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지역과 함께하는 석탄시대] 06

드무2 2024. 6. 3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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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함께하는 석탄시대] 06

 

 

 

 

 

 

 

선탄부

탄광은 남성 노동자의 영역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선탄작업은 여성 노동자의 영역입니다. 여성 일자리가 거의 없던 탄광지역에서 선탄부는 보수가 높아 경쟁률이 높앗습니다. 가족이 탄광 작업 중 사고로 다쳤거나 사망한 경우 우선적으로 생계를 위해 취업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선탄부 II / 황재형 작

 

1985                                                                                                                                                          캔버스에 유화 물감

 

 

 

 

선탄부 | 보령석탄박물관

 

 

 

 

 

 

 

선탄부 | 1960 | 경향신문

 

 

 

 

 

 

 

 

 

 

 

 

 

 

 

 

갱도로 이동하는 광부들 / 1974 / 경향신문

 

 

 

 

 

 

 

갱도 안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 광부 / 1974 / 경향신문

 

 

 

 

 

 

 

장성탄광 / 1978 / 국가기록원

 

 

 

 

 

 

 

 

 

 

 

 

 

막장 사람들 ㅡ 광부의 하루 / 7' 10" / 태백석탄박물관

 

 

 

 

 

 

 

 

 

 

인차 人車를 타고 이동중인 삼척탄광 광부들의 모습 _ I / 1976 / 국가기록원

 

 

 

 

인차 人車를 타고 이동중인 삼척탄광 광부들의 모습 _ II / 1976 / 국가기록원

 

 

 

 

퇴갱하는 광부 / 보령석탄박물관

 

 

 

 

휴식 중인 광부 / 보령석탄박물관

 

 

 

 

 

 

 

광부의 도시락

끊임없이 작업하는 광부들의 유일한 휴식 시간은 중식시간입니다. 갱내는 편히 앉아서 쉴 곳도 없을뿐더러 자연광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광부들은 갱이 무너지지않게 지탱하는 동발이나 암석에 걸터 앉아 안전등 불빛에 의지해 식사를 했습니다. 탄공에 사는 쥐는 붕괴나 가스 위험 등을 미리 알려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쥐가 도시락을 훔쳐 먹어도 함부로 죽이지 않았고, 대신 높은 곳에 매달아 피해를 방지했습니다.

 

 

 

 

 

 

 

청색과 홍색 보자기 도시락

 

광부의 아내는 도시락을 청색과 홍색의 보자기로 준비했는데 청색은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로, 홍색은 나쁜 기운을 막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식사 II / 황재형 작 

 

1985                                                                                                                                                          캔버스에 유화 물감

 

 

 

 

 

 

 

 

 

 

탄광마을 사람들의 삶

 

 

 

 

 

 

 

 

 

 

 

 

 

아빠 !

오늘도 무사히

 

석탄 생산 장려정책이 추진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탄광으로 취업해 들어왔습니다. 안정적인 급여 외에도 사택지급이나 자녀 학자금 등 다양한 복지후생이 제공되는 탄광은 구작자들에게 매력적인 직장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탄광은 산업재해의 위험이 항상 존재했으므로 탄광 근로자와 가족들은 하루하루 사고없이 무탈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런 모두의 마음을 담아 사택마을이나 탄광 입구에는 '아빠 ! 오늘도 무사히' 라는 표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탄광마을

사람들의 삶

 

탄광마을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탄광은 산속에 위치하고 있어 광부들과 가족들을 위한 사택이 건립되었습니다. 탄광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다른 직업보다 많은 봉급이었습니다. 광부들은 일정한 시간 내에 생산한 양에 따라 임금이 지급되는 도급제로 급여를 지급받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무리한 작업이 이어지게 되었고 안전사고의 위험도 뒤따랐습니다. 광부들은 탄광을 '삶의 전쟁터' 라고 말할 정도로 산업재해의 환경에 노출되어 있어 크고 작은 재해가 빈번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탄광 노동자와 가족들의 공포를 반영한 금기가 많았습니다. 1970년대까지는 흉몽을 꾸면 출근하지 않아도 공식 결근 사유로 인정되기도 했습니다.

 

 

 

 

 

 

 

1988년 태백 시내의 모습 4' 34" | 1988 | MBC강원영동

 

 

 

https://youtu.be/4Bm2BhA8fEM

 

 

 

 

 

 

 

탄광마을 전경 | 1977 | 경향신문

 

 

 

 

성주 사택마을 | 대한석탄공사

 

 

 

 

 

 

 

최초의 사택아파트 장성광업소의 화광아파트 준공식 | 1978 | 국가기록원

 

 

 

 

 

 

 

보령탄광마을 | 1960 | 보령석탄박물관

 

 

 

 

'아빠 ! 오늘도 안전' | 1977 | 경향신문

 

 

 

 

아이들로 북적이는 탄광마을 초등학교 | 보령석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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