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나의 보물 우리의 현대사] 05

드무2 2025. 1. 4.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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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보물 우리의 현대사] 05

 

 

 

 

음악, 시대를 울리다

 

광복 이후 대중음악을 선도한 이들은 미군부대를 드나들며 활동하던 음악인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영향 속에서 우리만의 색채로 트로트, 포크송 등 유행가를 만들어낸 가수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각 시대를 관통하며 울리던 이들이 음악은 일본 등 이웃나라로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대중음악을 애청하는 팬들이 모여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는 오늘날 케이팝의 인기를 세계로 확산시킨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아홉 명의 소장품으로 생생한 대중음악 발전사를 전시합니다.

 

 

 

 

"미8군은 어렸던 저조차 알 만큼, 엄격한 등급제를 통과한

실력 있는 가수만 서는 큰 무대로 유명했고요. (···)

늘 삼각지에서 집결해 공연 갔다가 공연 후에도 같은 곳을 거쳐

집집마다 트럭이 다시 데려다 줬죠."

 

ㅡ 장미화

 

 

 

 

 

 

 

 

 

 

 

 

 

 

 

 

<하춘화 가요앨범>

 

1962. | 하춘화 (가수)

 

하춘화가 일곱 살에 낸 독집 음반이다. 최연소 정식 데뷔였다. 어려서 노래에 재능을 보인 하춘화를 아버지가 알아 보아 예술학원에 입학시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음반을 냈다. 1970년대에는 트로트 가수로서 전성기를 맞아 가요대상에서 네 번이나 대상을 수상하였다. 이 음반에 실린 '효녀 심청 되오리다' 을 비롯하여 '대구역 떠나는 열차' 가 많은 인기를 얻었다.

 

 

 

 

 

 

 

"나와 훈아도 역사적 경쟁 관계로 꼽히며

가요계에 재미를 더했으니까요."

 

ㅡ 남진

 

 

 

 

 

 

 

<남진 골든 힛트 앨범> 제1집

 

1974. | 남진 (가수)

 

1970년대 초반 남진의 인기곡을 모은 음반이다. 남진은 나훈아와 함께 한국 트로트와 대중가요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그는 미8군 부대 문화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향을 받아 유사한 의상을 공수해 춤을 추곤 했다. 그는 트로트 만이 아니라 팝송 등 여러 장르를 잘 소화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남진은 '원조 오빠 부대', 즉 최초의 팬덤을 탄생시켰다고 평가받는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음악, 시대를 울리다

 

 

 

 

뉴웨이브, 트롯류로 양극화

 

"동백아가씨 부르고파 무대를 못 떠났어요"

                                         가수 생활 25년 맞은 이미자

 

새 흐름 "가사 좋아야 히트"

금상, 빌보드 특별상의 전영록

 

                     명대결 남진과 나훈아

 

정상가수들 열창, 80서울국제가요제 팬들의 열광 속 박두

 

가수 영화 대거 진출 남진, 하춘화 등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상 혜은이양에

 

                            활기 되찾은 8군 무대

 

 

 

 

 

 

 

<뚜아에무와 히트 앨범> 제1집

 

1969. | 박인희 (가수)

 

박인희가 멤버였던 1세대 혼성 듀엣 '뚜아에무와' 의 음반으로 최초로 창작 포크송을 실었다. 번안곡인 '스카브로우의 추억' 과 창작곡 '약속' 등이 인기곡이었다. 박인희가 대학 졸업 후 명동 '미도파 살롱' 에서 행사 MC를 맡아 한두곡 부른 것이 기타치던 이필원의 눈에 들어 뚜아에무와는 1971년에 TBC 가요대상 중창단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포크송 전성시대를 활짝 열었다.

 

 

 

 

일본ㅇ[ 우리나라 대중가요가 붐을 일으키고 있다. (···) 밖에도 25일에는 김연자의 LP '여자의 일생' 이 트리오에서 나오며, 동경세계가요제에 참가한 혜은이의 '당신만을 사랑해' 가 빅터에서 발매될 예정.

 

조선일보, 1977. 11. 13.

 

 

 

 

 

 

 

<여자의 일생> 음반

 

1977. | 김연자 (가수)

 

1977년에 일본에서 발표한 김연자의 데뷔 음반으로 이미자의 원곡을 일본어로 다시 부를 것이다. 김연자는 일본에서 데뷔는 했지만, 7년 동안 무명이었다. 하는 수 없이 1981년 한국에 돌아와 활동하던 김연자는 1988년에 다시 일본 진출을 시도하였다. 서울올림픽 찬가인 '아침의 나라에서' 를 일본어로 개사하여 발매해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일본의 연말 가요제인 홍백가합전에도 한국 최초로 총청받았다. 그는 늘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던 것으로 유명하다.

 

 

 

 

 

 

 

 

 

 

 

 

 

 

 

 

<서울국제가요제> 음반과 대상 트로피

 

1979. | 윤항기 (가수)

 

윤항기 · 윤복희 남매가 수상한 '서울국제가요제' 음반과 트로피이다. 1974년 시작된 '한국가요제' 는 1978년부터는 '서울국제가요제' 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다. '국제' 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국적 가수가 모이는 무대였다. 여기서 수상한 '여러분' 이라는 곡은 인생의 굴곡이 있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으며, 윤항기가 폐결핵 투병생활을 하며 작곡한 곡이기도 하다.

 

 

 

 

 

 

 

 

 

 

 

 

 

'79 서울 국제가요제

 

미 · 일 · 불 등 참가, 6월 2일 세종문화회관서 개막

 

참가예정국

 

미국, 일본, 프랑스, 자유중국, 홍콩, 필리핀, 터키, 호주, 태국,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날로 성장하는 국력에 힘입어 우리나라 대중문화도 세계무대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1979. 3. 22.

 

 

 

 

 

 

 

"내게 작사가의 기회를 준 사람이고, 존경하는 사람이죠.

남편 (김희갑 작곡가)을 만난 이후 제 갊은 핑크빛이 됐어요.

괴로운 것도 없었고요."

 

ㅡ 양인자

 

 

 

 

 

 

 

'열정', '립스틱 짙게 바르고', '킬리만자로의 표범', '타타타' 작사 악보

 

1980년대 | 양인자 (작사가)

 

양인자가 직접 가사를 쓴 악보이다. 신춘문예와 드라마 작가에 도전했던 양인자에게 1985년 작곡가 김희갑이 함께 가요를 만들자고 찾아왔다. 그때 하룻밤 만에 가사를 쓴 곡이 혜은이의 '열정' 이었다. 이 곡이 인기를 얻으면서 양인자는 본격적으로 작사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양인자는 이후에도 김희갑과 함께 작업을 했는데, '킬리만자로의 표범' 처럼 길이가 20분에 달하는 실험적인 곡을 포함하여 수많은 인기곡의 가사를 써내곤 했다.

 

 

 

 

 

 

 

 

 

 

 

 

 

 

 

 

 

 

 

 

 

 

 

 

 

 

 

 

 

 

 

 

 

 

 

 

 

'혜은이 부띠끄' 원피스

 

1980년대 | 혜은이 (가수)

 

'원조 아이돌' 이라 불리던 혜은이가 잠시 활동을 쉬는 동안 옷가게 '혜은이 부띠끄' 를 차렸는데, 그때 가장 많이 팔렸던 옷이다. 혜은이가 '당신은 모르실거야' 를 부를 때 주로 입던 옷이었는데, 홍보차원에서 가게 옷을 입고 점내에 앉아 있으면 인파가 엄청 몰렸다고 한다. 이 외에도 혜은이 팬클럽 '열정' 의 회원들은 공연 티켓을 산 사람만 가질 수 있는 미공개 사진들을 모으곤 했다. 그 당시 '아이돌 포토카드' 였던 셈이었다.

 

 

 

 

 

 

 

 

 

 

 

 

 

 

 

 

 

 

 

 

 

 

 

 

 

 

 

 

 

 

 

팬들이 보내준 종이학

 

1980년대 | 전영록 (가수)

 

전영록이 대표곡 '종이학' (1982)의 인기 이후 팬들에게 선물로 받은 종이학이다. '종이학' 은 세상을 떠난 한 소녀팬의 사연을 바탕으로 만든 곡이었다. 그녀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투병 중에도 군대에 있던 전영록에게 꾸준히 편지와 종이학을 접어보내곤 했다. 곡 발매 후 수많은 소녀팬과 연인들 사이에서 종이학 접기 열풍이 불었다.

 

 

 

 

 

 

 

열정, 한국을 밝히다

 

우리는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인들을 열정적으로 응원해왔습니다. 1970년대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금메달을 따며, '우리도 할 수 있다' 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서울올림픽과 한일월드컵의 영광의 순간은 우리 사회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체육 분야를 넘어 예술, 기술 등 다방면에서 국제적으로 활약하는 한국인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이들의 열정은 한국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세계 정상에 섰던 여섯 명의 소장품을 만나봅니다.

 

 

 

 

 

 

 

문화계 '94년을 뛴다

 

독일서 갈채받는 『한국인 요정』

 

10월 고국무대 「잠자는···」서 주역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인 강수진씨가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오로라 공주 역으로 국내 팬들 앞에 첫선을 보인다. 세계 6대 발레단의 하나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는 그동안 꾸준히 국내에 낭보를 전해준 한국이 낳은 국제적인 발레리나.

 

조선일보. 1994. 1. 14.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카멜리아 레이디> 소품 초상화

 

2016. |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강수진이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공연한 <카멜리아 레이디> 무대 소품으로 쓰인 초상화이다. 발레단 단원들이 선물한 것으로, 뒷면에는 단원들 모두의 사인이 있다. 강수진은 1986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한 뒤 매일 15시간씩, 발에 굳은살이 수없이 박일 정도로 연습하였다. 그런 치열한 연습의 결과로 세계 무용계 최고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 를 수상하였다.

 

 

 

 

 

 

 

스티브 잡스와 황창규

 

2004년 애플과 회의를 끝낸 뒤 스티브 잡스에게 60나노미터 8기가 낸드플래시 웨이퍼를 선물하며 악수를 나누는 모습이다.

 

2004., 황창규

 

 

 

 

 

 

 

삼성전자 256메가 D램 첫 양산

세계 차세대 반도체 시장 선점

 

삼성전자 반도체 개발史

  256K 1M 4M 16M 64M 256M
개발시기 85.7 86.7 88.5 89.1 92.8 94.8
개발비 (억원) 11.3 235 508 617 1200 1200
선진국과 기술격차 3년 2년 6개월 동일 세계 최초 세계 최초
기억용량 신문지 2장 8장 32장 130장 520장 2100장

 

삼성전자는 특히 현재 주종을 이루는 64메가나 128메가 D램 생산라인을 그대로 활용해 256메가 D램 제품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반도체 기술의 일대 혁신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일경제, 1999. 3. 17.

 

 

 

 

The World First 21nm Process 64 Gigabit NAND Flash

 

 

 

 

256메가 디램 (오른쪽)

 

1994. |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

 

세계 최초로 신문 2천장 이상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용량으로 개발된 컴퓨터 기억장치이다. 일본과 미국이 반도체 기술을 주도하던 1990년대에 삼성전자는 1992년 64메가 디램에 이어 1994년에 256메가 디램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반도체의 집적도는 1년에 2배씩 늘어 난다는 '황의법칙' 의 시작이었다.

 

 

 

 

 

32GB SSD (왼쪽)

 

업계 최초로 32GB 용량으로 개발한 반도체를 사용한 보조기억장치이다.

 

 

 

 

 

 

 

64기가 낸드 플래시 웨이퍼

 

스마트폰과 같은 소형전자기기에 사용되는 저장매체의 시제품이다.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양정모 경기와 카퍼레이드 장면 (1976)

 

KTV

 

 

 

https://youtu.be/UWxYx-yyqpc

 

 

 

 

올림픽의 凱개 歌가

金금메달 땄다 환성 메아리

모든 국민과 더불어 慶경賀하

 

조선일보, 1976. 8. 3.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

 

1976. | 양정모 (전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

 

광복 이후 양정모가 따낸 대한민국의 첫 올림픽 금메달이다. 한국은 1948년 런던 올림픽부터 꾸준히 선수단을 파견했다. 28년만에 따낸 양정모의 첫 금메달은 국민들에게 '우리도 세계 정상에 설 수 있다' 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이후 1988년 서울에서 열린 대회에서 한국은 12개의 금메달을 따며 스포츠 강국으로 떠올랐다.

 

부산광역시체육회 국제대회기념전시관

 

 

 

 

 

 

 

 

 

 

 

 

권투 선수 홍수환

 

 

 

 

 

 

 

세계복싱협회 밴텀급 챔피언 벨트

 

1974. | 홍수환 (전 권투선수)

 

홍수환이 1974년에 밴텀급에서 따낸 최초의 챔피언 벨트이다. 홍수환은 챔피언이 된 후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라고 외쳤고, 어머니는 "그래 대한민국 만세다!" 라고 화답했다. 3년 뒤 1977년 주니어 페더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상대의 무차별 공격에 연거푸 4번 쓰러졌지만 그때마다 일어나 극적인 4전 5기 신화를 쓰기도 하였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대한민국 만세다!"

 

ㅡ 홍수환

 

 

 

 

 

 

 

WBA밴텀급 경기와 카퍼레이드 장면 (1974) | KTV

 

 

 

https://youtu.be/QCNPrPjKixw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 사인볼

 

2010. | 허정무 (전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참여했던 감독과 수석 코치, 선수에 이르기까지 대표팀 모두의 사인이 담긴 공이다. 허정무 감독은 당시 대표팀의 간절한 마음이 전부 담겨 있는 공이라 회상하였다. 남아공 월드컵은 처음으로 한국인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이 원정에서 16강에 진출한 경기였다.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 등 축구 강국이 한 조에 있어 쉽지 않은 도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룬 성취였다.

 

 

 

 

 

 

 

 

 

 

은퇴 경기 후 선물 받은 사인볼

 

2013. | 이영표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한일월드컵 4강 진출,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의 주역이었던 이영표가 은퇴경기 때 썼던 공이다. 경기 후 팀 동료들의 사인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이영표는 2002 월드컵 이후 유럽무대에 진출했고, 유럽과 남미 출신 선수들을 1 : 1로 제압할 수 있는 첫 수비수였다. 그는 개인의 화려함보다는 수비형 미드필더 혹은 측면 공격에 가담하는 윙백으로서 팀에 헌신했던 선수로 평가받는다.

 

 

 

 

 

 

 

월드컵 출전 첫 원정 16강에 진출한 한국대표팀                                                                        조선일보, 2010.

 

 

 

 

우리의 역사로 기억될 당신의 보물은 무엇일까요?

 

 

 

 

 

 

 

전시를 나가며

 

여러분의 이야기도 역사가 됩니다. 잊지 못할 이야기가 담긴 소중한 물건이 누구나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50년 뒤 역사학자가 그 물건을 발견한다면, 어떤 역사를 서술할 수 있을까요? 사소해 보였던 개인적인 물건도 우리 현대사의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

 

 

공동주최

조선일보사 발행인 홍준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장 한  수

 

 

조선일보 <나의 현대사 보물> 연재

편집국장 선우정

전문기자 김한수

문화부장 이한수

차장  신동흔 유석재 이태훈 신정선 최보윤 곽아람 허윤희 채민기

기자  남정미 김민정 백수진 윤수정 황지윤 이영관

 

 

전시기획

전시운영과  김현정 문근실 권기준 도우현 윤동희 김보미 이지혜

                    이명주 유정환 이도원 박시원 김하정 오경운

전시시공  (주)이리스공간그룹

전시영상  (주)아크나인, 훼이이, 서희

 

 

자료협조

조선일보, 가천대학교, 가천박물관, 색주문학관,

국가기록원, 극동방송,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박물관, 박서보재단,

반기문재단, 부산광역시체육회 국제대회기념전시관,

삼성출판박물관, 서울대학교박물관,

서울대학교 둥앙도서관, 영인문학관,

출판도시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한국정책방송원 (K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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