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제주도

[제34회 五賢人의 날 참석차 제주여행] 27

드무2 2023. 11. 2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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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 五賢人의 날 참석차 제주여행] 27

 

 

 

 

 

 

 

 

 

 

 

 

 

 

 

 

 

 

 

구분 개인 단체 (10인 이상)
일반 (25 ~ 64세) 1,500원 1,000원
청소년 (13 ~ 24세), 군인 (하사 이하) 800원 600원
어린이 (7 ~ 12세) 400원 300원
무료 : 유아 (6세이하), 경로 (65세 이상), 장애인, 유공자. 제주도민

 

단체 : 10인 이상

관람시간 : 09 : 00 ~ 18 : 00

매표시간 : 09 : 00 ~ 17 : 30

 

 

 

 

관람동선

 

 

 

 

守令以下皆下馬

 

 

 

 

하마비 下馬碑

하마비 (下馬碑)는 수령 (목사) 이하의 모든 사람들은 말에서 내려 걸어가게 하라는 뜻이 새겨져 있는 표지석으로 태종 13년 (1413)에 종묘와 궐문 앞에 세운 것이 시초가 되었다.

이 비석의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순조 34년 (1834) 한응호 목사가 종전에 있던 비석을 대체하여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성안 올레길 리본

 

 

 

성안 올레길 스탬프함

 

 

 

 

 

 

성안올레길 스탬프북

 

 

 

 

 

 

 

제주목 관아 버스킹

 

5회_9월 29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이것이 진정한 버스킹이다

 

늦은 오후

2018년 결성된 '늦은 오후' 밴드는 제주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제주출신 뮤지션 4명이 모여서 결성한 어쿠스틱 밴드다.

 

섬보이

섬에서 나고 자란 소년의 포근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선물한다.

 

 

 

 

 

 

6회_10월 27일 금요일, 오후 7시

 

목관아 교방의 춤과 노래

 

제주극장

 

출연 박수현, 고혜련, 이정은

 

1부 목관아 교방의 춤과 노래

2부 목관아와 신민요

 

 

 

 

 

 

관덕정 광장

주최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주관 자작나무숲

 

 

 

 

거리의 소음이 문화가 되는 순간 !

 

제주목 관아 버스킹

 

회차 일시 시각
1 5. 12 (금) 19 : 00
2 6. 30 (금) 19 : 30
3 7. 28 (금) 19 : 30
4 8. 25 (금) 19 : 30
5 9. 29 (금) 19 : 30
6 10. 27 (금) 19 : 00

 

관덕정 광장

주최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주관 자작나무숲

 

 

 

 

 

 

 

 

 

 

 

 

 

 

 

 

 

 

 

 

 

 

 

기간지주 旗竿支柱

기간지주는 깃발을 꽂는 깃대 (旗竿)의 지주 역할을 했던 돌받침 기둥이다.

기 (旗)를 매달기 위해서는 두 개의 받침대를 세우고 그 가운데 기둥을 세우는데, 이는 돌 · 쇠 · 나무 등으로 만든다.

이 기간지주는 제주목 방어사 (濟州牧 防禦使)의 황수기 (黃帥旗)를 높이 걸어 놓기 위한 깃대의 받침기둥이다.

 

 

 

 

 

 

 

 

 

 

 

 

 

 

 

 

 

 

 

 

 

 

 

 

 

 

 

 

 

 

 

 

 

 

군뢰청

죄수를 관리하는 군졸 (軍卒)이 대기하면서 업무를 관장하였던 곳으로 이형상의 「남환박물」에는 총 4칸으로 이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호적방

호적방은 호적대장을 보관하는 장소인 호적고 (戶籍庫)와는 달리 관아의 행정실무를 담당하는 서원 (書員)이 민원인들에게 준호구 (準戶口) 등의 신분증명서를 발급하던 곳이다.

 

 

 

 

 

 

 

 

 

 

 

 

 

제주목 역사관

테마 1 제주목 이야기

테마 2 제주목사 이야기

테마 3 제주읍성 이야기

 

 

 

 

 

 

 

 

 

 

 

 

 

 

 

 

 

 

 

제주목 濟州牧 이야기

 

태조 6년 (1397) 제주목이 설치되다

『증보문헌비고』 권 16, 여지고 4 군현연혁조

 

제주 도안무사 오식 등의 건의에 의해 제주목 · 정의현 · 대정현

삼읍체제로 개편되다

『조선왕조실록』 권 31, 태종 16년 5월 6일 정유조

 

 

 

 

 

 

 

제주목 관아, 재구성되다

탐라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정치 · 행정 ·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던 제주목 관아는 1434년 (세종 16) 관부의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타 없어진 뒤 바로 역사를 시작하여 그 다음해인 1435년에 206칸의 관아 건물이 세워졌으며, 조선시대 내내 증 · 개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이곳의 관아를 헐어 콘크리트 건물로 제주도청, 제주도경찰서를 설치한 뒤 이어 제주지방법원과 제주지방경찰청을 이곳에 배치함에 따라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후 1991년부터 1998년까지 4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서 크게 세 번에 걸쳐 재건되었음을 확인하였다. 1 ~ 3차에 걸친 발굴조사에서는 제주목 관아의 중심시설인 동헌지와 내아건물시설은 물론, 중대문 ㅡ 동헌지 마당으로 연결되는 중심도로가 밝혀졌다. 또한 1998년도 4차 발굴조사에서 외대문, 중대문지를 비롯하여 홍화각, 애매헌, 호고, 호적고, 우연당, 향리방, 영리장방, 성내연못, 우물 등의 시설물과 이를 둘러싼 담장지가 확인되었다.

제주목 관아는 위와 같은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초석 · 기단석 등과 『탐라순력도』 (1702)와 『탐라방영총람』 (1760) 등의 고문헌을 토대로 2002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병와선생집 甁窩先生集

이형상 李衡祥 (1653 ~ 1733)

18세기 전반

21 × 31㎝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제주목 관아) 소장

 

조선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병와 이형상의 시문집으로, 모두 18권 9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 14는 서 (序) 13편, 기 (記) 1편, 발 (跋) 2편, 상량문 (上 樑 文) 5편, 축문 (祝文) 6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서 (序) 부문 가운데는 그가 제주목사 재임 (1702. 6월 ~ 1703. 6월) 당시 남긴 『탐라순력도 (耽羅巡歷圖)』 제작에 관한 서문이 담겨져 있다.

본 서문에 의하면, 『탐라순력도』 화첩은 제주목사 이형상이 그해 가을에 제주 방어의 실태와 군민 (軍民)의 풍속을 살피기 위해 순력한 내용을 화공 (畵工) 김남길 (金南吉)에게 40도 (圖)를 그리게 하고, 오씨 노인 (吳老, 오시복)에게 글로 쓰게 해서 1703년 음력 5월 13일 (癸未年 竹日) 본인 (甁窩居士 = 李衡祥)이 서문을 넣고 첩 (帖)으로 만들어 완성하였음을 적시해 놓고 있다. 또한 제주 삼성묘 (三姓廟)와 관련된 축문이 수록되어 있다.

 

 

 

 

 

 

 

 

 

 

 

영해창수록     인조 20년 (1642년)

박성석 제주목사가 저술한 필사본이며, 숭정기원후 임오 (1642)에 간행된 책. 선조인 박충원 (仲初)이 전대목사인 조사수 (季任)의 시를 차운하여 지은 시가 수록됨.

 

 

 

 

 

 

 

이형상 목사 간찰       조선

숙종 때의 제주목사로 재적한 이형상 목사 (1653 ~ 1733)가 작성한 서간문임.

 

 

 

 

 

 

 

제주목, 설치되다

목 (牧)이란 고려 · 조선시대의 지방행정 단위로서, 지방의 중요한 지역에 설치되었다. 고려 성종 2년 (983)에는 12목, 현종 9년 (1018)에는 8목을 두었고, 태종 13년 (1413)에는 전국을 8도로 나누고 여기에 20목을 두어 각 목에는 정3품의 지방관인 목사 (牧使)를 파견하였다. 제주목과 함께 전라도에 소속된 목에는 광주목, 나주목, 능주목 (지금의 화순군)이 있었다.

이후 태종 16년 (1416) 제주목사 겸 도안무사 오식의 건의에 의해 제주의 지방행정 구역은 제주목 (濟州牧) · 정의현 (旌義縣) · 대정현 (大靜縣) 삼읍체제로 개편되었다. 시기에 따라 삼읍의 경계 및 행정구역의 범위에 다소 변화가 있었으나, 조선말기까지 이 체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 제주목의 변천

시기 연혁
상고시대 ~ 삼국시대 탐라 (탁라)국
1105년 (고려 숙종 10년) 탐라국호 폐지, 탐라군 설치
1192 ~ 1259년대 (고려 고종 년대) 탐라군을 제주로 개편
1275년 (충렬왕 원년) 탐라국으로 회복, 총관부 설치
1294년 (충렬왕 20년) 고려로 환속, 제주로 복호
1397년 (태조 6년) 제주목 설치
1416년 (태종 16년) 제주목에 정의현 · 대정현 설치
1864년 (고종 1년) 정의, 대정 양현을 군으로 승격, 전라도 관찰사 관할에 둠
1880년 (고종 17년) 다시 현으로 환원
1895년 (고종 32년) 제주목을 부로 개편, 관찰사를 둠
1906년 (광무 10년) 목사를 폐지, 군수를 둠
1910년 (융희 4년) 정의 · 대정군 제주군에 합군
1915년 5월 (일제 강점기) 군제 폐지, 도제 (島制)로 개편
1955년 9월 1일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 (1시 · 2군)
2006년 7월 이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2 행정시 · 7읍 · 5면 · 31개동)

 

 

 

 

 

 

 

 

 

 

 

 

제주목 관아, 600년 그 흔적을 찾다

발굴조사 과정에서 다수의 주초석과 '시주만호 (施主萬戶)', '목사 (牧使)', '곽지촌 (郭支村)', '천호 대승석 (千戶 大承碩)' 등의 글씨가 새겨진 기와를 비롯한 다양한 문양의 기와 (암기와 · 수키와), 막새 (암막새, 수막새)가 출토되었다. 또한 내섬 (內贍)' 이란 글씨가 새겨진 분청사기 접시편과 함께 인명 (金大尹, 金生, 大男, 막개), 관직명 (別官, 官上) 등이 글씨가 새겨진 백자도 확인되었다.

 

 

 

 

 

 

 

 

 

 

 

 

 

 

 

 

 

 

제주목사 교지 (敎旨) 광서 14년 (1888년)

송구호를 통정대부 행 제주목사로 임명하는 내용

 

 

 

 

 

 

 

 

제주목사 유서 (諭書) 광서 14년 (1888년)

송구호를 통정대부행 제주목사 겸 제주진병마사수군절제사 전라도 수군방어사로 암명하여 내린 유서로 27번째 밀부라고 적혀 있음.

 

 

 

 

탐라순력도 중 「공마봉진」

진상에 필요한 말을 제주목사가 최종적으로 점검하다.

 

 

 

 

 

 

 

 

 

 

탐라순력도 중 「제주사회」

제주목사가 참석한 가운데 활쏘기 대회를 실시하다.

 

 

 

 

 

 

 

 

 

 

 

 

 

제주목사, 부임하다

조선시대 제주도는 제주목 · 정의현 · 대정현의 1목 2현 체제로 편제되어 전라도 관찰사 (종2품)의 관할 하에 있었다. 이에 제주목에는 제주목사 (정3품), 정의 · 대정 양현에는 현감 (종6품)이 파견되었으며, 또한 목에는 목사를 보좌하는 관리로 판관 (종5품)이 두어졌다. 원칙적으로 1목 2현 모두 상위관서인 전라도 관찰사의 지휘 · 감독을 받아야 했지만, 제주도가 지리적으로 전라도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이유로 관찰사의 권한 중 일부를 제주목사에게 이양함으로써 목사는 제주목을 총괄하면서 정의현 · 대정현 지역을 감독 · 규찰해 나갔다.

제주목사는 행정적 기능 외에 군사적인 기능 수행이 강조됨에 따라 군사적 직책이 겸임되어 절제사 [만호 · 안무사 · 방어사] 등의직함을 사용하였으며, 형벌, 소송의 처리, 세금의 징수, 군마 관리, 왜구의 방어 등 제주도의 모든 행정을 집행하고 사후에 전라도 관찰사에게 1년에 2차례 보고를 행하여야 했다.

 

 

 

 

 

 

 

 

 

 

 

 

 

 

 

 

 

 

 

 

 

 

 

 

 

 

 

 

 

제주목사, 도임. 순력행차 행렬도

 

 

 

 

피상 (皮箱)

    목사의 순력에 필요한 귀중한 문서와 장부가 든 가죽 상자

 

 

 

 

※ 「나주목사의 도임 행렬 행차 재현도」 인용

(나주시 · 동신대학교 인문과학연구원, 『나주목사ㅡ도임 행렬 행차의 재현』, 1999)

 

 

 

 

둑 (纛)

    큰 수레나 군대의 대장 앞에 세우는 군기

 

 

 

 

기 (旗)

    가마나 수레를 호위하는 의장기

 

 

 

 

인 (印)

    목사의 관인

 

 

 

병부 (兵符)

    목사가 부임할 때 하사받는 표지로, 군대를 동원할 때 쓰임

 

 

 

 

교서 (敎書)

    국왕이 내리는 명령서 · 훈유서 · 선포문의 성격을 가진 문서

 

 

 

 

유서 (諭書)

    국왕이 군사권을 가진 관원에게 내리는 명령서

 

 

 

 

취타대 (吹打隊)

    왕이나 고관들의 행차에 사용되었으며, 나발 · 태평소 · 나각 · 용고 · 자바라 · 징 등으로 구성

 

 

 

 

전마군관 (前馬軍官)

    행렬의 맨 앞에 가며, 군사적 직임을 수행하는 장교급의 기마군관

 

 

 

 

나장 (羅將)

    일명 나졸이라고도 하며, 죄인을 문초할 때 매를 때리거나 귀양가는 죄인을 압송하는 일 등을 함.

 

 

 

 

 

 

 

사인교 (四人轎)

    앞뒤 각각 두 사람씩 모두 네 사람이 메는 가마 (사인교)에 타고 있는 목사

 

 

 

 

 

 

 

서자 (書者)

    소속 관청에서 여러 가지 기록을 담당하는 사람

 

 

 

 

 

 

 

도사 (都事)

    관아의 제반 사무를 주관하거나 목사를 보좌하는 관원

 

 

 

 

 

 

 

찰방 (察訪)

    역리를 포함한 역민의 관리, 역마 보급, 사신 접대 등을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

 

 

 

 

 

 

 

심약 (審藥)

    궁중에 바치는 약재를 심사 · 감독하기 위해 각 도에 파견된 관원

 

 

 

 

 

 

 

검률 (檢律)

    조선시대 병조와 지방 관아에서 형률을 판단하는 관원

 

 

 

 

 

 

 

영리 (營吏)

    조선시대 감영 · 병영 · 수영에 딸린 아전 · 육방관속

 

 

 

 

 

 

 

노자 (奴子)

    내수사와 각급방의 하인, 여기서는 관로 · 군로 (官奴 · 軍奴)

 

 

 

 

 

 

 

제주목사, 286명 제수받다

조선시대 제주목사를 역임한 이는 총 286명에 달한다. 제주목사의 임기는 2년반 (30개월)이나 일신상의 이유나 문책 등의 사유로 인해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이가 허다 하였고, 부임을 명 받았으나 오지 못했던 이도 12명이 된다. 한편 조선시대의 관리임용에 상피제 (相避制)가 적용되었기 때문에 제주출신이 제주목사로 임명될 수 없었으며, 평균 재임기간은 대략 1년 10개월 정도이다.

 

 

 

 

 

 

 

 

 

 

 

 

 

 

 

 

 

 

 

제주목사, 선정을 베풀다

중추원사 기건이 죽었다. 성품이 맑고 검소하고 고지식하여 세세한 행동도 반드시 조심하며

글읽기를 좋아하였다. ······ 또 제주목사였을 때는 백성들이 전복을 공물로 바치는 것을 괴롭게

여기니, 역시 3년 동안 전복을 먹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 권22, 세조 6년 12월 29일 신축조

 

 

'이약동이 제주목사로 있으면서 사냥할 때에 채찍 하나를 가졌었는데,

임기가 차서 돌아올 때 그 채찍을 벽 위에 걸어 두었었다. 후에 섬 (제주) 사람들이 보배처럼

간수하여 매양 목사가 도임하면 채찍을 내어 놓았다. 세월이 오래 되자 종이 먹어

부서지니 화공 (畫工)을 시켜 그 채찍이 형상을 그려 걸어 놓았다.'

 

이긍익 『연려실기술』 제6권, 성종조 고사본말 성종조의 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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