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좋은 글 ...

[칼로 물 베기]

드무2 2023. 9. 1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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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물 베기]

 

 

 

 

 

 

칼로 물 베기

 

현순애

 

 

우리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예보는 빗나가지 않아

냉랭한 공기가 밀어 올린 전선에 천둥 번개 친다

휘모리장단으로 뼛속까지 꽂히는 물방울들

가려운 등 시원하게 긁어주던 당신은

빗발치는 한랭전선의 차가운 소나기

바닥을 알 수 없는 표정 사이

무성하게 자란 가시나무숲에서

당신은 붉으락, 나는 푸르락

읽히지 않는 먹구름 속에서 당신은 각을 세우고

뿔 움켜쥔 나는 빙점에 서 있다

 

 

얼음장 밑에서도 물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은

잡은 손 놓지 않기 때문이리

모래 둔덕에 서로의 허물 하얗게 묻어두고

갈댓잎에 울음 파랗게 매달고 가기 때문이리

비등점 향해 치닫던 세 치 혀의 어둡고 차가웠던

서로의 문장 냇물에 풀어 보면

물감 퍼지듯 서로에게 스미는 당신과 나의 사랑

칼로 다시 물 베어보면

우리의 경계는 또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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