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빛의 섬, 눈부신 마을] 02

드무2 2023. 4. 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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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섬, 눈부신 마을] 02

 

 

 

김녕로19길 폭낭거리

수채화 79 × 34.5㎝ 김녕리

 

 

 

일주도로가 생기기 이전엔 김녕리의 척추와 같은 도로였다고 한다. 주변이 모두 초가였던 시절, 더위를 피해 저 그늘 아래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 그리는 내내 오버랩 되었다. 집은 현대식으로 바뀌었지만 돌담은 길가와 집을 정겹게 이어주는 듯하다. 동서로 난 이 길에서 마주치며 인사 나누던 사람들. 소달구지가 지나가면 물허벅을 지고 오던 아주머니와 비바리들이 돌담으로 몸을 붙이며 피해주고. 저 팽나무 그늘 아래 부채를 들고 더위를 피하던 할아버지는 '물 한 사발 주고 가라'며 농을 던지는 모습. 저 아래서 나누던 이야기는 얼마나 아름다운 이웃들의 이야기였던가. 이웃을 걱정해주는 마음들로 수놓아진 극복의 공동체 마당을 그렸다. 저 길가에 부서지는 뙤약볕보다 눈부신 수눌음공동체의 광채를 마주하고 싶어서. 여기 김녕리 마을 안길을 통하여 느끼게 되는 잔잔한 감동은 느린 변화가 가져오는 현명함이라 생각된다. 갑작스런 혁명의 공간이 아니라 점진적 변화를 선택한 사람들의 길을 눈부신 태양광선과 함께 찬탄하고자 하는 것이다.

김녕초등학교 동쪽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북북서쪽으로 틀어서 북쪽으로 보면 소박한 미용실 간판이 보이고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저 팽나무가 보인다. 50년 전 가옥들의 분위기가 조금씩 느껴지는 집들이 세월을 병풍처럼 접었다 폈다 하는 동가름 폭낭거리. 농어촌 지역의 중심 거리들은 보통 상업공간으로 변모하는 경우가 많으나 독특하게 이 길은 주거지역의 조용한 의지를 그대로 실천이라도 하듯이 많은 옛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어서 좋다.

 

<출처 : 한라일보>

 

 

 

 

 

 

궤내리굴 신목의 아침

수채화 79 × 34.5㎝ 김녕리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는 동굴. 학술적 판단으로 기원전 5세기까지 어느 일정한 시기에 주거공간이었다. 중세 이후 제의를 행하는 신성한 장소로 변모해 조선시대에는 '돗제'라고 하는 무속신앙 형태의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쓰였다고 한다.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서 굴에 좌정한 신에게 올리는 굿을 통해 주민들의 안녕을 빌었던 순박한 마음의 고향이다. 그 전통이 어떤 이유에서 집집마다 1년에 한 번 집안에 액운이 닥치지 않게 하거나 경사스러운 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돗제를 지내게 된 김녕리 '돗제 문화', 조상 대대로 내려온 김녕리 돗제풍습은 이면에 놀라운 공동체 의식이 하나의 정신문화로 자리 잡은 것.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을 먹는 것에 엄두도 내지 못하던 척박한 농경살림이지만 120가호가 겹치는 날 없이 1년에 한 번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제를 지내고 조금씩 나눠서 가가호호에 모두 나눈다면, 최소한 3일에 한 번은 돼지고기를 넣은 국물을 식솔들에게 먹일 수 있다는 상부상조 마인드. 이보다 더 지혜로운 공동체정신을 필자는 만난 적이 없다. 나눔의 문화가 보편화된 김녕리. 그 정신적 원류가 저 350살 팽나무 신목이다.

이 아침, 입산봉 위에 해가 솟아 돗제정신을 비춘다. 오름의 서쪽은 아직 깨어나지 않은 그늘 속에 있지만 햇살의 시간은 밭담들까지 아름답게 깨워낸다. 멀리 해안선에 김녕해수욕장이 가는 선으로 보이는 곳. 김녕리는 깊은 역사와 함께 이렇게 빛나기 시작한다. 나눔문화의 성지로 거듭나기를 염원하면서.

 

<출처 : 한라일보>

 

 

 

빌렛거리의 유월

수채화 79 × 35㎝ 예래마을

 

 

 

새마을금고에서 열리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보면 남북으로 난 소보리당로와 만나 네거리를 이룬다.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서있는 한 대의 경운기를 만났다.

요즘 80세 어르신도 현역 농부임을 과시하기 위하여 끌고 밭일을 나가신다는 저 경운기. 새마을운동 시기에 농촌에 보급되기 시작한 경운기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만약 저 경운기의 주인이 상상하던 그대로 여든 살 어르신이라면 20대에 초가를 헐어 슬레이트집을 지었으며 마을 안길을 버스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확장시키는 데에 젊음을 바쳤을 것이다. 농촌의 발전사와 함께 해온 인생들을 불현듯 저 경운기에서 반추하게 되는 이유를 그렸다.

더욱 정겨운 것은 예래마을 주민들의 품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원수들의 모습이다. 마을회의 결의 사항도 아니며, 누가 시킨 일도 아니다. 집집마다 잘 관리된 나무들이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웃집, 길 건너 집에서 고개를 내민 나무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처럼 보이니 길 전체가 아름답게 장식된 것이다. 결코 작위적이지 않은 소박한 마을 안길 풍경. 획일적인 가로수들보다 얼마나 아름다운 자발적인 취향들인가. 모름지기 경쟁심도 있었으리라.

나무 키우는 것은 이웃집 누구보다 자신 있다는 자부심. 네거리 이름 또한 얼마나 제주의 멋을 풍기는가? 빌렛거리! 암반지대를 정리하여 길을 내서 통행에 불편이 없도록 만들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이름으로 보인다. 돌담과 블럭담장이 공존하면서 묘한 세대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길이 여기 있다.

 

<출처 : 한라일보>

 

 

 

대왕수천에서 사자의 포효를

수채화 79 × 35㎝ 예래마을

 

 

 

매해 이 냇가는 이맘때, 스스로 초록축제를 열어 온갖 새들이며 벌레를 초대한다. 멀리서 구경하는 사자는 너무 작은 놈들이 노는 곳에 가려니 체면이 구겨질까봐 지는 햇살에 노근하여 하품하고 있고. 이해가 가지 않은 구석이 있다. 옛날 왕조시대엔 지명에 왕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불경스럽게 생각하여 멀리하거나 못 쓰게 했다는 속설이 있거니와 왕도 아니고 앞에 대(大)자 까지 붙여서 대왕수천이라고 해도 관아에서 뭐라고 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뭐라고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자. 워낙 예래 양반님들이 파워가 막강하여 예외조항을 적용했으리라는 즐거운 상상. 생태마을의 상징적 모습을 그렸다. 깊고 웅장한 계곡의 느낌 속에 한줄기 물이 흐르는 실경을 접하는 마음이 흐뭇하여 붓놀림도 상쾌하다. 저 초록세상 안에는 반딧불이가 밤을 기다리고 있으며, 어리연꽃과 애기범부채, 꽃창포 같은 희귀식물도 살고 있다. 단순하게 자연자원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예래의 혼'이며 자연보호를 위한 치열한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구경꾼은 한 번 지나치고 말지만 숱한 개발 유혹을 뿌리치고 이 자연생태계를 지켜내는 마을공동체의 의지를 미력한 화면에 그리고 있는 것이다. 솟아나는 물과 흐르는 물이 공존하는 대왕의 냇가- 대왕수천. 이 지점에 서 있으면 파도소리와 냇물소리가 함께 들리는 경우가 있다. 비가 많이 오면서 너울파도가 크게 밀려오는 날. 그런 날을 기다려 달려오면 된다.

 

<출처 : 한라일보>

 

 

 

어림비길 오래 전 비료 창고

수채화 79 × 35㎝ 봉성리

 

 

 

비가 개이고 눈부신 햇살이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변덕스러운 날. 멀리 한라산 방면은 구름 안개에 가려져 있고, 봉성초등학교 서쪽에서 어음리로 가는 길가에서 1975년경에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지었다는 비료창고를 만났다. 현무암을 돌담 쌓듯이 쌓아 가며 사이사이에 시멘트 몰탈을 발라 완성시킨 건물. 그 시기엔 마을 안에 우뚝 솟은 높이였으리라.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상황에서 얼마나 뿌듯했을까! 또한 혁명적인 농업 방식의 변화에 희망차 있었을 것이다. 돗통시에서 거름을 생산해 퇴비를 써서 밭농사를 짓다가 이를 대신할 화학비료가 생겼고 이를 대량으로 쌓아둘 마을공동창고가 생겼으니. 거름 마련에 투입할 노동력과 시간을 다른 농사일에 쓸 수 있으니 생산량 증가에서 오는 효과는 이미 예측되는 일. 4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당시 30세 청년은 70대가 됐고. 비료창고도 나이를 먹었지만 돌로 쌓은 덕분에 외모는 낡았으되 구조적인 견고함은 앞으로 수 백 년을 끄떡없을 것 같다. 농경마을 봉성리를 대표하는 살아있는 역사. 길 건너편에 있는 초등학교에 손자 손녀들이 배워야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역사적인 업적이라고 하자. 어떤 급격한 변혁의 시기에 수용하고 대응했던 공동체정신을 이 창고건물이 상징한다. 화려하게 앞서가는 가치에 대한 탐닉이 정작 우리 시대가 이룩한 의미 있는 '도전의 탑'을 보잘 것 없는 퇴물 취급을 하는 것은 아닐까 반성하면서 그렸다. 마을문화재는 주민의 삶과 괴리되지 않은 이런 것이다.

 

<출처 : 한라일보>

 

 

 

 

 

 

아침 햇살로 빚은 한라산

수채화 79 × 35㎝ 봉성리

 

 

 

풍경(風景)이란 이런 것. 바람은 시간성이다. 움직여 흐르니 그러하다. 볕, 해를 뜻하는 景과 만나서 태양광선의 시간성을 통하여 자연공간의 변화상을 파악하고 느끼는 존재요 행위들로 받아들여진다. 그 것을 그린다는 것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의 문제일 뿐.

이 섬에서 한라산을 풍경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방법은 무한대에 가까운 가능성을 보유하였다. 위치의 변화와 시간의 변화는 한라산에게 오묘한 신비감을 부여하여 우리를 탄복하게 하는 것. 하지에 가까워질 때, 새벽에 봉성리로 달려가 여기 이 지점에서 바리메오름과 새별오름 사이, 멀리 아침햇살을 맞이하는 한라산을 바라본다. 요즘이라야 하는 이유는 일출의 위치가 최대한 북쪽으로 치우쳐 있어야 한라산은 이러한 신비한 태양광선 속에서 환상적인 색채로 빛나게 되는 것이다. 바리메 오름 뒤쪽은 이미 눈부신 햇살로 가득하거니와 아직 여기는 잠이 깨지 않은 초목들이 밤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분위기다. 임야 목장지대의 시원스런 공간감에 오름들의 곡선이 미세한 회화적 농담 변화를 드러내는 여명에서 해돋이까지. 거대한 시각적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봉성리의 이 장소를 소중한 가치의 영역에 편입시켰다.

제주의 숱한 절경들이 나름대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물하지만 바리메오름 뒤에서 떠오른 태양이 연출하는 빛의 향연을 웅장한 대자연 속에서 감상 할 수 있는 절묘함과는 견줄 상대가 되지 못한다. 수채화의 특성을 살려 표현하다보니 현장성과는 다른 색다른 그 무엇을 찾고자 했다.

 

<출처 : 한라일보>

 

 

 

 

 

 

서동정미소 주변 풍경

수채화 79 × 35㎝ 종달리

 

 

 

하지의 햇살이 바쁘게 지나가는 솜털구름 사이로 내리쬐자 눈이 부시다. 그릴 것이 넘쳐나는 마을에서 유독 서동정미소를 찾은 것은 포근한 지미봉 품속에서 이웃이라는 평화의 공간을 구축한 마을 모습이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제주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가장 오래된 정미소라는 사실. 82세 오정식 사장님이 운영하는 1인 기업. 60대 후반으로 보일 정도로 정정한 활동력을 가지고 오늘도 곡식을 기계에 넣고 숙련된 기술로 곡식을 용도에 맞게 가공하고 있다.

외삼촌이 30년 가까이 하던 정미소를 인수해 50년을 이어온 작업이니 마을 입장에서는 80년을 서동정미소 기계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소금밭 시절에서부터 논으로 바꿔서 벼농사를 짓게 되는 격동의 과정을 함께 해온 서동정미소.

1940년부터 3세대 가까운 세월, 농경지 곡물에서 밥상 사이의 과정을 책임져온 토종기업이 아니겠는가.

필자가 몇 해 전에 들렸을 때는 아주 오래된 디젤엔진 정미소 기계였는데 소음이 적은 전기모터로 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정미소 앞에 없던 건물이 생겨서 반가웠다. 기와정자다. 사장님이 작업하다가 잠시 쉴 수 있는 휴게공간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정성을 들여 그리게 된다.

염전을 논으로 만들어 벼를 심었지만 처음에는 실패하고 10년 뒤에 우연히 재도전을 하여 벼 수확에 성공했을 때, 저 서동정미소에서 쌀을 맞이하던 그 기쁨은 세상 무엇으로 견줄 수 있으랴. 정미소 사장님이 더 신바람이 났었을 것이다.

 

<출처 : 한라일보>

 

 

 

평화로운 종달리 해변

수채화 79 × 35㎝ 종달리

 

 

 

가끔이지만 육풍에서 해풍으로 바뀌거나, 바람 방향이 바뀌는 잠시 동안 이 곳 바다는 호수에 가까울 정도로 파도가 사라진다. 팔을 뻗어 감싼 해변지형의 영향으로 너울파도가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멀리 우도가 보이지 않으면 누가 바닷가라고 하겠는가. 여름이 다가오는 시기엔 여기서 두 개의 초록이 만난다. 하나는 흙이 만들어내는 초록이며 또 하나는 바다가 만들어내는 초록이다. 풀잎들과 파래가 육지와 바다를 대표해 여기서 이렇게 만난다. 청명한 파란 하늘이 있는 날에는 청록색으로 풍경을 지배하는 곳이다.

원경은 현실 속을 그려야 하는 풍경 속에 상상화의 요소를 투입했다. 있는 것을 고의적으로 모두 뽑아 버렸으니, 있는 것을 없애는 것 또한 상상의 영역. 전봇대를 모두 철거(?)해버렸다. 이 아름다운 해변에, 자연이 주는 행복한 풍경에 가시들이 박힌 느낌이라서 그런 것이다. 의도적이다. 목적을 가진 의도를 그림을 통해 주장하고자 했다. 전신주 없는 지중화 시범마을로 종달리 해안도로 일대를 지정해주기를 바라는 '풍경화 청원'이다. 멀리 우도와 일출봉이 보이는 엄청난 가치를 보유한 경관. 그 아름다운 자연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풍경화를 통해 마을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감히 그림을 통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잔잔한 바다와 평화로운 해안선 속에서 진정 시각적 힐링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전신주 없는 이런 풍경을 그렸다.

 

<출처 : 한라일보>

 

 

 

해질녘에 진동산 길 위에서

수채화 79 × 35㎝ 덕수리

 

 

 

덕수리와 산방산이 어떤 관계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산방산의 시각적 존재감이 가장 부각되는 일몰 가까운 시점에 높은 지대에 올라가 바라보면 알 수 있다. 풍수를 중요시 하던 조상들이 분명 저 옹골찬 기상이 느껴지는 위치를 선택해 삶의 터전을 개척하였을 것이다. 산세가 회오리치듯 솟아오르는 느낌을 받는다. 명암을 통해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산방산의 솟는 힘. 금방 전에 땅을 뚫고 올라온 산이 거침없이 하늘 향해 용솟음 지고.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오르막과 내리막 지형들. 높낮이 모두를 산방산이 주관하여 지휘하는 모습이다. 멀리 바다는 이미 해가 진 듯 어두운 색으로 변하고 있고. 산방산 암벽과 나무들에는 햇살이 미세한 채색을 통하여 신비감을 극대화시킨다. 산방산은 구름과 놀아야 더욱 멋스럽다. 산 뒤에서 햇살을 받으며 산방산의 진가를 더욱 강조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대가 조금 높은 마을 속 건물들이 듬성듬성 저녁 빛을 받아 차분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화면 전체가 노을빛의 향연이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산방산의 위엄이 화면 안에 들어와 앉았다.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드러나지 않던 모습들이 어둠을 앞둔 시점에서 확인되는 경우가 이러하다. 포근한 휩싸인 시간을 그리려 했다. 빛을 받아 반사하는 것은 거울 뿐이랴 여기 산도 있는데. 바위 암벽에 칠해진 태양광선 물감을 통하여 더욱 친근해지는 산방산의 진가를 발견하려 하는 것.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바라보는 즐거움이 여기 있다.

 

<출처 : 한라일보>

 

 

 

 

 

 

종댁거리의 의미를 찾아

수채화 79 × 35㎝ 덕수리

 

 

 

마을공동체의 결속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여기 와서 보라고 할 것이다. 덕수리 조상님들이 이 마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 불문율을 지키는 문화 속에 산다는 것이었다. 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이 종소리가 울리면 자신의 일을 멈추고 마을공동체의 소집명령에 신속하게 응하는 의무. 늦으면 눈총을 받으니 뛰어왔을 것이다. 방앗돌을 끌어서 굴려야 하거나 솥이나 보섭을 만들기 위한 쇳물 녹여 부어야 하는 일손이 갑자기 많이 필요한 경우 잠시 모여들어서 후닥닥 해치우고서 자신이 하던 일을 하러 돌아가면 된다. 가끔 다른 마을과 시비가 붙어 패싸움이라도 나면 평소에 단련된 긴급소집령은 그 진가를 발휘했으리라. 우르르 한꺼번에 모여든 인원이 상대 진영을 몇 갑절 압도했을 것이니. 지명 자체가 종을 걸어놓고 치던 곳이라는 뜻의 '종댁거리'다. 지금은 이처럼 상징물 형태로 조상들의 공동체 결속력을 자부심에 담고 있다. 덕수리 정신의 핵이라고 해야겠다. 아쉬움이 있다면 원래 형태대로 돌계단을 만들어 종을 걸어놓는 것. 삼거리에 차량 동선 관계로 저런 모습을 지녔다면 앞에 밭을 사서 길을 넓히고 계단이 있는 원형을 복원하는 일. 민간 모금과 행정지원에 의하여 원형을 되찾는다면 이 얼마나 보람되고 흐뭇한 일이겠는가. 후손들에게 대대로 물려줄 가장 소중한 가치에 대하여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들이 혹시 이런 일은 아닐까. 어떠한 정신문화를 지녔다는 것은 삶의 방식이 그만큼 풍요로웠음을 의미한다.

 

<출처 : 한라일보>

 

 

 

 

 

 

공존의 문을 열고

수채화 79 × 35㎝ 신양리

 

 

 

새벽부터 짙게 덮고 있던 해무가 오후 들면서 북쪽으로 밀려나 구름인 듯 멀리 자리 잡은 날. 서쪽으로 기운 해가 더욱 눈부시게 마을을 비춘다. 남쪽 해안 도로에서 포구들을 지나 주거 공간이 시작되는 곳으로 진입하는 곳이다. 백 년의 시간이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설촌 초기에 개척하며 쌓은 돌담들이 바닷가로 향하고 있고, 새마을운동 시기에 초가집 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꾼 가옥형태와 숙박시설로 보이는 상대적으로 높은 건물들. 도로 바닥 맨 앞에 배치된 맨홀뚜껑은 정주여건이 도시 기능을 충족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신양리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 공존의 형태로 다양성을 유지시킨다. 배치된 모든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시각적 풍요를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악기들처럼 느끼며 우월한 하모니를 도출하려 하였다. 그리는 내내 떠나지 않은 주제의식은 공존의 문이 어떤 형태일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하였다. 그러던 중에 떠오른 영감을 상상화 요소에서 가져와 풍경 속에 그려 넣고 말았다. 문이라고 하는 것은 열고 닫는 본질적 기능이 있어야 하는 것이로되 공존의 문은 그러한 것이 없어야 한다. 길이 곧 문이 되는 세상. 다양성을 상징하는 색으로 표시된 영역 공간이면 충분하다. 바닥에 채색된 선들의 논리다. 신양리 마을공동체가 추구하는 이념을 풍경 속에 담아내는 작업을 통하여 미력한 환쟁이의 보람을 크게 느낀다. 삶이 숨 쉬는 소박한 길, 마을 안쪽을 향하고 있으니 이 공존의 문을 지나면 늘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다.

 

<출처 : 한라일보>

 

 

 

섭지코지에 오등애불턱

수채화 79 × 35㎝ 신양리

 

 

 

고무 잠수복이 없던 시절, 겨울바다에 태왁을 구덕에 지고 물질 나온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나가던 곳. 한쪽에 땔감이 조금 준비되어 있어서 물질을 하고 나온 해녀들이 싸늘하게 언 몸을 녹이려고 불을 피워 모여 앉아 서로를 위로하며 나누던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 같다. 북쪽으로 담을 쌓아 추운 바람을 막은 구조다. 놀랍게도 섭지코지에만 열여덟 개 넘는 불턱이 있다. 원형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 있지만 형태를 잃은 것도 상당수. 불턱의 이름들 속에 제주인의 언어정체성이 짙게 배어있다. 빌레불턱, 성그랭이불턱, 조랑개불턱, 방애깨불턱, 구시개불턱, 작지불턱, 복당여불턱 등 섭지코지 해변을 따라 이렇게 많은 불턱이 존재했던 것은 해녀들이 생활의 터전으로 바다와 함께 동고동락했음을 의미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을 법한 삶 그 시간과 공간들이 문화로 자리 잡는다. 대부분 그렇게 살아가니 서러울 것도 없는 숙명과도 같은 당연함 속에 누적된 불굴의 의지를 해녀들의 대화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정신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부끄러운 것은 세계가 인정하는 해녀문화 속 '불턱'이 지방문화재의 반열에도 오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봉수대나 연대, 비석과 같은 문헌 기록과 타지역의 사례와 견주어 지정하는 것이 지방문화재의 논리라면 문화의 본질인 정체성은 설 자리가 없는 곳이 된다. 신양리 섭지코지는 불턱문화의 보물창고다. 하루속히 발굴 복원해 문화재 지정이 돼야한다.

 

<출처 : 한라일보>

 

 

 

성당종탑이 보이는 옛 빨래터

수채화 79 × 35㎝ 신창리

 

 

 

신창리는 수량이 풍부한 용천수로 유명한 마을이다. 그 중에서 유독 식수로 길어다 쓰던 물이 아니라 빨래터로 쓰던 작은쇠물을 그리게 된 것은 멀리 신창성당이 보이기 때문. 묘한 화면 구조와 상징성을 가지고 바라본다. 이불빨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량이 풍부한 저 돌담 둘러진 빨래터 속에서 빨래방망이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던 1953년, 제주에서는 세 번째로 본당 승격을 받은 신창성당. 6·25 전쟁이 끝나는 해, 전쟁으로 궁핍하던 생활 속에서도 본당으로 승격하여 공소시절을 마감하던 신앙심을 새삼 기억하려 한다. 숱한 시간들이 쌓여 올해로 70년! 마을 주민들의 삶, 그 역사와 함께해온 뜻깊은 시간이 풍경 속 햇살처럼 눈부시다. 하늘은 작위적으로 그렸다. 종탑 꼭대기 십자가를 주제로 이런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저 십자가가 신창리에 불러올 수 있는 빛은 얼마가 크고 밝은가!' 장막과 같은 구름을 걷어내고 소박한 집들의 모습을 비춰주는 하늘나라의 빛을 표현하고 싶었다. 맹하의 녹음 속에서 올봄에 솟아난 솔순은 사람보다 더 부지런하게 하늘을 우러르며 커가고. 길과 흙과 돌 그리고 풀들이 각기 다른 곳에서 여름을 노래한다.

옛 시간과 지금의 공간이 풍경 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저 성당종탑이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믿음을 그릴 수 없는 것은, 진정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라 하였기에 그러하다. 여기서 풍경화 한 점을 그리며 발견한 일상의 신성함에 깊이 감사드리려 한다.

 

<출처 : 한라일보>

 

 

 

마리여 등대의 여름날

수채화 79 × 35㎝ 신창리

 

 

 

해안도로도 없고, 풍력발전기도 없던 시절에 검은색 펼쳐진 해변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마리여라는 암반 위에 하얀 등대였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졌으니 마을의 역사와 함께해온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여름날, 눈부신 광선을 받은 하얀 등대가 이곳에 펼쳐진 제주의 생성역사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검은 색 투물러스와 극명한 흑백대비를 보여준다. 용암의 형태로 이 섬을 토목설계에 따라 시공한 주체들이 신창리 바닷가에서 굳어서 화면 속 근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밤에 빛나야 할 등대가 낮에 더욱 눈부신 것은 무슨 연유에서인가 물어도 대답이 없다. 보통 방파제 끝에 있는 등대가 이렇게 자연 생성물 위에 존재하니 운치가 극한값을 보여준다. 등대와 투물러스 사이에 지나가는 탐방로는 또한 이색적이다. 징검다리처럼 수면과 가까우면서도 한 사람 정도가 걸어서 다닐 정도로 폭이 좁다. 자연에 최소한의 개입을 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이곳의 독특한 매력을 체감하기 위해서는 바닷물이 들어와 고요한 수면을 걸어가며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마리여등대 자체가 가지는 조형적 비례 또한 놀라울 정도로 엄청 아름답다. 등대에 오르는 계단은 기단부의 한 부분을 열어서 받아들이는 모양새가 공간 짜임의 절묘한 조합을 의도한 듯 하고. 줄자를 가지고 실측이라도 한다면 분명 황금비가 숨어있을 것이다. 등대 주변의 초록 풀들은 단순하게 큰 암초가 아니라 흙이 존재할 수 있는 육지와 같은 곳임을 보여준다.

 

<출처 : 한라일보>

 

 

 

아침햇살 눈부신 비석거리

수채화 79 × 35㎝ 조천리

 

 

 

조천은 제주 역사의 거목(巨木)이다. 거목이 상징하는 걸출한 인재들을 많이 배출해 각계각층서 우리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토양을 끊임없이 제공해온 마을이기에 중의적인 의미로 합당한 표현이다. 비석거리에 서서 묵묵하게 마을 주민들의 희로애락과 함께 해온 오래된 팽나무를 바라보며 '아침하늘'-조천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그리게 됐다. 나무가 화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해를 가렸는데 햇살의 강도는 더욱 크게 느껴지는 아이러니를 표현하려고 했다. 맹하의 풍성한 잎사귀들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작은 빛들이 마치 별들이 빛나는 모습과 흡사하다. 길과 하늘에는 어떤 채색도 하지 않았기에 흰 여백 자체가 빛으로 가득한 아침세상이 됐다. 하늘이 세상을 연다면 그 뜻에 따라 빛이 열리도록 비석거리 팽나무가 도왔을 뿐이다. 비석과 팽나무들을 제외한 집들은 명도를 밝게 하여 빛 속에 파묻힌 느낌이 들도록 했다.

살짝 경사가 진 길이 여섯 방향으로 나있는 6거리. 제주 농어촌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경우다. 비석의 내용들을 살펴보니 조선시대에 제주목사나 판관을 지냈던 자들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들이다. 이런 공치사를 조천포구 가까운 곳에 위치를 잡은 이유 자체가 당시의 시대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실이 된다. 그만큼 조천포를 통해 육지와 많은 사람이 오고 갔다는 것. 당시로써는 번화가에 속하는 곳에 세워서 많은 사람들이 알라고. 조천이 알고 있으면 제주섬 전체가 알거라는 심산으로.

 

<출처 : 한라일보>

 

 

 

 

 

 

설문대여신 전설 얽힌 엉장매

수채화 79 × 35㎝ 조천리

 

 

 

섬 제주의 백성들은 육지까지 연결된 다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한 서린 마음으로 살았다. 이를 설문대할망에게 애원했더니 '명주 5000필이 들어가는 큰 속옷을 만들어주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이에 사람들은 모여들어 속옷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명주가 모자라서 완성하지를 못했다. 그러자 조천리 바닷가에서 육지까지 다리 놓으려 이렇게 작업하던 설문대할망은 떠나고 말았다는 전설. 그 흔적이 조천바닷가 '엉장매'. 바다로 길게 뻗어나간 높은 현무암 암반층을 다리 공사의 시작점으로 보는 민중적 염원. 아침하늘-朝天에 강렬한 태양이 떠오른 날에 원담이 드러나는 썰물 시간에 맞춰서 그렸다. 제주의 관문 역할을 했던 조천포에서 들려오는 한반도와 관련된 제주와는 다른 이야기들로 인해 막연한 동경과 선망의식이 자리 잡을 수 있는 환경에서 신화적 상상력을 빌어 전설로 자리 잡았다. 회자돼 구비전승 되는 데에는 일상적 현실 속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조천리의 역사는 육지에서 온 이방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몇 곳 안 되는 지역이었다. 엉장매 전설은 조천리가 보유한 매력적인 스토리텔링 자산이자 독특한 관광자원이다. 단순하게 바닷가 전망대 정도로 파악해 여타 지역과 대동소이한 조경용 데크시설과 정자를 설치해 신화적 이미지를 파괴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크게 보면 제주의 소중한 스토리텔링 자원이기 때문에 제주도정 차원에서 적극적인 관광자원화 정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출처 : 한라일보>

 

 

 

 

 

 

평화로운 채소밭 풍경

수채화 79 × 35㎝ 상모1리

 

 

 

7월의 뜨거운 태양이 강렬한 빛을 선물하는 날. 사색의 눈으로 마을 안길을 걷다가 농가 옆 채소밭을 만났다. 여러 종류의 채소가 뙤약볕 아래서 고생이 많다. 숨은 그림찾기처럼 숨어있는 수박 세 덩어리가 정겨움을 더하는 곳. 직접 재배하여 식탁에 올리는 삶이 부럽기도 하고. 멀리 모슬봉 정상에 공군 통신기지와 대비되면서 갑자기 '평화'라는 독백이 튀어 나와 그리기 시작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농가의 채소밭. 돌담과 돌담 사이로 평평하게 뻗은 길, 상모1리 평야지대에서나 만나지 화산섬 제주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그런 평지다. 화면 속에서 거리감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면 쭉 뻗어나간 밭담. 화면 속 광선의 양을 최대한 끌어올릴 방법을 총동원해 채색을 하게 된 것은 '눈부신 평화'라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욕구가 있어서다. 부족한 화면, 저 채소밭 속에 얼마나 많은 광선을 끌어올 수 있을까. 주변에 집들이며 돌담까지 모두 도와야 가능한 일이다. 특히 두 그루의 짙은 초록나무들을 통하여 여름날 뙤약볕을 표현하고 싶었다. 대립하는 듯 조화로운 한 쌍의 나무. 시간이 쌓여 있는 것이 나무라고 했던가! 채소밭과 집 사이에 서서 오랜 세월을 가족 구성원이 되었을 법도 하려니와. 상모1리가 가지고 있는 아픔이 있다면 눈부신 채소밭으로 위로하고 싶었다. 평화를 그리며 대척점에 있는 전쟁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전쟁은 저 채소밭의 잡초 한 포기에 불과하다. 뽑아서 던져버려야하고. 던져버리면 그만인 것.

 

<출처 : 한라일보>

 

 

 

 

 

 

섯알오름에서

수채화 79 × 35㎝ 상모1리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 옆이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잘려나간 듯 흙벽이 생긴 곳에 이르러 물끄러미 숙연한 자세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유대인들에게 통곡의 벽이 있다면 섯알오름이 만든 이 절벽 또한 통곡의 벽이 아니겠는가. 6·25 전쟁 시기에 예비검속이라는 이름으로 국군에 의해 자행된 210명 학살. 인간이 집단적으로 행하는 가장 미친 짓이 전쟁이라고 했다면 악마보다 사악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학살'이라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사람들, 사람들…. 그 무덥던 여름날, 일본 군국주의가 군사기지로 만들면서 섯알오름에 폭탄창고를 만들었는데 패망하고 미군이 들어와 그 폭탄 창고를 폭파하자 섯알오름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 움푹 파인 곳에 순박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몰아넣고 학살하여 암매장했다. 국가가 저지른 만행이다.

그 여름날 내리쬐던 슬픔을 그리려 했다. 질긴 생명력의 상징 제주 해송들이 혼백처럼 솟아나 섯알오름에 뿌리를 내렸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두런두런 맺힌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가늘고 야윈 몸으로 하늘 향해 춤을 추는 동작이며.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듯도 하다. 통곡의 흙벽은 천상의 해송들과 지상에 휘어져 어디론가 향하는 길과 밭들로 구분 지어줬다. 공간적 슬픔이란 이런 것이려니. 추모비 옆에는 '명예회복 친혼비'가 있다. 섯알오름은 끊임없이 묻는다. 명예회복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이지 억울하게 죽어간 분들이 해야 하는가? 전 세계 인류 앞에 답하라.

 

<출처 : 한라일보>

 

 

 

 

 

 

8월 흰구름 아래

수채화 79 × 35㎝ 태흥1리

 

 

 

소박한 농촌마을 길을 걸어가다 만난 찬란한 하늘. 며칠 뒤에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있어서일까 두꺼운 구름층이 마을 위로 몰려와 있고 찢어진 사이로 청명한 하늘색이 짙게 드러나 내리쬐는 태양광선이 눈부신 향연을 베풀고 있다. 화면에 등장하는 집이 셋이요 창고 건물 또한 셋이다. 태흥1리의 경지 면적 중에 9할 이상이 감귤 과수원이며 그 중에 하우스 시설 재배 면적 또한 엄청 많다. 시설농업에 필요한 각종 자재며 장비들을 보관하고 관리할 집이 필요한 것. 이 마을의 현주소를 흰구름 덕택에 그리게 됐다. 하늘색이 짙은 만큼 땅 위에 그림자도 짙다. 우리의 시각 경험이 발휘하는 더욱 강렬하게 시도된 것에 대한 적응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 길은 고요하지만 하늘은 몹시 바쁘게 움직이는 강렬한 청백의 대비를 보여준다. 굳이 정중동을 노래하지 않아도 화면이 알아서 들려주는 그런 눈부신 환희를 표현하고자 했다. 평면적 상황으로 보면 분할이 지닌 면적 대비에 농도 차이를 부여해 극적인 구성을 시도한 것. 오른쪽 앞에 큰 건물 벽이 환한 색이어서 구름의 명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늘의 밝음이 저 벽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 많은 곳을 밝혀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 의도하였다. 감귤맛, 그 품질에 영향을 주는 요인 중에 일조량이 가지는 의미는 실로 크다고 한다. 이런 청정햇살 아래 자라는 감귤들이니 맛 품질이 당연히 높겠다는 과도한 생각을 하며 붓질을 했다. 농촌현실을 보여주는 마을 안길의 8월이 눈부시다.

 

<출처 : 한라일보>

 

 

 

 

 

 

태흥1리 여름 바닷가

수채화 79 × 35㎝ 태흥1리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 벌포연대 앞 해변으로 내려가서 한라산을 바라보면 오묘한 편안함을 만난다. 활처럼 휘어져 깊이 들어간 구조이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적 요인들이 발생한다. 파도에 의해 오랜 기간 부서져 마모된 바윗덩어리들과 아직 버티고 있는 암반층들이 위치에 따른 명암의 변화를 보여주고 바다로 경사진 지형이 휘어져 바다를 감상하는 노천극장을 닮았다. 그 뒤에 파르테논신전 지붕 물매 각도와 흡사한 위엄과 신성함으로 자리 잡은 한라산. 무게감으로 와 닿는 이 섬의 중심이 화면의 정점이기도 하다. 해안가에 밝게 빛나는 빛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또한 거리감을 증폭시키기 위해 하늘이 보유한 대기 속으로 깊이 밀어 넣었다. 하늘과 한 덩어리가 될 정도로 명도 차이를 줄이면 화면의 상층부가 면적대비 효과를 가지고 해변의 광선 강도를 더욱 높여줄 수 있다. 조용한 공간곡선의 변화가 있다. 짙은 초록의 나무들이 하얀색 집과 집 사이에서 자연미를 뽐내며 코러스를 넣고 있다. 파도와 만나는 지점의 돌들은 미세한 차이를 지녔다. 회화적 관심영역으로 파악했을 때, 물에 젖은 색과 뙤약볕을 반사하는 돌들의 색의 차이를 통하여 현실감을 얻게 된다. 섬 제주의 자연적인 요소가 망라된 느낌이다. 거기에 사람이 구축한 토목과 건축물까지 함께 모여서 자신의 이기적인 존재감보다 전체의 하모니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한라산 배경으로 어떤 장엄한 교향곡이 시각화 된 느낌을 받는 곳이다. 태흥1리―크게 흥하는 바닷가에서.

 

<출처 : 한라일보>

 

 

 

 

 

 

마을 안길 정겨운 풍경

수채화 79 × 35㎝ 도순마을

 

 

 

옛 취락구조 간직한 소박한 길을 걷다가 만난 붉은색 칠한 문. 대문은 아닌 듯 하고 경운기나 트렉터를 위한 건물로 보인다. 함석으로 박공을 만들어서 오묘하게 휘어지고 살짝 찢어진 모습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농부의 꾸밈없는 품성을 짐작케 해 즐겁다. 앞에 잠금장치로 보이는 뜸돌 정도의 매끈한 돌이 주변에 돌담들과 대비되어 정겹다.

한 세대 이상을 그 자리에서 자란 전봇대보다 큰 삼나무가 발생시키는 그늘은 실로 놀라운 빛과 그늘의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밑동 굵기가 전봇대와 대충 같아 보인다.

세대와 세대가 공존하는 지금의 현실을 여름날 뙤약볕 아래서 화면에 담을 수 있기에 그렸다. 골목이라기엔 크고, 대로변이라고 할 수는 없는 지극히 제주적인 마을길이다. 굽이 돌아가는 공간적 상황이 지붕들의 다양한 배치를 가능하게 한다. 멀리 남쪽 바닷가에 형성된 두꺼운 흰 구름이 잔뜩 물기를 머금어 여기로 달려오면 시원한 소나기를 선물할 것 같다. 지붕의 색들이 나름대로 멋을 부리며 조화를 이루는 안온한 싱그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높지 않은 그 무엇에 대한 동질감이며 연대의식이다.

모두가 초가지붕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 여름날을 그리는 심정은 더 큰 기쁨이라 해야겠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라 하거니와 마을이라는 공간 속에서 이런 방식으로 이웃해 살아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이며 이 햇살처럼 눈부신 환희라는 것을 자주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 풍경이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렇다.

 

<출처 : 한라일보>

 

 

 

도순천 큰냇도의 환희

수채화 79 × 35㎝ 도순마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냇가를 그린다는 것은 설레면서도 큰 부담이다. 도순리의 자긍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곳, 그 명성에 누가되지 않을까 해 그렇다. 특히 여름날 오후에 강렬하게 들어오는 햇살을 화면으로 맞이하는 작업은 신중한 도전이 필요하다.

이 하천의 바닥은 모두 크고 작은 바위들로 이뤄져 있고 양 옆은 숲이 우거진 상황에 오묘한 각도에서 들어오는 햇빛은 너무 강한 나머지 반사돼 다시 하나의 광원이 된다. 냇가 바위들의 명암이 나무와 정 반대로 바뀌는 경우가 발생되는 것이다. 하천의 중앙 부분은 하늘에서 들어오는 빛이 조금 더 강하고. 한 화면에 명암이 최소 세 개가 등장하는 경이로움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바위들의 거리감에서 발생하는 농도차이는 이 곳이 현실 세계임을 보여준다. 나뭇잎 하나하나에 반사된 빛이 다시 새로운 빛의 세상을 구가하는 여기. 돌과 나무와 물이라는 물상이 빛에 의해 독특한 자연공간으로 재구성 된다. 그려낸다는 것은 별개로 치더라도. 들판에 서 있는 나무와 여기 하천변을 따라 줄지어 서있는 나무가 광선에 의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함이라고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그리다보면 알게 되는 어떤 강렬함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며칠 전 폭우로 내가 터지고 나니 아직도 작은 물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알리는 냇물. 내가 터쳤을 때의 사나움이 아니라 귀엽다.

 

<출처 : 한라일보>

 

 

 

도와치골목 청록의 만남

수채화 79 × 35㎝ 북촌리

 

 

 

새로운 방식의 집들이 크게 지어지는 추세지만 그래도 옛 모습을 간직한 정겨운 풍경들이 있다. 두 세대 전에는 대부분 초가집이었을 정주공간에서 집이 위치와 입구방향은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민간 신앙에 가까운 풍속.

그러한 경우의 수들 사이에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 집과 집 사이를 이어주는 골목길이 있었다. 취락구조가 많은 부분 보존된 북촌리에서 포구와 함께 있는 용천수 도와치물과 남쪽으로 잇닿은 골목을 그렸다. 왼쪽 지붕은 청색이요 오른쪽은 8월의 초록나무다. 두 만남이 여름을 상징하는 것 같아. 지붕 위로 넘어온 햇살이 돌담과 나뭇잎에 반사되는 공간감이 인상적이기도 하여. 이 골목의 명칭을 90세 정도 어르신들은 '그늘질'이라고 불렀다. 연유는 상세히 알지 못하나 그늘진 길이라는 뜻에는 사연이 있을 법도 하거니와 저 그늘 속을 도와치물에서 물허벅에 물을 길어 등에 지고 집으로 향하는 어머니들을 떠올린다. 살아간다는 것. 그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살아왔기에 그 살아온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 삶을 묵묵하게 지고 가시던 그 길. 센 바람이 돌풍처럼 골목 사이를 휘졌고 지나간다. 나뭇가지들이 휘청거린다. 나뭇잎은 무서워서 떨고 있고. 하지만 돌담에 따스한 저 햇살은 그대로다. 광풍이 아무리 거세도 햇살을 움직이지 못하는구나! 저 따사로움이 상징하는 모정을 그리려 하였다. 4·3광풍에 남편을 잃고 오직 자식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장한 어머니들의 모정을 저 햇살에 담아서 드리고 싶다.

 

<출처 : 한라일보>

 

 

 

 

 

 

다려도의 평화로운 아침

수채화 79 × 35㎝ 북촌리

 

 

 

눈부신 아침이다. 수평선 하늘 위엔 아직 하늘색이 칠해지기 전이기에 오직 빛 색깔로 가득하다. 눈부신 햇살을 반사하는 바다와 하늘 사이에 섬이라는 세상이 있다. 다려도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모호한 이 시각에 섬은 바다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뜬 기분이다. 그 위에 지어진 '북포정'이 존재감을 빛으로 표현하고 있다. 은은하면서도 품격있게. 검은 바위들도 그냥 검은 것이 아니라 빛을 맞이하는 곳과 아닌 곳으로 나뉘어 미세한 차이를 보이고. 굴곡진 섬의 식물지대는 아침을 표현하는 빛의 방식이 놀랍도록 섬세하다. 지금은 썰물이라 물에 잠기는 부분과 그러지 못하는 곳이 확연하게 차이를 보이는 다려도. 흙이 그리 많지 않을 저 곳에서 질긴 생명력으로 섬을 덮고 있는 초록색들에게서 야릇한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살아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밤에 바다에 나가 조업을 하고 포구로 돌아오는 통통배가 가는 물결을 생성시키며 지나간다. 이미 방파제 안에 들어와 있다. 다려도라는 거대한 방파제가 밖에 파도 너울들을 막아내어 호수처럼 잔잔한 수면을 만들었으니 포구 속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고요한 생명력이 수평적 흐름 속에서 반짝이고 있다. 과장된 그 어떠한 것도 오랜 감동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하거니와 저 낮은 자세를 평생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겸손이 피 속에 함께 흐를 것이다. 높낮이가 많은 경이로움보다도 순탄함을 미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성과 이 풍경이 무엇이 다르랴.

 

<출처 : 한라일보>

 

 

 

 

 

 

논동네길의 여름날 오후

수채화 79 × 35㎝ 금악리

 

 

 

마을 안 길을 돌아다니다가. 정겨운 모습을 발견하고 스케치에 들어갔다. 남북으로 난 길에 서쪽 집이 그림자로 팔을 뻗어 동쪽 집 담장을 만지며 안부를 묻는다. 아침 햇살에는 그림자가 반대로 아침 인사를 했을 것이라는 즐거운 추측과 함께. 이웃의 정을 집 그림자도 알고 있으리라는 다소 과장된 상상이 그림을 그리게 하는 동기가 되곤 한다. T자 형 길가 모서리 돌담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구멍이 많이 난 다공질 현무암. 화산지형의 표면을 흐르던 돌들이 많다는 증거다. 기포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이었으니까. 쌓은 느낌 또한 자연스럽다.

작위적인 어떤 정질도 하지 않고 있는 돌들을 그냥 생긴 그대로 골라가며 얹어 놓은 모습이 무위자연의 심성을 드러낸 듯 하고. 직각 모서리를 절묘하게 처리한 능력이 일품이다. 전체적인 풍광은 여러 세대가 공존하는 집들의 역사성을 보여준다.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슬레이트를 덮던 1970년대 새마을운동 시절의 집부터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집까지. 낡으면 정겹고 새로운 것은 변화하고 있는 마을의 모습을 보여줘서 좋다. 집과 집 사이 공간에 숨은 듯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트렉터가 오래된 집과 대조를 이루며 금악리의 오늘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옛날에는 소나 말이 하던 일을 저 친구가 하고 있으니까. 창고로 보이는 건물 양철지붕을 트렉터 바퀴와 돌로 눌러서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한 모습은 그리는 내내 미소가 일어나게 했다. 바람의 섬 제주가 저 지붕 위에 있으니까.

 

<출처 : 한라일보>

 

 

 

먹구름 이겨낸 눈부신 벵듸못

수채화 79 × 35㎝ 금악리

 

 

 

거센 남서풍이 몰고 온 먹구름이 금악리를 덮었다. 바람이 없는 평소에는 금오름이 반영되어 야릇한 인상을 주는 900평 너른 벵듸못 표면이 작은 물결로 살랑거린다. 구름 그림자 짙게 드리운 저 오름은 지금 직면한 금악리 주민들의 심정을 그대로 상징하는 듯해 그렸다. 오름과 습지, 목가적인 자연환경 모두가 귀중한 생존권 영역임에도 금전적 이익을 위해 금악리를 이용하려는 자들에 의해 유린당하게 생겼으니 그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여름날, 강풍에 흘러가는 두꺼운 구름들 사이로 잠시 잠깐 쏟아지는 뙤약볕이 어두운 그림자에 쌓인 주변과 엄청난 명도대비를 이루면서 강렬한 반사광을 뿜어내는 것이다. 금오름 아래 경작지까지 태양광선이 비추는 영역이다.

그 뒤로는 그림자에 가둬져 있고. 먹구름에 무게감을 강조한 것은 지금 금악리를 짓누르고 있는 그 존재에 대한 표현으로 생각하였다. 과장이기에 앞서 극명한 현실 직시다. 어떤 난관과 시련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일궈온 금악리 마을공동체를 향해 미력한 그림으로나마 공감대와 연대의식을 드러내고 싶은 열망이 그리는 내내 함께했다.

광학적으로 그림은 명암의 산물로 보이지만 현실 속에서는 형태와 존재의 생성물이다. 빛과 어둠은 만질 수 없지만 마을은 어느 곳이든 만질 수 있다. 나뭇잎 하나도 소중한 존재라고 하는 의식에서 금악리를 바라보자. 금악리의 귀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결코 현실방어가 아니다. 더 큰 미래를 향한 눈부신 빛이다.

 

<출처 : 한라일보>

 

 

 

우금 가는 길

수채화 79 × 35㎝ 하례1리

 

 

 

섬 제주를 가장 아름답게 하는 것은 길이라는 표현에 공감하게 되는 곳이 있다면 여기 망오름 서쪽 냇가로 난 이 길을 보여줄 것이다. 경이로운 풍광이 있는 것도 아니며, 특출하게 뛰어난 그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묘한 매력이 있다. 정감이라고나 할까. 좋은 사람과 손잡고 걸어가고 싶은 그런 길이다. 이 길로 내려가면 우금포와 쇠소깍이 있는 바다가 나온다. 바다가 가까이 있음에도 바다가 보이지 않는, 냇가 옆으로 따라가는 길이다. 처서가 지났지만 아직도 맹하의 뜨거운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면서도 강렬하다. 왕성한 초록의 향연을 눈부신 햇살로 거대한 원근의 짜임 속에서 펼치고 있는 중이다. 냇가의 바위들 모두가 자연이 빚은 조형물들이다. 그 귀중한 예술품을 감상하며 걸어가는 길. 넓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오래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꾸밀 이유도 없다. 옆에 하천이 모두 알아서 해줄 것이니까. 그리는 내내 '아직'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제주의 옛 길이 남아 있다는 그러한 향수. 남쪽 대로변에서 우금포까지 가는 이 길은 낭만주의자들을 위해 영원히 남겨뒀으면 하는 소망을 그림 속 태양광선처럼 뜨겁게 담았다. 필자는 이 길은 심하게 좋아하여 폭우가 내린 뒷날이면 찾아가 물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꾸밈없는 청량감으로 와 닿는다. 하례1리 조상님들이 부르던 명칭이 너무 정겹다. '우금 가는 길'. 우금의 의미가 그냥 포구가 아니라. 뭔지 모를 궁금함을 향하여 가는 길이라 여기면서.

 

<출처 : 한라일보>

 

 

 

 

 

 

한가름길에서 지귀도를 보며

수채화 79 × 35㎝ 하례1리

 

 

 

오르막 길 위에서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은 멀리 지귀도(속칭 찌꾸섬)을 바라보다가 집이며 나무, 그리고 전봇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광선공간을 연출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여 그 풍성한 시간성을 표현하였다. 리사무소 건물 앞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말씀에 의하면 설촌 당시부터 오래된 성씨들의 장손들 집이 이 부근에 대부분 있다고 한다. 중심지였다는 의미로 읽힌다. 마을 전체가 집이면 바다는 마당이다. 앞마당에 섬 하나가 떠있다. 하례1리 옛 조상들이 이 높은 지대에 주로 집을 지은 이유가 혹시 이 풍광을 탐하여 지었던 것은 아닐까? 오르막과 내리막을 힘든 불편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시대의 삶을 반추한다. 조상들도 그렇게 살았으니 나도 당연히 그렇게 살고 있다는 행복한 숙명론을 떠올리며 그렸다. 근경 오른쪽 집 유리창에 반사된 과수원의 빛은 어찌 이리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지. 거대한 그림자 속에 내리막길은 내려가고 있고 빛의 각도들이 생성시키는 공간감들이 모여들어서 화면 전체의 현장감을 그려낸다. 태양 빛을 받는 모든 존재는 소중한 가치를 지녔다는 찬미를 돌담에서부터 지붕에 이르기까지 부여하며 하루의 의미를 되새겼다. 눈부신 광선 속에 가둬진 저기 지귀도는 평화로움 자체가 바다에 떠있는 것. 도식화 된 구도로 설명될 수 없는 시각적 상황을 빛의 시간성은 극복하고 또한 더욱 아름다운 가능성을 발견하여 열어간다. 같은 장소가 다른 시간에 의해 다르게 느껴지는 이치를 여기에서 새삼 다시 느낀다.

 

<출처 : 한라일보>

 

 

 

 

 

 

수망사거리의 아침

수채화 79 × 35㎝ 수망리

 

 

 

독특한 지형 속에 나무들이 먼저 자라고 사람들이 찾아와 집들을 지었으며, 그 집들을 지으려니 길이 필요해서 길을 냈다. 길과 집, 나무들이 아무리 자기주장을 한다손 지형의 품을 벗어나지 못한다. 북쪽과 동쪽으로 오르막이 있어서 분지가 아니면서도 분지의 느낌을 주는 네거리를 리사무소 옥상에서 바라봤다. 동산을 올라온 아침 해가 빛으로 물상들을 깨운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 있는 존재들이 먼저 일어나는 과정이다. 2층집보다 더 큰 삼나무 방풍림은 은은하게 빛을 흡수하며 동시에 반사하고, 중심에 지어진 멋스러운 집은 환하게 해를 맞이한다. 아침이라는 일상이 햇살과 그림자 반사광에 의하여 어떻게 공간을 노래하는 지 그려내려고 했다. 초록 지역이 생성시키는 빛의 하모니는 나지막한 집들로 하여 더욱 가치 있게 와 닿는다. 태양광선이 가진 시간성을 한 폭의 그림으로 확인 할 수 있는 수망리. 관심의 시작은 아직도 동산 그림자 속에 있는 주홍색 지붕이다. 숲 속에 숨어서 핀 꽃의 느낌을 주는 저 색. 보색대비랄까. 색의 강렬함과 중심 건물에서 반사하는 빛이 겨루면 누가 이길 것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림이 사진보다 자유로운 것이 있다면 있는 것을 그리지 않을 권리다. 그 권리가 그림을 통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다. 전봇대를 모두 뽑아버린 상황을 그렸다. 집과 길들이 자연의 일부가 된 느낌을 얻고자. 하늘을 그리지 않아도 빛의 공간감으로 하늘을 대신 할 수 있으리라는 욕심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출처 : 한라일보>

 

 

 

물영아리오름의 느낌

수채화 79 × 35㎝ 수망리

 

 

 

그렇게 배웠다. 그림은 '닮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더 닮게 그리는 것'이라고 말뜻은 이해하지만 그러한 경지를 아직 터득하지 못하였음을 실토한다. 그래도 도전하는 노력은 있어야 하겠기에 이렇게 그렸다. 람사르습지라고 하는 세계적 생태환경자원을 그린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우면서도 겁나는 일인가! 물을 표현해야하고 오름을 표현해야하는 이중고를 극복할 방법 때문에 오래 고민하고, 망설였다. 그런 과정에서 얻은 해법은 종이에 물감이 번지다가 테두리에서 오무라들듯 마르는 시각적 느낌과 오름과 하늘이 만나는 선에 있는 나무들의 모습이 흡사하다는 생각에 도달하였다. 그 느낌을 살리면 오름 전체가 물의 느낌을 줄 수 있으리라는 확신. 그러려면 담채로 표현해야 하며, 짙은색 연필스케치의 흔적이 물영아리오름의 흐름을 베이스 연주처럼 듬직하게 존재하여야. 그 위에 습지의 물을 느끼게 하는 엷은 청옥색이 전체적으로 채색된 상태.

전체적인 화면 구성이 메시지다. 동양화적인 담채요소를 가지고 하늘과 땅을 흰 여백으로 남겼다. 값이 동일한 하늘과 땅. 범아일여(梵我一如)라 하였으니 천지일여(天地一如) 또한 그림 세계에서는 가능하려니와 그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물. 물영아리라는 존재를 그렇게 바라보면 더 닮게 그릴 수 있으리라는 미련함. 평평한 목장지와 오름이 이렇게 잇닿아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목장 바닥 그 흰색 빈 공간에 무덤. 백년해로하신 부부가 천년을 누워있는 시공간과 물영아리를 대비시켰다. 사람과 자연이라는 여운.

 

<출처 : 한라일보>

 

 

 

동가름 일뤠낭거리

수채화 79 × 35㎝ 신촌리

 

 

 

가을날 오후, 등 뒤에서 쏟아지는 맑은 햇살이 돌담길을 눈부시게 한다. 길가 한쪽에 가옥과 잇닿은 돌담들이 공간 하나를 에워싸 있다. '일뤠낭거리 일뤠당'이다. 너무도 소박한 신전. 저 안에는 일뤠낭거리 일뤳도와 고동지영감, 짐동지영감이라는 신들이 모셔져 있다. 이 신들은 어선과 해녀들을 관장하는 어업수호신. 저 돌담 안에 네모난 돌로 만든 궤 안에 신의 몸이 좌정해 있다고 믿어왔다. 인근에 포구가 있으니 그럴 것이다. 수많은 그릴 대상을 놔두고 이곳 일뤠낭거리를 그린 것은 신촌리 마을공동체 문화를 느낄 수 있어서다. 당이라고 하는 것이 마을 밖 외진 곳에 모셔진 것이 아니고 주택가 집들이 밀집된 곳에 아무 거리낌 없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다. 무속이니 민속신앙이니 하는 규격화 된 용어로 설명하는 삶이 아니라. 누군가 간절한 상황을 가진 사람들이 빌 수 있는 공간이라면 소중한 것이라는 의식. 바다는 늘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기에 사람의 노력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 할 수 있는 것. 빌며 의지해 안전을 얻고자 했던 순박한 마음이 정신세계 속에 흘러와 있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가치관을 저 존재의 보존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 어떤 믿음과 비는 마음을 배격해서는 안 된다는 묵시적 불문율을 보는 듯해 그 아름다움을 눈부시게 그렸다. 전통을 중요시하는 마을 풍토와 무관하지 않으면서도 마을 사람 누군가 간절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공감대에서 오는 배려의 문화가 이것이다.

 

<출처 : 한라일보>

 

 

 

닥마루 바닷가에서

수채화 79 × 35㎝ 신촌리

 

 

 

닭이 고개를 힘차게 들어 바다를 바라본다. 단순한 바닷가 기암괴석의 의미를 넘어선 강렬한 기백이 보인다. 조상 대대로 이 닥마루에서 숱한 상상의 나래를 폈을 이야기들이 파도소리처럼 끊임없이 철썩인다. 그림의 구성은 동양화의 요소를 가져왔다. 물감의 농담을 가지고 원근을 표현하면서 바다를 여백으로 삼았다. 닥마루의 특징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화면 구조는 위와 아래가 땅이며 그 사이가 바다. 파격적인 구도 속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을 그려서 여백이라는 바다를 유추하고 상상하고자 하는 것이다. 바다는 어떤 경우든 일시적이지 않으며, 멈추지도 않으니 저 닥마루가 맞이해온 수 십 만년의 바다시간이 저 빈 공간에서 기억돼 넘실거린다. 구체성이 앗아갈 수 있는 소중한 진실은 그리지 않는 것이 더 의미 있을 수 있기에. 햇살이 강렬하다. 저 바위는 일정량 달궈져 있다. 맨발로 디디고 서면 뜨거울 정도다. 신촌리의 경관을 대표하는 닥마루. 어떤 자부심이 엿보인다. 부끄럽지만 필자가 돌조형물과 관련해 수 십 곳에 작품을 만들어온 경험이 있다. 닥마루는 저 닭의 머리 형상을 둘러싼 암반의 형태가 모두 조형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이라고 하는 재료로 형상화 할 수 있는 시각적 방식이 대부분 망라돼 있음을 이 분야와 관련된 사람들이라면 직접 가서 확인하셔도 좋다. 해안 언덕이 주는 시원한 맛과 함께 주변 요소요소에 널린 추상적 형상을 만끽 할 수 있어 무척 좋다.

 

<출처 : 한라일보>

 

 

 

당상봉 아래 저녁풍경

수채화 79 × 35㎝ 고산1리

 

 

 

당산봉에 가려서 일몰을 볼 수 없으되 더욱 아름다운 저녁을 맞이할 수 있는 곳. 산의 실루엣과 대비된 노을이 더욱 큰 신비감을 보여준다. 하늘빛의 변화는 땅의 색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지 그리고 싶었다. 또한 농촌마을 밭과 집들을 품은 어머니처럼 포근하다. 안온함이 감도는 자태 아래 하루를 보낸 일상들이 밤을 맞이해 쉴 준비를 하고 있다. 성급한 가로등이 먼저 들어오고 뒤이어 슬레이트집 한쪽 방에 형광등불이 밝혀졌다. 밭에서 돌아온 모양이다. 방금 전까지 화면 근경 밭에서 일하다 들어간 할머니가 형광등 스위치를 킨 모양이다. 평화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냥 이렇게 보여질 뿐. 수채화의 특성을 살리려 하였다. 광선을 그려낸다는 것은 깊이를 의미하기도 한다. 단순한 원근법을 가지고 설명 할 수 없는 전체적인 조화요 작화의 수순에 의해 최종적인 한 점, 전봇대의 저 가로등 빛이다. 저 하얀 불빛을 위해 나머지 면적 모두가 필요했다. 일몰이 가지는 시간성과 가로등이 만난다는 것은 이러한 공간에서 미학적 전율을 선물하게 되는 것. 밤도 아니며 낮도 아닌 그러한 시간은 풍경이라는 일상적인 시각적 환경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풍경 속에 잠재된 에테르를 끄집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녁, 그것도 황홀한 일몰 광선이 점차적인 페이드아웃 상황에서 낮은 저음들이 연주하는 물상의 소리들을 빛으로 듣는다. 부지런한 농부들이 집으로 들어가 저녁밥상을 마주하는 시간. 집과 밭 사이로 난 굽이돌아가는 길을 걸어들어 갔다.

 

<출처 : 한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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