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4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박성현 지음
2011, 들녘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5654
304
박54ㄱ
집단을 벗어나 참된 개인으로 비상하라
A Miracle Called an Individual
박성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일보 편집기자, (주)고려시멘트 대표이사,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현재는 두두리(www.duduri.net)를 운영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가 있다.
프롤로그
개인의 화두
용기 있고, 담담하고, 코웃음 치고, 거침 없는 것.
그게 바로 지혜가 우리에게 바라는 모습이야.
지혜는 여자거든, 지혜는 전사(戰士)만 사랑해.
(니체, 『짜라두짜』)
1장
없애야 할 존재
'떼'에 속하고 싶은 욕심은
에고가 되고 싶은 욕심보다 훨씬 더 오래된 거야.
'떼'에 속할 때만 '양심 바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식이라면
'나(Ego)'가 될 때에는 '양심 없는 놈'이 될 수밖에 없지.
(니체, 『짜라두짜』)
"아버님은 우리 가정, 즉 당신 직계가족의 생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셨다. 그분은 항상 문중을 생각하셨고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문중 일부터 챙기셨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이라는 글이 폼 나게 걸려 있었는데, 그분에게는 '사'가 우리 가정이고, '공'이 문중이라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한마디로 '문중'을 위해 '가정'을 희생한다는 것이 그분 방식의 멸사봉공이었다. '공'은 국가나 사회나 공동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 김문수(前 경기도지사)
포드 브라운 그림, <로미오와 줄리엣>.
새의 날개처럼 활짝 뻗은 로미오의 왼팔은 집단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하는 개인의 갈망을 상징한다.
디오게네스(기원전 412~323). 쥘바스티앵르파주 그림. 디오게네스는 평생 동안 세상 사람들을 향해 통렬한 진실의 메시지를 던지며 거지로 살았다.
옛 성인들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용처럼
혹은 하늘을 뚫고 솟구치는 학처럼
세상에 매이지 않고 뜻을 펼친다고들 하지.
나도 젊은 시절엔 성인의 흉내를 냈지.
수면 위로 팔짝 뛰는 물고기였네.
그러나 지금은 집 없이 떠도는 개.
- 두보(杜甫)
떼는, 그 떼에 속한 개인이 하는 행위 이상의 것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완전히 틀린 생각이다. ······이 생각에 따르자면, 떼는 추상적 개념이며 그 자체로서는 행동 주체가 아니란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것이 바로 떼 아닌가? 떼보다 더 비겁한 개인은 존재한 바 없다. 떼의 행위는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비겁에서 나온다. ······개인이 떼 속으로 도망가서 떼의 일원이 되는 이유는 바로, 개인됨(being an individual)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함 아닌가?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비겁이 모여, 떼의 거대한 비겁으로 만들어진다.
······신약성경의 어디에 봐도 "떼를 사랑하라"는 이야기는 없다. "진실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기준은 떼에게 있느니라"라는 이야기도 없다.
- 키에르케고르, <떼는 거짓이다>에서
"자신의 생각을 떼의 생각에 허겁지겁 일치시키려는 충동은 그 사람됨이 비열하고 천박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진실이냐 아니냐는 떼가 믿는가, 믿지 않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 지오르다노 부르노(Giordano Bruno)
사람 대가리를 오륙백 개쯤 잘라내면 자유와 행복을 굳힐 수 있습니다. 마음이 약해져서 이 일을 하지 못하겠다고 인정을 보이다간 우리의 무기, 우리의 공격이 무뎌지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적들을 공격해야 합니다. 머뭇거리다간 우리의 형제들 수백만 명이 죽게 됩니다. 적들이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의 피가 냇물처럼 흐르게 됩니다. 적들은 가차없이 우리의 목을 따고 우리 아내의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낼 것입니다. 적들은 피 묻은 손으로 우리 애들의 내장을 끊어내어, 자유를 향한 우리의 목마름을 영원히 지워버릴 것입니다.
- 마라(Jean-Paul Marat), <우리는 끝났다>에서
"로마가 쳐들어오면 다 죽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로마랑 싸워야 합니까? 한 줌도 안 되는 지배세력을 위해서 싸웁니까? 저들의 아름다운 부인과 어여쁜 자식들을 위해 싸웁니까? 저들의 호화로운 저택을 위해 싸웁니까? 저들을 제거하고 그 어여쁜 여자들과 재산을 우리끼리 나눕시다. 그리고 로마랑 평화롭게 지냅시다!"
- 섹스투스(Sextus)
렘브란트(Rambrandt)의 '루크레티아의 자살'
2장
개인의 조건
군인은 많지만 전사(戰士)는 드물어!
군인은 하나 같은 군복을 입지.
군복 밑에 감춰진 영혼들이 하나 같은 영혼이 아니길!
(니체, 『짜라두짜』)
평화는 새 전쟁을 벌이기 위한 수단일 뿐.
긴 평화보다는 짧은 평화가 필요할 뿐.
나는 자네에게 일하지 말고 싸우라고 권해.
나는 자네에게 평화가 아니라 승리를 권해.
싸움이 자네의 일이 되기를!
승리가 자네의 평화가 되기를!
- 니체
국가가 없어진 곳,
그곳에서 비로소 '떼에 속하지 않는 인간'이 시작돼.
꼭 있어야만 하는 인간의 노래가 시작돼.
유니크하고 다른 음악으로대체할 수 없는 음악 같은
인간의 노래가 시작돼
- 니체
또 다른 종류의 증상은, 사람들과 어울려 번잡한 생활을 함으로써 자아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떼와 어울리고 세상의 이해관계와 시비에 함몰된 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교활한 노하우만 나날이 키워가는 상태에 있는 사람은 자아를 망각하게 된다. 자신이 신성한 존재라는 점을 잊어버리게 된다. 자아를 신뢰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고 '자아가 되는 것' 자체를 겁내게 된다. 그런 사람은 '남을 모방하는 인간'이 되는 것, 주민번호나 여권번호가 되는 것, 떼에 속한 멤버가 되는 것이 훨씬 더 쉽고 안전한 상황이라고 느낀다······ 이렇듯 자아가 잠재성을 꽃피우지 못하고 시들어버리는 상태가 되는 것은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삶의 필연성에 복종할 수 있는 능력, 혹은 자신의 특질과 한계에 복종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럴 듯한 존재로서 자리매김할지는 몰라도 결코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 채 인생을 마친다는 데 비극성이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매우 특별한 존재, 즉 필연적 존재(운명)라는 사실을 결코 깨달을 수 없다.
- 키에르케고르
짙은색 부분이 주데텐란트(Sudetenland). 1939년 10월 나치 독일에 합병되었고 그로부터 11개월 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사람을 소외시키고 피폐하게 만드는 사회이다. '그런데' 사람은 사회적 동물(zoon politikon)이다. 훌륭한 사회를 만들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야말로 인간의 행위 중에 가장 숭고한 행위이다. 또한 그러한 행위를 통하여 사람은 소외된 존재가 아니라 한 명의 당당한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변혁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 조지 루카치(Gyorgy Lukacs, 1885~1971)
머리와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용기를 내어, 너의 머리를 자유롭게 해방시켜라!
인간은 목적이다. 인간을 수단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너 자신의 도덕률을, 모든 사람의 도덕률로 승화된 보편적 기준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남들로 하여금 너를 수단으로 취급하게 내버려두지 말라. 그것은 치욕이다. 그 치욕을 용감하게 거부하는 것一그것이 바로 명예이다.
- 칸트
3장
유럽인의 족보
아, 유럽 기사도(騎士道)의 시대는 끝났다.
궤변가, 경제학자, 회계사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
유럽의 영광은 영원히 끝난 것이다.
(에드먼드 버크)
동학난
☞ 난은 난이다. 필자는 동학농민혁명, 동학농민항쟁과 같은 근사한 이름보다는 동학난이란 이름이 좋다. 동학난은 매우 온건한 개혁을 요구한 무장 반란이었다. 같은 무장 반란이라 하더라도, 중국의 태평천국은 동학난에 비교할 수 없는, 천박하고 피에 굶주린 광기였을 뿐이다.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은 광인이 이끌었던 태평천국의 난은, 약 2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떼는 거짓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던 이유는, 떼와 아무런 관계를 맺기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얻기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는 바로 떼에 의해 박해받은 것입니다. 예수는 정치집단을 만들기 원하지도 않았고 투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대신에 그는 그 자신인 존재, 즉 진실이 되고자 했습니다. 진실은 한 개인에게 자신을 관계시킵니다······ (지금 시대에는 떼가 '익명의 인간'이라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이 '익명의 인간'은 허깨비입니다······ 오, 하나님! 이런 비참한 상태를 스스로 '기독교 국가'라고 부릅니다······ 진실이 전해질 때는 오직 개인에게만 전해집니다. 개인만이 진실입니다······ 또한 진실은 추상화된 것, 환상적인 것, 비개인적인 것과는 반대됩니다. 떼는 비개인적입니다. 떼의 다른 이름인 '공중(public)' 역시 비개인적인 것일 뿐입니다. '공중'은 하나님을 매개자로 삼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곧 진실이며 매개자이기 때문에 '공중'은 원칙적으로 진실에 다가설 수 없는 것입니다······ 떼가 된다는 것, 자신의 주위로 떼를 긁어모은다는 것은 전혀 다른 삶입니다······ 떼는 폭군처럼, 한 개인을 약하고 무력한 존재로 보며 개인을 무시합니다. 떼는 세속의힘과수단을 사용하여 '개인'이라 불리는 '영원한 진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 키에르케고르, <떼는 거짓이다>. 필자는 이 글을 번역해서 미니 전자책으로 만들어 두두리(www.duduri.net)에 올려놓았다.
기독교 사상 안에 내재되어 있는 개인과 과학(진실의 공유)이라는 거대 화산은, 1415년 얀 후스의 화형에서 시작되어 1632년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의 운명적인 책 『두 개의 주요 세계관 사이의 대화(Dialogo sopra i due massimi sistemi del mondo. 이하 『디알로고』라 칭함)』의 출간에 이르기까지 약 220년 동안 분출했다. 필자는 편의상 이 시기를 '후스 220'이라고 부른다.
- 이 부분은 《시대정신》 2010년 겨울 호에 기고한 '인터넷과 지식인'이라는 글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이 글은 두두리(www.duduri.net)에서 전자책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지적 작업의 규칙
☞ 'convention'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리포트나 대학 논문을 쓸 때 지켜야 할 세세한 규칙들이다.
프로토콜
☞ 'protocol' 원래는 의전(儀典), 절차, 예의를 뜻한다. 지금은 '소통을 위한 행동, 기호, 상징의 배열 절차'를 뜻한다. 그래서 '통신 프로토콜'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식당에 갔는데 밥이 나오기 전에 먼저 후식부터 나온다면 '프로토콜'을 어긴 것이다. 자동차를 몰 때 우회전 깜박이를 켜고 좌회전을 한다면 이 역시 '프로토콜'을 어긴 것이다. 문명이 고도화될수록 프로토콜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진다. 프로토콜을 어길 경우 매우 치명적인 손해를 입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공자가 말하는 '예'를 영어로 번역한다면 가장 적합한 단어가 '프로토콜,일 것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 ~ 1642). 저스터스 서스테르만 그림. 갈릴레오는 지식을 모든 사람과 공유하려는 과학정신의상징이다.
"진실은 직업, 재산, 신분, 학벌과 아무 상관이 없다. 누구든 직접 하늘을 보고 내 책을 읽어라!"
- 갈릴레오 갈릴레이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
☞ 현대 화학의 아버지. 프랑스 혁명의 와중인 1794년 51살의 한참 나이에 목이 잘렸다.
버넷(Thomas Burnet)
☞ 지구과학의 아버지. '지구의 역사'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파스칼(Blasie Pascal)
☞ 파스칼은 흔히 철학자로만 알려져 있지만 매우 위대한 수학자이기도 했다. 특히 확률 분야를 개척했다.
오일러(Leonhard Euler)
☞ 18세기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 현대 수학의 개념들을 명쾌히 정리했을 뿐 아니라 '그래프 이론'을 개척했다. '그래프 이론'은 랜더링(randering)과 같은 분야에 쓰이는 수학이다. 즉, 복잡한 면, 입체, 망을 수학으로 표현하고 구성하는 분야이다. 오일러는 함수를 나타내는 'f(x)'와 같은 수많은 표기 방식을 정의함으로써, 수학이 하나의 거대한 '언어 체계'로 진화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젖혔다. 또한 그는 수 이론, 해석학, 집합 논리학 등에서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오일러는 무신론자였던 디드로를 다음과 같이 골려주었던 일화를 남겼다. 페테르스부르크 궁전에서 디드로와 마주친 오일러가 갑자기 엉뚱한 말을 외쳤다. "선생님! n분의 a플러스b의 n승은 x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합니다. 자, 반박해보십시오!" 순진한 디드로는 수학이라고는 조금도 몰랐기 때문에 몹시 당황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오일러는 디드로에게 "이곳, 페테르스부르크 궁전의 사람들은 무신론자를 싫어합니다. 프랑스로 돌아가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었다.
데카르트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네가지 규칙을 순서대로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명확하게 사실이라고 확신하는 것 외에는 일체를 거부해야 한다. 편견과 성급한 결론을 피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한 점의 의심도 들지 않는 것 외에는 일체의 모든 것을 배제해야 한다. 둘째, 연구의 대상을 가장 작은 차원까지 잘게 나누어야 한다. 즉, 바닥에 이를 때까지 분석을 진행해야 한다. 셋째, 처음에는 단순하고 쉬운 사물부터 시작하여 차차 보다 복잡한 것에 대한 지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고할 때는 사물에 일정한 순서를 부여해야 하는 것이다. 이 순서는 사물 자체의 선후 관계와는 전혀 다르다. 넷째,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까지, 가능한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관점까지 확대함으로써 아무것도 빠진 게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 데카르트, 『방법론』, 제2부(출처 : Gutenberg Project)
각성은 사람들이 스스로 택한 정신적 금치산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정신적 금치산 상태는 다른 사람의 지시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다. '스스로 택한'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애초부터 이성이 결핍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나 자신의 결정에 따라 이성을 사용하겠다"는 각오와 용기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혜에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것이 바로 각성을 위한 모토(motto)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의 명령이나 지시 없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금치산자 상태로 평생을 사는 이유는 게으름과 비겁함 때문이다. 어찌보면, 정신적 금치산자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편리한 선택 아닌가! 정신적 금치산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공들여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이 저절로 이해되고, 고민스러운 양심을 갖지 않아도 영적 지도자가 내 양심을 대신해 주고, 식단에 대해 아무 고민을 하지 않아도 의사가 메뉴를 정해주는 상태와 다름없지 않은가! 생각할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은가!
대가만 지불하면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있다. 여성 전체를 포함한 인류의 대다수가 정신적 금치산자 상태를 떨치고 정신적 성인이 되기 위해 움직일 수 있을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제껏 정신적 지도자를 자처해왔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곤혹스럽고도 위험스런 상황이 될 것이다. 이 지도자들은 이제껏 사람들을 미련한 가축처럼 길들여왔다. 이 무기력한 '짐승'들이 감히 우리를 벗어나 우리 밖을 홀로 걸어 다니려 시도하는 경우에, 정신적 지도자들은, 그짓이 얼마나 위험스런 일인지 설득하려 결사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천만에! 우리 밖에서 홀로 걸어 다니는 것은 전혀 위험스런 일이 아니다. 까짓! 몇 번 넘어졌다 일어서면 우리 바깥에서 걷는 법을 깨우칠 수 있다.
- 칸트, <각성이란 무엇인가>
너 자신의 도덕률을, 모든 사람의 도덕률로 승화된 보편적 기준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너의 협소한 이익, 관점, 입장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남들로 하여금 너를 수단으로 취급하게 내버려두지 말라. 그것은 치욕이다. 그 치욕을 용감하게 거부하는 것ㅡ그것이 바로 명예이다.
- 칸트, '정언명제(Categorical Imperative)'
칸트의 '카테고리칼 임페라티브'의 원형은 모세의 십계명이다. 구약 출애굽기에서 야훼는 지극히 무섭고 엄격한 신이며, 모세는 그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종으로 나타난다.
- '호렙의 바위' 사건은 야훼가 참으로 무섭고 엄격한 신임을 알게 해준다. 모세는 부족을 이끌고 오랜 세월 동안 사막을 유랑한다. 물을 못 구해서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부족은 폭도로 변해 모세를 몰아세운다. "야, 이 녀석아! 네 말을 믿고 이집트에서 나왔다가 이제 다 죽게 생겼어!" 폭도에 맞아 죽을 지경이 되자 모세는 야훼의 이름을 판다. "아니거든요! 제가 한 일이 아니거든요! 야훼가 시켜서 저도 어쩔 수 없이 여러분을 이집트로부터 끌고 나온 겁니다. 에고, 야훼도 너무 하시지! 이제 우리를 다 죽일 작정인가요!" 야훼는 모세의 꿈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한다. "이러이러한 곳에 가서 여차저차하게 생긴 바위를 지팡이로 한 대 때려라. 그러면 물이 나올 것이다." 이 바위의 이름이 '호렙의 바위'이다. 야훼의 이름을 팔아 목숨을 구한 행위에 대한 처벌로 모세는 40년 동안 부족을 이끌고 유랑할 뿐, 이스라엘 땅에 정착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야훼는 그토록 무서운 신이었다.
에드먼드 버크
☞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영국 보수주의 정치철학을 만든 사람이다. 대표적 저술로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이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요약, 해설하여 두두리(www.duduri.net)에 전자책으로 게시했다.
칸트 같은 사람만 자기 연구실에 앉아 프랑스혁명을 용납하는 사변을 토해놓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프랑스혁명에 대해서는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지지했던 칸트지만, 막상 사상에 관해서는 철학으로부터 삶과 자연을 제거한 장본인이라고 평가하는 학자도 있다.
- 칸트는 프랑스혁명에 적극 동조했으며 그의 글 중에는 혁명의 진행과 정확하게 맞물려 있는 글들이 있다. 예를 들어, 그가 1793년에 발표한 <이성의 범위 안에서의 종교>라는 글이 나온 시기는 프랑스혁명의 폭도들이 3류 여배우를 '이성의 여신'이라고 분장시켜 떠받들고 행진하며 '이성교'를 만들었던 때와 일치한다.
칸트는 혁명과 반란에는 정당성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자신과 같은 국외자들이 프랑스혁명을 "열정적인 마음으로, 마치 참여자의 한 사람인 것 같은 마음으로" 지켜본다고 썼다. 합법성이 없는 혁명이라 할지라도 진보에 기여할 수 있다는 식이다. 나아가 칸트는 프랑스혁명의 경우에는 합법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1789년 루이 16세가 삼부제 의회를 소집하는 순간에 스스로 지배자로서의 "주권을 인민에게 양도"했기 때문이란다.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Kant's Social and Political Philosophy』.
모든 근대 유럽 철학에는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불충분한 점이 있다. 철학 안에 자연이 없는 것이다. 즉, 근대 유럽 철학은 생생한 삶에 기초에 있지 않다.
- Friedrich Schelling, 『Über das Wesen der menschlichen Freiheit』, (München : Beck & Oldienbourg, 1927) p. 248.
불개(fire dog)
☞ 입에서 불길과 연기를 뿜어내는 지옥의 개. 니체의 비유, 『짜라두짜』 40 : 6 ~ 40 : 35.
세상에 대한 앙심
☞ 현재까지도 프랑스의 정치 문화를 특정짓은 요소이다. 프랑스어로 '르쌍띠망(Ressentiment)'이라고 한다. 사회 체제에 대한 뿌리 깊은 원한과 앙심을 뜻한다.
기사도 정신으로 표현된 숭고함이야말로 사회의 위, 아래를 통합하는 원리이다. 이 숭고함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제 백성은 '이론으로 무장한 반역 세력'이 되었다. 그에 대한 반발로 앞으로 지배자는 '책략으로 무장한 폭군'이 될 것이다.
종교도, 명예도 당당한 자긍심도 없는 나라, 경제가 거덜 난 나라는 그 앞날이 뻔하다. 국민의회 지도자들이 말하는 자유는 이미 자유가 아니며, 그들의 현란한 이론은 거만한 무지일 뿐이다. 그들이 떠벌이는 인간성은 동물적 야만성일 뿐이다. 아, 프랑스여! 너는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그러나 이제 너 자신의 행위에 의해 그 샘은 막혔고 오염되었다.
- 필자가 쓴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의 요약 번역 및 해설은 두두리(www.duduri.net)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칠년전쟁
☞ 실제로는 9년이지만, 첫 2년 동안은 전쟁의 무대가 유럽이 아니라 북미와 인도였다. 그래서 칠년전쟁으로 부른다.
실레지아
☞ 현재 폴란드의 서남부 지역
프랑스는 북미의 광활한 식민지
- 프랑스가 북미에 가지고 있던 식민지는 '루지아나'와 캐나다였다. '루지아나'는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지금 미국의 루이지에나 주가 아니라 에팔레치아 산맥에서 로키산맥 중간의 광활한 지역 거의 전부를 포함하는 거대한 영토이다. 칠년전쟁의 결과, 프랑스 '루지아나'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미시시피 강의 동부는 영국에서 넘어갔고 미시시피 강의 서부는 스페인에게 넘어갔다. 지금의 캐나다 역시 영국에게 넘어갔다.
드레퓌스
☞ Alfred Dreyfus(1859 ~ 1935). 그는 투옥된 지 10년이 지난 1906년에 무죄 방면되어 대위로 복권되었다.
악마의 섬
☞ 베네주엘라 연안에 있는 프랑스령 기니의 섬. 영화 <빠삐용>에서, 탈출에 실패하고 잡혀온 주인공이 갇힌 성이다.
포그롬(pogrom)
☞ 별다른 이유 없이 유태인들의 집단 거주지를 습격하여 방화, 약탈, 강간, 구타, 살인을 자행하는 이벤트. 특히 독일, 동유럽, 러시아에서 심했다.
유태인이었던 뒤르켕도 이 사건에 뛰어들어 1898년 이른 봄 <개인주의와 지식인>이라는 팸플릿
- 뒤르켕의 <개인주의와 지식인(권화연 역, 박성현 해설)은 두두리(www.duduri.net)에서 전자책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이 부분은 그 전자책에서 인용했다.
니체는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는 스핑크스에게 "그런데 너는 왜 만날 질문을 하고, 나는 왜 만날 대답해야 하지? 서로 역할을 바꾸면 안 돼?"라고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입으로만 진실을 떠받드는 세상에 대하여 "도대체 진실을 왜 원하는데? 혹은 왜 원해야 하는데?"라고 노골적으로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 니체, <선과 악을 넘어서>.
"진실이 무엇인지는 문제되지 않아!"
- 18세기 영국 철학자 흄은 이렇게 말했다. "실체가 무엇인지는 문제되지 않는다."
이렇듯 유럽인들은 국가라는 떼, 혹은 계급이라는 떼, 혹은 민족이라는 떼를 떠받드는 상태로 전락했다. 심지어 국가라는 떼 자체를 반대하는 떼도 막강한 위세를 떨쳤다.
- 신디칼리즘(Syndicalism, 혁명적 노동조합주의)으로 대표되는 전투적 무정부주의자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세계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점을 두고두고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번 전쟁에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찰스 래핑턴, 『제1차 세계대전』
이 글의 첫 부분은 1846년 당시의 나의 정서적 상태, 즉 속악한 글이 판치고 있는 잔혹한 문필계에 내 자신을 드러냈을 때의 기분을 나타내고 있다.
- 키에르케고르는 1845년 12월부터 이듬해 봄에 이르기까지, 문필계에서 집중포화를 당하고 조롱받았다.
삶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삶은 그 이후, 떼가 '진실에 관한 최종 판단자'의 역할을 자임할 때, 떼는 거짓이라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동안 펼쳐졌던 사건들이 나를 도와준 셈이다.
- 1848년 유럽을 휩쓴 혁명을 가리킨다.
그는 또한 불과 24살의 나이에 스위스 바젤 대학의 종신교수가 되었다.
- 니체는 지금까지도, 최연소 종신교수에 관한 세계 기록 보유자이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관한 지배적 학설은 인민(떼)이 집단적 작업을 통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 학설은 완전히 틀렸다. 이 작품들을 제대로 분석해보면 인민(떼)이 아니라 개인이 만들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24살 때, 바젤 대학 종신교수 취임 기념식에서 발표한 에세이의 일부분.
국가는 지옥이 만들어 낸 교활한 도구야.
국가는 '죽음으로 이끄는 말(馬)'이지.
이 말을 치장해서 짤랑대고 마구(馬具)는 '신성한 명예'라고 불리지!
국가는 스스로 생명이라 꾸며대지만 그 안에는
많은 사람의 죽음이 준비되어 있지.
- 니체, 『짜라두짜』 11 : 18 ~ 11 : 19. 이때 니체가 의미하는 국가는 바로 19세기 말 유럽의 제국주의, 침략적 국가주의를 뜻한다. 니체는 무정부주의(아나키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상가이다.
바로 네놈들, '평등을 설교하는 자'들에 대해 말한거야!
네놈들은 타란툴라 독거미야. 복수욕에 미쳐 있으면서 안 그런 척 하는 놈들!
(······)
그런데 네놈들, 타란툴라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이렇게 떠들지.
"폭풍과 같은 복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자.
우리는 바로 그것을 정의라고 부른다!"
- 니체, 『짜라두짜』 29 : 4 ~ 29 : 11.
'인민을 위한 목표'가 아니라 '인류를 위한 목표'는 어디에 있지?
형제들! 인민이 아닌 인류를 위한 목표가 없다는 이야기는
인민만 존재할 뿐 아직 인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아니야?
- 니체, 『짜라두짜』 15 : 26.
미덕은 바로 자네의 자아! 어떤 낯선 다른 게 아니야.
껍질도 아니고 몸을 가리는 가리개도 아니지.
자네들, '미덕을 가진 사람'들!
미덕은 영혼 밑바닥에서 뿜어 나오는 진실이 돼야 해!
- 니체, 『짜라두짜』 27 : 15.
맞아! 우리는 수확을 거둬들였지.
하지만 과일이 왜 모두 썩어서 갈색이 됐지?
지난밤 저 사악한 달이 무엇을 뿌렸을까?
우리가 이룩한 것들은 이제 모두 쓸모없게 됐어.
우리가 담은 포도주는 이제 모두 독이 됐어.
- 니체, 『짜라두짜』 41 : 4 ~ 41 : 5.
나는 지금까지 세상에 존재했던 인간 중에 가장 끔찍한 인간이야. 가장 끔찍한 사람이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되지 말란 법은 없어. 나는 파괴의 기쁨을 알아. 파괴할 수 있는 내 힘만큼 알지. "아니"라고 말하며 깨부수는 행위와 "네"라고 말하며 긍정하는 행위, 이 두 개의 행위는 나에게는 둘이 아니고 하나야. 내 성질머리가 디오니소스를 닮아서 그래. 나는 지금까지 세상에 존재한 사람 중 최초로 '부도덕을 주장하는 사람'이지. 그래서 나는 매우, 매우 뛰어난 파괴자이지.
- 니체, 『이 사람을 봐』.
월터 카우프만
☞ Walter Kaufmann. 독일계 유태인으로서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가르쳤다. 나치에 의해 왜곡당했던 니체 사상의 전무를 알리는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니체는 1889년에 정신이 붕괴한 후, 한 갑자(甲子)가 지나서야 다시 태어난 셈이다. 니체 자신의 말 그대로, 어떤 사상가들은 죽은 후에야 태어난다.
- 니체, 『적그리스도』.
하지만 이들의 시간이 오고 있어!
시시각각 이들은 더 작아지고 더 가난해지고 더 앙상하게 되지.
불쌍한 잡초들! 황폐한 토양!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시든 풀밭 같은 꼴이 되겠지.
자기 자신에 대해 ㄴ너더리가 난 존재가 되겠지.
그래서 비가 오기 보다는 차라리 불길이 휩쓸기를 바라겠지!
- 니체, 『짜라두짜』 49 : 68 ~ 49 : 69
제정러시아에서 정식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는 민간인의 숫자는 한 해 평균 50명 이내였다. 그런데 1906년에서 1912년까지 7년 동안에는 6천 명 가까이 되었다. 한 해 평균 800명이 넘었던 것이다.
- 이 숫자에는 항명 폭동을 일으켰다가 처형된 군인이나, 유배지로 가는 행렬 중에 문제를 일으켜 처형된 사람의 숫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1916년 12월에 분노한 귀족들이 라스푸틴을 암살하고 그의 성기를 도려냈지만 이미 러시아제국은 사실상 끝장난 상태였다.
- 지금도 몇 십 년마다 한 번씩, 포르말린 병에 담긴 길이 30센티미터가 넘는 소시지 모양의 고기 덩어리를 들고 나와 라스푸틴의 성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곤 한다. 가장 최근의 일은 2004년 러시아에서 있었다.
라스푸틴 암살로부터 채 석 달도 안 된 1917년 3월 14일, 임시 혁명정부가 들어서면서 니콜라이 2세가 폐위되었다. 그로부터 7개월 후에는 볼셰비키들이 공산 혁명을 일으켜 러시아를 접수했다.
- 1918년 7월, 볼셰비키는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외아들, 네 딸, 의사 두 명 및 하인들을 반(半) 지하실에 몰아넣고 총과 칼로 죽였다. 이들의 유골의 존재는 1978년에 알려졌지만 1991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뼛조각들은 1998년에 역대 차르들과 그 가족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성 베드로-바울 성당으로 옮겨졌다.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지 90년이 지난 2008년 러시아 대법원은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의 죽음을 '정치적 탄압'으로 인정했다.
학문의 영역에서 보더라도 최소한 제국주의 및 금융자본주의 분석에 있어서 독보적 업적을 남겼다.
- 레닌은 당시 유럽 각국의 경제를, 중앙은행을 정점에 두고 기업들이 일사불란하게 조작된 체계를 갖추었다고 파악하였다. 또한 식민지에 대한 자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중시했다. 따라서 식민지는 자원 기지, 상품 시장, 자본투자 시장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고, 해당 국가 경제의 생명력을 결정하는 요소라고 파악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과 영국-프랑스 사이의 식민지 쟁탈전이라고 주장했다.
"혁명에 의해 망가진 러시아를 다시 되돌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죽었다. 러시아 국민의 가장 큰 불행은 레닌이 태어났다는 점이고, 두 번째 큰 불행은 레닌이 죽었다는 점이다.
- 윈스턴 처칠, 1924년 1월에 레닌이 죽었을 때 한 말
프리다 칼로
☞ Frida Kahlo. 몽환적이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한 화가. 천경자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남편은 유명한 공산주의 화가이며 부호였던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이다. 이 부부는 멕시코로 망명은 트로츠키(스탈린의 정적)를 자기 집에 들여 보호했다. 그러나 프리다 칼로와 트로츠키가 연애를 하게 되고 이를 알게 된 리베라가 트로츠키를 쫓아냈다. 트로츠키는 1년 남짓 지나서 스탈린이 보낸 암살자에게 살해되었다. 암살자는 몇 달에 걸쳐 트로츠키의 신임을 산 후에 마침내 트로츠키와 단 둘이 서재에 있게 되자 겨울 등반용 얼음 도끼(ice axe)를 꺼내 트로츠키의 뒤통수를 여러 차례 찔러 죽였다. 이 때문에 흔히 "얼음 송곳(ice pick)에 찔려 죽었다."는 밀도 있고 "도끼에 맞아 죽었다"는 말도 있다.
프리다 칼로와 남편 디에고 리베라
언어와 핏줄에 의해 만들어지는 민족이라는 집단에 통합되지 못한 떠돌이들만 계급투쟁을 주장할 뿐이다.
- 유태인을 가리킨다.
검은 셔츠단
☞ 파시즘 운동에는 항상 셔츠 색깔을 통일해서 입은 적극적인 행동부대가 존재한다.나치의 경우 갈색 셔츠였다.
독일의 나치즘은 러시아 볼셰비즘 혁명에 의해 1920년대 독일 정치가 지극히 불안해지자 생겨난 반동 운동이었다.
- 이때 반동은 하나의 움직임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라는 뚯이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를 끝장낸 것은 '테르미도르 반동'이었다. 반동이라는 말에는 원래 아무 부정적 의미가 없었다.
무솔리니의 파시즘은 제국주의 열강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열강이 아닌 국가의 반공 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단적인 예가 스페인과 터키이다.
-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들은 검은색 셔츠를 입었고, 나치는 갈색 셔츠를 입었다. 프랑코의 민족진영(Nationalist)은 청색 셔츠를 입었다. 셔츠를 통일해서 입었다는 것이 공통점이라고는 할 수 있다. 참고로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행동대는 남색 셔츠를 통일해서 입었고, 김구와 관계가 있는 염동진의 행동부대는 흰색 셔츠로 통일해서 입었다. 하기야 해방 공간에서는 누구나 흰색 셔츠를 입었으니까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그마
☞ 도그마는 이유를 따지지 말고 진실이라고 믿어야 하는 명제를 뜻한다. 원래는 가톨릭 교리에서 나왔다. 예를 들어,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 다른 존재이면서 동시에 동일한 존재라는 믿음(삼위일체)은 도그마이다. 또한 마리아와 어머니가 마리아를 임신해서 출산한 과정은 (다른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원죄로부터 자유롭다는 믿음 역시 도그마이다. 후자를 '흠집 없는 임신(immaculate conception)'이라고 부른다.
『재판 과정』
☞ 카프카(Franz Kafka)의 대표작(1925년). 이 소설의 제목은 『The Prosess(독일어로는 Der Prozess)』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이 작품을 '심판'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한다. 이는 잘못된 번역이다. 심판은 유죄인지 무죄인지, 유죄인 경우 그 형량이 얼마인지를 정하는 선고(verdict)를 뜻한다. 반면, '프로세스'는 재판 과정, 즉 심리(審理)를 뜻한다. 영어 번역본 중에는 재판 과정임을 명확하게 가리키는 'The Trial'이라고 제목을 붙인 경우도 많다. 이 작품은 선고(심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재판 과정에 대한 갈망'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왜 일본 사람들은 작품 제목을 '심판'이라고 붙였을까? (그리고 이를 중역한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심판'이라고 출판되고 있을까?) 아마도 일본 사람들(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과정 혹은 절차의 중요성에 관해 무감각하기 때문에 황당한 오역이 일어났을 것이다.
아이히만
☞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iman). 유럽의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업무 전체를 총괄했다. 독일 패전 후 아르헨티나로 도피하여 숨어 살았으나 1960년 이스라엘 모사드에 납치되어 텔아비브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1962년 이스라엘에서 교수형당했다. 매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체 사형 선고 및 집행을 하지 않는 이스라엘 민간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된 유일한 인물이다.
아이히만을 괴물이 아닌 광대로 보는 순간 이 재판 전체가 뒤흔들리게 되어 잇었다. 게다가 아이히만을 한낱 광대로 보는 관점은, 아이히만 혹은 그와 비슷한 인간들로 인해 죽거나 고통받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생각할 때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그래서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지독한 광대 근성은 주목받지도 못했고 알려지지도 않았다.
- 한나 아렌트, 『Eichiman in Jerusalem :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패권적 국가주의를 뒷받침하는 습관적 경배 ㅡ 이것이 바로 유럽 기독교가 선택했던 길이었다.
- Abendung. 니체는 이 '습관적 경배'에 대해 사납게 비판하며 경멸한다.
해방된 자아가 이 질문으로부터 도망치면 한껏 부풀었다가 풀무같이 쭈그러진 사람, 혹은 멍에를 내던지는 순간 그나마 남아 있던 가치마저 내팽개친 짐승이 될 수밖에 없다.
- 풀무나 짐승의 비유는 니체의 표현이다. 『짜라두짜』 17 : 8 ~ 17 : 10
4장
천년의 운명
과거는 모두 버림받아.
폭도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 오면
시간은 얕은 물에 처박혀 익사하게 돼.
폭도의 시간은 할아버지 시대에 끝나니까.
(니체, 『짜라두짜』)
산토리 바를 나와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나는 소녀들과 한 사람씩 이별의 악수를 나누었다.
- 바래다주지 않아도 괜찮겠어?
- 문제없어요.
그런데 악수를 할 때 A였는지 C였는지는 몰라도 집게손가락 끝으로 내 손바닥을 간질이며 후후 하고 웃는 데는 나도 정말 깜짝 놀랐다. '이건 아냐, 이건 품행이 나쁜 여자들이나 하는 짓이야. 아무리 장난이라도 이건 안 돼. 아무리 장난이라도'라고 큰 소리로 말해주고 싶었다. 이건 '우리 같이 자요'라는 사인이니까.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쩐지 내가 제일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들은 나쁜 역할을 마음껏 연기했을 뿐, 실제로는 청순하고 호기심이 많은 평범한 10대가 아니었을까? 나는 어른으로서의 관대함으로 이러한 상상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 미시마 유키오, 『부도덕 교양강좌』 중 <모르는 남자와도 술집에 갈 수 있다.> 이수미 역, 소담출판사, 2010.
미시마 유키오(1925 ~ 1970)
군국주의 청년 장교 반란사건(이른바 '2.26사건')
☞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은 청년 장교들이 수상 관저를 습격하고 장관들과 경제계 지도층 인사들을 처형했던 사건. 이를 계기로 일본의 군국주의가 더욱 강화되었다.
일본이 뎠다는 것 / 농지개혁 / 사회주의적 개혁 / 우리 조국의 패배 / 패전의 짐을 모두 지는 것, 다 좋다 / ······굴욕을 견디는 것 / 반항할 수 없는 요구를 깨끗하게 받아들이는 것, 다 좋다. / 하지만 단 하나, 단 하나 / ······어떠한 죽음의 협박이 있다 하더라도 / 청황폐하는 인간이라고 선언하면 안 된다 / ······ 그저 폐하 단 한 분, 신(神)으로서 옥체를 보존하옵소서
어찌 천황폐하는 인간이 되었사옵니까.
어찌 천황폐하는 인간이 되었사옵니까.
어찌 천황폐하는 인간이 되었사옵니까.
- 미시마 유키오, <영령의 목소리>, 『미시마 유키오와 동경대 전공투』에서 인용, 김항 역, 새물결, 2006.
다중(multitude)의 저항 에너지와 좌파의 비판 에너지 사이의 결합ㅡ이것이 프랑스 요리의 레시피이다.
- '떼'를 찬양할 때 쓰이는 좌파 포스트모더니즘의 용어.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은 이 용어를 스피노자(Baruch Spinoza)의 글 <Tractatus TheologicoㅡPoliticus>에서 따왔다.
비시(Vichy) 정권
☞ 히틀러에 협력한 프랑스 정부. 프랑스 북부는 나치의 점령지로서 나치 합참본부의 직할 통치를 받았고 남부는 비시 정부가 들어서서 나치에 적극 협력했다. '비시'는 남부 체제의 행정수도였다. 비시 정부는 전체 35만 명의 유태인 중 약 1/4에 해당하는 8만 명에서 9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했다.
"미국의 천재성은 정치에 있다."
- 피터 드러커, 『The Ecological Vision』 중 'The American Gerius'.
거대한 사회는 거대한 관성, 거대한 잠열, 거대한 시차(time lag)를 뜻한다.
- Latent heat. 거대한 물체의 온도를 변화시키려면 그만큼 더 큰 에너지와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 수사드라마 중에 재판 과정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 역시, '절차적 정당성'에 관한 미국인의 열정 때믄이다.
- 예를 들어 미국 드라마 중에 가장 장수한 수사물인 <로엔오더(Law and Order)>의 경우, 수사 경찰과 검사가 함께 나오며 항상 법정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자매 드라마인 <로앤오더 : 성범죄 전담반(Law and Order : Special Victims Unit)>에서도 경찰과 검사가 함께 나온다.
아! 미국은 절차공화국(procedural republic)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권리, 자유, 웰빙만 그악스럽게 주장하는 고삐 풀린 자아(unencumbered self)가 되고 말았다.
- 샌델의 문제의식과 입장에 대해서는 이 책의 '샌델과 무라카미'장에 자세히 다루어진다.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그의 문제의식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한국 경제의 이 같은 역동적인 체질은 한국 조선 기업들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부유식 LNG 생산ㅡ저장ㅡ출하선(FPSO)을 생각나게 한다.
- 최초로 사회나 국가를 배에 비유한 사람은 플라톤이었다.
삼성중공업의 LNG-FPSO
직접민주주의
☞ 기원전 508년에 아테네는 3만 명 규모의 성인 남성 자유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의 체제로 나아갔고, 기원전 509년에 로마는 매우 정교한 대의제 및 견제ㅡ균형 체제로 이루어진 시스템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정치 체제』
☞ 플라톤이 기원전 380년 경에 발표한 저술. 로마의 사상가 키케로(Cicero)가 라틴어로 쓰인 자신의 책에서, "플라톤은 '성인으로 이루어진 공중의 비즈니스(Res Publica)'에 대해 이야기했다"라고 말한 이후, 플라톤의 책이름 자체가 'The Republic'으로 통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어 원래 제목은 'Politela', 즉 '정치 체제'이다. 플라톤은 이 책에서 고대 세계의 영웅적 지도자의 정치 체제(Timocracy), 귀족 및 부자들에 의한 정치 체제(과두체제, Oligarchy), 떼가 지배하는 체제(민주주의, Democracy), 독재 체제(Tyranny)로 이루어진 네 개의 정치 체제를 이야기한 후 '지혜로운 사람들(철학자)'이 지배하는 이상적 체제를 묘사한다.
나이가 먹어서 본능적 열정이 식게 되면, 이로운 쾌락과 해로운 쾌락 사이에 적당히 시간을 분배해서 사용하게 된다. 일종의 균형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머릿속의 이성이 "이봐! 이러이러한 쾌락은 이롭기도 하고 명예롭기도 하지만, 저러저러한 쾌락은 나쁘고 천한 거야. 정신 차려!"라고 말하면 사람은 머리를 흔들며 이렇게 대답한다. "내 눈에는 이거나 저거나 마찬가지인데?"
그리하여 마침내 그때 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살게 된다. 술을 마시는가 싶으면 잠시 금주를 하기도 하고,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한다 싶으면 집에서 꼼작 않기도 한다. 철학자 흉내를 내는가 싶으면 정치를 하겠다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전사(戰士)가 되어 용맹을 떨치겠다고 설치는가 싶으면 장사를 한다고 쏘다닌다. 그는 모든 것을 해보겠다고 시작했지만 아무것도 진득하게 하는 것이 없는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사회 한 편에는 가장 '훌륭하고 공정한' 사람들이 칼을 갈고 있다. 이 사람들이 바로 독재자가 될 사람들이다. 과두 체제를 쓰러뜨리고 민주주의가 나왔듯이, 민주주의를 쓰러뜨리고 독재 체제가 나온다. 과두 체제든 민주주의든 과잉 상태이기 때문이다. 과두 체제에는 부의 지나친 편중이 문제이고, 민주주의에서는 자유의 과잉이 문제이다.
- 벤자민 조윗(Benjamin Jowett) 번역, 『정치 체제』 해설에서 인용, 조윗의 글은 플라톤의 본문 제4부를 가리키고 있다.
1963년 6월 동서 냉전의 상딩인 베를린을 방문한 케네디(John F. Kennedy)는 키케로의 말에 빗대 "저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고 연설했다.
- 베를린 시를 반으로 나누는 경계를 따라 동독이 베를린 장벽을 세운 지 약 2년이 되는 1963년 6월, 미국 대통령 케네디는 독일을 방문했다. 그는 연설 중에 독일어로 "저는 베를린 시민입니다(Ich bin ein Berliner)."라고 외쳤다. 이 말은 미국에 의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 국민에게 무한한 긍지와 용기를 준 명언으로 꼽힌다.
판사 랜스필드
☞ 윌리엄 머레이(William Murray), 그는 또한 랜스필드 백작이었다. 그래서 '랜스필드 판사'라고 불린다.
정치범
☞ 양심범이라는 용어는 '양심'을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 또한 '민주화 운동가'라는 용어에는 아무런 법률적 의미가 없다. 필자는 '정치범'이라는 용어를 시용한다. 단, 북한으로부터 돈과 무기를 지원받았거나 구체적 행동지침을 내려받고, 북한 지배세력의 이익에 봉사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하려고 시도한 사람의 경우, 필자는 '간첩' 혹은 '종북사범'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혁명과 테러에 의해 사회주의 정치 체제를 수립하려는 볼셰비키 세력이 북한과 아무런 관계없이 활동하다가 체포되는 경우, 이는 '정치범'이다. 그러나 북한과 관계를 맺고 그 지배세력을 공개적으로 찬양하는 활동을 하면 이는 '종북사범'이다.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정치범'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13년 전에 네덜란드로부터 온 배가 조선 해안에 표류한 바 있습니까? 그 배에 실려 있던 화물을 조선이 가로챘습니까? 조선 해안에 좌초한 모든 외국 배에 관해서는 일본에 보고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네덜란드가 일본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인지는 알고 있습니까? 또한 조선에 하멜의 동료가 8명이나 남아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까?
- Henry Savnije, http://www.hendrick-hamel.henry-savenije.pe.kr/indexk2.htm
난학파蘭學派
☞ 네덜란드와의 접촉이 가장 활발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쇄국은 841년 장보고가 암살된 이후 이씨 조선 말기까지 1천 년 동안 일관되게 지켜진 생존전략이었다.
- 당송(唐宋) 교체기의 100년 안팎의 혼란기에 해양 무역세력이 등장했다거나, 몽고의 세계 지배 시기에 중앙아시아 출신의 '회회아비'들이 한반도를 드나들었던 일은 '천년의 은둔'의 한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의 상황에 예속된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편전
☞ 대롱 속에 넣어서 쏘는 짧고 무거운 화살. 화살이 나가고 나면 대롱은 아래로 떨어진다. 화살을 잡는 손의 장지에 무명실의 한쪽 끝을 매고, 대롱에 다른 한쪽 끝을 묶는다.
산기슭에 숨어 있다가, 긴 행렬을 이루어 지나가는 적군의 선두에서 말을 타고 가고 있는 간부를 저격하는 것 ㅡ이 유전자가 숨어 있기 때문에 지금도 양궁, 사격, 골프에 재능을 보이는 게 아닐까?
- 큰 도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행렬이 몹시 길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북 남원시 동면에는 인월리(引月里)라는 곳이 있다. 이성계가 밤중에 왜구 적장을 저격하려고 하는 데 구름이 달을 가렸다. 이성계가 활을 당기며 깊은 숨을 들이키자 마침 달이 구름 밖으로 끌려 나왔다는 전설이 있어서 '인월리'라는 지명이 붙었다. 인월리에는 '피바위'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그때 화살에 맞은 왜구 적장이 피를 쏟고 죽은 바위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중세 유럽의 경우, 일반 백성이 읽고 쓰고 셈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던 사실과 비교해보면 우리 조상들이 인간의 기본적 능력에 대해 얼마나 개방적이고 공정한 사고방식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 이 능력을 '3R'이라고 불렀다. 각각 'Read', 'write', 'arithmetic'. 중세 유럽에서는 평면이 이 능력을 가지는 경우, '악마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가 16세기에 독일어로 성경을 옮긴 것이 최초의 '모국어 번역'이 아니라, 영국에서 8세기에 이미 고(古) 영어로 성경이 번역되었다는 점이다. 유럽 국가 중에, 일반 국민의 '3R'에 진취적 입장을 가장 빨리 취했던 나라는 영국이었다.
그러나 6 · 25 전쟁이 터지자, 좌파의 기대처럼 백만 명이 게릴라 무장 투쟁 세력으로 궐기하기는 커녕 소수의 '바닥 빨갱이'와 정치 투기꾼들만 설쳤던 것은, '정신의 평등'이 '재산의 평등'과는 다르다는 것을 사람들이 느끼고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 김일성-박헌영 커플은 "남침을 하면 이에 호응하여 남한 인민 백만 명이 봉기한다"라고 믿었다. 이렇게 유쾌한 상상에 바탕해 김일성은 15살 아래의 젊은 애인 김성애와 연애를 했고 박헌영은 23살 연하의 아리따운 아가씨 윤레나와 결혼했다. 이들의 유쾌한 상상을 '백만봉기설'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막상 6 · 25가 터지자 봉기는 없었다. 이에 대해 당시 북한의 최고 실세인 슈티코프, 김일성, 박헌영 중 최소한 한 명은 목숨으로 책임져야 했다. 박헌영을 '미 제국주의자들의 간첩'으로 몰아 처형한 것은 결국 '백만봉기' 실패에 대한 책임을 떠넘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을 벗기다(Japan Inside Out)』
☞ 필자는 『일본을 벗기다』를 요약 번역한 후 해설을 붙여 미니 전자책으로 만들었다. 두두리(www.duduri.net)에서 무료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본서의 이승만에 대한 부분은 이 전자책에서 상당 부분 재인용했다.
'황제'라는 칭호는 오칭이다. 일본인들은 그를 '황제'가 아니라 '텐노(天皇)'라고 부른다. '하늘의 황제'. 일상 생활에서 말을 하다가도 '텐노'라는 단어가 나올 때는 머리를 조아리거나 (모자를 쓰고 있는 경우에는) 모자를 들어 올리며 고개를 숙인다.
(The title "Emperor" for their ruler is a misnomer. The Japanese do not call him emperor, but Tenno, the Heavenly King. Every time they mention this word Tenno, they bow their heads or doff their hats.)
중공
☞ 1992년 8월 한국은 대만과의 관계를 끊고 중공과 수교한다. 필자는 이 이전에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중공'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부담을 두려워 한 박정희는 국장을 포기했고 장례는 결국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 이승만은 박정희에게 여러 번 "한국에 돌아가서 죽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박정희는 이를 거절했다. 그 대신 박정희는 이승만에게 "돌아가시고 난 후 국장으로 모시겠다"고 약속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신은 일흔이나 된 노구를 이끌고 광복된 조선 땅에 돌아와, 좌우 이념 갈등과 미국, 소련 사이의 알력을 극복하고 (독도를 포함하는) 새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당신이 이루신 무수한 업적 중에는 대한민국의 주권과 국격을 전 세계에 알린 쾌거로써, 평화선을 선포하고 반공포로를 석방한 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록 정권 말기에 간신배 이기붕 일당을 잘못 기용하시어 실각하였지만 이는 당신 평생의 공적을 가릴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당신은 조국을 위한 어린양으로 희생되셨습니다······ 대통령을 맡고 있는 제가 불민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조국에서 임종토록 하지 못한 점, 용서해주십시오······ 당신이 직접 만든 군대의 젊은이들이 묻힌, 당신이 만든 묘역인 국립묘지,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길지를 골라 이제 당신을 땅에 묻습니다······ 공산 침략을 무찌르다 숨진 국군 장병들의 혼령을 거느린 막강한 호국신(護國神)이 되어 이 땅을 지켜주소서······.
- 이승만 대통령 서거에 대한 박정희가 쓰고 국무총리 정일권이 대독한 조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어.
젊은이들은 서로 껴안고
새들은 나무에서 노래하지.
죽어가는 세대는 그 노래 속에서나 나올까?
연어가 거슬러 오르는 폭포, 고등어가 우글대는 바다.
물고기, 살코기 그리고 닭까지 여름내
배고, 낳고, 죽는 것을 찬양할 뿐.
관능의 음악에 취해 모두들
우뚝 선 영원의 정신은 아랑곳하지 않을 뿐.
노인은 초라한 존재.
지팡이 위에 걸쳐놓은 낡아빠진 코트.
하지만 넝마가 헤질수록 그 사이로 드러나는 영혼은
손뼉 치며 노래하지. 더 크게 노래해.
관능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거든.
영혼의 위대한 모습을 기리는 탑을 보는 사람도 있지.
그래서 나는 이제 돛배를 띄워 바다로 나서네.
성스러운 도시 비잔티움으로.
- 예이츠(William Yeats), <비잔티움으로 돛배를 타고>
"(일제 치하에서 자란 군국)소년들이 어려서 입은 마음속의 일본 군복을 벗지 못한 채, 반공청년이 되어 병영국가를 만들고, 이제는 군국노인이 되어 전쟁불사를 외치는 그런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 www.hani.co.kr, 2010년 5월 28일 등록 기사.
5장
샌델과 아오마메
처음엔 인민이 창조자였어.
개인이 창조자가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야.
개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장 늦게 창조된 존재거든.
(니체, 『짜라두짜』)
세상의 이익과 상충하는 개인의 배타적 이익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몰염치하게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은 보수가 아니다. 그건 사회유해요소, 범죄자 집단일 뿐이고, 기껏 우대해서 점잖게 불러준다 해도 '수구'일 뿐이다. 그 그늘에 진정한 보수의 싹이 가려져 성장하지 못한다. 그런 수구에 반대한다고 해서 다 진보가 되는 건 아니다. 반수구세력과 진보세력이 동일시될 때, 사회 전반의 하향평준화가 이루어진다. '뻔뻔한 수구'대 '멈춰 선 진보'의 대결이라니······ 기괴하고도 엽기적인 구도이다. 진보와 개혁의 이름을 더럽힌다고, 정치권만 나무랄 일도 아니다. 집단조로증의 유사 증세를 보이는 40대는 도처에 널려 있다. 병든 진보, 나약한 진보, 사실은 더 이상 진보가 아님에도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패권적인 사이버 진보, 그 환부를 아프지만, 깊고 넓게 도려내어야 할 때가 다가왔다.
- 이진순, '당신의 진보는 몇 년도 산인가?', <한겨레신문>, 2010년 7월 1일.
유대와 연결
☞ Consitutive attachment. '한 사람을 형성기켜주는, 공동체와의 연결 고리'란 뜻.
원점
☞ original opint. 롤즈의 사상에서, 사회계약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최초의 상태.
무지의 베일
☞ veil of ignorance. 롤즈는 사회계약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원점'에서는, 참가자들이 자기 자신 및 다른 참가자의 특장점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고 가정한다. 이를 '무지의 베일'이라고 불렀다.
'유대와 연결'에 기초한 공동체를 현대 세계에 적용할 경우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은 통렬한 반박이다. 지금 세상에서 정치적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은 이 반박으로부터 결코 자유스러울 수 없다. 이 반박이 중요한 이유는, "올바른 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 "정치철학은 현실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라는 근본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현대를 풍미하고 있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을 구현해놓은 지금의 민주주의 질서 역시 자기 힘으로는 서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은 자기 손으로 부정하고 파괴하고 있는 공동체의식에 의존해야만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공동체는 이제 사그라져 가물가물한 상태가 되고 만 것이 아닌가! 롤즈(John Rawls)가 제시한 '원점'과 '무지의 베일'이라는 황당한 이야기는, 곤경에 처해 있는 우리의 모습을 뒤틀어서 보여주는 희미한 이밎가 아닐까?
- 센델의 논문. 「절차공화국과 고삐 풀린 자아」.
이 같은 내 입장의 약점에 대해 자유주의 진영은 통렬히 반박한다. 이 반박은 철학적 개념에서 나왔다기보다는 현실조건에 대한 고려에서 나왔다. 이 반박은 한마디로, "센델,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거야!"라는 소리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가족, 친구 혹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작은 그룹과 같은 사적(私的) 영역에서 사람과 사람을 묶어주는 '유대와 연결'을 추구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공적 영역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사람 사이의 정치적 연결이 이루어지는 기본 단위가 국민국가인 상태에서는 '유대와 연결'에 바탕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밝은 세상을 결과하기보다는 어두침침한 전체주의를 결과할 가능성이 있다. '공동체의 도덕'을 주장하는 대중의 요란스런 구호가 난무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철학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관점이 보다 안전한 방편일지 모른다.
- 샌델, 「절차공화국과 고삐 풀린 자아」
자유주의
☞ 샌델이 말하는 자유주의는, 칸트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개인주의, 즉 개인의 이성과 자유를 중시하는 입장을 뜻한다.
자네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말해?
자네가 멍에로부터 벗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
자유로운 존재라면 자네를 이끄는 핵심 사상에 대해 말해봐.
자넨 멍에를 벗어나야만 하는 인간이야?
멍에를 내던진 순간
그나마 남아 있던 가치마저도 내팽개친 짐승이 한둘인 줄 알아?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자네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인지
나, 짜라두짜는 전혀 관심이 없어.
자네가 '무엇을 위해' 지유로워진 것인지 눈 똑바로 뜨고 말해봐.
자네 자신의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서,
자네를 다스리는 법률로 만들어 자네 머리 위에 걸 수 있나?
그 법률에 의해 자네 자신을 재판해서 자네 자신을 처벌할 수 있나?
- 니체, 『짜라두짜』 17 : 9 ~ 17 : 12
순수실천이성
☞ 칸트 사상에서, 자율성을 가진 이성적 개인들이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 고삐 풀린 자아들과 그들 각각이 만든 윤리'라는 개념은 인간 해방에 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에 의한 변수와 사회적 역할에 의한 규정으로부터 해방된 개인은 이제 스스로 주권자가 된 것처럼 보인다. 개인은 도덕적 의미를 창조하는 자가 된 것처럼 보인다. 롤즈의 원점의 참가자(이는 곧 칸트의 순수실천이성의 참가자라고 할 수 있다)로서 우리는 과거로부터 물려 받은 가치 체계에 구애됨 없이, 정의에 관한 원칙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가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개인으로서 자신의 도덕적 목표와 목적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칸트나 롤즈의 주장은 참으로 대단한 약속처럼 보이지 않는가/ 이런 비전은, '각성의 시대'의 꿈을 드디어 완성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이는 과연 진실일까? 우리 인생의 도덕적, 정치적 측면을 '자아에 관한 이미지'에 의해 설명할 수 있을까?
- 샌델, 「절차공화국과 고삐 풀린 자아」
롤즈의 프로젝트는 칸트의 도덕적, 정치적 가르침을 보존하는 한편, 독일 사상가 특유의 애매모호함을 영미 사상가들의 기질에 맞는, 잘 길들여진 형이상학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이다.
- 샌델, 「절차공화국과 고삐 풀린 자아」
"그래요. 롤즈 씨! 재능이나 노력조차 '나의 것'이라 할 수 없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게 왜 '사회 전체의 것'이 되어야 하죠? 그때 사회 전체의 범위는 누가 결정하죠? 왜 인류 전체라 하면 안 되죠? 혹은 왜, 박테리아까지 포함한 생명 전체라고 하면 안 되죠?"
- 샌델, 「절차공화국과 고삐 풀린 자아」
소매가격통제
☞ RPC : Retail Price Control. 제조업체가 소매점의 판매 정가를 정해서 규제하는 것.
"이기고 오든가, 죽어서 오세요!"
☞ With victory, or on the shield!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이기고 오거나 방패에 누워 오세요!"란 뜻이다. 당시에는 전사자들을 방패 위에 뉘어서 운반했다.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상태
☞ 니체가 말하는 '세계로부터 분리된 상태(Welt-verlome).'
아오마메
☞ 무라카미 하루키의 『IQ84』의 여주인공. 성폭행범을 처단하는 '정의의 킬러.'
찰스 강변
☞ 보스턴을 가로지르는 작은 강.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조정 대회가 열린다.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야누스 상. 부활을 뜻하기도 하고 시작과 끝의 통일을 뜻하기도 한다. 한 해가 마감되고 새해가 시작되는 1월(January)은 야누스(Janus)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전문 지식노동자의 직업윤리
☞ professional ethics. 지식노동자의 직업윤리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주목한 사상가는,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켕이다.
6장
개인의 프로토콜
전사(戰士)에게 죽음을 면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나는 자네들에게 진실을 면하게 해줄 생각이 없어.
자네들을 진심으로 사랑해!
싸움터의 내 형제들!
(니체, 『짜라두짜』)
냉전을 알리는 최초의 신호탄
☞ 소설 『동물농장』과 『1984』를 통해 전체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1945년 10월 '냉전'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1947년에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n)이 『냉전』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함으로써 이 용어는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핵전쟁이 벌어져 인류가 멸망하고 바퀴벌레만 살아남더라도 작동할 수 있는 망이다.
- 통신 기술에 관한 이야기 중에는 핵전쟁과 바퀴벌레에 대한 비유가 더러 있다. 예를 들어 지그비(Zigbee) 통신 기술에 대해서는 "핵전쟁 후에 살아남을 놈은 지그비와 바퀴벌레밖에 없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제 너의 패킷을 내려놓고 편히 잠들게나
- 인터넷 통신에 있어 데이터의 꾸러미. 보통 수백 바이트에서 천 바이트 정도의 작은 크기이다. 패킷은 편지 봉투라고 생각하면 된다. 봉투 안에 든 것은 알맹이고, 봉투 겉면에는 수신자 주소, 발신자 주소, 발신 시각, 알맹이의 종류 등을 나타내는 정보가 쓰여 있다.
인터넷 프로토콜
☞ IP(Internet Protocol). 프로토콜은 절차, 예의, 규약을 뜻하는데, 정보통신에서는 '통신규약'을 의미한다. '인터넷 프로토콜'은 '인터넷 방식의 통신규약'을 가리킨다.
단말
☞ 정확하게는 '단말(terminal)'이라는 용어가 아닌 '호스트(host, 주인)'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지능이 없는 '먹통 단말'이 아니라, '인터넷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나의 소중한 눈동자>
☞ Apple of my eyes. 이 제목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뜻이 숨어 있다. 원래 이 표현은 구약성경에 나오며 '매우 소중한 것'을 뜻한다. 차이는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소중한 눈동자(apple of his eyes)'로 표현되지만, 커벨은 '나의 소중한 눈동자(apple of my eyes)'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명기 32 : 10에는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어 자기의 눈동자와 같이 지키셨도다"라고 나오며, 시편 17 : 8에는 "나를 (주의)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라고 나온다.
'머리의 정직성'
☞ Intellectual integrity.
'자기 정당성'
☞ Self-righteousness.
지혜는 소박한 데 있다!
- 본서의 '없애야 할 존재' 장 중 '지혜는 소박하다' 편 참조.
평생 동안 망상성 정신분열을 앓았던 천재 수학자 존 내쉬(John Nash)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보자.
- 영화의 줄거리는 실제 존 내쉬의 일생과는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는 내쉬가 이혼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이혼했다. 이 글은 영화를 기준으로 했다.
'신성한 척하는(sanctimonious)'
- 희곡 <자에는 자로Measure for Measure)
후이넘을 받들어 모시고 있는 야후
좌파를 겨냥한 좌파의 학살을 주도했던 독일계 스탈린주의자 에리히 밀케(Erich Mielke)는
- 1989년 슈타지 장관직을 사임한 후, 공산당 회의에서 참석자들을 향해 '동무들'이라고 호칭하며 연설하다가 망신을 당했다. 슈타지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던 다른 공산당원들이 "동무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마시오!"라고 항의하자. 밀케는 "제가 '동무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30년 넘게 비밀경찰을 이끌면서 피비린내 나는 처형과 테러를 주도해온 살인자가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자 회의에 참석했던 동독 공산당원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문화권력
☞ Cultural hegemony.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만든 개념이다. 그는 정치 시스템의 기초가 문화이며, 문화권력을 장악하면 정치투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엘리어트
☞ T. S. Eliot, 시집 『황무지』의 저자.
블룸즈베리 그룹
☞ Bloomsbury Group. 당시 영국 지식층을 지배했던 온건 사회주의 성향의 엘리트 그룹이다. 경제학자 케인즈, 철학자 러셀(Bertrand Russell)도 관계되어 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역시 이 그룹과 가깝게 지냈다.
아침 이슬 한 방울이 매달려 있기 때문에
바르르 떠는 장미꽃 봉오리······
우리랑 장미꽃 봉오리 사이에 공통점이 무엇일까?
그래, 우리는 삶을 사랑하지.
하지만 삶에 익숙하기 때문에 삶을 사랑하는 게 아니야.
사랑에 익숙하기 때문에 삶을 사랑하는 거지.
나도 삶을 사랑해. 내 경우엔
나비나 비누거품 같은 것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이 가볍고, 바보스럽고, 섬약하고, 애처로운
작은 영혼들이 날갯짓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지.
그래서 나는 춤추는 법을 알았던 신(神) 하나만 믿을 수밖에 없어.
- 니체, 『짜라두짜』 7 : 17 ~ 7 : 22.
에필로그
정신의 귀족
호이징어
☞ John Huizinga(1872 ~ 1945). 덴마크의 언어학자. 키에르케고르를 배출한 덴마크의 사상적 역량을 고스란히 물려받앗다. 나치에 대해 극도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나치는 1942년. 70살이 넘은 노인을 구금해서 3년만에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놀이하는 인간(Home Ludens)'이라는 개념을 만든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그의 사상이 에드먼드 버크와 동일한 흐름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마드리드에 있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
내가 날아간 그곳에서!
시간은 '순간에 대한 즐거운 조롱'이었고
필연은 자유 그 자체였어.
자유가, 짐승 모는 가시 몽둥이처럼 사물을 줄줄 몰고 가는 것!
그것이 바로 필연이었어.
아 그런데 거기에!
내 속에 오랫동안 깃들어 온 악마, 내 오랜 숙적,
'중력의 영'도 있는 거야.
'중력의 영'이 만들어낸 모든 것도 같이 있더군.
강박, 도그마, 필요성, 중요성, 목적, 의지, 선, 악······.
신들이 춤을 추려면 마룻바닥이 있어야 하잖아?
신들이 춤을 추려면 춤이 밀치고 지나갈 무엇인가 있으면 멋있잖아?
신들이 춤을 추려면 한구석에 두더지나 난쟁이가 있을 법하잖아?
참으로 유연하고 우아한 춤꾼들을 위해선
그런 존재가 옆에 있을 법하잖아?
'중력의 영'이 거기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더군!
- 니체, 『짜라두짜』 56 : 19 ~ 56 : 21.
중력의 영
☞ 삶을 우울하고 심각하기만 한 것으로 보게 만드는 실존적 불안(anxiety) 및 실존적 의심(mistrust). 실존은 세계에 대해 낯설고 분리된 느낌을 깊게 가진 심리 상태를 뜻한다. '중력의 영'은 니체의 핵심 개념이며 키에르케고르의 '절망(despair)'에 대비된다. 니체가 말하는 '세계로부터 분리된 상태'에서 이 괴물(중력의 영)이 우리 미움을 무저갱(無低坑) 속으로 끌어당긴다. 독일어로 'Geist der Schwere'. 영어로 'spirit of gravity'. "중력의 영은 춤꾼을 위한 마룻바닥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니체의 이야기는 실존적 불안과 의심을 뛰어넘어 삶(생명)을 오롯이 보듬어 안은 상태(total affimation of life)를 가리킨다.
탄생하기도 번성하기도 어려운 종족 개인,
그 개인이 만들어낸 찬란한 기적의 순간들!
집단이 대세인 시대다. 진보, 보수, 네티즌, 커뮤니티, 정당, 계파······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어야 할 트위터와 페이스북조차도 집단을 형성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자신과 반대되는 집단에 대해 지치지도 않고 쏟아내는 독설과 비방, 질투와 복수······ 대한민국은 지금 피곤하다.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은 자아와 세상의 건강한 균형을 잡아나가는 진정한 개인주의자는 누구인가를 호탕하게 밝히는 책이다. 박력 있는 문장과 곧바로 핵심을 이야기하는 논리도 매력적이다. 한마디로 통쾌하고 시원하다.
이따금 왜 운동권 내부에서는 자기 성찰적 글이 나오지 않을까 궁금하곤 했다. 그러던 차에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을 읽으면서 오래 기다려온 바로 그 책을 만난 듯한 반가움이 일었다. 저자의 성찰에서 아직 식지 않은 열기와 덜 풀어진 회한을 보는 일은 마음 아팠지만 그 성찰이 도달한 결론이 ‘개인에 대한 인식’이라는 사실은 안심이 되었다.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의 박성현 선배는 지금껏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인문학적 교양까지 풍부해 그야말로 천재에 가깝다. 나는 그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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