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권진규의 영원한 집] 06

드무2 2023. 9. 5.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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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의 영원한 집] 06

 

 

 

 

 

 

 

 

 

연보 (1922ㅡ1948)

1922년 (1세)    4월 7일 함경남도 함흥군에서 부유한 집안의 차남으로 출생

1937년 (16세)  함흥 제1보통학교 졸업

1943년 (22세)  춘천 공립중학교 졸업

                         일본 의과대학 재학 중이던 형을 따라 도쿄 東京의 미술연구소에 입학

                         일제의 태평양전쟁 준비체제로 강제 징용

1944년 (23세)  징용에서 도망쳐 귀국, 1년간 도피 생활

1945년 (24세)  일제의 패망

                         서울 아버지 지인 댁에 거주

1947년 (26세)  이쾌대 李快大 (1913ㅡ1965)의 성북회화연구소 (1946ㅡ1950)에 입학

                         속리산 법주사 미륵대불 마무리 작업

1948년 (27세)  도쿄로 밀입국해 형을 간병

1949년 (28세)  형 사망

                         스승 이쾌대가 졸업한 무사시노미술학교 武蔵野美術學校 조각과 입학

 

 

 

도쿄 무사시노미술학교 (1949. 9ㅡ1956. 3)

 

연보 (1949ㅡ1958)

1950년 (29세)  조각 시작

                         앙투안 부르델 (Antoine Bourdelle, 1861ㅡ1929)의 제자 시미즈 다카시 淸水多嘉示 (1897ㅡ1981) 교수에                             게 사사

1951년 (30세)  석조 시작

                         3년간 불어를 공부해 부르델 원서 완독

                        후배 오기노 도모 荻野トモ를 모델로 <도모> (1951)를 제작하면서 둘이 교제

1952년 (31세)  제37회 니카전 二科展 (9. 1.ㅡ19., 도쿄도미술관)에 석조 <백주몽 白晝夢>을 출품, 입선

                        졸업작품으로 등신대의 <나부 裸婦> 제작

                        이때부터 방학 때마다 도모의 본가에서 점토작품과 불상 제작

1953년 (32세)  무사시노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하고 연구과에 남아 4년간 작품 제작

                         제38회 니카전 (9. 1.ㅡ19., 도쿄도미술관)에 석조 <기사 騎士>, <마두 馬頭 A>, <마두 B>를 출품, 특대 特                             待 수상

                         가세가 기울어 금전적 지원 중단

1954년 (33세)  제39회 니카전 (9. 1.ㅡ19., 도쿄도미술관)에 석조 <마두>, <말>을 출품, 입선

1955년 (34세)  테라코타 시작

                         제40회 니카전 (9. 1.ㅡ19., 도쿄도미술관)에 석조 <마두 A>, <마두 B>를 출품, 입선

1956년 (35세)  아버지 사망

                        《프랑스 국립부르델미술관 제공 거장 부르델 조각 회화전》 (10. 5.ㅡ11. 7., 도쿄 브리지스톤미술관) 관람

1958년 (37세)  제4회 이치요오회一陽會 미술전람회 (9. 22.ㅡ10. 10., 도쿄도미술관)에 <나부 裸婦>, 테라코타 <두상>, 테                           라코타 <두상>, <석마 石馬>, <석마> 등 5점을 출품, 이치요오상 一陽償 수상, 회우 會禹 추천

 

 

 

 

 

 

동등한 인체

Equal Body

 

권진규는 조각을 시작한 뒤로 남성상과 여성상을 많이 제작했고, 여름과 겨울방학에는 모델을 구해서 종일 나부상을 제작했다. 1953년 졸업작품으로도 등신대의 <나부>를 제작했다. 그는 석고, 돌, 나무 등 다양한 재료로 작품을 제작했지만, 끝손질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 싫어해 브론즈 작품은 거의 제작하지 않았다. 현존하는 브론즈 작품 두 점 중 하나가 <남성입상> (1953년경)이다. 남성은 팔이 없는 채로 오른 다리에 힘을 주고 왼 다리를 약간 구부려 전체적으로 완만한 S자 모양을 그리는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작은 입상이지만 부르델ㅡ시미즈로 이어지는 인체의 사실적 구조와 섬세한 근육 표현이 눈에 띈다. 그는 졸업 후에도 연구과에 남아 작품을 제작했는데 모델의 다양한 동작에서 취한 다채로운 양감과 역동적인 움직임을 반영한 여성상을 많이 만들었다. <나부> (1953ㅡ54)는 두 다리를 땅에 단단하게 딛고 서 있는 당당한 자세가 인상적이다. <여성입상> (1954)은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했는데 얼굴, 가슴, 대퇴부 등 신체 각 부분이 조금씩 틀어져 보다 인체표현이 자유롭다. 여기에 석고의 거친 질감과 어두운 채색이 눈에 띈다. 석고 소재의 <나부> (1954)는 석고실에 있던 <웅크린 아프로디테 Aphrodite accroupie> 석고상을 모본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하나의 남성상과 세 개의 여성상에서 성별과 상관없이 각 인체의 구조와 표면의 질감을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미술사가 권행가가 작성한 「스승 권진규에 대한 기억ㅡ서울대 공과대 건축과 제자 황대석의 구술」 (2022)에서도 알 수 있다. 1963년 황대석은 3학년 필수교양수업으로 권진규의 조소과목을 수강했는데, 입체감과 질감을 강조했던 스승의 영향으로 인체를 보는 시각이 달라져 얼굴 자체보다는 골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둘의 교류는 계속됐고, 황석규는 그가 브르델 다음으로 자코메티에 관심이 많았고, "자코메티의 작업과정은 결국 완벽을, 진수를 추구한 것으로 작업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황대석은 스승이 더 깊이 영적인, 철학적인 근본을 찾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는 자작시인 「예술적 藝術的 산보_노실 爐室의 천사 天使를 작업 作業하며 읊는 봄, 봄」의 시구 '진흙을 씌워서 나의 노실 爐室에 화장 火葬하면 그 어느 것은 회개승화 悔改昇華하여 천사처럼 나타나는 실존 實存을 나는 어루만진다' 와도 상통한다. 그는 1968년 일본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소품의 여성상을 많이 만들었는데, 이는 기노우치 요시 木内克 (1892ㅡ1977) 여성상과 크기나 포즈에 있어 유사하다. 기노우치는 부르델의 제자로, 부르델처럼 아르카익 조각에 매료되어 테라코타 기법을 습득하여 평생을 작은 크기의 소박하고 유연하며 역동적인 나부상, 고양이상 등을 제작했다. 그러나 기노우치를 비롯해 당시 일본 조각가들이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강조한 관능적인 여성상을 제작,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을 대상화했다면, 그는 인체의 다양한 움직임과 생명력을 강조한 강건한 여성상을 제작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권진규는 작품을 통해 구조와 본질을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남성이든 여성이든 인체상을 만드는데 있어 표현의 차이를 크게 두지 않았고, 이러한 경향은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남성입상>, 1953년경 (사후제작), 청동, 49.5 × 12 × 11㎝

권경숙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남성입상>은 권진규가 일본 유학시절 브론즈로 제작한 작품을 다시 브론즈로 재제작한 것으로, 1950년대 초 무사시노미술학교에서 배운 조각기법과 양식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동작은 다소 진부하지만 작가의 감정을 실은 거친 표면 처리에서 개성이 엿보인다. 특히 고개를 숙이고 사색에 잠겨 있는 표정과 매너리즘 회화처럼 길게 변형시킨 인체가 작가의 고독한 내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두 팔을 생략하고, 머리는 작고 단순하게 처리해 수직적인 상승감이 고조되고 있다. 비록 습작기의 작품이지만 인체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나부>, 1953ㅡ54, 석고에 채색, 70 × 22.5 × 15㎝

권경숙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나부> (1953ㅡ54)는 뒤로 올린 머리를 하고 두 손을 자연스레 내려뜨려 선 여성 나상이다. 두 발을 벌려 서고 몸의 중심을 왼쪽에 주어서 인체 오른쪽 어깨가 올라가고, 왼쪽 다리가 수직에 가깝게 자리 잡았다. 쇄골의 높이 또한 미세하게 다르고 복근과 대퇴부로 이어지는 근육이 드러나 있다. 이러한 자세의 의해 달라진 높이의 견갑골, 왼쪽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는 표현 등이 권진규가 충실하게 인체를 묘사하는데 진력하였음을 보여준다. 재료는 석고에 어두운 채색을 올려 테라코타나 금속성의 브론즈 느낌이 나지만, 권진규가 흙으로 형태를 만들었을 때의 기법을 잘 보여준다. 얼굴은 눈, 코, 입 부분이 거칠게 조각도로 표현한 듯이 자리잡았다. 표면 전체에 작은 흙 알갱이를 붙이고 이를 펴서 바른 흔적이 작가의 손자국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작품 전면에 나타나는 거칠면서도 표현적인 표피는 그의 작품 전체의 특징 중 하나이다.

 

 

 

 

 

 

 

 

 

<여성입상>, 1954, 석고에 채색, 58.4 × 14 × 14.6㎝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여성입상> (1954)은 머리를 뒤로 올린 여성 나상으로 두 손을 뒤로 돌려 엉덩이 부분에서 손바닥을 겹치고 있다. 두 다리는 벌려 서고 왼쪽 다리를 조금 앞으로 디뎌서 무게 중심이 오른쪽으로 쏠려 있다. 전면의 쇄골의 개방과 목덜미의 긴잔 그리고 뒤로 팔을 모음으로 인하여 상체 전면부의 갈비뼈가 드러나고 척추가 들어가 보이는 상태를 표현하였다. 특히 인체의 튀어나온 부분은 크게 문질러서 면으로 보이게 하고 작은 근육의 표현이 거친 표면 아래서 드러나 보이게 하였다. 전체적인 인체의 골격과 근육을 나타낸 후에 표면의 피부 질감을 이에 밀착시켜 나타낸 것이다. 이 때문에 인체 전반이 거친 표면에도 불구하고 견고해 보인다.

 

 

 

 

 

 

 

 

 

<나부>, 1954, 석고, 33.5 × 11.3 × 17㎝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나부> (1954)는 무사시노미술학교 창고에서 찍은 사진 속에 들어 있던 <웅크린 아프로디테 Aphrodite accroupie> (원본 루브르미술관 소장) 석고상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양팔이 없고, 발 뒤꿈치를 세운 채 한쪽 무릎은 바닥에 대고 다른 한쪽 무릎을 세워 웅크리고 앉은 자세와 인체의 비례가 <웅크린 아프로디테> 석고상과 유사하다. 권진규는 이와 똑같은 자세의 나상을 1960년대 후반에도 돌과 테라코타로 제작했다. 앞쪽으로 기울어진 다소 불안정한 자세지만 어깨에서 허리 엉덩이로 이어지는 척추와 근육을 섬세하게 표현한 점과 석고로 만든 소품인 것으로 보아 인체 연구를 위해 제작한 습작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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