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여행] 05
육조점두 (六祖點頭)
중국의 선맥 (禪脈)으로 제5조 홍인대사가 제6조 혜능 스님에게 법을 전하는 것을 표현한 그림이다. 당시 행자였던 혜능대사는 체구가 작아 방아를 찧을 때 돌을 메고 찧었는데 어느 날 글을 모르는 혜능대사가 다른 행자의 도움을 얻어 벽에 "보리 (菩提 : 깨달음)에는 본래 (本來)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아니네. 본래 (本來)한 물건 (物件)도 없는 것이어늘 어느 곳에 때와 먼지가 묻는다는 말인가"라는 게송을 붙이니 이에 홍인대사께서 방앗간의 혜능대사를 불러 밤새 금강경을 설한 후 발우와 가사를 내리고 6조로서 법통을 잇게 했다.
단비구도 (斷臂求道)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법을 전한 이가 달마조사로 중국에서는 초조이시다. 제2조인 혜가 스님께서 유명한 도인이 소림사에 오셨음을 알고 그의 제자가 되어 도를 구하겠다고 하여 찾아가셨다. 그러나 겨울날 눈이 오는 차가운 날에 애원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정도보다 저한 너의 결심을 보이라 하심에 스스로 칼로 왼쪽 팔목을 잘라 보이셨다. 이에 달마조사께서 제자로 받아들여 법을 잇게 하시니 바로 제2조 혜가스님이시다.
삼일수심 (三日修心)
선방 (禪房)에서 스님들이 참선을 하는데 장군죽비를 맞으면서 졸음을 쫓고 화두를 들고 열심히 수행을 하는 장면이다. 족자에 걸린 글 '三日修心千載寶 (삼일수심천재보), 百年貪物一朝塵 (백년탐물일조진)'은 "삼일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 탐한 재물은 하루 아침의 먼지와 같다"는 뜻이다.
정혜결사 (定慧結社)
정혜결사는 보조국사 지눌 스님께서 주창하신 선정 (禪定)과 지혜 (智慧)를 근수 (勤修)하는 결사 (結社)이다. 정혜결사는 고려중엽 극히 속화된 불교에서 현실적으로 안심입명 (安心立命)하고 구세제중 (救世濟衆)하는 '정법불교'의 복귀운동이며, 진실한 출세간의 길을 밟아 성불도생 (成佛度生)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수행불교'의 재건운동이며, 참신하고 생명있는 '민간불교' '대중불교'의 건설운동이었다. 그림은 대중들이 옛 수선사 (현 송광사)에 모인 가운데 보조국사 스님께서 정혜결사문을 낭독하시는 장면이다.
염화미소 (拈花微笑)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여러 제자와 대중이 있는 가운데서 연꽃을 들어보이자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지으셨다. 이는 이심전심으로 두 분간에 서로 마음이 통하였음을 읨하여 그로부터 법은 가섭존자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초전법률 (初轉法輪)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섣달 초 8일 새벽에 별을 보고 깨치신 후 녹야원에서 다섯비구에게 처음으로 그 법을 설하시니 이것이 초전법륜이다. 처음 설한 내용은 사성제와 팔정도이다. 사성제는 불교교의의 핵심으로 고집멸도의 네 단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괴로운 현실인식 (苦 : 고)과 괴로움의 원인 (集 : 집), 괴로움이 멸한 궁극의 지향점 (滅 : 면)과 그에 이르는 방법 (道 : 도)을 말하며 팔정도는 도성제의 8가지 바른 수행법이다.
비사리구시
송광사 3대 명물 중 하나인 '비사리구시'는 느티나무로 만든 대형 용기다. 비사리구시는 송광사 인근의 보성군 문덕면 내동리 봉갑사 근처 마을에 있던 느티나무 고목으로 18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고 전하며, 그 용량은 2,600여 리터에 달한다. 『송광사지』에 따르면 절에 큰 행사가 있을 때 밥을 짓는 곳에서 (大齋時炊飯所) 사용했다고 한다.
十牛圖 (십우도)
인간의 본성을 찾아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목동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 묘사한 것으로, 심우도 (尋牛圖) 또는 목우도 (牧牛圖)라고도 한다. 대개는 소와 소치는 동자가 등장하며 때로는 소와 스님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모두 10개의 장면으로 구성된다. 여기에서 소는 인간의 본성에, 목동은 수행자에 비유된다. 십우도를 쓴 곽암사원 (廓庵師遠, 志遠, 확암으로도 발음) 스님은 서장을 쓴 대혜종고 (大慧宗杲, 1089 ~ 1163, 75세) 스님과 연배가 비슷한 동시대인이며 그 외에 뚜렷이 알려진 바가 없다.
一. 尋牛 (심우) 소를 찾아 나서다.
본래 각춘 자기 부처, 본래면목, 진여본성을 떠난 자가 옳으니 그르니, 좋으니 나쁘니, 하는 시비분별 가운데서 심우 (心牛)를 찾아 나선다.
茫茫撥草 去追尋 (망망발초 거추심) 망망한 잡초를 헤치고 뒤쫓아 나섰는데
水闊山遙 路更深 (수활산요 노갱심) 물도 산도 아득하여 길이 더욱 깊어짐이여.
力盡神疲 無處覓 (역진신피 무처멱) 탈진하고 피로하여 찾을 길이 없던 차에
但聞楓樹 晩蟬吟 (단문풍수 만선음) 저문날 매미 소리만 단풍 숲에서 들리네.
二. 見跡 (견적) 소의 발자국을 보다.
선지식의 법문을 새겨 듣고 소는 보지 못하나 소의 흔적인 발자국을 본다.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는 뜻이다.
水邊林下 跡偏多 (수변임하 적편다) 물가의 숲 아래에 발자국이 유독 많은데
芳草離披 見也嚰 (방초리피 견야마) 방초의 숲을 헤쳐서 어찌 찾아볼 것인가?
縱是深山 更深處 (종시심산 경심처) 설사 심산에 더 깊은 처소일지라도
遼天鼻孔 怎藏他 (요천비공 즘장타) 하늘로 향한 콧구멍 무슨 수로 숨기랴?
三. 見牛 (견우) 소를 보다.
멀리서 소를 언뜻 본다. 알음알이로 깨닫는 해오 (解悟)의 단계이다.
어떤 사람은 오해해서 진짜 깨닫는 줄 알고 기고 만장한다.
黃鶯枝上 一聲聲 (황앵지상 일성성) 나무에 앉은 꾀꼬리는 꾀꼴꾀꼴 노래하고
日暖風和 岸柳靑 (일난풍화 안류청) 강변의 푸른 버들은 봄바람에 춤추네.
只此更無 回避處 (지차갱무 회피처) 지금 이 자리에서 달리 회피할 곳이 없는데
森森頭角 畵難成 (삼삼두각 화난성) 삼삼한 소의 머리는 무슨 수로 그릴까.
四. 得牛 (득우) 소를 얻다.
소를 붙들어 얻었다.
거친 번뇌 습기를 떨치기 위해 가행 (加行) 정진을 시작한다.
渴盡精神 獲得渠 (갈진정신 획득거) 정신을 통일하여 소를 붙들었으나
沈强力壯 卒難除 (심강력장 졸난제) 제멋대로인 야성은 금방 없애기 어렵네.
時有纔到 高原上 (시유재도 고원상) 어떤 때는 높은 언덕으로 훌쩍 뛰어갔다가
又入煙雲 深處居 (우입연운 심처거) 또 다시 안개 속으로 깊이 숨어 버리네.
五. 牧牛 (목우) 소를 길들이다.
소의 코뚜레를 잡고 길들여 소가 많이 순해졌다.
심신은 수련에서 한 치를 떠나지 않는다.
鞭索時時 不離身 (편색시시 불리신) 채찍과 밧줄을 잠시도 늦출 수 않음은
恐伊縱步 入埃塵 (공이종보 입애진) 남의 밭에 들어갈까 염려한 까닭이다.
相將牧得 純和也 (상장목득 순화야) 길들여진 소가 상통하여 순환되니
鞭鎖無拘 自逐人 (편쇄무구 자축인) 채찍을 들지 않아도 절로 주인따르네.
六. 騎牛歸家 (기우귀가) 소를 타고 귀가하다.
거친 번뇌 망상의 굴레에서 벗어 난다.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간다.
騎牛迤邐 欲還家 (기우이리 욕환가) 뚜꺽 뚜꺽, 소 등에 올라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羌笛聲聲 送晩霞 (강적성성 송만하) 삘릴리 삘릴리, 목동의 피리 소리에 저녁놀은 붉게 탄다.
一拍一歌 無限意 (일박일가 무한의) 한 박자 한 노래 가락, 이 빼어난 장관을
知音何必 鼓唇牙 (지음하필 고순아) 지음 (知音)은 입을 열어서 하필 말을 하려나?
七. 忘牛存人 (망우존인) 소가 없고 사람만 남는다.
억지 수련이 아니고 물 흐름처럼 수행이 절로 절로 잘 된다.
일 없이 한가한 사람이다.
騎牛已得 到家山 (기우이득 도가산) 소를 타고 이미 고향집 뒷산에 도착하였네.
牛也空兮 人也閑 (우야공혜 인야한) 소는 벌써 없고 사람이 한가로움이여.
紅日三竿 猶作夢 (홍일삼간 유작몽) 해가 석자 높이로 떴어도 깊은 잠 꿈 속에 있고
鞭繩空頓 草堂間 (편승공돈 초당간) 외양간 채찍 밧줄은 무용지물 되었네.
八. 人牛具忘 (인우구망) 사람과 소가 모두 없다.
깨달음의 단계이다. 시작과 끝이 없다. 미세한 망상번뇌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분법 세계가 깨져 범부와 성인, 중생과 부처,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없다.
반야 지혜의 완성은 원으로 표시한다. 생멸이 사라진 불생불멸 (不生不滅)의 단계에서 조사 (祖師)의 관문 (關門)을 통과하였다.
鞭索人牛 盡屬空 (편삭인우 진속공) 채찍과 밧줄, 사람과 소가 모두 없네.
碧天遼闊 信難通 (벽천요활 신난통) 푸른 하늘이 멀고 멀어 소식 전하기 어려움이여.
紅爐焰上 爭容雪 (홍로염상 쟁용설) 벌겋게 달아오른 난로 위에 어찌 눈송이를 용납할까?
到此方能 合祖宗 (도차방능 합조종) 여기에 조사 마음과 계합하여 통하네.
九. 返本還源 (반본환원) 본래 자리로 돌아오다.
본래 청정한 자기 본심에서 눈을 뜨면 보이는 청산녹수 (靑山綠水) 모두가 바로 실상 (實相) 그대로이다. 앞서 원의 여덟 번째 단계와 이 아홉 번째 단계는 내외 (內外) 관계, 표리 (表裏) 관계이다.
返本還源 已費功 (반본환원 이비공) 본래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무척 공을 들였구나.
爭如直下 若盲聾 (쟁여직하 약맹룡) 어찌 곧바로 장님 귀머거리 됨과 같으랴.
庵中不見 庵前物 (암중불견 암전문) 암자에 살았어도 코앞의 장관을 보지 못하였네.
水自茫茫 花自紅 (수자망망 화자홍) 물이 절로 흐르고 꽃이 절로 붉은 걸.
十. 入廛垂手 (입전수수) 세상에 나아가 중생을 제도하다.
이웃과 함께 티끌 속에서 뒹굴며 자비의 손길을 뻗친다.
반야 지혜에서는 한 치도 떠나지 않는다. 보살의 중생 교화이다.
露胸跣足 入廛來 (노흉선족 입전래) 가슴을 풀어헤치고 맨발로 뛰어든 시정거리
抹土塗灰 笑滿顋 (말토도회 소만시) 흙재가 묻었어도 하하하, 환히 웃는 얼굴.
不用神仙 眞秘訣 (불용신선 진비결) 신선의 특별한 비결 같은 것은 쓰지 않아도
直敎枯木 放花開 (직교고목 방화재) 봄이면 고목 가지에 꽃이 만발하구나.
승보전
송광사 승보전 松廣寺 僧寶殿
승보사찰인 송광사를 상징하는 승보전에는 부처님 당시에 영축산에서 설법하시던 장엄한 모습을 재현하여 부처님과 10대 제자, 16나한을 비롯한 1250명의 스님을 모신 전각이다. 이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대웅전을 송광사 7차 중창 당시에 복원하면서 지어졌으나 송광사 8차 중창 때 현재의 대웅보전을 지으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