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들/2024년

[2024ㅡ002 잠녀 潛女 잠수 潛嫂 해녀 海女]

드무2 2024. 2. 1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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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ㅡ002 잠녀 潛女 잠수 潛嫂 해녀 海女]

 

 

 

 

 

 

이동춘

2020, 걷는사람

 

 

소래빛도서관

SC162427

 

 

668

이25ㅈ

 

 

 

동해안 해녀가 건져 올린 바다

 

 

 

이동춘

한국의 유교 문화자산인 종가에 매료되어 경북 안동을 중심으로 한옥과 종가, 서원과 제사, 관혼상제, 한식, 한복, 한지 등의 촬영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 전통문화 속에 깃든 한국의 미를 찾는 사진 작업에 집중하며 유형과 무형의 한국 전통문화의 원형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정신을 오늘의 시선으로 담아낸다.

개인전 <경주, 풍경과 사람들> <선비정신과 예를 간직한 집 '종가'> 등을 개최했으며, 사진집 『도산구곡 예던길』 『오래묵은 오늘, 한옥』 『고택문화유산 안동』 등을 출간하였다.

 

 

 

해녀는 잠녀 (潛女), 잠수 (潛嫂)라고도 한다. 해녀들은 특별한 장치가 없는 나잠어법 (裸潛漁法)으로 지역 어촌계 공동어장에서 수심 10m 이내의 얕은 바다에서 소라 · 전복 · 미역 등을 채취하며 문어나 물고기를 잡기도 한다. 제주에서 시작한 나잠업은 제주도 주변과 거문도 · 추자도를 거쳐 부산 · 울산 · 포항 · 울진 · 울릉도 · 독도 · 삼척 · 속초 · 원주 · 청진 그리고 다시 제주도로 다녔다고 한다. 이런 해녀는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분포되어 있는데 80세 이상임에도 해녀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분들은 육지의 땅 위를 걷기보다 물속이 더 편하다고도 한다. 그런 제주의 해녀가 육지로 시집을 오기도 해서 경북에는 해녀가 많다. 경북의 바다는 제주와 달리 물살이 강하지 않아 경북의 해녀들을 물질하기가 더 쉽다고 한다. 물질의 숙달 정도에 따라 상군 (上軍), 중군 (中軍), 하군 (下軍) 해녀로 구분한다. 상군 해녀는 물질을 가장 잘하는 해녀로 부러움과 대우를 받기도 한다.

 

해녀의 발상지는 제주도로 보이며, 그 기원은 자연발생적인 생업수단의 하나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우에 따라 남자 형제가 물질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이를 해남이라 불렀다. 이들은 오직 어렸을 때부터 수련에 따라 그 기량을 배워 익혀서 어로작업을 한다. 지금도 울릉도 죽암어촌계에 해남이 있는데, 신체적 특성상 해녀보다 훨씬 많은 양의 어획물을 취득한다.

 

해녀들은 고무 잠수복이 나오기 이전엔 광목으로 잠수복을 만들어 입었는데, 그 이전엔 나체로 자맥질을 한 탓에 나라에서 풍기문란으로 자맥질을 금지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 물속에서 만났다면 인어로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 이라는 생각에 살짝 민망함이 몰려온다.

 

고무 잠수복은 모자와 상의, 발목부터 가슴까지 올라오는 하의, 그리고 오리발로 이루어진다. 고무 잠수복을 착용하면서 해녀의 작업 시간도 3 ~ 5시간으로 늘어났으며 바닷속 20m 정도까지 물질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헤엄과 자맥질에 능숙한 해녀가 되는데, 해녀 생활은 대체로 80세 전후까지 한다고 하니 그 생활력에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든다. 해녀들의 어로 형태를 나잠 (裸潛)이라 일컫는데, 그 의미는 기계 장비에 의존하는 스쿠버들과 다른 형태임을 말하고 있다. 즉 자신의 호흡에 의존하여 자맥질로 전복 · 소라 · 문어 · 해삼 · 성게 등을 채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어로는 한반도 동해 · 서해 · 남해 연안과 제주도에서 볼 수 있으나, 해녀들의 고령화와 더불어 점차 감소하고 있다.

 

해녀는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기도 하고 횟집을 운영하는 등 여러 형태로 생업에 종사한다. 농사를 짓는 사이사이 물때에 맞추어 바다로 나가 물질을 하므로 이들의 밭은 주로 바다 가까운 쪽에 있다. 밭일과 물질을 반나절씩 치르는 경우도 있다.

 

경북 해녀들의 물질은 사계절에 걸쳐서 한다. 그중 봄에는 물가의 '짬' 이라고 하는 바위에 붙어 있는 미역을 캔다. 이 바위를 곽암 (미역바위) 이라고 부른다. 나곡어촌계의 자료를 보면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는 곽암 12개가 있다. 이 곽암의 특징은 각기 이름이 있다는 것인데, 하구암 · 중암 · 마두암 · 내계암 · 잔찰암 · 가치암 · 외계암 · 승어암 · 사작암 · 우억암 · 마작암 · 잠암이다. 바위의 형상이나 특성을 따서 붙은 명칭이다. 예를 들어 잔찰암은 미역바위 주위의 물결이 잔잔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고, 숭어암의 경우 주위에서 숭어가 많이 잡힌다고 붙은 이름이다. 곽암의 특징이 다르듯 미역의 생산량과 작업방식도 차이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미역세 (곽전)가 있었다고 하니 자연산 미역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나 보다. 경북의 해녀들은 이러한 자연산 미역을 주로 채취한다. 울진 나곡리의 고포미역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왕조실록> 등에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도 떼배를 이용하여 곽암에서 돌미역을 채취하고 가공하며 배분하는 전통 어촌마을의 공동체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미루어 볼 때, 미역문화의 발상지는 바로 경북 동해안인가 보다.

 

특히 경북도 동해안엔 '풍어제', '동제' 라는 독특한 풍습도 전해진다. 나곡1리와 나곡3리, 나곡6리는 마을에서 성황신을 모시며 동제를 지낸다. 마을 사람들은 '수부' 라는 성황신을 모시고 있다. 나곡1리는 '삼척 김 씨 할아버지', 나곡3리는 '밀양 박 씨 · 한양 조 씨 할아버지' 가 그들이 모시는 성황신의 사자다. 동제를 지내는 시기는 각각이다. 나곡1리는 정월대보름, 나곡3리는 음력 10월 성황당신축일, 나곡6리는 정월대보름 · 가을 제사 때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동제를 지내는 이유는 바다에서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과, 어업생산력이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바닷가 마을의 기본적인 삶을 윤택하게 해줄 것이라는 일종의 신앙인 셈이다. 바다라는 자연 앞에서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성황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어떻게 해서든 무탈하고 잘 되게끔 비는 절실함, 물리적으로 조치할 수 없는 탓에 정신적으로나마 절실하게 올리는 기도와도 같다. 현지 주민들은 생산량이 많으면 "제사를 잘 못 받들어서 그렇다" 라며 증언한다. 무사고와 많은 생산량을 바라는 어촌 주민들의 순수한 마음이 동제라는 형태의 민속신앙으로 오랜 시간 전해져왔음을 알 수 있다.

 

경상북도는 1996년부터 매년 미역바위 닦기와 해안 청소사업 등으로 미역의 서식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미역은 포자로 번식하여 생장하는데, 어촌계에서는 짬바위를 청소해 우량포자의 착생을 유도하고 있다. 그렇기에 짬매기 (짬바위를 청소한다는 의미, 즉 육지농업의 김매기와 같은 작업)는 필수다. 짬을 매는 시기는 매년 입동을 전후하여 보름 동안 이루어진다. 마을 사람들은 갯가에서, 해녀들은 물속에 들어가서 바위를 닦는다. 미역은 대개 해저 1m 내외에 고루 분포하는 특징을 가진다. 특히 깊은 곳에서 채취한 미역일수록 건조물의 빛이 청색으로 바뀌고 맛도 적다고 한다.

 

나곡리에서 미역을 채취하는 방법으로 '떼가래' 작업이라는 게 있었다. 떼가래 작업은 떼배를 이용한 미역 채취 작업인데, 물살이 고요하면 작업하기 좋지만 바람이 불어 물결이 일어나 바닷속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럴 땐 창경 (물안경)이나 푸름 (문어의 썩은 내장)을 이용하여 작업했다 한다.

 

토막배를 이용해 미역을 채취하기도 한다. 20 ~ 30년 정도된 오동나무를 베어 건조한 후 묶어 배를 만든다. 이를 바다에 띄워 통상 2명이 한 조를 구성해 작업한다. 한 사람은 창경으로 바닷속을 들여다보며 낫대 한 자루만으로 미역을 채취하고, 다른 한 사람은 노를 잡고 낫대 작업에 편리하도록 배를 움직이는 역할이다. 낫대는 일반 낫에 긴 장대를 덧이어 댄 것으로 3 ~ 5m 정도의 길이다. 이러한 형태의 작업은 현재 울릉도 현포어촌계에서나 볼 수 있다. 죽암에 있는 해남도 낫을 들고 자맥질을 하며 미역을 채취한다. 경북의 미역은 이렇게 바위에 붙은 자연산 미역을 햇빛에 건조하기 때문에 더 긴장하고 맛있다.

 

여름엔 보라성게를, 가을엔 말똥성게를 주로 채취하는데 전량 일본으로 수출해왔다. 그러다 한일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일본무역이 주춤해짐에 따라 우리 식탁에도 성게가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성게와 해삼을 함께 판매하는 횟집이 감포에 있는데, 딱딱한 해삼과 부드럽고 달콤한 성게알의 조합은 입안에 저절로 군친이 돌게 하는 궁합이다.

 

경북의 해녀들은 추운 한겨울엔 소라와 전복 등을 주로 채취한다고 한다. 설 명절 전후로 전복채취가 성업을 이뤄 가계에 보탬을 준다고 하는데, 이때 번 돈이 직장인들 연봉에 이른다고 하니 해녀 작업을 가볍게 볼 수 없겠다.

 

해녀들은 바닷속에 자맥질하며 보통 수심 1 ~ 3m 쯤에서 30초쯤 작업하다가 물 위에 뜨곤 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수심 20m까지도 들어가고, 2분 이상 물속에서 견디기도 한다고 한다. 물 위에 솟을 때마다 "호오이." 하면서 한꺼번에 막혔던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돌고래의 소리와 비슷한데, 이런 소리를 '숨비소리' 라고 한다. 요즘 해녀들은 어촌계장의 차량으로 조업 장소로 이동하고, 수확물도 어촌계에서 수거하여 각자의 집으로 갖다 준다.

 

해녀들이 부력을 이용하여 가슴에 안고 헤엄치는 '테왁' 밑에는 채취물을 담는 자루 모양의 '망시리' 또는 '망사리', '망아리' 라고 하는 것이 달려 있다. 해녀들이 자맥질할 때에는 이 '테왁' 과 '망사리' 를 물 위에 띄우는데 지금은 주로 스티로폼을 사용한다. 이 외에 해녀들이 사용하는 기구로 전복 등을 캐는 길쭉한 쇠붙이인 '빗창', 해조류를 베는 '정게호미' 라는 낫, 조개 등을 캐는 쇠꼬챙이 갈퀴인 '갈고리' 등과 물고기를 쏘아 잡는 '소살' 이라는 작살이 있다.

 

해녀 문화는 그들만의 특색이 두드러지며 유래 깊은 우리나라의 전통어업이다. 그런 영향인지 제주의 해녀는 2016년

'제주해녀문화' 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언젠가 경북의 해녀도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2020. 12. 이동춘, 서문 중에서

 

 

 

 

 

 

 

 

 

나곡3리에서 나곡6리로 이어지는 해파랑길이 있는 바다를 '고랑포' 라 부른다.

우럭바위를 비롯한 여러 미역바위가 있는 이곳은 1960년대에 간첩이 침투했던 곳으로 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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