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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43

[이단 (李端)과의 이별]

[이단 (李端)과의 이별] / 일러스트 = 양진경 이단 (李端)과의 이별 고향 땅 여기저기 시든 풀잎이 뒤덮을 때 친구와의 헤어짐은 더없이 쓸쓸하였네 떠나는 길은 차가운 구름 너머로 이어지고 돌아올 땐 하필 저녁 눈이 흩날렸었지 어려서 부모 잃고 타향을 떠도는 신세 난리 통 겪는 중 우리 알게 됨이 너무 늦었네. 돌아보니 친구는 없고 애써 눈물을 감추니 이 풍진 세상 다시 만날 날은 언제일까 - 노윤 (盧綸 · 739 ~ 799년) ※ 류인 옮김, 원시 번역시와 다르게 행을 배치함 난리 통에 알게 된 친구는 얼마나 애틋할까. 이단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노윤의 시에 등장하는 난리는 중국 당나라를 뒤흔든 안녹산 (安祿山)과 사사명의 반란 (755 ~ 763년)을 뜻한다. 당대의 시인 두보 (杜甫)나 노윤의 시..

[맴돌다]

[맴돌다] 맴돌다 피그미 카멜레온은 죽을 때까지 평생 색깔을 바꾸려고 1제곱미터 안을 맴돌고 사하라 사막개미는 죽을 때까지 평생 먹이를 찾으려고 집에서 2밴 미터 안을 맴돈다 나는 죽을 때까지 평생 시를 찾으려고 몇 세제곱미터 안을 맴돌아야 하나 ㅡ 천양희 (1942 ~) 삶의 허무니 어쩌니 길게 말해 무엇하리. "너는 평생 몇 세제곱미터 안을 맴돌았니?"라고 물어보면 게임이 끝난다. 네가 아무리 잘난 척해도, 네 아무리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도 우리는 모두 맴돌다 가는 인생. 직업에 매인 사람이라면, 직장에 구속되지 않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공감할 멋진 시. 피그미 카멜레온, 사하라 사막개미 그리고 인간, 서로 다른 동물들이 색깔과 먹이와 시를 찾아 각각 1제곱미터, 2백 미터, 몇 세제곱미터 안을 맴돌다..

[곡시 (哭詩) : 탄실 김명순을 위한 진혼가]

[곡시 (哭詩) : 탄실 김명순을 위한 진혼가] 양진경 한 여자를 죽이는 일은 간단했다. 유학 중 도쿄에서 고국의 선배를 만나 데이트 중에 짐승으로 돌변한 남자가 강제로 성폭행을 한 그날 이후 여자의 모든 것은 끝이 났다. 출생부터 더러운 피를 가진 여자! (···) 뭇 남자들이 다투어 그녀를 냉소하고 (···) 식민지 문단의 남류들은 죄의식 없이 한 여성을 능멸하고 따돌렸다 (···) 아직도 여자라는 식민지에는 비명과 피눈물 멈추지 않는다 (···) ㅡ 문정희 (1947년 ~) (원시와 다르게 행을 배열함) 무거운 내용을 담았으나 활달하고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문단에서 유폐되기 전에 그이의 천성은 활달하고 밝았다. 김명순을 기리는 '곡시 哭詩'를 쓴 문정희 선생도 활달하며 여성 문제에 대해 자신의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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