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보는 동물]
▲ / 그래픽 = 유재일
청줄청소놀래기 <물고기의 한 종류>는 거울에 반응···붕어는 못해
큰돌고래 · 코끼리, 거울로 자기 알아봐
침팬지, 코 후비고 이상한 표정 짓기도
사회생활 많이 한 쥐도 반응했어요
인간은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압니다. 자연에는 거울만큼 또렷하게 자신을 비추는 물체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물에 비치는 정도죠. 거울은 인간이 만든 아주 특별한 물건인 셈이에요. 자연 상태에서 동물은 자기 모습을 비추는 거울을 접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요. 덕분에 동물에게 거울을 보여주면 흥미로운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거울을 처음 본 동물의 반응을 연구하며 동물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연구하곤 합니다.
고립된 채 자란 쥐는 거울에 반응 안 해
신경학 분야 국제 학술지 '뉴런' 12월 6일 자에는 거울과 관련된 재미있는 연구가 실렸습니다. 다카시 기타무라 미국 사우스웨스턴 텍사스대 메디컬센터 신경과학부 교수와 준 요코세 연구팀은 실험용 쥐 이마에 잉크를 묻힌 뒤 쥐에게 거울을 보여주고, 쥐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폈습니다. 검은 털을 가진 쥐에게 각각 흰 잉크와 검은 잉크를 묻혔어요. 검은 잉크보다는 흰 잉크가 훨씬 잘 보였겠죠? 잉크를 묻히는 면적도 0.2㎠, 0.6㎠, 2㎠로 각각 다르게 했답니다.
쥐들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어요. 우선 검은 잉크를 묻혔거나 흰 잉크 0.2㎠를 묻힌 쥐는 거울 앞에서 특별히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았어요. 반면 흰 잉크를 0.6㎠, 2㎠ 묻힌 쥐 일부는 거울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잉크를 지우려 했어요.
그렇다면 눈에 띄게 잉크가 묻은 쥐 중 어떤 쥐가 거울 앞에서 잉크를 지우려 한 걸까요? 연구진은 쥐가 거울에 비친 자신을 인식했을 때는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뇌 부위 '해마' 에서 신경세포가 반응했다는 점을 발견했어요. 거울 앞에서 털 손질을 하지 않은 쥐는 이 신경세포도 반응하지 않았죠.
또 거울에 반응을 보인 쥐는 자신과 비슷한 다른 쥐와 사회생활을 많이 한 쥐였어요. 젖을 뗀 뒤 고립된 채 자랐거나 흰 쥐와 자란 쥐는 거울에 반응하지 않았죠. 연구팀은 "사회적 경험이 거울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는 데 영향을 준다" 고 해석했답니다. 자신을 인식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자신과 외모가 비슷한 쥐와 사회생활을 할 때 해마를 통해 학습된다는 거죠.
동물이 자신을 인식하는지 보는 '거울 검사'
텍사스대 연구진은 1970년 고든 갤럽 미국 알바니 뉴욕주립대 심리학과 교수가 제안한 '거울 검사' 를 이용했습니다. 동물이 시각적으로 자기 인식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고안한 실험 방법이죠. 여기서 '자기 인식 (selfㅡawareness)' 은 스스로를 하나의 개별 존재로 인식하는지를 말합니다. 나와 다른 동물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죠.
갤럽 교수는 동물에게 거울을 보여주고 이들이 거울에 비친 상을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는지 확인하는 실험을 계획합니다. 갤럽 교수가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야생 침팬지였어요. 거울을 처음 본 침팬지는 처음에는 위협적인 몸짓을 취했습니다. 자기 영역에 침범한 낯선 침팬지라고 생각했던 거죠. 시간이 흐른 뒤에는 거울이 자신을 비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거울을 보며 코를 후비거나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놀았죠. 심지어는 엉덩이처럼 그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체 부위를 비춰보며 손질하기도 했습니다.
갤럽 교수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습니다. 침팬지를 마취한 뒤 눈썹과 귀 위에 염료를 발라뒀죠. 마취에서 깨어난 침팬지는 거울이 없을 때는 염료를 지우려 하지 않았지만, 거울이 있을 때는 거울을 보고 염료를 지우려 했어요. 다른 원숭이 두 종에게도 같은 실험을 했지만, 원숭이는 거울에 비친 상이 자신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습니다. 갤럽 교수는 인간 외에는 침팬지 같은 최소 유인원만이 자기 인식을 한다는 내용을 정리해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물새는 거울 속 자신 공격하기도
갤럽 교수의 연구 이후 과학자들은 다양한 동물에게 거울 검사를 시도했습니다. 2001년 처음으로 유인원 아닌 다른 동물이 거울 검사를 통과했습니다. 영리한 동물로 알려진 큰돌고래였죠. 사회생활을 하고 초음파로 다른 돌고래와 의사소통도 하는 동물이니 자기 인식이 가능했을 겁니다. 포유류 중에서는 무리를 돌보며 생활하는 코끼리도 거울 검사를 통과했습니다. 처음엔 통과하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코끼리 몸에 비해 거울이 너무 작아서였다고 합니다. 코끼리 몸을 비출 정도로 큰 거울로 바꾸자 거울 검사를 통과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외의 결과도 나왔습니다. 2008년에는 까치가 거울 검사를 통과했습니다. 목에 노란색 표지를 붙이자 이를 떼어내려고 몸부림쳤죠. 2019년에는 물고기도 자기 인식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주인공은 청줄청소놀래기로 집단행동을 하며 지능적 행동을 하는 동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1개월 전 그물에 잡힌 경험을 기억한다는 사실도 밝혀진 바 있죠. 거울 검사도 거뜬히 통과했습니다. 심지어 거울 없이는 볼 수 없는 위치에 점을 찍었더니 거울에 해당 부위를 비춰보며 점을 없애려 했죠.
유인원과 가까운 원숭이는 처음에는 거울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훈련을 반복하면 거울에 비친 자신을 인식하는 것으로 2015년 드러났습니다. 반면 울새나 태국버들붕어는 끝까지 거울 속 상이 자신임을 인식하지 못했어요. 같은 종 다른 동물이라고 생각해 구애하거나 공격했습니다.
한편 거울 검사는 자기 인식을 확인하는 극히 일부 수단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우선 동물은 후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이용해 나와 주변 사물을 인지하는데, 거울 검사는 시각적 판단에만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또 거울에 비춘 모습을 자신으로 인식했더라도 반응이 없는 동물도 있을 수 있습니다. 동물의 자기 인식 능력은 앞으로 더 다양한 방법으로 밝혀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가희 과학칼럼니스트
기획 · 구성 =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12월 26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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