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8
신문물과 신문화
문호개방 이후 모든 문화에서 서양과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양복, 서양음악, 극장, 라디오, 축음기 같은 신문물이 등장하여 대중문화와 유행을 만들어냈다. 다만 도시에 살며 여유가 있는 사람들 만이 쉽게 소비할 수 있었다. 또한 모든 대중매체는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거쳤고, 전쟁시기에는 제국주의 선전정책을 노골적으로 반영하였다.
경성가두인물전람 / 서울역사박물관
군산 풍천백화점 광고
일본인니 1935년 군산에 설립한 백화점이다. 광고지를 보면, 양복, 와이셔츠, 넥타이, 의류잡화, 만년필, 레코드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였다. 가정용 실용춤의 10전 균일가 판매도 홍보하고 있다.
결혼식 사진
신문화와 신문물의 도입은 의례까지 변화시켰다. 사람들은 전통혼례를 대신해 새로운 방식으로 혼례를 치렀다. 한복이 아닌 서양식 옷을 입고 신부집이 아닌 장소에서 결혼식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이를 사진으로 남겼다.
윤병택 기증
화신백화점 사진 엽서
1937년 완공된 화신백화점의 모습이다. 화신백화점은 한국인 자본가 박흥식의 기업으로, 한국인 건축가 박길룡의 작품으로, 한국인 거리로 불린 종로의 랜드마크로서 상징적인 존재였다. 철거 후 그 자리에 종로타워가 건립되었다.
근화 부인재봉소 광고
최신 유행의 와이셔츠와 맵시 있는 아동양복 각종을 저렴가로 제공한다고 적혀 있다. '원료가 풍부하며, 재봉이 미려하기로 독보적이다'라고 근화부인재봉소를 홍보하고 있다.
양복점 광고
영신양복점은 창업 1주년 기념 특별 10퍼센트 할인을 홍보하고 있다. 종로양복점은 학생복부 대확장과 품질 개선을 알리고 있다.
영신환 광고포스터
조선매약주식회사의 대표상품으로 소화제이다. 회사는 서울 한약업자들의 공동투자로 1913년 설립되었다. 문호개방 이후 한약업자는 한의학과 한약재를 바탕으로 서양약품에 대한 일부 지식을 활용해 약을 제조해 판매하였다.
조미료 광고
아이스크림 장수
아루보스 비누 광고
비누는 1920 ~ 30년대 들어 활발하게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오인 광고
감기 해열약 광고
은인단 광고
광고지의 모델은 무용가 최승희이다.
고려인삼광흥사 광고
고려인삼광흥사 인삼 가격과 할인 방법을 알리고 있다. 통신판매도 가능한데, 소포 비용과 나무상자 비용을 구매자가 부담해야 한다. '흥자 고려인삼을 주의하시오'라는 문구도 적어두었다. 상호가 비슷하기 때문인 듯하다.
<개벽> 임시호
1920년 천도교의 개벽사가 창간한 월간 종합잡지이다. 본 자료는 창간호가 표지 그림과 기사문제로 압수되자 임시호로 재발행한 것이다. 갸벽사는 <개벽>을 시작으로 1935년까지 총 9종 406호의 잡지를 간행하였다.
<삼천리> 1931년 9월호
1929년에 창간한 오락성격의 월간 대중잡지이다. 독자의 호기심을 끌 만한 특종을 담고 있어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잡지이다. 1937년 이후에는 친일적인 경향의 잡지로 변모하였다.
<청년조선> 창간호
1934년에 창간한 시사문제를 다룬 종합잡지이다. 기자이자 소설가인 김기진과 조각가 김복진 형제가 주도하여 설립한 청년조선사에서 발행하였으나 일제의 검열로 인해 1호로 종간하였다.
<장한> 창간호
경성의 기생들이 1927년에 만든 잡지로 장한은 '오래도록 잊지못할 원한'이란 뜻이다. 표지는 새장 안에 갖힌 여성 이미지와 '동무여 생각하라, 조롱 속의 이 몸을'이라는 글을 담고 있다.
<노동운동> 임시호
1927년 강우를 중심으로 박희도, 이항발, 이순탁 등이 창간한 사회주의계 잡지이다.
<사상운동> 1925년 3월호
1925년 일본 도쿄에서 조직된 사회주의 운동단체인 일월회가 같은 해 3월 창간한 기관지이다. 압수와 발매금지가 반복되었고, 결국 같은 해 10월 7호를 마지막으로 종간되었다.
반천년 동안 노예의 역경에 처하였던 우리는
상실한 인권을 찾아야 한다.
궐기하라! 백정 계급아 모여라 이 형평 깃발 아래로!
조선형평사 선언 강령 규약
백정은 가축을 도살하는 직업으로 신분제가 철폐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았다. 1923년 진주에서 이학찬을 중심으로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며 조선형평사가 설립되었고 형평운동이 일어났다.
신문화를 즐기다
공연
장화홍련전 광고 13.4 × 38.7㎝
아내여 참자 광고 17.9 × 39㎝ (왼쪽) / 동극창극단 공연 광고 19.9 × 27.8㎝ (오른쪽)
이순신과 임진왜란 광고 12.9 × 19,2㎝ (왼쪽) / 조선악극단 공연 광고 19 × 12.8㎝ (오른쪽)
음악회
안병소 바이올린 독주회 안내 13.4 × 38.7㎝
이애내 피아노 독주회 안내 15.5 × 23,2㎝ (왼쪽) / 동서음악대회 안내 17.8 × 32.4㎝ (오른쪽)
영화
풍운아 광고 18.1 × 39㎝
언파레드 광고 17.6 × 25,8㎝ (왼쪽) / 청춘의 십자로 광고 53.1 × 26.2㎝ (오른쪽)
민족의 제전 광고 21.3 × 13㎝ (왼쪽) / 그대와 나 광고 9.2 × 14.1㎝ (오른쪽)
조선해협 광고 12.3 × 13.4㎝
<임자 없는 나룻배>
임자 없는 나룻배는 나운규 주연의 영화로 일제강점기 한국 민중의 현실을 반영해 당시에 호평을 받았다. 주인공 춘심은 농토를 빼앗긴 채 이주해야 했으며 근대적 산물인 철도에 비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거리의 천사>
자넷게이너, 찰스퍼렐 주연 할리우드 영화로 폭스사에서 제작하였다. 1920년대 후반까지 국내 영화의 제작은 적은 편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로 외국영화를 관람하였다.
<최승희 무용발표회>
최승희는 한국 최초로 서구식 현대적 디법의 춤을 창작, 공연한 무용가이다. 전단에는 동아일보 후원의 공연으로 최승희의 무용연구소 모든 단원들이 출연하며 큰 축음기를 사용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연애도 해보아야>
단성사에서 만든 전단으로 극단 취성좌의 공연과 외화 상영을 홍보하고 있다. 외화 파라마운트사의 '연애도 해보아야'는 당시 유행했던 '자유연애', '자유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에디슨 축음기
에디슨이 만든 최초의 축음기 형태로 원통에 홈을 파서 소리를 녹음하고 바늘을 사용해 소리를 재생시키는 장치이다. 구한말에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는 원반형 음반을 재생시키는 형태로 대체되어 간다.
1939년 12월 16일 라디오 방송 안내
조선방송협회 보급형 3호 라디오
조선방송협회에서 수신료를 확보하기 위해 시중에 저렴하게 보급한 라디오이다. 한국에서 정규 라디오 방송은 1927년 일본어로 시작되었고, 한국어 방송은 1933년 제2방송으로 추가되었으나 1943년 중단되었다.
라디오청취료 영수증
1943년 조선방송협회가 월 청취료 75전을 받고 발급한 영수증이다. 라디오 등록대수는 1927년 한국인 949대. 일본이 1481대에서 1942년 한국인 14만 4912대, 일본인 12만 5882대로 증가하였으나, 100가구당 보급률은 일본인 73대, 한국인 3대 수준을 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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