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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의 영원한 집] 05

드무2 2023. 9. 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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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의 영원한 집] 05

 

 

 

 

 

 

 

 

 

권진규의 영원한 집

KWON JIN KYU FOREVER HOME

 

2021년 7월 (사)권진규기념사업회와 유족은 많은 사람이  권진규의 작품을 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울시립미술관에 총 141점의 작품을 기증했습니다. 기증작품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조각, 소조, 부조, 드로잉, 유화 등으로 다양한데, 특히 1950년대 주요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2022년 미술관은 기증자의 뜻을 기리고, 권진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대규모 회고전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ㅡ노실의 천사》 (2022. 3. 24.ㅡ5. 22.)를 개최했습니다. 전시 기간 중에 (사)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공동 개최하여 기존 연구의 오류를 정정하고, 새로운 연구 결과를 냈습니다. 이어 순회전으로 《영원을 빋은, 권진규》 (2022. 8. 2.ㅡ10. 23., 광주시립미술관)를 공동 개최합니다.

 

2023년 미술관은 권진규 작고 50주기를 맞이해 벨기에영사관이었던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1층 5개의 전시실을 권진규 상설전시실로 조성합니다. 구벨기에영사관과 권진규는 굴곡진 동시대를 살아왔습니다. 대한제국은 세계열강들의 각축 속에서 주권을 지키기 위해 중립국 정책을 추진했는데, 이를 위해 벨기에와 외교적 연대를 맺고, 벨기에는 중구 회현동에 벨기에영사관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중립국화가 실패하면서, 이 건물은 광복 이후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도심재개발사업으로 관악구 남현동으로 이축되었고, 2004년에는 소유주인 우리은행이 서울시에 영구무상 임대하여,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권진규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 한일국교단절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을 어렵게 오가며 조각가로 활동했습니다. 그가 남긴 작품은 우여곡절 끝에 미술관이라는 영원한 안식처를 찾았습니다. 이제 남서울미술관과 그의 작품은 서로를 품으면서 그 존재와 의미를 강화하게 됩니다.

권진규는 성북회화연구소 (1946ㅡ1950)의 자율적 수업과 속리산 법주사 미륵대불 마무리 작업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무사시노미술학교武蔵野美術學校에 입학해 체계적으로 미술이론과 실기교육을 받으면서 뛰어난 조각가로 거듭났습니다. 그러나 빠른 성취를 뒤로하고 자기 세계를 보다 확고히 구축하고자 귀국해 서울 동선동에 손수 지은 아틀리에에서 작업에 정진했습니다. 그에게 진정한 작품은 자기 주변의 대상을 끊임없이 관찰, 연구하여 단순히 본질만을 담아낸 것이었습니다. 그가 추구한 것은 사실적인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혼, 영원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현세와 내세,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종래는 이를 무화 無化하는 작품으로 자신만의 모더니티를 구현했습니다.

"진실의 힘의 함수관계는 역사가 풀이한다." 라는 권진규의 시구처럼, 지금은 어떤 제약도 없는 동시대 미술에서 그의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다양한 해석으로 풀어낼 때입니다. 이에 미술관은 그간의 연구성과를 반영해 상설전시 《권진규의 영원한 집》을 개최합니다. 전시는 도쿄 무사시노미술학교 시기의 '새로운 조각', '오기노도모', '동등한 인체'와 서울 아틀리에 시기의 '내면', '영감', '인연', '귀의' 등 7개의 소주제에 맞는 작품과 자료로 구성되어 그의 작품세계 전체를 집약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와 함께 서울시립미술관은 남서울미술관을 통해 권진규 관련 기관을 연결하여 작품과 자료를 공유하고, 연구자들이 새로운 연구결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합니다. 상설전시는 앞으로의 연구성과물을 반영하여 정기적으로 작품과 자료를 일부 또는 전면 교체하여 변화를 줄 예정입니다. 이로써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은 권진규의 영혼이 영원히 살아 숨쉬는 집으로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오기노 도모 荻野トモ

권진규는 1950년 2학년 때 조각을 시작했다. 조각과는 학생이 소수라, 2학년부터 연구생까지 같은 아틀리에를 사용했다. 3학년 때 권진규는 같은 아틀리에에서 실기 수업을 받던 서양화과 2학년 오기노 도모에게 모델을 부탁했다. 그가 <도모> (1951)를 시작으로 추후 여러 작품을 제작하면서 둘은 자연스럽게 교제를 시작했다. 1952년부터 그는 여름이면 니가타현 新潟県 시바타 新発田에 있는 도모의 본가 근처 산장에 머물며 불상을 제작했다. 도모의 부모가 이를 니가타에 있는 나가오카 長岡 미술관에 팔 수 있도록 알선하기도 했다. 그는 생활고로 도모의 아파트에서 잠시 살기도 했고, 1954년 영화 세트 제작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까지 도모의 부업 소득으로 생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둘은 나카노 中野의 음악전문 다방에서 한 끼 식사 값의 커피를 마시며 클래식 음악을 즐기곤 했다. 1955년 여름에는 일하는 도모를 두고 혼자 시바타를 방문했는데, 그 근처 오포지 乙宝寺 주변에서 가마에 기와를 굽는 것을 보고 테라코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교내에 가마를 지어 테라코타로 작품을 제작했다. 이 시기에 그는 도모 아버지의 부탁으로 목조 공양상을 제작했고, 본인 작품으로 <보살입상> (1955)과 <나부 裸婦> (1955)를 제작했다. 1957년에는 둘이 노바 NOVA 마네킹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으나 생활은 여전히 궁핍해 밥은 거의 손수 지어먹었고, 새유젓과 말린 무로 김치를 담가 먹었다. 1959년 그는 어머니의 건강 악화와 스승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귀국을 결심했는데, 한일수교 전이라 도모의 동행은 불가능했다. 그는 훗날을 기약하며 8월에 네리마 練馬 구청에서 도모와 혼인신고를 하고 홀로 귀국했다.

귀국 후 권진규는 가세가 기울어 어머니와 성북구 동선동으로 이사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1965년까지 그의 소식이 없자 도모의 부모는 이혼서류를 보내왔고, 그가 이에 날인 해 보냄으로써 그 해 4월 이혼이 성립됐다. 14년간의 협상 끝에 이루어진 한일수교까지 불과 2개월여 남은 시점이었다. 1968년 그는 권옥연 權玉淵 (1923ㅡ2011)의 소개로 일본 니혼바시 日本橋 화랑에서 《권진규 조각전 SCULPTURE terra cotta》 (1968. 7. 10.ㅡ20.)를 개최했는데, 전시 첫날 찾아온 도모와 재회했다. 이미 재혼한 도모는 그를 보자 '바보' 하며 소리 내 울었다. 권옥연이 둘을 데리고 근처 식당으로 갔지만, 그는 거기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전시를 마치고 후배 집에서 '여자는 원래 그렇게 차가운가' 하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뒤로 그는 두 번의 짧은 결혼 생활을 했다. 그는 과묵했지만, 여동생 권경숙에게 '도모와 함께 살았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라고 속내를 보이기도 했다.

권진규 사후, 도모는 재혼한 남편과 함께 1988년 호암갤러리에서 개최된 《권진규 15주기 회고전》 개막식에 참석해 그의 작품을 관람했고,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미술관에서 개최된 《권진규》를 관람했다. 도모가 죽은 뒤, 권경숙은 일본으로 가서 그녀의 남편에게 남겨진 그의 작품을 구입해 한국에 가져왔다.

권진규에게 도모는 훌륭한 모델이었고 예술적 교감과 생계를 나누었던 동료이자 연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테라코타를 시작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그의 작품세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도모>, 1951, 테라코타에 채색 25 × 17 × 23㎝

권경숙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도모> (1951)는 일본 유학시절 만난 후배 도모를 모델로 제작한 두상이다. 권진규와 도모가 함께 찍은 사진 속 얼굴과 비교해 보면 이 작품은 비교적 도모의 모습을 충실하게 재현했음을 알 수 있다. 좌우 엄격한 대칭구도로 이루어진 이 두상에는 얼굴의 정중앙에 석고 뜨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쪼갬 볼을 꽂았던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또한 테라코타를 마치 브론즈처럼 채색한 점이 특이하다. 1959년 그가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됐다는 편지를 받고 급히 귀국하면서 이 작품은 오랫동안 도모가 소장하고 있었다. 도모가 세상을 떠난 뒤, 재혼한 그녀의 남편인 가사이 세고 河西成吾가 소장하고 있던 것을 권경숙이 구입해 찾아왔다.

 

 

 

 

 

 

 

 

 

 

 

 

<도모>, 1950년대, 테라코타, 30 × 21 × 27㎝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도모> (1950년대) 역시 권진규의 연인인 도모를 모델로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다른 상에 비해 얼굴이 길고, 단발머리 형태를 제외하고는 도모의 실제 모습과 다소 차이가 있다. 동그랗고 큰 눈과 딱딱하게 굳은 표정, 뚜렷한 이목구비는 이집트나 그리스 고졸기 조각을 연상시킨다. 머리의 형태를 최소한으로 단순화시키고, 엄격한 좌우대칭으로 이루어진 <도모>는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을 통해 영원성을 추구한 그의 조각 특징이 이 시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도모>, 1960년대 초, 테라코타, 25 × 15 × 26㎝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도모>는 권진규가 한국에 돌아와 도모를 생각하며 제작한 두상이다. 도모를 모델로 한 여러 점의 작품이 남아있는데 이 작품은 1951년 제작한 <도모>와 얼굴이 매우 닮았다. 머리를 타원형에 가깝게 기하학적으로 단순화시켰고 목 부분도 원통형으로 단순하게 표현했다. 측면과 뒷면의 모습도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단순하다. 귀가 생략되었으며, 올림머리를 표현한 듯 측면에서 보면 뒷머리가 봉긋하게 튀어나와 있다. 또한 테라코타 작업 완료 후 머리 위쪽에 흰색 석고를 발라 두상의 형태를 단순화시켰다. 엄격한 대칭 구도와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처리방식은 초상의 주인공을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이 보이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나부>, 1955, 배나무, 39.8 × 9.4 × 8㎝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나부> (1955)는 권진규가 일본에서 지내던 1955년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여성입상>, <보살입상>과 함께 목조로 제작한 작품 중 하나이다. 연인인 도모의 아버지로부터 공양상 제작을 의뢰받아 자신이 머무르던 곳 가까이에 있던 배나무 밭에서 구한 나무로 작품을 제작했다. <여성입상>이 주문받은 작품답게 잘 다듬어진 형태인 것과 달리 <나부>는 아프리카 원시조각처럼 얼굴과 머리형태가 투박하다. 왼쪽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오른쪽 다리에 무게를 두고 서 있는 콘트라포스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시선 처리 역시 엄격한 정면성을 벗어나 다리가 향하는 방향과 같은 왼쪽을 향하고 있어 동세가 자연스럽다. 나무를 새기는 과정에서 코가 떨어져 나갔지만, 조각도의 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얼굴과 구불거리는 머리 모양을 격자처럼 새긴 형태에서 일본에서 활동하던 시기의 진지한 모습이 엿보인다.

 

 

 

 

 

 

 

 

 

 

 

 

 

 

 

 

 

 

새로운 조각

New Sculpture

 

권진규 權鎭圭 (1922ㅡ1973)는 1953년 3월, 우수한 성적으로 무사시노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연구과에 남아 작품을 계속했는데, 그 해 니카회가 주최한 제38회 니카전 (9. 1.ㅡ19., 도쿄도미술관)에 말을 소재로 삼은 석조 세 점을 출품했다.

니카회는 1914년 신진작가들이 문전 文部省美術展의 서양학부에 반하여 새로운 미술의 확립을 표방하고자 결성한 일본의 재야 미술 단체이다. 이는 "유파의 여하를 불문하고 새로운 가치를 존중하고, 창작자의 제작상의 자유를 옹호하고 발탁한다."라는 취지를 바탕으로 시대의 새로운 경향을 흡수하면서 초기부터 저명한 예술가들을 배출했다.그는 당시 일본 조각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돌을 재료로 제작한 <기사 騎士> (1953)와 <마두 馬頭 B> (1953) 등으로 특대를 수상했다. <기사>는 육면체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각 면을 각기 다른 깊이와 형태로 조각해, 마치 입체파의 작품처럼 다양한 형태를 한 몸에 가진 비대칭의 작품이었다. <마두 B>는 양 옆의 모습이 비대칭이지만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작품이었다. 그의 출품작은 니카회의 설립 취지처럼 자유롭게 제작된 새로운 조각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최초로 석조와 테라코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뛰어난 기량을 가진 조각가로 학우들과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그만큼 일본 미술계에서도 빠르게 인정받았다.

권진규는 1954년 제39회 니카전 (9. 1.ㅡ19., 도쿄도미술관)에서도 석조 <마두>, <말>을 출품하여 두 점 모두 입상했는데, "곤도 다케마사의 말을 다룬 작품에는 로마네스크의 조각을 보는 듯한 소박한 매력이 있다." 라는 평가를 받았다. 서양화과 교수인 야마구치 타케오 山口長男는 『무사시노 미술』 14호 (11월 1일 발행)에서 그의 작품에 대해 "곤도 다케마사군은 아르카익하고 이질적인 표현력을 가진 사람으로, 고전적 조형에서 진실에 가깝게 표현하려고 하는 태도를 받은 형태가 아름답다. 더 한 걸음의 약진을 기대한다." 라고 말했다. 그는 1955년 제40회 니카전 (9. 1.ㅡ19.. 도쿄도미술관)에서도 역시 석조 <마두 A>, <마두 B>를 출품, 2점 모두 입선했고, 이후 1958년에는 제4회 이치요오회미술전람회 (9. 22.ㅡ10. 10., 도쿄도미술관)에 <석마> 2점을 포함해서 총 5점의 작품을 출품해 이치요오상 一陽賞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말과 연관이 많은 함흥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지냈던 권진규는 유독 말을 소재로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예로부터 말은 빠르고 오래 달리는 특성으로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존재였을 뿐 아니라 미끈한 얼굴, 아름다운 갈기, 탄탄한 근육질의 몸을 가진 매력적인 동물이었다. 따라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유물과 작품의 소재가 되어왔다. 그는 말을 석조 외에도 테라코타, 건칠, 나무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었는데, 석조는 주로 마두의 좌우가 다른 형태지만 조화롭다는 점에서, 테라코타는 마두 또는 전신을 대상으로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부터 특징만 간략히 표현한 것에 이르기까지 그 크기와 형태가 매우 풍부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말은 그의 예리한 눈과 능숙한 솜씨로 본질적인 힘을 드러내는 강건하고 생동감 넘치는 동물로 다시 태어났다.

 

 

 

<기사 騎士>, 1953, 안산암 65 × 64 × 31㎝

권경숙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기사 騎士> (1953)는 1953년 제38회 니카전에서 특대를 수상한 작품이다. 언뜻 보면 직육면체의 돌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제목처럼 말 등에 올라탄 기사의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가 정면에 보인다. 그 반대편에는 말 머리로 이어지는 기사의 팔과 다리가 묘사되어 있다. 앞쪽은 말머리, 뒤쪽은 기사의 등이 표현되어 있으며, 위에서 보면 말머리의 정수리에서 갈기를 거쳐 기사의 머리로 이어지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다섯 면이 모두 다르게 묘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른 느낌을 준다. 동물의 특징을 단순하게 표현했지만, 고부조로 묘사한 기사의 인체와 저부조인 말머리가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다. 세부 묘사를 최대한 자제한 대신 돌의 질감을 강조하여 원시성이 돋보인다.

 

 

 

 

 

 

 

 

 

 

 

 

 

 

 

 

 

 

 

 

 

 

 

 

<마두 B>, 1953, 안산암, 30 × 70 × 18㎝

권경숙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마두 B> (1953)는 1953년 제38회 니카전에서 입상한 작품이다. 권진규는 일생에 걸쳐 온갖 양식으로 말을 제작했으며, 그 제작 기법 또한 석조, 테라코타, 건칠 등으로 다양하다. 일본 유학시기 말을 소재로 한 작품은 대부분 돌로 제작했는데, 이 작품 역시 석조 작품이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원통력의 긴 콧마루와 쫑긋 세운 귀, 갈기 등 말의 특징을 잘 포착했다. 특히 절제된 표현과 안산암 특유의 풍화된 듯한 질감이 어우러져 고대 유물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그의 동물 조각은 '고졸미 古拙美' 나 '소박한 매력' 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타멜라타 (도나텔로) 모사>, 1956ㅡ57, 종이에 잉크, 28.3 × 22.5㎝

(사)권진규기념사업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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