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제주도

[제34회 五賢人의 날 참석차 제주여행] 30

드무2 2024. 1. 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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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 五賢人의 날 참석차 제주여행] 30

 

 

 

 

 

 

 

 

 

관노방

관아에 소속된 사내종들이 거처하던 곳으로, 그들의 복식과 생활도구들이 비치되어 있다.

 

 

 

 

 

 

 

 

 

 

 

 

 

 

 

 

 

 

 

 

 

예고

조선시대 제주도에 부과되었던 진상 (進上)의 종류로는 물선 (物膳) · 방물 (方物) · 천신 (薦新) · 약재 (藥材) 등이 있었다. 이 때 필요한 진상물품을 보관하던 장소를 예고 (禮庫) 라고 하였는데, 이 방에는 진상품인 전복 · 표고 · 미역 · 감귤 등이 진열되어 있다.

 

 

 

 

 

 

관비방

관아에 소속된 계집종들이 거처하던 곳으로, 관비의 복식과 침구류 등 생활용품을 재현하였다.

 

 

 

 

 

 

 

 

 

 

 

 

심약방

심약 (審藥)과 의생 (醫生)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심약은 조정에 바치는 약재를 심사, 감독하기 위해 중앙에서 파견된 종9품 의관원으로, 이 방에는 심약과 의생의 복식과 각종 약재류, 생활용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교방

교방은 관기 (官妓)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곳으로 관기의 복식과 간단한 악기, 생활소품 등이 진열되어 있다.

 

 

 

 

 

 

 

 

 

 

 

 

 

 

 

 

 

 

 

 

 

영리장방지 (營吏掌房址)

제주영 (濟州營)에 소속된 서리 [胥吏 : 일명 아전 (衙前)이라고 함]들이 집무 (執務)를 보거나 거처하는 방 (房)을 말한다.

『탐라영사례 (耽羅營事例)』에 의하면, 영리장방지 (營吏掌房址)는 호장 (戶長) · 이방 (吏房) · 부리방 (副吏房) · 공사호방 (公事戶房) · 심리방 (審理房) · 형방 (刑房) · 예리 (禮吏) · 도진색 (都鎭色) · 주진색 (州鎭色) 등이 거처 했던 곳으로 나타나 있다.

 

 

 

 

 

 

 

 

 

 

 

 

                                         보호수

◆ 구분 : 풍치목                                        ◆ 지정번호 : 13ㅡ1ㅡ6ㅡ37

● 수종 : 녹나무                                          ● 지정일자 : 1982. 10. 22.

● 지정 당시 수령 : 250년                           ● 소재지 : 제주시 삼도2동 54

● 수고 : 11m                                              ●  관리자 : 제주우체국장

● 나무둘레 : 2.6m

 

 

 

 

 

 

 

 

 

전기통신 최초 도입터

이곳은 1902년 제주우체사가 설치되어 제주지역에서 최초로 전신전화 업무가 시작된 곳으로서 후세에 전기통신의 역사적 사실을 길이 전하기 위해 여기에 표지석을 세운다.

 

 

 

 

 

 

星主廳址

탐라국의 전통을 이어온 성주청 (星主廳)터. 제주도는 삼국시대에 탐라 (耽羅)라는 고대국가를 형성하고 있었으나 통일신라때부터 간섭을 받으면서 탐라의 왕후에게 성주 (星主) 왕자 (王子)의 봉작이 세습되어 고려시대까지 이어졌다. 1403년 (태종 3) 성주제도가 폐지되어 조선시대에는 진무청으로 존속했다. 1910년 이곳에 제주우편수급소가 생기고 1927년 제주우편국청사가 들어섰다.

 

 

 

史蹟考證

漢拏日報 遺蹟址標石 세우기 推進委員會

 

 

 

西紀 一九九九年 十二月   日

洪淳晩 글을 짓고

金順謙 글씨 쓰다

 

 

 

 

 

 

 

 

 

제주 순례길

 

 

 

 

 

 

 

 

 

 

 

 

 

 

 

제주동문수산시장

 

 

 

 

 

 

 

 

 

의신학교 (義信學校) 터

 

 

 

의신학교 (義信學校) 터

제주도 최초의 근대적 중등교육 기관인 사립의신학교 터

 

 

 

의신학교 (義信學校) 터

▶ 1907년은 제주교육 역사의 중요한 해로서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인 사립의신학교 (제주군수 윤원구 (尹元求)가 설립)와 최초의 초등교육기관인 관립제주보통학교가 개설되었다.

▶ 학교가 들어선 자리는 조선시대 학당으로 향교 다음으로 오랜 전통을 지녔던 장수당 (藏修堂)과 그 뒤 귤림서원 (橘林書院)이 있었던 곳으로 고종 8년 (1871)에 서원철폐령 (書院撤廢令)으로 사원이 철폐되자 유림의 수양을 위해 경신재 (敬信齋)가 세워졌던 자리이기도 하다.

▶ 1907년 설림된 사립의신학교는 바로 경신재로 사용했던 건물과 31칸의 새로운 건물을 지어 개설했는데 중등교육기관으로 인가받아 초등학교 취학연령을 초과한 학도들로 충원되었다. 1910년 이곳에 제주도 최초의 근대적 중등교육기관인 공립제주농업학교가 창설되어 교지가 확대되고, 광복 후 1946년 2월에는 제주제일중학원 (오현중학교 전신), 1951년 10월 오현고등학교가 개교되는 등 제주에서 가장 유서 깊은 교학의 터전이 되었다.

▶ 학교 설립에 각 지역별로 전 가구가 모금에 동참하고 (제주군 5개면 88개리 20,505호) 독지가들에 의해 거액의 희사금이 답지했으며 유림선비들까지 합세하여 도민의 힘으로 근대적인 민립학교를 만들고자 하였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최초의 義信學校 터

제주도 최초의 근대적 중등교육기관인 사립의신학교 (義信學校) 터 1907년 윤원구 (尹元求) 제주군수가 이곳 율림서원 터에 설립하였다. 처음은 1년 과정의 중등교육을 실시하였으나 1910년에 이르러 제주공립농업학교로 재출범 3년제, 5년제로 점진 발전하였다. 뒤에 농업학교는 제주시 삼도동으로 이전하였으며 광복 후 오현중고등학교가 이곳에서 창설되기도 하였다.

 

 

 

史蹟考證

漢拏日報 遺蹟址標石 세우기 推進委員會

 

 

 

西紀 二千一年 十二月    日

洪淳晩 짓고

金順謙 쓰다

 

 

 

제주 잘도식당

 

 

 

장수당 (藏修堂) 터

 

 

 

장수당 (藏修堂) 터

조선시대 학당으로 향교 다음으로 오랜 전통을 지닌 장수당 터

 

 

 

장수당 (藏修堂) 터

▶ 장수당은 이괴 (李襘) 목사가 1660년 (현종 1) 제주성 남쪽 조선시대 판윤 고득종 (判尹 高得宗)의 구지 (舊址, 1421번지)였던 곳에 건립한 교육기관으로 조선시대 향교 다음으로 제주교육에 큰 영향을 끼쳤다.

▶ 김정 (金淨)의 충암묘 (沖菴廟)는 1578년 (선조 11) 판관 조인후 (趙仁後)가 가락천 가에 세웠는데 1667년 (현종 8) 최진남 (崔鎭南) 목사가 옮겼다.

▶ 목사 이괴가 세운 장수당은 김정, 송인수, 김상헌, 정온, 송시열 오현 선생을 모신 사 (祠)와 상현사, 향현사의 사당 (祠堂)과 재 (齋)가 되어 귤림서원 (橘林書院)으로 사액되었다. (1667년)

▶ 1871년 (고종 8) 서원철폐령에 의해 세 학당 (귤림서원, 삼천서당, 삼성재)이 훼철되기까지 약 200여 년 동안 제주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 자리잡았다.

▶ 장수당 터에는 목사 이희충 (李熙忠)이 서원 철폐 후 1875년 (고종 12) 경신재 (敬信齋)를 세워 유림 선비들이 수행과 자제들을 교육하는 장소로 삼게 하였다.

▶ 1907년 최초의 사립학교인 의신학교가 들어섰고 1910년 공립제주농업학교가 광복 후에는 오현중고교가 개교 운영되는 등 유서 깊은 교학의 터전이 되어 왔다.

▶ 이괴 목사의 장수당기 (藏修堂記)에는 "어느 날 토민인 진사 김진용 (進士 金晋鎔)이 찾아와 이 목사에게 권학 (勸學)을 위한 대책을 호소하여 장인을 부르고 재물을 모아 학사 12칸을 짓고 장수당이라는 현판을 세웠다" 라는 내용 등과 함께 장수당 설립 배경과 과정, 운영경비 마련 수학생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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