를 맞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철도인들은 국내 최초의 증기기관차 해방자 1호를 만들어냈고, 1946년 5월 20일부터 경부간 특급열차인 조선해방자호를 운행했다.

 

 

 

 

 

 

 

 

 

한국전쟁, 대동강 철교

인천상륙작전으로 반전의 승기를 잡은 연합군은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중공군의 참전으로 연합군은 많은 희생을 겪으며 남쪽으로 철수해야만 했다. 피란길도 험난했다. 피란민들은 폭격으로 파괴된 대동강 철교를 목숨을 걸고 건너야 했다.

 

 

 

 

 

 

한국전쟁, 파괴된 낙동강 철교

전쟁 피해는 한반도 남쪽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1950년 8월 3일, 물밀듯이 압박해오는 적군으로부터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내기 위해 유엔군은 낙동강 철교를 폭파했다.

 

 

 

 

 

 

 

 

 

분단의 상징, 장단역 증기기관차

1950년 12월 31일, 남으로 향하던 화물열차가 장단역에 멈춰섰다. 그 후 56년 동안 이 마터형 증기기관차는 한반도 분단의 상징으로 비무장지대를 지켜봤다. 이 기관차는 2006년 가을에 이전하여 보존처리 후 2009년 6월 25일부터 임진각에 전시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남북철도 연결 논의 2000. 6. 15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기본 틀에 합의했다.

 

 

 

 

 

 

 

 

 

주목받는 도라산역

2002년 2월 12일. 분단 이후 최초의 여객열차가 임진강 철교를 건너 도라산역에 조착했다. 실향민들을 위한 설날 망배열차였다. 그로부터 8일 후에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도라산역을 방문하여 철도 침목에 서명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했다.

 

 

 

 

 

 

 

 

 

군사분계선 내 경의선 철도 연결 2003. 6. 14.

드디어 경의선 철도가 남북으로 이어졌다. 실제 열차 운행까지는 그 이후 4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념 대립과 전쟁으로 인해 끊어졌던 철길이 다시 이어졌다는 것만 해도 커다란 진전이었다.

 

 

 

 

 

 

 

 

 

 

 

 

 

 

 

동해선 남북철도 연결구간 열차시험 운행 2007. 5. 17.

2007년 5월 17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 정부는 합의하여 제진역 (남) ㅡ 금강산청년역 (북), 문산역 (남) ㅡ 개성역 (북) 두 구간에 휴전선을 넘어 열차를 직결 운행했다. 북측은 이를 '북남 렬차 시험 운행' 이라 불렀다.

(제진역을 출발하는 북측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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