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五賢人의 날 참석차 제주여행] 17
청자 국화무늬 접시
고려 13 ~ 14세기
제주시 삼도동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 280, 1980년 입수
청자 국화무늬 완
고려 13 ~ 14세기
제주시 삼도동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 281, 1980년 입수
청자 국화무늬 병
고려 13 ~ 14세기
제주시 삼도동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 283, 1980년 입수
청자 매병
고려 13 ~ 14세기
서귀포시 하례리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 1477, 1988년 입수
청자 표주박모양 병
고려 12 ~ 13세기
제주시 일도동
국립중앙박물관 / 신수 1810, 1969년 발견
흑유병
고려
제주시 상대리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 1326, 1987년 발견
잡유병
고려
제주시 종달리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 3540, 1996년 발견
至元六年己巳 始重刱 十六年己卯畢
'지원 6년 (1269)에 중창을 시작하여
지원 16년 (1279)에 중창을 마쳤다.'
법화사 터
법화사는 서귀포시 하원동에 있는 절로 고려시대 전기에 창건되어 조선시대까지 이어오다가 18세기 초에 폐사하였다. 창건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글씨를 새긴 기와로 1269년 (원종 10년) 이전에 창건하여 1279년 (충렬왕 5년)에 중창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비보사찰 裨補寺刹로 노비를 280명이나 두었을 정도로 큰 규모를 유지하였으며, 조선시대 중기까지 증축과 개축을 계속하였다. 각종 기와와 청자 등이 발견되었으며, 글씨가 새겨진 청동 등잔도 나왔다. 현재는 절터에 새롭게 지어진 법화사가 자리하고 있다.
구름 봉황무늬 수막새 · 구름 용무늬 암막새
복원품
글씨를 새긴 기와
고려
서귀포시 하원동 법화사 터
제주 1118 · 1161, 1992년 발굴
부처
고려
서귀포시 하원동 법화사 터
제주 1162, 1995년 발굴
법화사 터 출토 청자
고려
서귀포시 하원동 법화사 터
제주 1063 ~ 1177, 1992 · 1995 · 1997년 발굴
1. 청자 연꽃무늬 대접 2 ~ 4. 청자 앵무새무늬 대접 5. 청자 넝쿨무늬 대접 6, 7. 청자 접시 8. 청자 국화무늬 완
법화사 터 출토 청자
고려
서귀포시 하원동 법화사 터
제주 1063 ~ 1177, 1992 · 1995 · 1997년 발굴
1, 2. 연꽃무늬 수막새 3, 4. 구름 용무늬 암막새 5, 6. 구름 봉황무늬 수막새
청동 등잔
고려
서귀포시 하원동 법화사 터
제주 1162, 1992년 발굴
청동으로 만든 작은 접시 모양의 등잔이다. 바깥 면에 날카로운 도구를 써서 가는 선으로 글씨를 새겼는데, 그 내용을 보면 '법화경 앞에 같은 모양의 등잔 4개 바치는데 시주자는 주경이다. 法華經前灯蓋此樣四施主朱景' 라고 적혀 있다. 불전에 등잔으로 공양한 것과 시주자의 이름을 알 수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만호겸목사'를 새긴 암키와
청동 신장상
'천축개계' 를 새긴 수키와
선무늬 수키와
존자암 터 출토품
고려 ~ 조선
서귀포시 하원동 존자암 터
제주 285 ~ 356, 1993년 발굴
1, 2. '만호겸목사'를 새긴 암키와 3. 청동 신장상 4. '천축개계' 를 새긴 수키와 5, 6. 선무늬 수키와
항파두리성 갑옷
항파두리성의 내성 內城 터에서 출토된 철갑옷 鐵札甲입니다. 전체적인 형태는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의 마늘 갑옷 札甲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려도경 高麗圖經』에는 고려 갑옷이 두루마기 형태에 어깨를 가려주는 부박 覆膊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여몽 麗蒙 연합군과 일본군의 전투 장면을 그린 『몽고습래회사 蒙古襲來繪詞』에는 길이가 긴 조끼형의 찰갑과 직물로 만든 포 袍 형태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대몽항쟁과 제주
고려는 1231년 (고종 18)에 몽골군이 침입하자 개경에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고 몽골에 저항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신정권 武臣政權이 붕괴하면서 1270년 (원종 11)에 고려 조정은 몽골에 굴복하고 개경으로 돌아왔습니다. 고려 조정의 개경 환도 還都와 몽골의 지배에 반기를 든 삼별초 三別抄는 강화도에서 몽골에 대항하였습니다.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진도로 거점을 옮겼다가 전세가 기울자 다시 제주로 이동하여 항쟁을 이어갔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삼별초와 뜻을 같이 하여 대몽항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고려 정부와 몽골 연합군에게 삼별초가 패하면서 대몽항쟁도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연꽃무늬 수막새 귀목무늬 암막새
청자 접시편 (왼쪽) / 백자잔편 (오른쪽)
도깨비 얼굴모양 토제품
용장성 터
전라남도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고려시대 삼별초의 항몽유적이다. 고려 원종 11년 (1270) 배중손이 몽고에 굴복한 고려정부에 반발하여 삼별초와 그 지지자들을 이끌고 강화도에서 진도로 내려와 궁궐과 성을 쌓았다. 이곳에서 고려 왕족 승화후 온 (承和候 溫)을 왕으로 추대하여 고려 개경 정부와 대립되는 정권을 세우고 대몽항쟁을 이어갔다. 원종 12년 (1271) 5월 고려와 몽고의 연합군에 용장성이 함락되고, 김통정을 중심으로 한 삼별초의 잔여세력은 진도를 떠나 제주도로 갔다.
용장성 터 출토품
고려 ~ 조선
진도군 용장리 용장성 터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 2705 ~ 2716, 1989년 발굴
1, 2. 연꽃무늬 수막새 귀목무늬 암막새 3. 청자 접시편 4. 백자잔편 5. 도깨비 얼굴모양 토제품
최충헌 묘지명 탁본
20세기
제주기 1138, 2015년 김용선 기증
고려첩장불심조조 高麗牒狀不審條條
고려의 첩장 중 의미를 알 수 없는 것들
一. 以前狀 【文永五年】 揚蒙古之德
今度狀 【文永八年】 韋毳者無遠慮云云如何
전의 문영 5년의 문서는 몽골의 덕을 찬양했는데, 이번 문영 8년의 문서는 '위취자 韋毳者들은 멀리 내다보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고 한다. 어찌된 일인가?
一. 文永五年狀書年號 今度不書年號事
문영 5년의 문서에서는 몽골 연호를 썼는데 이번에는 쓰지 않은 일
一. 以前狀歸蒙古之德成君臣之禮云云 今狀遷宅江華近四十年 被髮左袵聖賢所惡 仍又遷都珍嶋事
전의 문서에서는 '몽골의 덕에 귀부하여 군신의 예를 이루었다' 하였는데, 이번에는 강화로 천도한 지 40여 년이나 되고 오랑캐를 따르는 것은 성현이 꺼린 것이라 하고 또 진도로 천도한 일
一. 今度狀端不從成戰之思也 奧爲蒙所使云云 前後相違如何
이번 서장 앞부분에서는 (몽골을) 따르지 않아 전쟁이 있게 된 까닭을 쓰고, 뒷부분에서는 '몽골이 고려를 부렸다' 고 하니 전후가 서로 다르다. 어찌된 일인가?
一. 漂風人護送事
풍랑으로 표류된 자들을 호송한다고 한 일
一. 屯金海府之兵 先二十許人送日本國事
김해부의 병사 20여 명을 먼저 일본국으로 보낸다고 한 일
一. 我本朝統合三韓事
우리 본조 (고려)가 삼한을 통합했다고 한 일
一. 安寧社稷 待天時事
사직을 안녕케 하면서 하늘의 때를 기다린다고 한 일
一. 請胡騎數萬兵事
수만의 말탄 군사를 청한 일
一. 達兇疏 許垂寬宥事
흉악한 상소가 도착하더라도 너그러니 용서해 달라 한 일
一. 奉贄事
예물을 드린다고 한 일
一. 貴朝遣使問訊事
귀조 (일본)가 사신을 보내 방문하라 한 일
● 이기백, 『한국상대고문서자료집성』 1987, 일지사
고려첩장불심조조
가마쿠라 시대 1271년
일본 동경대학교 사료편찬소
복제품
삼별초의 진도 정부가 1271년 (원종 12)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를 가마쿠라 막부 (鎌倉 幕府)가 교토 (京都) 조정에 보내면서 잘 이해되지 않는 내용을 12항목으로 정리한 문서이다. 삼별초 진도 정부의 첩장은 몽골침략의 위기상황을 일본과 공동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기대가 표현되어 있다. 삼별초 정부의 정통성과 활동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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