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고종 25

[근대로 가는 길목 ③ 김옥균의 끔찍한 처형]

[근대로 가는 길목 ③ 김옥균의 끔찍한 처형] 충청남도 아산에 김옥균 무덤이 있다. 도로명 주소 또한 김옥균 호를 따서 고균길이다. 1911년 당시 아산군수였던 양자 김영진이 일본에 있던 김옥균 묘에서 머리카락을 가져와 이장한 묘다. 1894년 상하이에서 암살된 뒤 조선으로 끌려온 김옥균 시신은 4월 14일 밤 온몸을 토막내고 칼집을 내는 부관참시와 능지처참형을 받고 팔도에 뿌려졌다. 1884년 갑신정변 이후 10년째 감옥에 갇혀 있던 아버지 김병태는 아들 시신이 추가형을 받은 다음 날 천안군 감옥서에서 처형됐다. 역적이 죽은 뒤 그 시신에 처벌을 가하는 '역률 추시'는 영조 때, 가족을 연좌해 처벌하는 '노륙형'은 정조 때 법으로 금지된 형벌이었다. 법을 무시하고 복수를 완성한 고종은 "10년 동안이나..

[근대로 가는 길목 ① 내각총리대신 김홍집 살인 사건]

[근대로 가는 길목 ① 내각총리대신 김홍집 살인 사건]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에는 조선 첫 내각총리대신 김홍집 무덤이 있다. 1894년 이래 갑오개혁 정부를 이끌던 김홍집은 을미사변 (1895) 넉 달 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도주한 1896년 2월 1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육조거리에 있던 경무청에 구금됐다가 경무청 경무관 안환 (安桓)을 비롯한 고종이 보낸 경무청 순검들에게 살해됐다. 시신은 함께 살해된 농상공부대신 정병하 시신과 함께 새끼줄에 묶여 종로거리를 끌려다니다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돌팔매질을 당했다. 거리에 방치됐던 시신들은 "외국인 눈에 민망하다"는 신하들 조언에 따라 고종이 가족에게 인수시키라 명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던 조선 첫 내각총리대신 김홍집 유해는 그래서 지금 대자..

[근대로 가는 길목 ② 갑신정변 홍영식의 야만적인 죽음]

[근대로 가는 길목 ② 갑신정변 홍영식의 야만적인 죽음] 경기도 여주 문장마을에는 1884년 갑신정변 주역인 홍영식 무덤이 있다.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고 김옥균과 박영효, 서재필과 서광범은 일본으로 망명했다. 홍영식은 고종을 수행해 민비와 고종 부부 측근인 무당 진령군의 북묘 (北廟)로 갔다가 그곳에서 청나라 군사들에게 살해됐다. '승정원일기'와 '고종실록'에 따르면, 홍영식은 살해된 뒤 다시 한번 토막이 나고, 가족이 수습한 그 시신 또한 한 번 더 참시됐다. 근대를 지향했던 한 지식인에게 닥친 가장 전근대적인 죽음이었다. / 박종인 기자 근대를 꿈꾸다 두 번 죽은 홍영식, 그가 여주에 잠들어 있다 1884년 갑신정변 주역 홍영식 북촌 노론 명문가 출신 개화파 박규수에게 '근대' 배워 1881년 수신사..

[교과서에는 감춰져 있는 고종의 反근대적 친일 행각]

[교과서에는 감춰져 있는 고종의 反근대적 친일 행각]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돼 있는 동학 관련 공문서들. 맨 왼쪽은 주한일본공사관에서 보관 중이던 '일본군 철군에 반대한다'는 고종의 문서. 가운데와 오른쪽은 조선 내각총리대신 김홍집이 '동학 민란 토벌에 일본군이 필요하다'고 적은 편지. ① 옆 나라 군사로 요상한 기운을 일소하고 새 정치를 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일본군이 중도에서 철수한다면 [若中途調回] 망할 위험이 곧 다가오게 될 터이니 [危亡立至] 어찌 이런 일을 차마 할 수 있겠는가. ② 10만 일본 육군이 개선하는 날 [陸兵十萬凱旋之日] 도적 떼도 두려워 흩어지리라 [匪徒亦當望風消散] ③ 일본군을 많이 파견해달라고 거듭 요청했으나 일본공사가 신중하여 많이 파병하지 않았다. 일청전쟁이 한창이기 때문이..

[1898년 대한제국 황제 고종 외국인 용병 고용 미수 사건]

[1898년 대한제국 황제 고종 외국인 용병 고용 미수 사건] 1907년 9월 14일 영국 잡지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에 실린 대한제국 황실 사진. 제목은 ‘한국에서 벌어진 쿠데타: 신구 황제’로 돼 있지만 이 사진은 1907년 6월 11일 당시 경운궁(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린 일본군 대포 진헌식 장면이다. 일본 육군대신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이끄는 일본군은 이날 대한제국 황제 광무제에게 속사포 4문과 기관포 2문을 진헌했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러일전쟁(1904)까지 고종은 끝없이 외국 공사관으로 파천을 시도했다. 1896년 아관파천은 여덟 차례 시도 가운데 유일한 성공작이었다. 고종은 허약해진 군사력을 파천으로 극복하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심지어 대한제국 설립 후 외국인 용병 30명을..

9편 : 러시아에 속아 헤이그 밀사 파견··· 그 말로는?

9편 : 러시아에 속아 헤이그 밀사 파견··· 그 말로는? 賣國奴 고종 헤이그 밀사 이위종 "잔인한 지난 정권의 학정과 부패에 질려 있던 우리 한국인은 일본인을 희망과 공감으로 맞이했다. 우리는 일본이 부패한 관리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만민에게 정의를 구현하며 정부에 솔직한 충고를 해주리라고 믿었다. 우리는 일본이 그 기회를 활용해 한국인에게 필요한 개혁을 하리라고 믿었다." - 헤이그 밀사 대표 이위종, "한국을 위한 호소" '통감 이토는 대신들을 불러 전모를 밝히라고 닦달했다. 그 사이 "유폐 중인 황제에게는 자금이 있을 리 없다"고 판단한 고마쓰는 한성전기회사 사장인 미국인 콜브란을 만났다. 고마쓰가 물었다. "요즘도 황제에게 용돈을 주시는가." 콜브란이 대답했다. "15만 엔을 달라고 해서 ..

7편 : 단돈 30만 엔 받고 나라를 일본 군사 기지로 넘긴 고종

7편 : 단돈 30만 엔 받고 나라를 일본 군사 기지로 넘긴 고종 우리는 그 시대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 러일 전쟁과 주합루 시작의 끝 1894년 동학혁명 청일전쟁 제국주의의 급속한 침투 1904년 2월 영국 '핀치' 지 국가 위기 때마다 국가를 버리려 한 지도자 창덕궁 후원 주합루 1904년 5월 6일 구련성 전투 승전기념 파티 '그 아름다운 곳이 일본인들 환성으로 가득 찼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황제의 실정이 수치스럽게도 이 나라를 붕괴시켰다. - 윤치호 일기, 1904년 5월 6일 1904년 5월 까지 20년 전 1884년 갑신정변 10년 전 1894년 동학혁명 9년 전 1895년 왕비 민씨 암살 8년 전 1896년 아관파천 7년 전 1897년 대한제국 건국 10년 고종 - 민씨 부패..

6편 : 총 10차례! 고종의 습관성 파천행각

6편 : 총 10차례! 고종의 습관성 파천행각 1897년 10월 12일 大韓帝國 1897년 10월 12일 집을 세우다 집을 버리다 황제가 집을 버린 8관 파천(~1905) 1894년 동학혁명 청일전쟁 제국주의의 급속한 침투 구활救活을 위하여 스스로를 노비로 팔던 백성들 그 백성을 버린 군주 - 아관파천(1896년 2월) 일관 - 미관 - 영관 - 불관 - 아관 5개국 8관 파천 1. 미관파천 1차 미수 1894년 4월 27일 동학농민군에 전주성 함락 1894년 5월 1일 청나라에 병사 청병 1894년 5월 5일 청나라 군사 아산만 상륙 1894년 5월 6일 일본군 제물포 상륙 1894년 5월 15일 미국공사 존 씰, 본국 전문 "망명 문제가 이미 언급됐다.(The matter of asylum has a..

5편 : 고종황제의 끔찍한 짜르 독재, 대한제국

5편 : 고종황제의 끔찍한 짜르 독재, 대한제국 매국노 고종 우리는 그 시대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 1897년 10월 12일 大韓帝國 광무개혁 수수와 반동 "모든 끝의 원인은 시작이었다" 1873년 친정에서 황제까지 1. 군사 2. 경제 3. 독재와 폭정 4. 반동의 시작 : 갑오개혁의 좌절 독립협회와 독립문(1896년) 대한제국 1897년 10월 12일 경북궁이 아닌 덕수궁(경운궁) "혹자는 경복궁과 창덕궁 두 궁궐이 외국 공관에서 다소 멀리 떨어져 있어 의외의 변란이 발생할까 두려우니 새 궁궐을 짓지 않을 수 없다고 하기도 합니다." - '매천야록' ● 10월 1일 > 위치 선정 ● 10월 7일 > 천제 담당 사제서 설치 ● 10월 10일 > 대보단 고명 상소 ● 10월 11일 > 고종 답사 및 밤..

4편 : 갑오개혁 원위치, 개화파 도륙···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주한 국왕

4편 : 갑오개혁 원위치, 개화파 도륙···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주한 국왕 매국노 고종 우리는 그 시대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 4. 반동의 시작 : 갑오개혁의 좌절과 대한제국 賣國奴 고종 나라에만 이롭고 백성에게 해가 된다 [利於國而害於民 리어국이해어민] 1. 군사 무위영과 파괴된 진무영 2. 경제와 진영 청전(淸錢0 폐지와 우글대는 민씨들 3. 독재와 폭정 갑신정변에서 동학농만혁명까지 4. 반동의 시작 갑오개혁의 좌절과 대한제국 갑오개혁(1894~1896) 김홍집 어윤중 김홍집의 결기 "우리들은 이미 구시대 제도를 개혁한 소인小人이 되어 청직한 여론에는 죄를 지었다. 다시는 나라를 그르친 소인이 되어 후세에 죄를 지어서는 안 될 것이니 일시의 부귀만 생각하지 말고 각자가 노력하기 바란다." 이로부터 ..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