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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의 영원한 집] 07

드무2 2023. 9. 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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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의 영원한 집] 07

 

 

 

 

 

 

내면

Inner World

 

권진규는 여느 작가들처럼 자신의 얼굴을 제작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다양한 자화상 드로잉과 자소상, 자각상 등을 남겼다. 이들은 따로 모델을 구할 필요없이 작가 자신을 대상으로 그리거나 소조한 것이다. 자화상 Self-portrait은 라틴어 'protrahere' 가 어원이다. 이는 '끄집어내다, 발견하다, 밝히다' 라는 의미로, 결국 '자기 자신을 끌어내는 그림'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양미술에서 최초의 독립 자화상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 예술가의 위치가 높아지던 시대에 그려진 뒤러 (Albrecht Durer, 1471ㅡ1528)의 <엉겅퀴를 든 자화상> (1493)이다. 이후 자화상은 거의 대부분의 화가들이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이 제작됐다. 뛰어난 자화상은 집요한 자아 탐구와 자아 성찰을 통해 자신의 내면 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자소상이나 자각상도 마찬가지다. 권진규가 그린 1950년대 자화상 드로잉은 골격에 대한 그의 정확한 이해를 보여준다. 그가 자신의 모습을 마스크로 형상화한 <두상> (1958년경,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은 다른 네 작품과 함께 1958년 제4회 이치요오회 미술전람회에서 이치요오상을 수상했다. 또한 이를 자신의 대표작으로 생각해 주요 전시에 출품했으며, 1965년 신문회관 개인전 포스터 이미지로도 사용했다. 이 작품은 부드러운 인상과 그윽한 눈빛을 갖고 있는데, 그가 추종했던 부르델의 작품처럼 석고 특에서 흙을 제거할 때 생기는 선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이러한 선은 이후 자소상, 두상, 흉상에서도 지속됐다.

권진규의 자소상은 마스크, 두상, 흉상 등으로 다양한데, 이는 1970년대까지 테라코타, 나무, 석고, 건칠 등 다양한 재료로 계속 제작됐다. 테라코타의 <자소상> (1968)은 그의 대표적인 자소상으로 손꼽힐 만큼 정제된 표현, 응축된 내면세계로 서슬이 푸르다.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가운데 나온 작품이다. 또한 자신을 승려로 표현한 <가사를 걸친 자소상> (1969ㅡ70,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은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가 도달하기 원했던 구도자의 영혼을 담았다. 이러한 자소상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화를 보이는데, 이전과 달리 드로잉의 선은 무너지고, <자소상> (연도미상)과 <자소상> (1970년대>은 내적 갈등, 상실감 등을 꾹 눌러 담은 듯 고뇌에 차 있다. 이는 세 번째 개인전의 저조한 판매 실적, 그토록 바라던 동상제작과 해외전시의 무산, 건강 악화 등 그가 처한 여러 악재들 속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내면의 분출이었다. 특히 석고로 제작된 자소상 두 점은 표면을 조각 칼로 날카롭게 긁어낸 두상과 흉상으로 자코메티의 석고 작품과 닮았다. 부르델의 제자이기도 했던 자코메티는 주변인의 죽음과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극에 달한 인간의 고독한 실존을 형상화하기 위해 인체에 살을 붙이고 다시 꺾기를 거듭하여 거칠고 앙상한 형상의 조각을 제작했고, 그 시선에 생명을 담고자 했다. 권진규의 자소상은 시기 별로 그 양식과 표현에 차이가 있는데, 이는 그가 처한 사회적, 개인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내면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다만 시선은 한결같이 현실 너머 영원히 존재하는 것을 향해 있다.

 

 

 

<자소상>, 1960년대, 테라코타, 17.3 × 16 × 11.5㎝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자소상> (1960년대)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큰 눈, 꽉 다문 입술 등 이목구비가 뚜렷한 자신의 모습을 마스크로 재현한 작품이다. 일본 유학 시절부터 권진규는 자신의 얼굴을 마스크로 만들었는데, 이 작품은 이마가 넓고 뒷면이 뚫린 형태이다. 양미간을 찌푸린 표정은 작품을 제작하던 시기 겪고 있던 내적 갈등과 현실의 고통에서 벅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많은 자소상을 제작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삶이 자살로 마감되었듯이 자소상에는 이 작품처럼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세계로부터 소외된 자아에 대한 연민이나 자기혐오 등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다.

 

 

 

 

 

 

 

 

 

 

 

 

<자소상>, 1968, 테라코타, 20 × 14 × 19㎝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권진규가 제작한 자소상은 자신의 모습을 흙으로 빚은 마스크 형태의 테라코타부터 두상, 흉상 등 다양하다. <자소상> (1968)은 삭발한 머리, 강렬한 눈빛과 ㄱ큰 귀, 굳게 다문 입, 약간 앞으로 나온 턱이 1967년에 제작한 <곤스케>와 매우 흡사하다. 다만 흉상인 <곤스케>와 달리 이 <자소상>은 목이 짧은 두상이다. 또 ,곤스케>가 위로 향한 시선으로 인해 자신감에 차 있는 당당한 모습인데 비해 <자소상>은 세상을 초탈한 듯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자신을 구도자처럼 표현한 이러한 자소상은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영혼의 안식을 희구하던 내면 세계가 반영된 것이다.

 

 

 

 

 

 

 

 

 

 

 

 

 

 

 

<마스크>, 연도 미상, 알루미늄, 29 × 20 × 18㎝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마스크>는 1967년작 <자소상>처럼 뒷면이 없는 마스크 형태의 작품이다. 긴 코와 깊숙이 파인 눈, 광대뼈와 마른 턱 등 사실적인 묘사와 석고 틀의 이음새 자국을 그대로 남겨 표면을 거칠게 처리한 모습이 <자소상>과 유사하다. 권진규는 흉상 이외에도 이처럼 여러 점의 마스크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형태를 이루는 아상블라주 assemblage를 위한 작품으로 볼 수도 있고, 역으로 신체에서 부분을 파편화하여 재조립하는 시각과 촉각의 대상으로 삼은 것일 수도 있다.

 

 

 

 

 

 

 

 

 

 

 

 

서울 아틀리에 (1959. 9ㅡ1973. 5)

 

연보 (1959ㅡ1973)

1959년 (38세)  한일관계악화로 도모와 혼인신고 후 귀국

                         가세가 기울어 어머니와 성북구 동선동으로 이사해 아틀리에를 짓기 시작

1960년 (39세)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비상근 강사로 3학년 교양필수과목 조소 지도

1961년 (40세)  프랑스에서 귀국한 친척 권옥연 權玉淵 (1923ㅡ2011) 화가와 교류 시작

                         남대문 수리 (1961. 7.ㅡ1963. 3.)에 제도사로 참여 (7.ㅡ11.)

1962년 (41세)  아틀리에를 완성하고 작업과 독서에 정진

                         경복궁과 남대문의 조각 등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갖고 이를 작업에 반영 부조 시작

1963년 (42세)  덕성여자대학교 비상근 강사로 데생 실기를 지도

                         가사일을 돕기 시작한 박영희를 모델로 작품 제작

                        『조선일보』 주최, 제7회 《현대미술초대 · 공모전》 (4. 18.ㅡ30., 경복궁미술관) 초대작가로 선정, <말>을 출                          품, 조각부문 수석 首席 수상

1965년 (44세)  도모와 협의 이혼

                        수화랑 초대로 제1회 개인전 《권진규 조각전 SCULPTURE terra cotta》 (9. 1.ㅡ10., 한국신문회관)을 개최

                        개인전을 계기로 만난 여성들을 대상으로 두상과 흉상을 집중적으로 제작

                        『조선일보』 (12. 19.)에서 《천경자》, 《박수근》 유작전 등과 함께 권진규 조각전을 1965년 주요 개인전으로                          소개

1966년 (45세)  홍익대학교 조각과에서 비상근 강사로 조각 지도

                         어머니 사망

                         제10회 《현대작가초대미술전》 (9. 4.ㅡ11., 경복궁미술관) 조각부 초대작가 선정

                        『조선일보』 (9. 8.) 기사에서 권진규에 관해 이 작가 특이한 테라코타. <말>은 견실한 사실성이 확립된 검은                          마두, <휴식> <소녀상>은 황갈색의 피부면이 투철한 설화 說話를 말해준다고 평가

 

 

 

1967년 (46세)  홍익대학교 제자 장지원을 대상으로 <지원의 얼굴> (1967) 제작

1968년 (47세)  <한국조형작가회의 韓國造型作家會議> 회원 등록

                         권옥연 추천으로 일본 도쿄에서 제2회 개인전 《권진규 조각전 (테라코타)》 (7. 11.ㅡ20., 니혼바시 화랑) 개                           최

1969년 (48세)  제13회 《현대작가초대미술전》 (7. 1.ㅡ10., 국립중앙공보관) 초대작가로 선정

                        『조선일보』 (7. 29.)에서 이경성은 권진규 작품이 자기가 도달한 미 美의 세계에서 더욱 그것을 파고 들거                            나 논리화 論理化시키는 작품들에 속한다고 평가

1970년 (49세)  본격적으로 건칠 작업 시작

                         권경숙 가족이 이사해 함께 거주

1971년 (50세)  양산 통도사 수도암에서 불상 제작에 전념

                         수도여자사범학교에 비상근 강사로 근무

                         명동화랑 개관 1주기 기념 초대전으로 제3회 개인전 《권진규 TERRA COTA : 건칠》 (12. 10.ㅡ16., 명동화                           랑) 개최

                        『조선일보』 (12. 19.)에 전통적인 제작방법을 통한 조각의 새가능성을 제시했다는 기사 게재

1973년 (52세)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현대미술실에 소장할 작품으로 <마두>와 <자소상> 구입

                         5월 3일 고려대학교 박물관 현대미술실 개막식 참석

                         5월 4일 오후 아틀리에에서 자살

                         5월 6일 장례식 후 화장해 망우리공동묘지 (現망우역사문화공원)에 안장

 

 

 

 

 

 

 

 

 

 

 

 

도쿄 무사시노미술학교 (1949ㅡ1956)

 

 

새로운 조각

권진규 무사시노미술학교 武蔵野美術学校 유학시절 사진 (왼쪽)

MC 2014. 01 / I d003 / 0009. 0001,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무사시노미술학교 武蔵野美術学校 조각실에서 권진규가 《제38회 니카전 第38回 二科展》 (1953. 9. 1.ㅡ19., 도쿄도미술관 東京都美術館)에 출품하여 '특대 特待'를 수상한 석조 <기사 騎士, Knight> (1953년경), <마두 馬首 A, Horse A> (1953년경)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재촬영한 것이다.

(내용 출처 : 2015년, 2021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권진규 부인 오기노 도모 荻野トモ 사진 (오른쪽)

MC 2014. 01 / I d001 / 0015,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1953년경 권진규와 신혼시절 오기노 도모 荻野トモ를 촬영한 사진 8장 중 하나이다..

(내용 출처 :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권진규 <마두> 사진 (왼쪽)

MC 2014. 01 / I d001 / 0074,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1955년 여름 권진규가 일본 니가타 新潟 처가집에서 제작한 테라코타 <마두> 관련 사진이다.

(내용 출처 : 2018년 박형국 인터뷰.)

 

 

 

권진규 오기노 도모 부부 사진

MC 2014. 01 / I ㅇ001 / 0018,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1959년 9월 5일 권진규가 귀국한 하네다 공항 (現 도쿄국제공항) 레스토랑에서 자신의 부인인 오기노 도모와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내용 출처 : 1)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2) 《권진규》, 국립현대미술관, 2009, 313쪽.)

 

 

 

도모의 부모 (위 왼쪽)

MC 2014. 01 / I a004 / 0002,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1955년 여름 권진규가 니가타의 처가집에서 장인, 장모를 촬영한 사진이다. 왼쪽부터 장모인 오기노 이토 荻野イト, 장인인 오기노 세고 荻野成吾이다. 권진규의 장인인 세고는 권진규에게 오기노 도모의 큰 이모를 위한 공양상 제작을 의뢰하였다. 권진규는 근처 배 밭에서 나무를 구해 야마가타현 山形縣 다카스 온천에서 <여성입상 女性立象, Standing Woman> (1955)을 제작하여 처가집에 안치하였다.

(내용 및 작품정보 출처 : 1) 2015년 박형국 인터뷰, 2) 《권진규》, 국립현대미술관, 2009, 64 · 65쪽, 311쪽, 326쪽.)

 

 

 

권진규 부인 오기노 도모 사진 (위 오른쪽)

MC 2014. 01 / I d001 / 0016,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1959년 2월 권진규가 노바 NOVA 마네킹사의 채색실에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오기노 도모를 촬영한 사진이다. 도모 뒤쪽 벽에 걸려 있는 마네킹은 권진규가 제작한 것이다. 권진규는 1957ㅡ1959년까지 노바 마네킹사에서 마네킹 제작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도모도 마네킹의 얼굴 등을 그리며 마네킹 제작을 도왔다.

(내용 출처 : 1)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2) 《권진규》, 국립현대미술관, 2009, 311ㅡ312쪽.)

 

 

 

《비운의 조각가 : 권진규 회고전》 (1988. 1. 7.ㅡ2. 23. 호암갤러리) 개막식 사진첩 (아래)

MC 2014, 01 / I b002 / 0004,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비운의 조각가 : 권진규 회고전 悲運의 조각가 : 權鎭圭 회고전》 개막식 관련 사진 중 한 장으로 권진규의 일본인 부인이었던 가사이 도모 모습이 담겨 있다.

 

 

 

동등한 인체

 

 

 

 

 

 

권진규 무사시노 미술학교 유학시절 사진

MC 2014. 01 / I d003 / 0008 (위 왼쪽), MC 2014. 01 / I d003 / 1119 (위 오른쪽),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1953년경 무사시노 미술학교 유학시절 권진규를 촬영한 사진이다. MC 2014. 01 / I d003 / 0009. 0002는 무사시노 미술학교 조각실에서 촬영한 권진규 사진이다.

(내용 출처 : 2015년, 2021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나부 裸婦> (아래 왼쪽)

석고, 67 × 63.7 × 35㎝, 1953,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 자료는 등신대의 권진규 졸업작품을 촬영한 사진이다.

ⓒ (사)권진규기념사업회

 

 

 

1950년대 무사시노미술학교 석고보관실 소장

<웅크린 아프로디테 Aprodite accropie> 석고상 사진 (아래 오른쪽)

MC 2014. 01 / I a004 / 0017,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1950년대 무사시노 미술학교 석고보관실 소장 <웅크린 아프로디테 Aphrodite accroupie> (루브르미술관 소장) 석고상을 참고하여 <누드> (1954ㄴ녀경)를 제작하였다.

(내용 및 작품정보 출처 : 1)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2) 《권진규》, 국립현대미술관, 2009, 285쪽)

 

 

 

서울 아틀리에 (1959ㅡ)

동선동

 

 

 

권진규 귀국 기념 가족 사진 (위 왼쪽)

MC 2014. 01 / I d001 / 0009,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1959년 9월 5일 권진규가 자신의 귀국을 마중 나온 가족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내용 출처 : 1)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2) 2018년 권경숙 인터뷰.)

 

 

 

권진규 아틀리에 사진 (위 오른쪽)

MC 2014. 01 / I b005 / 0003,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권진규 아틀리에 주변을 촬영한 사진이다.

(내용 출처 :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권진규가 좋아한 해바라기이다.

 

 

 

권진규 아틀리에 사진 (아래 왼쪽)

MC 2014. 01 / I b005 / 0003,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권진규 아틀리에 주변을 촬영한 사진이다.

(내용 출처 :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당시 동선동 아틀리에 마당에서 내다 본 풍경이다.

 

 

 

권진규 아틀리에 사진 (아래 오른쪽)

MC 2014. 01 / I b005 / 0003,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권진규 아틀리에 주변을 촬영한 사진이다.

(내용 출처 :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서울 아틀리에 (1959ㅡ1973)

 

 

 

권진규 아틀리에 건축 사진

MC 2014. 01 / I b005 / 0001,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1962년 여름 권진규 아틀리에를 건축하는 모습을 촬영한 사 3장진이다.

(내용 출처 :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대형 기념상 제작을 위해 아틀리에 천장을 높게 지었다.

 

 

 

권진규 아틀리에 사진 (왼쪽)

MC 2014. 01 / I b005 / 0002,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권진규 아틀리에 내부를 촬영한 사진이다.

(내용 출처 :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아틀리에에서의 권진규 사진 (오른쪽)

MC 2014. 01 / I b005 / 0010,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1971년 12월 권진규가 아틀리에에서 작품 제작을 하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다. 「마이리빙 : 조각가 권진규씨」, 「주간경향」 1972년 1월호 취재 당시 촬영한 사진을 재촬영하였다.

(내용 출처 :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아틀리에에서의 권진규 사진 (왼쪽)

MC 2014. 01 / I b005 / 0006,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1969년경 아틀리에에서 권진규를 촬영한 사진이다. 권진규 뒤에는 《권진규 조각전, terra cotta SCULPTURE (權鎭圭 彫刻展, terra cotta SCULPTURE)》 (1965. 9. 1.ㅡ10., 신문회관)에 출품한 <배와 사람 舟と人 · 망향 望鄕> (1965년 이전)이 놓여 있다.

(내용 출처 : 1)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2) 《권진규 조각전》 (1965. 9. 1.ㅡ10., 신문회관) 개막식 사진 (MC 2014. 01 / I a002 / 0001))

 

 

 

 

아틀리에에서의 권진규 사진 (오른쪽)

MC 2014. 01 I a002 / 0004,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1971년 아틀리에에 있는 침실에서 권진규를 촬영한 사진이다.

(내용 출처 :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권진규 권경숙 사진 (왼쪽)

MC 2014. 01 / I d001 / 0011,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1970년대 초 권진규가 동선동 자택에서 여동생인 권경숙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내용 출처 :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권진규 아틀리에 사진 (오른쪽)

MC 2014. 01 / I b005 / 0003,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권진규 아틀리에 주변을 촬영한 사진이다.

(내용 출처 :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드로잉 북 1> (왼쪽에서 첫 번째)

1957, 종이에 혼합매체, 30.2 × 26.3㎝,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이 자료는 권진규가 1950년대에 그린 자화상 드로잉이다.

 

 

 

<두상> (왼쪽에서 두 번째)

1958년경, 테라코타, 27 × 20 × 17㎝,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박해일 기증,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왼쪽에서 세 번째)

 

 

 

 

<드로잉 북 7>

1965, 종이에 혼합매체, 26 × 35.5㎝,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이 자료는 권진규가 부조 드로잉과 함께 자신이 공감하는 책의 문장을 적어 둔 드로잉 북의 한 페이지다. 그의 작업에 대한 자세를 알 수 있다.

 

그대들의 예술을 저하시키는 것을 인정해서는 안된다. 그러할 때는 그저 못들은 척 다른 것을 배우면 된다. 그저 양보하는 듯한 시늉만 하면 된다. 그러나 절대 진정으로 양보해서는 안된다. 인생이란 완전히 처절한 투쟁인 것이다.

ㅡ Sculpture et Rodin (조각과 로댕) p. 145.

 

군중에게는 아마도 근사한 것으로 보일 것이 분명하다. 애티튜드를 보여주면 된다. 그대들의 최고 수준의 작품을 결단코 내주어서는 안된다. 이유인즉, 그렇게 할 경우 그대들은 이해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경멸당하기 때문이다.

ㅡ Bourdelle (브르델), Sculpture et Rodin (조각과 로댕) p. 145.

 

 

 

권진규 수첩 (왼쪽)

MC 2014. 01 / V b / 0001,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권진규가 1968년에 사용한 수첩을 촬영한 사진이다.

《권진규 조각전 (테라코타) 權鎭圭彫刻展 (テラコッタ)》 (1968. 7. 11.ㅡ20., 니혼바시화랑)에 출품된 작품 제작과 관련된 메모 및 드로잉, 모델 이름, 제작 일정 등이 실려 있다. 이외에도 권진규가 즐겨 감상한 클래식 제목, 지인과 제자들의 주소 및 연락처가 기록되어 있다.

(내용 출처 :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권진규 프로필 사진 (오른쪽)

MC 2014. 01 / I b005 / 0004, 0001,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1960년대 촬영한 권진규 프로필 사진이다. 1969년경 아틀리에에서 권진규이다.

(내용 출처 :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권진규 <자소상> 사진 (왼쪽)

MC 2014. 01 / I a006 / 0048,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1987년경 권진규의 여동생인 권경숙이 촬영한 <자소상> (1968) 사진이다.

(작품 정보 출처 : 2015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권진규 <남자 두상 男性頭象, Head of a Man> 사진 (가운데)

MC 2014. 01 / I a006 / 0047,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이 자료는 1987년경 권진규의 여동생인 권경숙이 권진규 아틀리에에서 <남자 두상 男性頭象, Head of a Man> (1966년경)의 사후 복제본 (브론즈)을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다.

(작품 정보 출처 : 1) 2021년 박형국 서면 인터뷰, 2) 《권진규》, 국립현대미술관, 2009, 180쪽, 328쪽.)

 

 

 

권진규 아틀리에에서 촬영한 인물상 작품 사진 (오른쪽)

MC 2014. 01 / I b005 / 0018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권진규를 찾아서

 

 

1.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권진규의 영원한 집》

2023년 6월 개관한 권진규 상설전시실로 권진규 소장작품과 아카이브를 전시하고 있다. 권진규 관련 8개 기관을 연결하여 작품과 자료를 공유하고 있다.

[08806]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2076 (남현동)

02. 598. 6245ㅡ7

 

2. (재)내셔널트러스트문화유산기금 시민문화유산 3호 권진규 아틀리에

2006년 권경숙이 아틀리에와 유품을 (재)내셔널트러스트문화유산기금에 기증한 후에 아틀리에 구조를 보강하고, 한국전통문화학교의 도움으로 유품을 보존처리한 뒤 2008년 5월부터 정기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02840]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소문로 26마길 2ㅡ15 (동선동)

02. 3675. 3401ㅡ2

 

3.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의 업적을 기리고, 한국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이다. 그의 저작권을 관리하고 있다.

eretus08@hanmail.net

 

4. 국립현대미술관

권진규 작품 (이건희 컬렉션 포함) 약 5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03062]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0 (소격동)

02. 3701. 9500

 

5.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한국 및 아시아 근 · 현대 미술의 이해와 연구를 목적으로 2013년 10월에 설립되어 미술자료의 관리 · 보존, 연구활동 지원, 미술정보 서비스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4년 (사)권진규기념사업회가 기증한 자료 4,000여건을 소장하고 있다.

[13829]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 313 (막계동)

02. 2188. 6055ㅡ6

 

6. 고려대학교 박물관 현대미술전시실

1934년 설립된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1973년 현대미술전시실을 개관하여 권진규의 조각 3점과 드로잉, 편지 등을 소정, 전시하고 있다.

[02841]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안암동)

02. 3290. 1517

 

7. 가나문화재단

1983년 개관한 가나화랑이 2014년 봄에 출범한 비영리재단으로 한국 미술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된 단체이다. 권진규의 뛰어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03004]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31길 7 (평창동)

02. 720. 1020

 

8. 망우역사문화공원

유관순, 안창호, 한용운 등 애국지사와 권진규, 이중섭 등 문화예술인들의 묘역이 있는 공원으로 역사와 문화 관련 전시 · 교육 ·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02043]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 91길 2

02. 2094. 6800ㅡ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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