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투파의 숲 ㅡ 신비로운 인도이야기] 05
산치 스투파 스케치
프레드릭 메이지 (Frederick Maisey, 1825 ~ 1892)
1849 ~ 1951년
영국 개인소장
19세기 영국의 인도 고대 불교유적 조사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은 알렉산더 커닝햄 Alexander Cunningham 입니다. 그는 산치와 바르후트 등 인도의 대표적인 스투파 유적을 조사했습니다. 지금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었던 당시에는 자세한 스케치를 남겨 기록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시된 그림은 커닝햄과 함께 산치 스투파 조사에 참여했던 메이지의 스케치 중 일부입니다. 그의 스케치는 후에 제임스 퍼거슨 James Fergusson의 저서, 『나무와 뱀 숭배 : 1세기에서 4세기까지 인도 신화와 미술의 도해 Tree and Serpent Worship : Or, Illustrations of Mythology and Art in India in the First and Fourth Centuries after Christ』 에도 사용되어 남인도 불교미술 연구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석가모니의 상징을 담은 스투파
만든 시기 : 1세기경
발견 장소 : 안드라프라데시 두파두
보관 장소 : 인도 아마라바티유적센터박물관
꽃으로 장식한 줄이 스투파를 휘감고 있습니다. 스투파 위로 나무가 자라납니다. 스투파 앞쪽에는 말 1마리가 보입니다. 아마도 석가모니가 출가할 때 궁을 떠나는 것을 도왔던 말일 것입니다. 왼쪽에는 보리수 나무 밑의 빈 대좌가 있고, 오른쪽에는 작은 스투파가 하나 더 새겨져 있습니다. 이 작은 스투파 안에는 송곳니 같은 것이 있는데, 이는 석가모니의 치아 사리를 의미합니다. 석가모니의 출가부터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든 장소, 그리고 그의 사리가 모셔진 스투파까지. 스투파에는 석가모니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나무 아래 빈 자리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 놓인 대좌는 텅 비어 있지만, 이곳을 찾는 참배객들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빈 자리를 향해 절을 합니다.
빈 자리를 향한 경배
만든 시기 : 기원전 2세기 후반경
발견 장소 : 마디아프라데시 바르후트
보관 장소 : 인도 인도박물관
석가모니는 보드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오랫동안 생각한 후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궁궐에서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곳에서 불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보드가야는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됐습니다. 석가모니를 인간의 모습으로 그리는 것을 어려워 한 시기에는 보리수와 빈 자리로 석가모니를 나타냈습니다. 이 시기를 '무불상 시대' 라고 부릅니다. '무' 는 '없다' 는 뜻이고, '불상' 은 '부채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한 상' 을 뜻합니다.
빈 자리를 향한 경배
만든 시기 : 기원전 2세기 후반경
발견 장소 : 마디아프라데시 바르후트
보관 장소 : 인도 알라하바드박물관
기둥의 아래쪽 나무 밑에 빈 대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수레바퀴가 새겨진 발자국이 찍혀 있습니다. 비어 있는 대좌와 발자국은 석가모니가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머리가 다섯 개인 뱀인 나가가 발자국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보드가야에서 명상하고 있을 때 비가 내리자 나가왕이 나타나 비를 가려줬다는 이야기를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기둥의 위쪽은 물고기와 거북이, 연꽃이 있는 연못처럼 보입니다. 대좌는 비어 있지만 스투파 조각에는 생명력이 가득합니다.
상징, 무언 無言의 이야기
스투파에 석가모니 이야기를 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석가모니 없이 석가모니의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입니다. 분명 석가모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나무 아래 빈 대좌와 발자국 또는 태양처럼 빛나는 수레바퀴처럼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그리고 모두 그곳에 석가모니가 있다고 암묵의 동의를 나눕니다. 석가모니가 보이지 않아도 그의 존재를 믿게 하는 힘, 스투파 속 상징에는 그런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빈 자리를 향한 경배
만든 시기 : 기원전 2세기 ~ 기원전 1세기
발견 장소 : 마하라슈트라 파우니
보관 장소 : 인도 뉴델리국립박물관
스투파를 둘러싸는 울타리에 쓰인 기둥입니다. 머리가 다섯 개 달린 뱀인 나가가 나무 밑의 빈 자리를 지키고 잇습니다. 대좌 양쪽 옆에는 두 명의 약샤가 가슴에 손을 대고 빈 곳을 향해 경배하고 있습니다. 대좌는 비어 있지만, 나가가 지키고 있습니다. 대좌 앞에는 연꽃이 가득한 연못이 있습니다. 존경하는 마음과 풍요로운 힘이 가득한 성스러운 공간입니다.
한눈에 알아보는 그의 발자국
발자국은 누군가의 자취를 알아채고 따라가기 좋은 상징입니다. 석가모니 발자국에는 그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수레바퀴 무늬가 있어 그의 존재를 더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빈 대좌 밑 발자국을 향한 경배
만든 시기 : 1세기 말 ~ 2세기 초
발견 장소 : 안드라프라데시 찬다바람
보관 장소 : 인도 뉴델리국립박물관
비어있는 대좌와 석가모니의 발자국을 경배하는 장면입니다. 대좌 양옆에 서 있는 아름다운 남녀 한 쌍이 눈에 들어옵니다. 건강하고 풍요로와 보이는 이들은 손에 연꽃이 가득한 항아리를 들고 있습니다. 인도의 예술에는 아름다운 남녀의 모습이 종종 나옵니다. 남자와 여자의 몸은 출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조각에서 두 남녀는 몸의 균형이 잘 잡혀 있고, 팔과 다리에는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있습니다. 조각이 워낙 아름다워 시간이 지나면서 얼굴 조각이 망가진 것이 아쉽습니다.
빈 대좌 밑 발자국을 향한 경배
만든 시기 : 기원전 100년경
발견 장소 : 안드라프라데시 아마라바티
보관 장소 : 인도 아마라바티고고학박물관
비어 있는 대좌 아래에 단순하게 새겨진 석가모니의 발자국이 있습니다. 돌에 그림을 그리듯 얕게 조각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수레바퀴 모양은 지워져 버렸습니다. 대좌의 양옆에는 아름다운 남녀 한 쌍이 서 있습니다. 그들의 몸은 건강해 보이고 풍요로운 기운을 풍깁니다. 그 아래의 연꽃이 가득하고 연못에는 헤엄치는 물고기, 물새들로 활기찹니다. 부처님의 발바닥에 새겨진 수레바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모든 생물을 움직이게 합니다.
남인도만의 상징
나무 아래의 빈 대좌, 태양처럼 빛나는 수레바퀴, 가지런한 발자국은 인도 전역에서 자주 사용된 석가모니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불타는 기둥은 남인도에서만 드물게 보이는 상징입니다.
불타는 기둥을 향한 경배
만든 시기 : 3세기
발견 장소 : 안드라프라데시 아마라바티
보관 장소 : 인도 아마라바티고고학박물관
빈 대좌에 석가모니의 발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대좌 위로 법륜의 기둥이 솟아 있습니다. 그 밑에는 기둥을 경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조각에는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모든 것이 모여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한 가운데에 불로 휩싸여 있는 기둥입니다. 깨달음은 얻은 석가모니는 어깨에서 물, 불을 내뿜은 적이 있습니다. 석가모니를 나타내지 않고 불을 뿜는 기둥으로 석가모니의 기적을 표현한 것은 남인도만의 방식입니다. 불기둥 주변에는 머리가 7개 달린 뱀인 나가와 연꽃을 든 자연의 정령인 약샤 등이 기둥을 향해 경배하고 있습니다.
태양처럼 빛나는 바퀴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는 태양처럼 영원히 빛날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상징합니다. 그가 보이지 않아도 그의 가르침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태양처럼 빛나는 바퀴
만든 시기 : 기원전 2세기 후반경
발견 장소 : 마디아프라데시 바르후트
보관 장소 : 인도 인도박물관
커다란 수레바퀴가 태양처럼 빛나고 수레바퀴를 향해 절을 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수레바퀴에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던 보리수를 꾸민 꽃장식이 걸려 있습니다. 수레바퀴는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이 인도 여러 곳에 세운 돌기둥 위에 얹혀 있습니다.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처럼 영원히 이어질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법륜' 이라고 합니다. 법륜은 석가모니가 보이지 않아도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분명한 상징입니다.
법륜과 마카라
만든 시기 : 200년경
발견 장소 : 비하르
보관 장소 : 인도 비하르박물관
돌고래 꼬리를 가진 마카라의 입에서 나온 약시가 법륜을 받치고 있습니다. 마카라는 인도 신화에 나오는 바다 생물입니다. 수레바퀴는 고대 인도에서 '바른법' 을 의미했습니다. 자이나교, 힌두교 등 여러 종교에서 수레바퀴를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수레바퀴라고 표현한 불교에 특히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법륜과 사자
만든 시기 : 3세기 초
발견 장소 : 안드라프라데시 나가르주나콘다
보관 장소 :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고대 인도에서는 법륜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좋은 왕을 '전륜성왕' 이라고 했습니다. 석가모니는 전륜성왕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사람들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사자후' 라고 표현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나쁜 것들을 행복하게 하는 사자의 울음 같기 때문입니다. 2마리의 사자 위에 있는 태양처럼 빛나는 수레바퀴가 이곳을 석가모니의 가르침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법륜을 향한 경배
만든 시기 : 기원전 1세기
발견 장소 : 텔랑가나 둘리캇타
보관 장소 : 인도 아마라바티유적센터박물관
머리가 세 개 달린 뱀인 나가 네 마리가 스투파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스투파와 법륜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스투파 안에는 석가모니의 시신을 화장하고 얻은 사리가 있습니다. 사리는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서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입니다. 사리 앞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뜻하는 수레바퀴가 있습니다. 수레바퀴는 석가모니의 정신을 보여줍니다. 여기에는 석가모니의 실제와 정신이 모두 있습니다. 얕은 조각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한없이 깊습니다.
스투파 속 사리,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북쪽에서 내려온 석가모니의 사리는 아름다운 스투파 안에 모셔집니다.
사리는 씨앗이 생명을 틔우 듯 넝쿨과 나무가 자라나게 합니다.
그리고 스투파는 석가모니와 그의 가르침을 뜻하는 상징으로 둘러싸입니다.
여기에 석가모니의 인생 드라마가 더해지면, 스투파는 더 이상 석가모니의 끝을 기리는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석가모니의 사리와 스투파 이야기가 펼쳐지는 영상을 감상하며 잠시 쉬었다 가세요.
서사, 그의 인생 드라마
상상력이 풍부했던 인도인들은 석가모니를 주인공으로 하여 많은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기원전 5세기, 석가모니가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되풀이된 전생 이야기는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참배자들에게 스투파에 새겨진 석가모니의 인생 이야기는 요즘 드라마나 영화만큼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었을 것입니다. 스투파에 이런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담기에는 상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드디어 인간의 모습을 한 주인공 석가모니가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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