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회 중국은 한국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인가? (1)
2017년 12월 27일 방송
이춘근
Lee Choon Kun
중국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2017. 12. 13
"중국이 우리나라에 의미하는 것은?"
월간조선 2017년 12월(통권 453호)
對中 굴욕외교
이춘근의 전쟁과 평화 〈2〉 중국은 한국에 어떤 나라인가?
“전쟁은 인접한 나라가 한다”
글 :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한국과 국경을 접한 나라들 중 가장 강한 나라이자 독재국가인 중국은 한국의 가장 큰 ‘잠재적 적’
⊙ 브레진스키, “미국 지원 없어질 경우 한국은 몹시 비참한 처지에 놓인 나라가 될 것, 일본과 손잡아라”
⊙ ‘힘의 정치(Power Politics)’ 관점에서 한국의 분단이 중국에 유리, 중국은 ‘전략적 동반자’ 될 수 없어
이춘근
195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텍사스대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역임. 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격동하는 동북아시아》 《현실주의국제정치학》 등 저술
지난 7월 6일 베를린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두 사람의 악수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한국의 ‘전략적 동반자’가 될 수 없다. 사진=뉴시스
2013년 1월 초, 《조선일보》 김대중 논설위원은 ‘한국인들만 모르는 세 가지’ 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시론을 썼다. 한국 사람들이 모르는 세 가지는 ‘첫째, 자기들이 얼마나 잘사는 나라인지 모르는 것 같다. 둘째, 한국이 얼마나 위험한 대치 상황에 놓여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셋째, 이웃인 중국과 일본이 얼마나 대단하고 두려운 존재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등이다.
이 글을 다시 풀이한다면 한국인들은 첫째 한국을 모르고, 둘째 북한을 모르며, 셋째 중국과 일본을 잘 모른다는 말이 된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은 ‘적(敵)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고 가르치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 국민들은 국제정세에 대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들을 거의 다 모르고 있다는 말이다. 자신(우리나라)도 모르고 적(북한)도 모른다. 더 나아가 이웃(일본과 중국)도 모른다. 국민들이 몰라도 안 되지만 국가 지도자급 인사들이 이를 모른다면 정말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역사의 여러 나라들, 특히 조선의 경우 나라를 이끌어 가던 사람들이 국제정세에 대해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수많은 침략을 당했다. 많은 여인들을 중국과 일본 등에 노리갯감으로 빼앗기기도 했고, 수많은 공물(貢物)을 바쳐야 했다. 우리나라 땅이 남들의 전쟁터가 되게도 했고,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기도 했다.
중국을 너무 모르는 한국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 다섯 번째)이 201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것은 잘못이었다. 사진=뉴시스
한국인들은 중국에 대해서 ‘국제정치학적’으로는 정말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우리나라 정부 고위 관리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과 정책은 ‘과연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가?’라고 의문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하다. 비단 현 정부 관리들뿐만 아니다. 박근혜 정권 당시에도, 혹은 그 이전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중국에 대한 인식은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중(韓中)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라고 묘사하는 말이 나왔고 박근혜 시절 ‘중국을 통해 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幻想)도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9월 3일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로서는 유일하게 중국의 전승(戰勝)기념식 퍼레이드에 참석했을 때 우리나라 언론들은 박근혜가 ‘통일을 위해 천안문 망루에 올랐다’라며 대서특필했었다.
최근 중국이 그동안 사드배치 문제를 핑계로 가했던 관광객 한국 방문 금지조치를 풀자 한국 정부와 언론은 한중관계에 훈풍이 불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 모든 경망스런 분석과 행동들은 한중관계의 깊은 곳에 내재하는 국제관계의 심층동인(深層動因, Les forces fondamentales)들을 모르는 데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중관계의 심층동인은 무엇이며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권 들의 중국에 관한 인식과 기대는 올바른 것이며 우리나라의 국가이익들을 증진시키는 데 올바르게 기여할 것인가?
‘심층동인’이라는 국제정치학적 학술용어는 프랑스적 외교사학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다. 미국 국제정치 학자들은 심층동인이라는 용어보다는 밀리유(Milieu), 즉 환경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국제정치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제정치에 매우 강하게 작용하는 깊은 영향력들을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지리적인 조건들은 국제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변치 않는 기본적이며 필수적인 고려사항이다. 이를 무시하는 어떤 외교정책도 성공할 수 없었다. 즉 국제정치를 분석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심층동인은 지정학(地政學)적 요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어떤 나라들이 전쟁을 하는가?”라고 물으면 즉각 나오는 대답은 “붙어 있는 나라들”이다. 만고불변의 정답이다. 이 질문에 대한 두 번째 정답은 “가까이 있는 나라들”이다. 실제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행해진 전쟁의 90%가 국경이 붙어 있는 나라들 사이에서 발발했던 것이고, 나머지 10%가 그렇지 않은 나라들 사이에서 발발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쟁사를 살펴보면 일본과 싸운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두는 중국과의 전쟁이었다. 청(淸)나라, 몽고 등이 왜 중국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중국은 현재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영토에 있던 나라들의 역사를 모두 중국사로 간주하고 있다. 중국은 만주를 무대로 했던 고구려를 중국으로 보고 있다. 중국 최대 검색엔진인 바이두에서 운영하는 ‘바이두 백과사전’은 시인 윤동주를 중국인이라고 소개할 지경이다.
여기서 우리가 앞으로도 영원토록 진리일 수밖에 없는 국제정치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즉 앞으로 우리나라와 전쟁을 할 가능성이 제일 높은 나라는 중국, 그 다음은 일본이라는 사실이다. 이 두 나라를 제외한 지구의 어떤 나라도 한국과 전쟁할 가능성이 없다. 한국이 필리핀, 베트남, 멕시코 등과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영(zero)이다.
중국은 잠재적 적
그래서 우리나라 국가전략의 영구불변의 원칙은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오는 ‘위협’을 가능한 한 줄이고 그들로부터 오는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가능한 한 증대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을 잘 다룰 수 있는 한 국가안보 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 있다. 역으로 우리나라 국가안보의 영원한 문제는 중국과 일본 문제인 것이다.
지정학적 고려로부터 다음과 같은 외교 및 안보정책의 ‘보편적’ 원칙이 나온다. 가까운 곳에 있는 힘이 강한 나라들은 모두 잠재적인 위협으로 생각하고 대처하는 편이 안전하다는 원칙이다. 주변에 힘이 센 나라가 여럿 있을 경우, 그중 제일 힘이 강한 나라를 ‘잠재적 적’으로 지정하고, 그다음으로 힘이 센 나라와는 가능하면 협력을 해서 가장 강한 나라의 위협에 공동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원칙이다.
최근 국제정치학이 개발한 ‘민주주의적 평화론(Democratic Peace Theory)’이란 이론은 주변에 있는 강대국들이 민주주의 국가일 경우 이들 나라를 잠재적인 적국으로 인식하고 대처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미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삼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바로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에 기반하는 것이다.
위의 원칙들을 한반도에 적용해 보자. 우리나라와 가까운 곳에 있는 강대국들은 중국과 일본이다. 이 중 현재 힘이 더 강한 나라는 중국이다. 그리고 중국은 누가 보아도 독재국가이다. 결국 국제정치 원칙에 의하면 한국은 일본과 협력해서 중국의 위협에 대처해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정책이 된다.
브레진스키의 충고
미국의 국제전략가 브레진스키. 국가안보보좌관 시절 방한, 휴전선을 돌아볼 때의 모습이다.
브레진스키 교수는 2012년 간행했던 《전략적 비전》이라는 책에서 이상과 똑같은 정책 대안을 한국에 권유한 바 있었다. 브레진스키 교수는 미국의 지원이 없어질 것을 가정할 때 한국은 몹시 비참한 처지에 놓인 나라가 될 것이라고 보고 그 경우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적 대안이 세 가지 있다고 분석했다.
하나는 중국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서 사는 것이다. 이 경우 한국은 마치 명(明)나라, 청나라 시대의 조선과 같은 꼴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일본과 힘을 합쳐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라는 제안이다. 브레진스키 교수는 과연 한국이 일본과 안보협력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懷疑的)이다.
브레진스키 교수는 세 번째 대안으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제시했다. 한국 기자가 세 가지 중 “어떤 대안이 가장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을 하자 브레진스키 교수는 서슴없이 두 번째 대안, 즉 일본과의 안보협력이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고 응답했다. 국제정치학적으로 가장 타당한 방안이다.
한국 역대 정부의 중국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은 한중관계의 심층동인과 국제정치의 기본논리를 무시하는 허황된 가정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맹수와 초식동물이 대등한 지위를 가지고 공생할 수 없듯이 국제정치 역시 강대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가 평화적으로 공생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국제정치의 심층동인을 전혀 무시한 대(對)중국 정책을 구사한다면 이는 가까운 장래에 더욱 난감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박근혜의 대중 굴종정책이 애초부터 없었다면 사드 문제로 중국이 저렇게 펄펄 뛰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에 굴종적으로 대하는 경우 표면적으로는 관계가 회복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래서 중국 관광객이 몇 명 더 한국을 찾아올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한중관계의 애달픈 본질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 물어볼 것이 있다. “사드 때문에 중국이 한국에 경제보복을 하는 기간 동안, 중국은 한국산 반도체를 하나라도 덜 사갔느냐?”라는 질문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알고 있다. 중국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건은 사드와 관계없이 한국으로부터 계속 수입하고 있었다. 피상적인 것을 보지 말고 깊은 곳에 깔려 있는 심층동인을 보자는 말이다.
중국은 한국의 전략적 동반자가 될 수 없다
6·25 때 중공군이 참전한 것은 한반도의 통일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의 국가 대전략은 어서 빨리 통일을 이룩하고 주변 강대국의 휘둘림에서 벗어나 지금보다 강한 나라가 되는 일이다. 어떤 나라를 우리나라와 ‘전략적 동반자’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가 ‘우리나라의 국가 대전략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중국이 우리나라의 대전략인 통일을 이해하고 이를 비록 소극적일지라도 지지해 준다면 우리는 중국을 ‘전략적 협력동반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한국의 통일을 지지한다는 것은 국제정치 이론상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힘의 정치(Power Politics)’로 규정되는 국제정치의 세계에서 이웃에 강한 나라가 생기는 것을 반기는 나라는 있을 수 없다.
6·25 당시 중국은 한국의 통일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를 증명해 보였다. 한국군과 유엔(UN)군이 압록강에 도발할 무렵 중국 주석 마오쩌둥(毛澤東)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멸망하고 미국의 지원을 받는 한국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마주하는 상황을 감수해야 할 것이냐를 가지고 번민했다. 마오쩌둥은 통일된 한반도를 맞이하느니 전쟁을 치르겠다고 결심했다. 100만 이상의 대병력을 인민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한반도에 투입했다. 마오쩌둥은 자신의 아들도 한국전쟁에 파병했고 아들이 전사하는 비극도 당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쟁은 휴전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고 북한은 생존을 확보하게 되었다. 마오쩌둥은 ‘순망치한(脣亡齒寒)’ 즉 입술이 떨어지면 이가 시려 살 수 없게 된다는 말로 한국전쟁에 대한 개입을 정당화시켰다. 중국 사람들은 북한을 구했다고 말하겠지만 한국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통일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후에도 북한이 휘청거릴 때마다 중국은 북한을 살려주었다.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반도의 안정이란 한반도의 현재 상황, 즉 분단 상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이 못돼 먹은 나라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의 통일보다는 한반도의 안정적 분단이 중국의 국가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한국이 통일을 이룩한다는 것은 중국에는 한국전쟁 당시보다 훨씬 막강한 나라가 이웃에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통일을 이룬 한국은 중국과의 안보경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그 경우 통일 한국은 미국과 연합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을 것이다. 중국 사람들이 무려 2500여 년 전 전국(戰國)시대의 국제정치를 보고 도출해 냈던 국제전략 이론인 원교근공(遠交近攻) 전략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진리가 아닐 수 없다.
한미동맹이 무너질 때 …
한국이 중국에 아무리 굴종적인 정책을 전개한다고 해도 중국이 한국의 통일을 지지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어도 들어줄 수 없는 이유는 지정학적으로, 그리고 ‘힘의 정치’라는 측면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중국의 국가이익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을 이해하는 한도 내에서 대 중국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우선 중국에 과다하게 굴종함으로써 중국에 ‘혹시나’ 하는 헛된 기대를 불어넣는 것은 금물이다. 중국이 혹시나 하고 기대하는 문제는 대한민국이 미국과의 동맹을 폐기하고 중국편이 되는 일일 것이다.
한국 사람들 중에 우리가 스스로 중국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한미동맹을 폐기하고 중국에 편향된 외교정책을 수립할 경우 미국이 어떻게 나오고 일본이 어떻게 나올지를 상상해 보자. 아마 우리가 중국에 경사(傾斜)되는 것을 중국조차 원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한반도마저 중국편이 되는 날 미국은 아마도 일본을 핵무장시켜 중국에 대적(對敵)하게 할 것이며, 미국은 한층 심각해진 중국의 패권(覇權) 도전에 본격적으로 대응, 중국을 와해시키기 위한 작전마저 전개할지 모른다.
현실을 직시하자. 그리고 우리나라가 중국에 편향될 경우 중국이 우리를 대등한 나라로 대해 줄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동맹국 미국에 대해 마음껏 반미(反美) 데모를 하고 맞짱도 떠 왔는데 중국에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동맹국인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한국을 방문했을 시 한국 국민들 일부는 격렬한 반미 데모를 벌였다. 공산국가인 중국 사람들 중에 트럼프의 중국 방문 기간 중 한국 사람들처럼 반미 데모를 벌인 사람들이 있는지를 잘 살펴보자. 없다면 왜 그랬는지를 잘 생각해 보자.⊙
오피니언칼럼
[김대중 칼럼] 한국인들만 모르는 세 가지
개발도상국 관료들의 한국 評
'자기들이 잘산다는 사실과 위험한 대치 상황에 놓인 것, 中·日 얼마나 두려운지 몰라'
안보 무감각증 속히 고치고 당당하고 신중한 주변 외교를
김대중 칼럼니스트
입력 2013.01.07 23:30
김대중 고문
자원(資源) 외교차 개발도상국에 자주 출장을 가는 정부 관계자가 근자에 이런 말을 전해줬다. 개도국, 특히 아프리카 나라의 관료들이 "우리가 보기에는 한국이 부럽기 짝이 없을 만큼 고속 성장을 이뤘는데 정작 한국인들은 그런 인식이 없는 것 같다"며 자기들은 알고 있는데 한국인들만 모르고 있는 세 가지를 지적하더라는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첫째, 자기들이 얼마나 잘사는 나라인지 모르는 것 같다. 둘째, 한국이 얼마나 위험한 대치 상황에 놓여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셋째, 이웃인 중국과 일본이 얼마나 대단하고 두려운 존재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개도국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무서운 존재인 중국과 일본을 양쪽에 두고 있으면서 그들을 우습게 보는 국민은 한국인밖에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피식 웃음이 나오다가 다음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드는 관찰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가장 정확하고 신랄하게 표현한 것으로 우리로서는 정곡을 찔린 기분이다. 첫째는 우리가 잘 먹고 잘사는 문제, 즉 경제에 관한 것이며, 둘째는 화약고를 끼고 사는 우리의 안보 상황에 관한 것이고, 셋째는 우리가 인접 외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연 잘사는 나라인지에 관해 우리 국민 가운데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개도국 사람들의 눈에 우리가 OECD 회원국으로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의 '살 만큼 사는 나라'로 보이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잘 먹고 잘사는 것에 대한 기준은 상대적이지만 우리 스스로 10~20년 전과 비교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못산다고 불평불만하면서도 '호강에 겨워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그리 기분 나쁜 일은 아니다.
문제는 둘째의 관찰이다. 세계 사람 눈에는 우리가 아주 위험한 '동네'에 살고 있는데 정작 장본인들은 위기의식과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위험한 것에 오래 노출되거나 익숙하다 보면 누구나 그 상황에 무신경·무감각해지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는 하지만 자국의 안녕이 걸린 안보적 '위험'에 무감각하다는 것은 국가 존립에 관한 문제이며 국민 자긍에 관한 문제다.
60여년 전 국지전(6·25전쟁)으로는 유례가 드문 사상자를 내고도 아직도 '휴전' 상태에 있는 나라, 휴전선 남북으로 100만명 규모의 병력이 실전(實戰) 대치하고 있는 나라, 그들 뒤에 미국과 중국이라는 세계 최강국(G2)이 도사리고 있는 지역, 북핵의 위협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무핵(無核)의 한국, 선군(先軍) 정치로 무장한 세습 독재국가가 수시로 국지도발(천안함·연평도)을 일삼는 지역, 그리고 이런 상황에도 남쪽에 친북(親北) 또는 종북(從北)이 더욱 기승부리는 '이상한 나라', 우리는 세계인들에게 그렇게 비친 것이다.
그런데도 새 정부가 들어서는 마당에 국회가 통과시킨 예산은 정부가 요청한 것보다 3000여억원을 삭감한 것으로 국방 예산이 여러 예산 항목 중에서 가장 삭감 폭이 크다. 이것은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국방 예산이 가장 만만한 대상이라는 안일한 안보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반드시 필수적인 해군기지(제주) 하나 세우는 데 온갖 고초를 다 겪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개도국은 물론 어떤 선진국이 이해할 수 있을까? 정권마다 북한 권력자들과 '악수'를 못해 안달이면서 돈으로 '평화'를 사려는 남쪽 위정자들의 포퓰리즘에 세계 사람들이 의아심을 갖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셋째, 동북아의 역사를 잘 모르는 세계인, 특히 개도국 사람들이 한국의 대일(對日)·대중(對中) 관계를 염려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중국·일본과 몇백~몇천년에 걸친 굴욕의 역사를 경험한 한국으로서 중국과 일본을 경원하고 불신하며 민족적 거부감을 갖는 것이 때로 그들을 경멸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별 실리(實利) 없는 허장성세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미래까지 과거의 연장선상에 두는 우(愚)를 범하진 않을 것이다. 그들 자신 식민의 역사를 체험한 약소국·개도국이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늘의 강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살고 있다. 다만 그들이 우리의 대중·대일 외교를 주시하는 것은 곧 자신들의 강대국 외교의 교본으로 삼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무런 우회로나 퇴로 없이 그저 '성질 부려보는' 과시성 외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대가 바뀐 이상 우리가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일본이 우리 땅을 강점하는 따위의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섣부른 결론이 경제적 식민화와 영토 분쟁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재앙과 갈등을 불러올 수도 있다. 세계인들이 우리의 경제·안보·외교에 관심을 표시할 만큼 우리는 세계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우리만 모른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우리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김대중 칼럼] 한국인들만 모르는 세 가지
첫째, 자기들이 얼마나 잘사는 나라인지 모르는 것 같다 1
둘째, 한국이 얼마나 위험한 대치 상황에 놓여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2
셋째, 이웃인 중국과 일본이 얼마나 대단하고 두려운 존재인지 인식하지 못 하는 것 같다 3
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넷째, 우리는 미국을 알고 있는가 4
'전략적 협력 동반자'
이명박 정부시절 한중 관계
'중국을 통해 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 것'
박근혜 정부시절 한중 관계
2015. 9. 3 북경, 전승절 70주년 기념식
중국의 기념일, Victory over Japan Day (대일전승일)
오피니언칼럼
[선우정 칼럼] 명동, 한국의 쓸쓸한 자화상
중국을 잡으려다 정체성을 잃었다
중국이 빠져나간 뒤 중국말 呼客 소리만 처량하게 들린다
지금 한국이 이렇다
선우정 논설위원
입력 2017.03.22 03:12
선우정 논설위원
그제 오후 서울 명동을 몇 시간 돌아다녔다. 중국인 관광객이 끊겨 어떤지 궁금했다. 생각보다 거리는 북적였지만 가게는 한산했다. 거리를 걸으며 명동의 변질(變質)을 다시 느꼈다. 전통 맛집의 달달해진 찌개 맛을 보면서 내가 알던 명동이 사라졌다고 느낀 게 몇 년 전이다. 그땐 일본인을, 그 후엔 중국인을 잡으려다 정체성을 잃었다. 호객(呼客)하는 화장품 가게 점원의 중국말이 처량하게 들렸다.
상인만 탓할 일이 아니다. 강남에 밀려 쓸쓸하던 명동 거리에 한류 붐을 타고 일본인이 밀려들자 건물주가 임대료부터 올렸다고 한다. 중국인이 몰려들자 또 올렸다. 살아남으려면 상인들은 외국인 관광객의 기호에 맞춰 매출을 올려야 한다. 못 맞추고 못 벌면 퇴출이다. 줄 서서 기다리던 저가 화장품 업체와 대기업 프랜차이즈 식당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 경박한 경제 논리가 10년 넘게 작동했다. 그 결과가 멋과 전통이 사라진 지금의 명동이다. 세계 어떤 중심 상권에서도 볼 수 없는 퇴행적 변화라고 한다.
명동에서만 이런 논리가 작동한 게 아닌 듯하다. 한·중 밀착이 경제에서 정치로 발전해갈 때 한국과 중국인이 어울린 술자리에서 이런 건배사를 들었다. '我們齊心合力 一起打倒日本鬼子' '우리 마음과 힘을 합쳐 일본○을 함께 물리치자'는 뜻이다. 당시 두 나라 술꾼들에겐 꽤 알려진 건배사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농담 삼아 일본 친구에게 했다. 과장된 술자리 잡담이지만 그는 놀란 듯했다. "같은 민주주의 나라인데 어떻게…." 함께 미국의 동맹이니 한·일 두 나라는 우방 아니냐고 했다. 그의 순진한 반응에 내가 놀랐다.
3월2일 서울 명동 거리가 줄어든 중국 관광객으로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한국 단체 관광을 금지 조치시키면서 양국의 긴장 상태가 높아지고 있다.
10여 년 전 일본엔 그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과 북한이 축구 시합을 할 때 한국인 상당수가 북한을 응원한다고 하자 "실망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민족과 이념에 대한 한국인의 이중 정서를 전하고 그 근원에 일제의 아픈 식민지 역사가 있다고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장할 때 반응은 이랬다. "미·중 사이의 균형자라니? 한국은 미국의 동맹 아닌가?" 일본도 미국의 동맹이다. 동맹을 유지하는 이상 일본은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일본의 원칙론이 옳았던 것 같다.
지난 몇 년 동안 일본은 한국의 '중국 경사론'을 줄기차게 제기했다. 한국의 무게중심이 중국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재작년 중국 천안문에 올라갔을 때가 절정이었다. 일본은 동맹의 원칙론을 주장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한·미 관계를 이간질한다고 봤다. 국제 세미나에서 일본이 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나는 "몇 푼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통일을 위해서"라고 했다. 메아리가 없었다. 미국·일본인은 물론 중국인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통일은 한국의 고독한 문제일 뿐이다. 강대국의 게임에 끼워 넣지 말라는 투였다. 재작년 우리가 "통일을 위해 대통령이 천안문에 올라간다"고 했을 때 중국이 뒤에서 얼마나 웃었을까 생각하면 얼굴이 뜨겁다. 겉으론 간도 빼줄 듯했던 중국이다.
얼마 전 미 국무장관이 일본을 "가장 중요한 동맹국", 한국을 "중요한 파트너"라고 했다. 말로 차등을 둘 필요는 없었다. 외교적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미국에 한·일의 가치는 원래 그랬기 때문이다. 미국이 태평양 국가와 맺은 군사동맹 중 미국이 원치 않았던 유일한 동맹이 한·미 동맹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 우리의 앞선 세대가 다투고 매달려 얻어낸 동맹이란 것도, 동맹이 없었다면 중동과 같은 만성적 분쟁 지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이 동맹은 한국이 나서서 감싸고 강화해야 유지될 수 있다는 것도 모른다. 알아도 모르는 척한다.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한국의 가치를 홀로 과대평가한다. 그러다 미국이 일본과 차별하면 흥분하고 분노한다. 이게 동맹을 대하는 그동안 한국의 패턴이다.
지금 명동은 한국의 자화상이다. 중국을 잡기 위해 그들의 입맛에 맞춰 하나 둘 변해가다가 거리의 정체성을 잃었다. 중국이 떠난 뒤 돌아보니 좌표까지 잃은 거리가 됐다. 그러면서도 어떤 정치가들은 호객하는 화장품 가게 점원처럼 중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당하면서 중국이 합리적 상대라고 믿는다. 균형자 꿈에서 깨지 않는다. 한·미 동맹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마구 다룬다. 미국이 이런 한국을 변함없이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 다수는 그런 세력을 응원하고 있다. 세상은 동쪽으로 달리는데 한국만 서쪽으로 달린다. 대선이 끝난 뒤 그 역풍(逆風)을 국민 모두가 실감할지 모른다.
#선우정 칼럼
[선우정 칼럼]
재작년 우리가 "통일을 위해 대통령이 천안문에 올라간다"고 했을 때 중국이 뒤에서 얼마나 웃었을까 생각하면 얼굴이 뜨겁다. 겉으론 간도 빼줄 듯했던 중국이다.
심층동인
(深層動因, Les forces fondamentales)
국제정치를 분석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심층동인은
지정학(地政學)적 요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The War Puzzle (1993) John Vasquez
전쟁의 수수께끼
"전쟁은 붙어있는 나라가 한다"
The War Puzzle (1993) John Vasquez
90%가 국경이 붙어있는 나라들 사이에서 전쟁 발발
나머지 10%는 가까운 나라들 사이에서 전쟁 발발
The War Puzzle (1993) John Vasquez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100%
중국 & 일본과 전쟁했었다
"국가 안보의 기본 원리"
미운 나라랑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무서운 나라와 싸우는 것 !
무서운 나라란 ?
❝가까이 있는 강대국 !❞
❝가까이 있는 강대국 중에서
힘이 제일 강한 나라❞
제일 힘이 강한 나라를 '잠재적 적'으로 지정하고,
그 다음으로 힘이 센 나라와는 가능하면 협력을 해서
가장 강한 나라의 위협에 공동 대처 !가 두 번째 원칙
민주평화론 Democratic Peace Theory
민주주의 정부는 시민의 의사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고,
전쟁은 시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희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 정부에서는 전쟁이 정책으로 채택되지 않을 것
민주평화론 Democratic Peace Theory
캐나다와 멕시코가
미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삼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바로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에 기반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국가전략의 영구불변의 원칙은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오는 "위협"을 가능한 한 줄이고
그들로부터 오는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가능한 한 증대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을 잘 다룰 수 있는 한 국가안보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 있다.
역으로 우리나라 국가안보의 영원한 문제는 중국과 일본문제인 것이다.
국가 안보 노력
1. 외교적인 노력
2.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노력
https://www.youtube.com/watch?v=4Bbs8sOq6_w
'이춘근의 국제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회 美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0) | 2021.10.15 |
---|---|
20회 중국은 한국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인가? (2) (0) | 2021.10.15 |
18회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확정한 미국 : 배경과 전망 (0) | 2021.10.10 |
17회 미국의 대북한 군사작전 1단계 : 봉쇄작전 (0) | 2021.10.05 |
16회 75일 만에 다시 도발한 북한 (0) | 2021.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