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수학여행 ㅡ 철원여행 (남이섬, 가평레일바이크, 김유정 문학촌포함)] 11
김유정의 연희전문학교 학적부
입학 소화 5년 (1930년) 4월 8일 문과 본과 제1학년 시험입학이라 적혀있다
김유정의 휘문고보 성적표
입학 대정 12년 (1923년) 4월 9일, 졸업 단기 4262년 (1929년) 3월이라 적혀있다.
말더듬이 멱서리
대갓집 도련님으로 태어나다
김유정은 1908년 2월 12일, 강원도 춘천부 남내이작면 증리 (실레마을)에서 태어났다. 10대조 김육 (1580 ~ 1658)은 백성을 위해 대동법을 주장한 개혁자였고, 9대조 김우명 (1619 ~ 1675)은 현종의 장인이자 숙종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고조부 때부터 춘천 실레마을에 터를 잡은 육천석지기로 조부 때는 춘천 의병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다고 한다. 그런 명문가의 자제인 아버지 김춘식과 어머니 청송 심씨 사이에서 그는 2남 6녀의 일곱째로 태어났다. 부모는 딸만 다섯을 낳은 끝에 얻은 이 귀한 아들이 부유하고 건강하게 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멱서리 (곡식을 담는 그릇)' 라는 아명을 지어 주었지만 그는 말더듬이에 몸이 허약했다. 게다가 횟배를 자주 앓았고,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어린 김유정에게 담배를 피우게 했다. 하멜 표류기에 조선의 4 ~ 5세 아동들이 뱃속 회충을 없애기 위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등장할 만큼 당시에는 담배가 회충을 죽인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어린 시절의 흡연은 후일 김유정이 골초가 되고 폐결핵을 앓는 단초가 되었다.
어린 도련님의 담배 피우는 모습은 집안과 마을 사람들의 불편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이 때문에 감수성이 예민한 김유정은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염인증이 싹트기 시작한다. 김유정이 말이 아닌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문학의 길로 들어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유년의 상실과 슬픔
청춘과 행복은 아버지의 상여를 따라 멀어져 갔다
여섯 살 무렵 김유정은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있는 아흔아홉칸 집으로 이사를 한다. 이 시기만 해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일곱 살 되던 해 어머니가 사망하게 된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치유할 틈도 없이 아버지마저 병으로 눕게 된다. 형은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넓은 토지를 관리했다. 이삼백 리를 걸어 달포씩이나 고생하고 돌아와서도 어김없이 아버지 병시중을 들었고, 아버지가 위독할 적에는 자신의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마시게 할 정도로 효자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던 형은 난봉이 나고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축내기 시작한다. 수전노에 가까웠던 아버지는 형에게 벼루며 목침, 단소까지 내던졌다. 급기야 어린 김유정이 보는 앞에서 형에게 칼을 던지기에 이른다.
이 사건은 김유정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가 불행을 느낄 때마다 상징처럼 새롭게 각인되곤 하였다.
김유정이 9세되던 해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다. 그는 작품 「형」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만일 이 때에 나의 청춘과 나의 행복이 아버지의 시체를 따라 갈 줄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그를 붙들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내리 울었으리라."
그 후 가세는 점점 기울어, 운니동에서 관철동으로, 다시 숭인동, 관훈동, 청진동으로 살림을 줄여가야 했다.
이 시기에 김유정은 글방을 다니며, 4년 동안 천자문, 통감 등 한문 공부와 붓글씨를 익히고 12세 되던 1920년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다.
예술과 우정
조선의 톨스토이를 꿈꾸다
재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김유정은 평생의 지기 안회남 (소설가, 1907 ~ ?)을 만나게 된다. 안회남은 신소설 「금수회의록」의 작가 안국선 (소설가, 1878 ~ 1926)의 아들로 193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발」로 등단한 월북작가이다. 불우한 가정에서 성장한 그와는 달리 문학적인 분위기에서 다복하게 자란 안회남은 김유정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자 의지처였다. 관심사와 기질이 비슷했던 두 사람은 수업시간에 몰래 빠져 나와 학교 뒷동산에서 도시락을 까먹기도 하며,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롯한 체호프, 노신 등의 작품을 탐독했다. 이 시기 김유정은 조선의 톨스토이를 꿈꾼다.
김유정은 다재다능했고 예술을 사랑하여, 문학뿐 아니라 야구 · 축구 · 스케이팅 · 권투 · 유도 등의 스포츠와 바이올린 연주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겼다. 하모니카 실력은 극장 단성사 개관 기념행사 때 무대에 올라 독주를 선보일 정도로 수준급이었다. 영화에도 관심이 많아 특히 찰리 채플린을 좋아했다. 날카로운 풍자와 휴머니즘을 함께 담고 있는 영화 '황금광 시대' 는 김유정 문학의 해학성과 무관하지 않다.
안회남과의 우정은 문학에 대한 열정과 함께 그 깊이를 더해갔다.
방황과 습작
불행한 삶, 문학의 자양분이 되다
김유정은 1933년 서울동양극장에서 열린 조선성악연구회 창립공연에서 춘향역을 맡은 명창 박녹주 (1905 ~ 1979)의 동편제 소리에 큰 감동을 받는다. 어머니 사진을 늘 가슴에 품고 다니던 그는 우연히 목욕탕에서 나오는 박녹주의 소박한 모습과 마주친다. 그 순간,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 그는 헤어나기 힘든 사랑에 빠진다.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던 그리움과 상실감이 박녹주를 향해 일시에 열린 것이다. 그 무모한 사랑은 김유정에게 또 한 번의 상처로 남는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소리와 작품은 두 사람의 예술적 교감을 짐작케 한다. 소리의 원초적인 모습을 고집하며 한을 드러내지 않는 박녹주의 동편제와,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토속어를 고집하며 웃음으로 고통을 극복하고자 했던 김유정의 치열한 작가 정신은 그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무렵 연희전문과 보성전문에 입학하기도 하지만 중도에 그만두고 김유정은 춘천 실레마을에 머무른다. 김유정의 나이22세였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급격한 경제적 몰락과 실연의 아픔을 겪으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채로 고향에 내려온 그는 농민들, 들병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혹독한 현실을 살아내는 기층민들의 삶을 목도한다. 개인적인 불행과 시대의 불운은 김유정에게 하나의 화두가 되고, 문학적 자양분이 되어 서글픈 웃음을 주는 해학의 문학으로 자리잡는다. 그는 자전적 소설 「심청」을 탈고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귀향과 농촌계몽운동
고향 실레마을에서 소설의 토양을 다지다
실레마을에 머무는 동안 김유정은 야학당을 열고 농우회, 노인회, 부인회를 조직하는 등 농촌계몽운동을 펼친다. 농우가 (農友歌)를 지어 함께 부를 만큼 김유정은 고향을 사랑했다.
어느날 야학으로 사용하던 움막에 불이 나자 김유정은 죽음을 무릅쓰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안에 있던 아이들을 구했다. 창문으로 의식을 잃은 아니가 던져지고 곧이어 불에 그을린 그가 기계체조하듯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 때의 상황을 지켜본 조카 김영수는, "삼촌이 건강해서가 아니라 아무리 쇠약한 때라도 그 칼칼한 성품으로 인해 민첩한 행동으로 옮겨진 것" 이라고 말한다. 야학당은 후에 간이학교로 인가받아 '금병의숙' 이 되었다.
이 시기 김유정은 충청도 예산에 있는 광업소의 현장감독으로 몇 달 간 머무르기도 한다. 거기에서 그는 광부, 잠채꾼 등 막장에 내몰린 인생들을 만나고 이 때의 경험은 후에 금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낳는다.
화려했던 날들
문학은 꽃피고, 생명은 이울다
몇 해간 습작기를 보내던 김유정은 1933년 《제일선》 이라는 종합잡지에 「산골 나그네」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발을 들인다. 《제일선》과 《개벽》의 발행인인 춘천 출신 차상찬 (1887 ~ 1946)은 일찌감치 그의 문학성을 알아보고 흔쾌히 실어주었다고 한다. 차상찬은 '한국언론의 선구자' 로 평가 받는 인물이다. 김유정에게 있어 문학은 '금광의 노다지' 와도 같았다. 노다지를 발견한 그는 전력을 기울여 그것을 발굴해내기에 힘쓴다.
1935년 「소낙비」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1등, 「노다지」로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가작 당선이 이어진다. 김유정은 폭발적으로 작품들을 써내고 발표하는데, 「금 따는 콩밭」, 「금」, 「떡」, 「만무방」, 「산골」, 「솥」, 「봄 · 봄」 등 한 해 동안 발표한 것만해도 열한 작품에 달한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1등 당선 축하연에서 천재시인 이상 (시인, 소설가 1910 ~ 1937)을 만나게 되고 우정을 나눈다. 이어 박태원 (소설가 1909 ~ 1986), 이태준 (소설가 1904 ~ ?), 정지용 (시인 1902 ~ 1950) 등이 속한 순수문학을 추구하는 '구인회' 의 멤버로 활동을 하며 문우의 폭을 넓힌다.
이 시기 김유정의 문학은 화려하게 꽃피고 있었지만, 그의 몸은 이미 폐결핵으로 스러지고 있었다.
겸허
다만 문학의 길을 걷고 싶었다
김유정은 쉬지 않고 글을 썼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건강한 몸이 필요했고, 치료약을 사려면 돈이 필요했던 그는 원고료를 벌기 위해서라도 쉼 없이 소설을 써야 했다. 그러나 소설 쓰기는 김유정의 몸을 더욱 망가뜨렸다. 그는 살고 싶었다. 동반자살을 제의했던 이상에게 앙상한 가슴을 풀어 헤치며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 라던 그는 '겸허' 라는 두 글자를 머리맡에 붙이고 오로지 창작에 몰두했다.
1936년 그는 요양을 위해 정릉에 있는 암자로 들어간다. 산골 물에 목욕하고 너럭바위에 누워 일광욕을 즐겼다. 하지만 폐결핵이 악화되고 치루까지 생겨 누워 지내야만 했다. 김유정을 돕기 위해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던 김문집 (평론가 1907 ~ ?)은 병고작가 원조운동을 벌여 모금한 돈을 조금씩 전하곤 했다. 그 해 가을, 절친했던 이상이 부인과 함께 그가 머무르던 암자에 찾아온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작별 인사를 전하러 온 것이다. 김유정은 누구보다 가까웠던 문우가 떠난다는 사실과 꼼짝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낙담했다.
그는 또 한 번의 사랑을 잃는다. 《여성》 5월호에 '어떠한 남편, 어떠한 부인을 맞이할까' 라는 제목으로 한 여성의 글이 그의 글과 나란히 실린다. 그 글을 읽은 김유정은 그녀에게 절절한 연서를 보낸다. 그의 편지는 오빠인 박용철 (시인 1904 ~ 1938)에 의해 겉봉무가 찢긴 채로 그녀에게 전해졌고, 답장은 한 번도 받을 수 없었다. 김유정이 보낸 30통의 편지 끝에 돌아온 것은 잡지에 실린 그녀의 약혼 소식이었다. 남편은 구인회 문우였던 김환태 (문학평론가 1909 ~ 1944)였다.
충격으로 병세가 악화된 김유정은 그 해 겨울 정릉 암자를 떠나 형수 댁으로 옮긴다. 「심청」, 「봄과 따라지」, 「가을」, 「동백꽃」 등 열두 편의 작품이 이 해에 발표된다.
영원한 청년작가
한평생의 햇빛과 굳게 작별하다
1937년 2월 김유정은 조카의 부축을 받아 경기도 광주군 (하남) 다섯째 누이의 과수원 토방으로 거처를 옮기고, 창문을 검은 천으로 가린 적막한 어둠 속에서 병마와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이 무렵 「따라지」, 「땡볕」, 「연기」가 발표된다. 병이 깊어지던 어느날, 친구 안회남에게 '병마와 최후의 담판' 을 벌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편지를 띄운다. 번역거리를 찾아 보내주면 그 돈으로 '닭 30마리, 살모사 구렁이 100여 마리' 를 먹고 다시 살아나겠다는 희망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열하루 뒤, 1937년 3월 29일, 봄날 오전 6시 30분,
김유정은 한평생의 햇빛과 굳게 작별한다.
고향 실레마을에는 향긋하고 알싸한 동백꽃이 노랗게 퍼드러지고 있었다.
스물아홉 고단한 삶은 뼛가루가 되어 한강에 뿌려졌다.
"나는 비로소 나를 위하여 따로이 한 길이 앞에 놓여있음을 알았다. 그 길이 얼마나 멀든지 나는 그걸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내가 그 길을 완전히 걷고 날 그날까지 나의 몸과 생명이 결코 꺾임이 없을 것을 굳게 믿는다."
유정의 외로웠던 삶의 길 '유정고도 (裕貞孤道)' 는 이제 그 고단한 걸음을 멈추었지만, '영원한 청년작가' 김유정은 지금도 점순이, 덕돌이, 춘호, 뭉태, 계숙이...... 들과 함께 실레마을 김유정문학촌에 머물고 있다.
김유정의 사람들
김유정과 구인회
구인회는 1933년 결성된 문단작가 모임이다.
시인 김기림 · 정지용, 소설가 이효석 · 이태준 · 이무영 · 이종명 · 김유영, 극작가 유치진 · 조용만이 결성하였다. 얼마 후 소설가 이종명 · 김유영 · 이효석이 탈퇴하고 소설가 박태원, 시인 이상 · 박팔양이 가입하였으며, 다시 극작가 유치진 · 조용만 대신에 소설가 김유정, 평론가 김환태로 교체되었다. 회원 교체가 여러 번 있었지만 항상 9명의 회원을 유지하였다.
1930년대 경향문학이 쇠퇴하고 문단의 주류가 된 이들은 순수문학,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가 된다. 리얼리즘에 반발하고 예술성을 추구하는 순수문학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여 당시 가장 유력한 순수문학 단체로 활동하였다. 이상과 박태원이 중심이 되어 《시와 소설》이라는 동인지를 펴냈다. 4년 만에 해체되었으나 소속 작가들의 작품은 한국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김유정은 1935년 27세의 나이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소낙비」가 당선되엇으며, 이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이상' 을 만나 깊은 친분을 이어간다. 또한 같은 해 6월 3일 조선문단사가 주최한 문예좌담회에 안회남, 이석훈, 김환태, 정지용 등과 함께 참석한다.
1937년 세상을 떠난 직후에는 강노향, 박태원, 채만식, 이석훈 등 문단의 많은 문인들이 김유정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추모글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김유정의 사람들
<김유정의 사람들>은 김유정의 삶의 궤적에서 빼놓은 수 없는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은 회화작품이다. 이 작업을 위해 초상화의 거장, 신대엽 화가가 나섰다. 신대엽 화가는 동양화 기법을 이용해 가로 2.4m, 세로 2m에 달하는 집단 초상화 <김유정의 사람들>을 완성했다.
이 작품에서는 앞서 말한 안회남, 이상, 박태원, 정지용, 김기림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에 등장하는 물건들은 모두 김유정의 소설에 등장하거나 당시 시대상과 연관되어 있는 소품들로, 작품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묘미라 할 수 있다.
1908년 출생한 인물
1908 김유정 출생
유치환 (1908 ~ 1968)
시인 · 교육자
존재론적 차원의 허무와 강인한 의지를 작품에 일관되게 나타냈다.
대표작으로 <깃발> · <행복> · <생명의 서> · <일월> · <바위> 등이 있다.
해방 직후에는 '생명파 시인' 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임화 (1908 ~ 1953)
시인
일제강점기와 8 · 15해방 직후에 활동한 사회주의 문예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대표작으로 <우리 오빠와 화로> · <현해탄>이 있다.
김기림 (1908 ~ ?)
시인 · 평론가 · 영문학자
주로 미지에 대한 호기심 · 이국적 쟁취에 탐닉하는 글을 썼다.
대표작으로 <기상도> · <바다와 나비> · <새노래>가 있다.
이무영 (1908 ~ 1960)
소설가 · 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 강점기 <제1과 제1장> · <흙의 노예> 등을 저술하였다.
김정한 (1908 ~ 1996)
소설가
주로 핍박당하는 농촌현실을 주제로 한 소설을 썼다.
대표작으로 <사하촌> · <산거족> 등이 있다.
최재서 (1908 ~ 1964)
소설가 · 평론가 · 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 강점기 「명일의 조선문단」 · 「비평의 형태와 내용, 특히 월평을 중심으로 하여」 · 「작가에 유언장」 등을 저술하였다.
백철 (1908 ~ 1985)
광복 이후 외국의 신비평 이론들을 소개하면서 한국문학 비평계의 기반을 쌓았다.
<조선신문학사조사>를 통해 한국의 근현대문학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윤봉길 (1908 ~ 1932)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32년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의 수뇌부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제임스 스튜어트 (1908 ~ 1997)
미국의 국민배우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 (Mr. Smith Goes to Washington)와 <필라델피아 스토리> (The Philadelphia Story) 등에 출연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는 서부영화 <윈체스터 73> (Winchester 73)과 스릴러 영화 <이창> (Rear Window)과 <현기증> (Vertigo>에 출연했다.
이안 플레밍 (1908 ~ 1964)
영국의 작가
<카지노 로얄 Casino Royale> (1953)은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한 12편의 연작소설 '007 시리즈' 의 첫편이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1908 ~ 1989)
20세기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관현악단 · 오페라단 지휘자
1908 ~ 1914
조선과 세계의 문학 동향
1914 서울 운니동으로 이사
1908년 최남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 발표
이인직 최초 신극 <은세계> '원각사' 에서 공연
1909년 신문관, '십전총서' 첫 권으로 <걸리버 여행기> 간행
1910년 이해조 <자유종> 간행
※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에 관한 조치 및 조약문이 공포되면서, 국호인 대한제국이 폐지되고 조선으로 개칭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통치권이 일본제국주의에 빼앗기며 식민지로 전락했다.
1911년 이해조 <모란병> 간행, 장편 <화의 혈> 연재 (매일신보)
1912년 최찬식 <추월색> 발표
이해조 <옥중화> 출간
1913년 한용운 <불교유신론> 발간
조종환 <장한몽> 연재 (매일신보) 후 출간, <쌍옥루> 출간
1908년 E. M. 포스터 <전망 좋은 방> 발표
1910년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 발표
1911년 가스통 르루 <오페라의 유령> 발표
1912년 아서 코넌 도일 <잃어버린 세계>
D. H. 로렌스 <침입자>
토마스 만 <베니스에서 죽다>
1913년 D. H. 로렌스 <아들과 연인>
1914년 앙드레 지드 <교황청의 지하실>
헤르만 헤세 <로스할데>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
※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915 ~ 1919
조선과 세계의 문학 동향
1915 어머니 사망
1917 아버지 사망
1915년 안국선 (김유정 절친 안회남의 부친) <공진회> 출간
1916년 이해조 <토의 간> 출간
이광수 <문학이란 하오> 발표
1917년 이광수 <무정> · <개척자> 연재 (매일신보), <소년의 비애> · <어린 벗에게> 발표
1918년 이광수 <무정> 출간
김억 <겨울의 황혼> 발표
1919년 김동인 <약한자의 슬픔> 발표
주요한 <불노리> 발표
※ 1919년 2월 8일 : 2 · 8 독립선언
동경 유학생 최팔용 · 서춘 · 백관수 · 김도연 등 6백여 명이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 1919년 3월 1일 : 3 · 1 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이 서울 인사동의 유명한 요릿집 '태화관' 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파고다공원을 시작으로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후 시위는 반년 동안 전국 각지로 파급되어, 총 136만 명이 참여하고 6,670명이 피살되었으며 52,730명이 투옥되었다.
1915년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
버지니아 울프 <항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몽>
※ 1915년 11월 25일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이론 발표 알베르토 아인슈타인은 가속 운동이 물리적 현상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이보다 10년 앞선 1905년에 제창되었다.
1916년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프란츠 카프카 <변신>
1917년 아서 코넌 도일 <마지막 인사>
※ 1917년 3월과 10월
아시아에서 두 차례 혁명이 일어났다. 이로써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고 케렌스키의 임시정부가 성립하고, 잇따라 볼세비키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정통파)에 의한 소비에트 정부가 꾸려지며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이 이룩된다.
1918년 루쉰 <광인일기>
1919년 앙드레 지드 <전원교향악>
헤르만 헤세 <데미안>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버지니아 울프 <밤과 낮>
1920 ~ 1923
조선과 세계의 문학 동향
1920 재동공립보통학교 입학
1923 휘문고등보통학교 입학
1920년 김소월 <낭인의 봄> 발표
김억 <기탄잘리> (타고르 원작) 번역 출간
조선일보, 동아일보, 신사일보 창간
「개벽」 「폐허」 등 잡지 창간
1921년 현진건 <빈처> <술 권하는 사회> 발표
김동인 <배따라기> 발표
염상섭 <표본실의 청개구리> 발표
김억 <오뇌의 무도> 출간
1921년 「장미촌」 창간
1922년 이광수 <민족개조론> 연재 (개벽)
나도향 <환희> 연재 (동아일보)
방정환 <세계명작동화집> 발간
「백조」 창간
1923년 「어린이」 · 「신소설」 · 「샛별」 창간
1920년 애거사 크리스티 <스타엘스 저택의 괴사건> 발표
D. H. 로렌스 <사랑에 빠진 여인>
1921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가음신> 발표
F. 스콧 피츠제럴드 <말괄량이와 철학자> 발표
올더스 헉슬리 <크롬 옐로우> 발표
※ 중국공산당 창당, 히틀러 독일노동자당 당수 선출
1922년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발표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 발표
D. H. 로렌스 <아론의 지팡이> 발표
마르셀 프루스트 <소돔과 고모라> 발표
버지니아 울프 <제이콥의 방> 발표
1923년 장 콕토 <협잡꾼 토마> 발표
어니스트 헤밍웨이 <세 개의 단편과 열 편의 시> 발표
헤르만 헤세 <데미안> 발표
D. H. 로렌스 <캥거루> 발표
1924 ~ 1929
조선과 세계의 문학 동향
1929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1924년 현진건 <운수 좋은 날> · <B 사감과 러브레타> 발표
※ 경성제국대학 (서울대학교의 전신) 개교
1925년 최서해 <탈출기> 발표
극단 '토월회' <춘향전> · <심청전> · <장화홍련장> · <추풍감별곡> 등 공연
김소월 <진달래꽃> 출간
나도향 <뽕> · <물레방아> 발표
이광수 <마의태자> 발표
주요섭 <인력거꾼> 발표
전영택 <화수분> 발표
1926년 한용운 <님의 침묵> 출간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발표
김구 <백범일지> 지음
최남선 <백팔번뇌> 출간
나도향 <벙어리 삼룡이> 지음
이광수 <단종애사> 발표 (동아일보)
※ 6 · 10만세운동,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개봉
1928년 홍명희 <임꺽정> 연재 (조선일보) 시작
1929년 ※ 광주학생운동
1924년 토마스 만 <마의 산> 발표
1925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발표
프란츠 카프카 <심판> 발표
※ 나치스 친위대 결성 (SS친위대)
1926년 애거사 크리스티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발표
어니스트 헤밍웨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발표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즈의 무희> 발표
1927년 아서 코난 도일 <셜록 홈즈의 사건집> 발표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발표
1928년 애거사 크리스티 <블루 트레인의 수수께끼> 발표
E. M. 포스터 <영원의 순간> 발표
D. H. 로렌스 <채털리 부인의 연인> 발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서부전선 이상없다> 발표
1929년 장 콕토 <앙팡테리블> 발표
어니스트 헤밍웨이 <무기여 잘있거라> 발표
1930 ~ 1932
조선과 세계의 문학 동향
1930 연희전문 문과 입학, 제적
1931 보성전문 법과 입학, 자퇴
실레마을에 야학당 설립
1932 『심청』 탈고
1930년 김동인 <광염소나타> 발표
이효석 <약령기> 발표
『시문학』 창간
※ 한국독립당, 한국독립군 조직
※ 이난영의 음반 <목포의 눈물> 출시
1931년 이상 <오감도> · <이상한 가역반응> 발표
1932년 김동인 <발가락이 닮았다> · <붉은 산> · <여인> · <젊은 그들> 발표
염상섭 <광분> · <불연속선> · <타락> 발표
박종화 <금삼의 피> 발표
양주동 <조선의 맥박> 발표
이광수 <흙> 연재 (동아일보)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 (이규환 감독) 개봉
※ 이봉창 · 윤봉길 의사 의거
1930년 애리사 크리스티 <목사관의 살인> 발표
윌리엄 포크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발표
헤르만 헤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발표
D. H. 로렌스 <처녀와 집시> 발표
※ 간디 무저항 운동으로 체포
※ 레마르크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 나치스 판금 분서
1931년 펄벅 <대지> 발표
윌리엄 포크너 <성소> 발표
※ 완바오산 사건과 만주사변 발발
1932년 펄벅 <아들들> 발표
윌리엄 포크너 <8월의 빛> 발표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발표
※ 일본의 중국 본토 침략
1933 ~ 1935
조선과 세계의 문학 동향
1933년 폐결핵 발명
「산골나그네」 · 「총각과 맹꽁이」 발표
1935년 「노다지」 · 「금」 · 「떡」 · 「산골」 · 「만무방」 · 「솥」 · 「홍길동전」 · 「봄 · 봄」 · 「안해」 발표
1933년 김동인 <운현궁의 봄> 연재 (조선일보)
극단 '실험무대' <무기와 인간> 공연
이효석 <돈> 발표
'구인회' 조직
1934년 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 발표
주요섭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발표
최현배 <중등조선말본> 출간
김봉구 <출발> 발표
잡지 『문학』 · 『정음 (正音)』 · 『신인문학』 · 『삼사문학 (三四文學)』 창간
진단학회 창립
1935년 안수길 <적십자병원장> · <붉은 목도리> 발표
현진건 <흑치상지> 발표
이무영 <농부> · <출가> 발표
계용묵 <연애삽화> · <백치 아다다> · <출견> 발표
이효석 <성수부> · <성서> 발표
김동리 <백로> · <거미> · <바람부는 날 오후> · <화랑의 후예> · <산화> · <무녀도> 등 발표
정지용 <정지용 시집> 출간
김영랑 <영랑시집> 출간
1933년 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 발표
조지 오웰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발표
※ 뉴딜정책 시작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경제공황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가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경기를 조정하는 경제부흥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1934년 조지 오웰 <제국은 없다> 발표
1935년 펄벅 <분열된 일가> 발표
조지 오웰 <목사의 딸> 발표
어니스트 헤밍웨이 <아프리카의 푸른 산들> 발표
존 스타인백 <토르티야 대지> 발표
1936 ~ 1937
조선과 세계의 문학 동향
1936년 「심청」 · 「봄과 따라지」 · 「가을」 · 「두꺼비」 · 「봄밤」 · 「이런 음악회」 · 「동백꽃」 · 「야앵」
「옥토끼」 · 「생의 반려」 · 「정조」 · 「슬픈이야기」 발표
1937년 「따라지」 · 「땡볕」 · 「연기」 · 「정분」 발표
1937년 3월 29일 사망
1936년 이광수 <사랑> 발표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 <들> · <전원교향곡의 밤> 발표
이상 <날개> 발표
안익태 <애국가> 작고, <코리아 판타지> 완성
극단 '청춘좌' <사람에 속고 돈에 울고> 공연
문예지 『시와 소설』 · 『시인부락』 창간
※ 손기정 올림픽 마라톤 우승 일장기 말소 사건
1937년 정비석 단편 <성황당>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김말봉 <찔레꽃> 발표
이상 <종생기> · <실낙원> 발표
모윤숙 <렌의 애가> 출간
최현배 <우리말본> 출간
조선어학회 <표준말 모음> 출간
이무영 <이무영 단편집> 출간
장민영 <양> 출간
1936년 윌리엄 포크너 <압살롬, 압살롬 !> 발표
막심 고리키 <클림 삼긴의 생애> 발표
올더스 헉슬리 <가자에서 눈이 멀어> 발표
마가렛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발표
※ 베를린 올림픽
1937년 애거사 크리스티 <나일강에서의 죽음> 발표
어니스트 헤밍웨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발표
프란츠 카프카 <심판> 영문판 출간
존 스타인백 <생쥐와 인간> 발표
A. J. 크로닌 <성채> 발표
김유정 문학촌 연혁
2002
2002. 8. 6. 김유정 문학촌 개관
춘천시 (국비, 도비, 시비)가 신동면 실레길 25 김유정 생가터 일대에 김유정 생가, 기념전시관, 디딜방아간, 외양간, 휴게정 등 조성 (부지 4,528㎡, 건축연면적 374.47㎡)
김유정 문학 캠프 운영 시작
2003
제1회 김유정 문학제
2004
신남역을 김유정역으로 명칭 변경
국내 최초 인물명을 딴 기차역 탄생
2007
김유정 문학상 제정
(제1회 수상자 윤대녕 소설가)
2008
김유정 탄생 100주년 행사
한 · 중 · 일 작가포럼 등 개최
2009
문학기행 운영
2010
실레이야기길 개통
김유정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실레이야기길 16마당' 개통. 총 5.3㎞, 2시간 소요.
2011
세계 속에 김유정 알리기
프로젝트신빈조선족 고급중학교, 윤동주 시인이 다닌 대성중학교 (현 퉁징중학교) 등 중국 내 조선족 단체 및 학교 대상 강연
2012
「홍길동전」 발굴
1935년 10월 「신아동」 발표
올해의 최우수 문학관 선정
2016
김유정이야기집 등 개관
춘천시에서 신동면 실레길 22에 김유정이야기집, 체험관 4동, 야외공연장, 낭만누리 (사무실, 홍보관), 농산물판매장 등을 추가 조성
2020
강원도 제1호 공립문학관 등록
춘천시 김유정문학촌 운영 및 관리조례 제정
'김유정4대문학상' 제정
김유정문학상, 김유정학술상, 김유정신인문학상, 김유정푸른문학상
소장 유물 체계화 사업
3,010종 9,618점 자료에 대한 체계화 작업 완료
2021
김유정작가상 신설
김유정문학상 운영 중단
문학진흥포럼
<문학진흥법 시대, 공립문학관의 길> 개최
「세발자전거」 발굴
1963년 6월 「목마」 발표
2022
김유정기념전시관, 이야기집 전시관 개편
대한민국 문인 아카이브 추진
한국 문인들의 육필원고, 인터뷰 자료 수집 사업
김유정 문학촌 20년 발간
김유정 생애 특별전 개최
(이상의 집, 하남문화예술회관 순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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