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03 깃발, 나부끼는 그리움
유치환 지음
2008, 교보문고
시흥시능곡도서관
SF005994
811.6
유86ㄱ
청마 유치환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차례
시그림집을 펴내며
첫째 마당
무척이나 무척이나 기다렸네라
행복
동백꽃
개화
기다림
밤비
오동꽃
그리움
밤바람
한루
개가
모란꽃 이우는 날
별
바닷가에 서서
낙화
낙엽
그리우면
그리움
별
새
낮달
둘째 마당
드디어 알리라
드디어 알리라
수선화
아가 일
아가 삼
너에게
길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선한 나무
단풍
노송
진실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시인에게
거목에게
나
그리움 I
바람에게
부활
복사꽃 피는 날
청령가
셋째 마당
나의 가난한 인생에
거제도 둔덕골
꽃
가난하여
영아에게
향수
무야
안해 앓아
춘신
또 하나의 꽃
마지막 항구
울릉도
소리
병처
설레임
소식
육년후
문을 바르며
초상집
이웃
세월
넷째 마당
슬픔은 불행이 아니다
기빨
이 사람을 보라
바위
일월
해바라기 밭으로 가려오
수
파도
생명의 서 일장
생명의 서 이장
흐름에 잠긴 소도
뉘가 이 기를 들어 높이 퍼득이게 할 것이냐
돌아오지 않는 비행기
슬픔은 불행이 아니다
목마름
칼을 갈라!
눈과 정욕과
복수
운명에 대하여
원수
그래서 너는 시를 쓴다?
다섯째 마당
사람이여 사람이여 들으라
메아리
심산
곰에게
예루살렘의 닭
교회당
통곡
미사의 종
황혼
고독
나목림
성령수태
휴전선에서
산하
원경
오막살이 두 채
석굴암대불
밤비소리
열애
송화
장례
해설 | 영원히 펄럭이는 그리움의 깃발 - 정호승
시그림집 참여 작가들
안윤모 | 행복 | Acrylic on Canvas | 91×72cm
행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숫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봇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마시집》 중에서
그리움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 같이 가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청령일기》 중에서
박수만 | 인간의 나무 | Oil on Canvas | 117×91cm
한루 寒樓
사랑하는 이와 나란히
이 버찌나무 아래 우러러 서니
머리카락 목덜미 간지리는
먼 산 눈녹이 바람의 상기 쌀쌀한 결에도
아련아련 몸기척이 오고 있어라
그렇게 조여 붙었던 것이
이제 완연 너그러움 풀려 드는 하늘 아래
가지마다 도톰히 눈뜨려는 움들
하마 여릿여릿 먼동이 틀어 오는 양
즐거운 흥성거림 소리도 들리는듯 하여라
사랑하는 이와 어깨에 손 얹고
이 버찌나무 아래 나란히 서니
아아 기약하던 그 봄이
시방 설빔 입고
화안히 환히 오고 있어라
《청마시집》 중에서
최석운 | 바닷가에 서서 | Acrylic on Canvas | 72.7×60.6cm
바닷가에 서서
나의 귓전을 쉼없이 울림하고 스쳐 가는 바람이여.
창망滄茫히 하늘과 바다의 끝 간데 없음이여.
하여없이 닥아 치는 파도波濤여.
---그리움이여.
옷자락처럼 네게로 네게로만 향하는 그리움이여.
나는 눈을 감는다.
나는 없다.
아니다, 나만 있다.
천지간天地間에 나만이 있다.
아슬한 하늘끝 파도波濤소리 바람소리되어 나만이 있다.
구름 밖의 학鶴의 울음 같다.
젓대소리 같다.
천지天地는 비고
한가락 읊조림만이 남아 있어
---그리움이여, 그리움이여.
《청마시집》 중에서
그리움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즉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긴 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기旗빨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청마시초》 중에서
이수동 | 낮달 | Acrylic on Canvas | 45.5×39.9cm
낮달
쉬이 잊으리라
그러나 잊히지 않으리라
가다 오다 돌아보는 어깨 너머로
그날밤 보다 남은 연정의 조각
지워도 지지 않는 마음의 어룽
《청령일기》 중에서
강승희 | 새벽-2801 | 동판화 | 50×80cm
드디어 알리라
드디어 큰악한 공허空虛이었음을 알리라
나의 삶은 한 떨기 이름 없이 살고 죽는 들꽃
하그리 못내 감당하여 애닮던 생애生涯도
정처 없이 지나간 일진一陳의 바람
수유須臾에 멎었다 사라진 한 점 구름의 자취임을 알리라
두 번 또 못 올 세상
둘도 없는 나의 목숨의 종언終焉의 밤은
일월日月이여 나의 주점가에 다시도 어지러이 뜨지를 말라
억조億兆 성좌聖座로 찬란燦爛히 구천九天을 장식裝飾한 밤은
그대로 나의 큰악한 분묘墳墓!
지성하고도 은밀한 풀벌레 울음이여 너는
나의 영원永遠한 소망의 통곡痛哭이 될지니
드디어 드디어 공허空虛이었음을 나는 알리라
《생명의 시》 중에서
오순환 | 바다 | Acrylic on Canvas | 73×53cm
너에게
물 같이 푸른 조석朝夕이
밀려 가고 밀려 오는 거리에서
너는 좋은 이웃과
푸른 하늘과 꽃을 더불어 살라
그 거리를 지키는 고독孤獨한 산정山頂을
나는 밤마다 호올로 걷고 있노니
운명運命이란 避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피避할 수 있는 것을 피避하지 않음이 운명運命이니라
《울릉도》 중에서
장태묵 | 여백의 풍경 | Acrylic on Canvas | 116.7×91cm
길
등성이 넘어 풀잎을 밝고 오솔길을, 원수도 처음 이 길로 하여 찾아 오고 사랑도 이 길로 갔으리니, 아득히 산하를 건느고 전원田園을 지나, 눈물겹게도 면면綿綿히 따르고 불러 얽힌 인간人間 은수恩讐의 이 잇닿음을 보라.
가도 가도 신神에게로 가는 길은 없는 길, 필경은 나도 나의 자위自僞에서 돌아 서 그 위에 표표瓢瓢히 나타나 사라질 길이여.
《예루살렘의 닭》 중에서
안병석 | 바람결 | Oil on Canvas | 72.7×60.6cm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마침내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무량한 안식을 거느린 저녁의 손길이
집도 새도 나무도 마음도 온갖 것을
소리 없이 포근히 껴안으며 껴안기며 ---
그리하여 그지없이 안온한 상냥스럼 위에
아슬한 조각달이 거리 위에 내걸리고
등들이 오르고
교회당 종이 고요히 소리를 흩뿌리고.
그립고 애달픔에 꾸겨진 혼 하나
이제 어디메에 숨 지우고 있어도.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귀를 막고 ---
그리고 외로운 사람은
또한 그렇게 죽어 가더니라.
《청마시집》 중에서
김정호 | 시인에 대하여 | Acrylic on Canvas | 130.3×97cm
시인詩人에게
영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것은 정수리 위에 도사려
내가 목숨을 목숨함에는
솔개에게 모자보다 무연無緣한 것.
이날 짐짓
나를 붙들어 놓지 않는 것은
살아 있으므로 살아야 되는 무가내한 설정設定에
빗바람에 보둠긴 나무.
햇빛에 잎새 같은 열망熱望.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그 짧은 인생의 사무치는 뜨거움에
차라리 나는 가두街頭 경세가經世家
마침내 부유蜉蝣의 목숨대로
보랏빛 한 모금 다비茶毘 되어
영원의 희멀건 상판을 기어 사라질 날이
얼마나 시원한 소진消盡이랴.
그러기에 시인이여.
오늘 아픈 인생과는 아예 무관한 너는
예술과 더불어 곰곰이 영원하라.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중에서
김형석 | 청마를 그리며 | Digital Print | 90×66cm
향수鄕愁
나는 영락零落한 고독孤獨의 가마귀
창량蹌踉히 설한雪寒의 거리를 가도
심사心思는 머언 고향의
푸른 하늘 새빨간 동백에 지치었어라.
고향 사람들 나의 꿈을 비웃고
내 그를 증오憎惡하야 페리같이 버리었나니
어찌 내 마음 독사같지 못하야
그 불신不信한 미소와 인사를 꽃같이 그리는고.
오오 나의 고향은 머언 남南쪽 바다ㅅ가
반짝이는 물껼 아득히 수평水平에 조을고
창파滄波에 쌓인 조약돌같은 색시의 마음은
갈매기 울음에 수심愁心저 있나니
희망希望은 떠러진 포켓트로 흘러가고
내 흑노黑奴같이 병들어
이향異鄕의 치운 가로수街路樹밑에 죽지 않으려나니
오오 저녁 산山새처럼 찾어갈 고향길은 어디메뇨.
《청마시초》 중에서
송필용 | 봄날의 꿈-물도 꿈을 꾼다 | Acrylic on Canvas | 91×61cm
춘신春信
꽃등인양 창窓 앞에 한 거루 피어 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적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메서
적은 것을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나다가
이 보오얀 봄 길을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앉았다 떠난 아름다운 그 자리 가지에 여운餘韻남아
뉘도 모를 한 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 없이 적은 길이여
《생명의 서》 중에서
병처病妻
아픈가 물으면 가늘게 미소微笑하고
아프면 가만히 눈감는 안해
한 떨기 들꽃이 피었다 시들고 지고
한 사람이 살고 병病들고 또한 죽어가다.
이 앞에서는 전우주全宇宙를 다하야도 더욱 무력無力한가
내 드디어 그대 앓음을 난호지 못하나니
가만히 눈감고 안해여.
이 덛없이 무상無常한
골육骨肉에 엉기인 유정有情의 거미줄을 관념觀念하며
요료遙廖한 태허太虛 가온대
오직 고독孤獨한 홀몸을 응시하고
보지 못할 천상의 아득한 성망星芒을 직히며
소조蕭條히 지저地低를 구우는 무색無色 음풍陰風을 듣는가
하야 애련哀憐의 야윈 손을 내밀어
인연因緣의 어린 새새끼들을 애석哀惜하는가
아아 그대는 일즉이
나의 청춘靑春을 정열情熱한 한 떨기 아듬한 꽃.
나의 가난한 인생人生에
다만 한 포기 쉬일 애증愛憎의 푸른 나무러니
아아 가을이런가
추풍秋風은 소조蕭條히 그대 위를 스처 부는가.
그대 만약萬若 죽으면---
이 생각만으로 가슴은 슬픔에 즘생같다.
그러나 이는 오직 철없는 애정愛情의 짜증이러니
진실眞實로 엄숙嚴肅한 사실事實앞에는
그대는 바람같이 사라지고
내 또한 바람처럼 외로이 남으리니
아아 이 지극至極히 가까웁고도 머언 자者여.
《청마시초》 중에서
기旗빨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向하야 흔드는
영원永遠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純情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표標ㅅ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白鷺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청마시초》 중에서
이인 | 바위 | Mixed Media | 122×80cm
바위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 하여
드디어 생명生命도 망각忘却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 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생명의 서》 중에서
엄윤숙 | 해바라기 밭으로 가려오 | Oil on Canvas | 116.7×65cm
해바라기 밭으로 가려오
해바라기 밭으로 가려오
해바라기 밭 해바라기들 새에 서서
나도 해바라기가 되려오
황금黃金 사자獅子 나룻
오만午慢한 왕후王侯의 몸매로
진종일 짝소리 없이
삼복三伏의 염천炎天을 노리고 서서
눈부시어 요뇨嫋嫋히 호접胡蝶도 못 오는 백주白晝!
한 점 회의懷疑도 감상感傷도 용납ㅎ지 않는
그 불령不逞스런 의지意志의 바다의 한 분신分身이 되려오
해바라기 밭으로 가려오
해바라기 밭으로 가서
해바라기가 되어 섰으려오
《생명의 서》 중에서
양계남 | 내 영혼 불이 되어 | 한지에 채색 | 63×93cm
생명生命의 서書 일장一章
나의 지식知識이 독毒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病든 나무처럼 생명生命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亞刺比亞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不死身 같이 작열灼熱하고
일체一切가 모래 속에 사멸死滅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아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苦悶하고 방황彷徨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烈烈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運命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ㅎ게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生命이란
그 원시原始의 본연本然한 자태姿態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白骨을 쪼이리라
《생명의 서》 중에서
'읽은 책들 > 2021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34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0) | 2021.11.29 |
---|---|
2021-024 한국 사람 만들기 I (제2부 친중위정척사파<2>) (0) | 2021.09.13 |
2021 - 014 독립정신 (0) | 2021.06.28 |
2021-002 노포에 머문 시간 (0) | 2021.05.10 |
2021-001 장에 가자 (0) | 2021.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