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들/2024년

[2024ㅡ021 1일 1미술 1교양 ① 원시미술 ~ 낭만주의] 03

드무2 2025. 1. 12. 09:02
728x90

[2024ㅡ021 1일 1미술 1교양 ① 원시미술 ~ 낭만주의] 03

 

 

 

 

 

 

DAY 031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3 ~ 1610)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범죄자이자 천재 예술가였던 카라바조

 

 

 

이집트로 피신하는 길의 휴식 | 카라바조 | 1597년

 

 

 

성 마태오의 영감Ⅰ(색 재현 버전) | 카라바조 | 1602년

 

 

 

성 마태오의 영감 Ⅱ | 카라바조 | 1602년

 

 

 

과일 바구니 | 카라바조 | 1597 ~ 1600년

 

 

 

병든 바쿠스 | 카라바조 | 1593 ~ 1594년

 

 

 

| 건달, 살인자에서 미술사 흐름을 바꾼 거장이 된 카라바조

 

카라바조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술과 도박에 빠지고 살인까지 저질렀다. 하지만 그의 미술 실력은 너무나 천재적이면서도 독창적이고 파격적이어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보고 매료된 어느 귀족의 후원을 받게 되었고, 이후 유럽 전역에 그의 회화 스타일을 따르는 화가들도 생겼다. 루벤스와 렘브란트 등 화가들의 그림에서 카라바조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을 보면 배경은 어둠 속에 묻히고 주인공만 연극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듯이 밝게 빛난다. 이러한 빛과 그림자의 대비로 집중 조병 효과를 표현하는 기법을 테네브리즘 (tenebrism)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것이 바로크 회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DAY 032 Peter Paul Rubens (1577 ~ 1640)

페테르 루벤스

멀티태스킹의 원조, 바로크의 왕자

 

 

 

꽃다발과 아기 천사들에 둘러싸인 마리아와 아기 예수 | 루벤스 | 1621년경

 

 

 

후각의 알레고리 | 루벤스 | 1617 ~ 1618년

 

 

 

파리스의 심판 | 루벤스 | 1632 ~ 1635년

 

 

 

| 기업가형 예술가 페테르 루벤스

 

보통 예술가라고 하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배고픈 삶을 살다간 경우가 많다. 그런데 루벤스는 여러 가지 다른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면서도 모두 잘해내는 멀티태스커에 쇼맨십과 사업 수완도 남다른 비즈니스맨이었다. 그의 뛰어난 예술 실력에 물밀듯이 밀려오는 그림 주문을 다른 화가 및 조수들과의 협업으로 제작하며 기업가형 예술가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화장하는 비너스 | 루벤스 | 1606 ~ 1611년

 

 

 

삼미신 | 루벤스 | 1630 ~ 1635년

 

 

 

삼미신 | 라파엘로 | 1504 ~ 1505년

 

 

 

삼미신 | 레뇨 | 1793 ~ 1794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 루벤스 | 1612 ~ 1614년

 

 

 

DAY 033 Diego Velazquez (1599 ~ 1660)

디에고 벨라스케스

마음이 보이는 초상화를 그리다

 

 

 

데모크리토스 | 벨라스케스 | 1630년경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 벨라스케스 | 1650년경

 

 

 

| 바로크를 대표하는 '초상화의 대가' 벨라스케스

 

스페인 세비아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벨라스케스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10살 때부터 본격적인 미술교육을 받았다. 사실적인 묘사와 웅장한 표현을 쓰는 화가로도 유명한 그는 활동 초기에는 종교적인 주제의 그림을 쓰는 많이 그렸지만, 24살에 궁정화가가 되면서 대부분의 생애 동안 왕과 왕족, 귀족들의 초상화를 주로 그렸는데, 그의 그림을 너무나도 좋아했던 국왕 펠리페 4세는 그가 죽는 날까지 뒤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17세기 스페인 회화의 최대 거장으로 불리는 벨라스케스는 완벽한 구도와 색채로 바로크 시대의 우아함을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다. 

 

 

 

브레다의 항복 | 벨라스케스 | 1635년경

 

 

 

광대 엘 프리모 |벨라스케스 | 1640년경

 

 

 

광대 칼라바사스 | 벨라스케스 | 1635 ~ 1639년

 

 

 

소년 레스카노 | 벨라스케스 | 1635 ~ 1645년

 

 

 

시녀들 | 벨라스케스 | 1656년

 

 

 

DAY 034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 ~ 1669)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라인

황소고집인 빛의 화가

 

 

 

명상 중인 철학자 | 렘브란트 | 1632년

 

 

 

갑옷의 목가리개를 한 자화상 | 렘브란트 | 1629년경

 

 

 

자화상 시리즈 | 렘브란트 | 1628 ~ 1661년

 

 

 

프란스 바닝 코크 대장의 민병대 | 렘브란트 | 1642년

 

 

 

돌아온 탕자 | 렘브란트 | 1668년경

 

 

 

| 렘브란트는 고징쟁이?!

 

초상화의 대가였던 렘브란트는 인기가 많았지만, 그만의 스타일에 대한 고집이 있었다. 그래서 고객의 초상화를 고객이 원하는 대로 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그리려 했다. 또한 당시 인물 단체화의 경우, 모든 인물이 일렬로 다 잘 나오게 그리는 시대 관행과 다르게 자연스러운 구도 속에 누군가는 잘 보이게 그리고 누군가는 잘 안 보이게 그리는 방식으로 묘사했다. 그래서인지 고객의 주문이 줄어들기도 했다고 한다.

 

 

 

Special DAY 035 뿔뿔이 흩어진 그림 「산 로마노 전투」

연작을 한 곳에서 감상하고 싶은 기대

 

 

 

산 로마노 전투 : 피렌체군을 이끄는 니콜로 다 톨렌티노 | 우첼로 | 1438 ~ 1440년

 

 

 

산 로마노 전투 : 베르나르디노 델라 카르다에 대한 승리 | 우첼로 | 1440년경

 

 

 

산 로마노 전투 : 미켈레토 다 코티뇰라의 반격 | 우첼로 | 1440년경

 

 

 

DAY 036 Johannes Vermeer (1632 ~ 1675)

요하네스 베르메르

200년 만에 다가온 빛의 화가

 

 

 

우유 따르는 여인 | 베르메르 | 1658 ~ 1660년

 

 

 

화가의 아틀리에 | 베르메르 | 1666 ~ 1668년

 

 

 

편지를 읽는 여인 | 베르메르 | 1663년경

 

 

 

하녀와 함께 편지를 쓰는 여인 | 베르메르 | 1670년경

 

 

 

저울을 든 여인 | 베르메르 | 1664년경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 | 베르메르 | 1663 ~ 1665년경

 

 

 

연애편지 | 베르메르 | 1669 ~ 1670년경

 

 

 

물 주전자를 든 여인 | 베르메르 | 1662년경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 베르메르 | 1666년경

 

 

 

뚜쟁이 | 베르메르 | 1656년

 

 

 

지리학자 | 베름[르 | 1669년경

 

 

 

천문학자 | 베르메르 | 1668년경

 

 

 

세 사람의 연주회 | 베르메르 | 1664년경

 

 

 

DAY 037 Rococo art (1700 ~ 1780)

로코코 미술

우아한 여성의 시대

 

 

 

왕실복을 입고 있는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 | 리고 | 1701년

 

 

 

루이 15세, 프랑스 왕 | 리고 | 1730년

 

 

 

제르생의 간판 | 와토 | 1720년

 

 

 

키테라섬의 순례 | 와토 | 1717년

 

 

 

독일 뷔르츠부르크 공관의 임페리얼홀 | 1749 ~ 1951년

 

 

 

| 로코코의 탄생

 

루이 15세 시대에 프랑스에서 귀족 계급의 사치스러운 취향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로코코는 조약돌을 의미하는 로카이유 (rocaille)와 조개껍데기를 의미하는 코키유 (coquille) 두 단어의 조합으로 탄생했다. 조약돌과 조개껍데기 모양 장식은 귀족들의 저택 정원에 만든 인조 동굴 (grotto)에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로코코 양식은 격식과 형식이 강한 바로크 양식보다 여성적이며 곡선과 비대칭적인 장식, 이국적인 분위기, 중국 풍취도 두드러진다. 그림 외에도 로코코 양식의 대표 건축물로는 독일의 상수시 궁전이 고 뷔르츠부르크 공관의 내부에서도 그 화려함을 감상할 수 있다.

 

 

 

상수시 궁전 | 1748년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 | 부셰 | 1756년

 

 

 

DAY 038 JeanㅡHonoré Fragonard (1732 ~ 1806)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달콤한 사랑을 그리다

 

 

 

그네 | 프라고나르 | 1767 ~ 1768년

 

 

 

도둑맞은 키스 | 프리고나르 | 1787년

 

 

 

사랑의 샘 | 프라고나르 | 1785년

 

 

 

| 잠시 유행했던 로코코 미술의 대가, 프라고나르

 

화려하고 관능적인 사랑 이야기를 동화 같은 분위기로 화폭에 담아냈던 프리고나르. 그는 로코코 시대에 가장 인기 있는 화가로 귀족들의 그림 주문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왕족 및 귀족들이 사형당하고 그의 후원자들이 사라지면 로코코 시대도 끝나게 되었고, 그의 유명한 로코코 화가로서의 인생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사랑의 진행 : 구애 | 프라고나르 | 1771 ~ 1772년

 

 

 

사랑의 진행 : 밀회 | 프라고나르 | 1771 ~ 1772년

 

 

 

사랑의 진행 : 사랑의 편지 | 프라고나르 | 1771 ~ 1772년

 

 

 

사랑의 진행 : 왕관을 쓴 연인 | 프라고나르 | 1771 ~ 1772년

 

 

 

책 읽는 소녀 | 프라고나르 | 1769년

 

 

 

DAY 039 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 (1764 ~ 1828)

프란시스코 고야

이것은 고약하다! 고야의 외침

 

 

 

1808년 5월 3일 | 고야 | 1814년

 

 

 

막시밀리언 황제의 처형 | 마네 | 1868년

 

 

 

파라솔 | 고야 | 1777년

 

 

 

전쟁의 참화 연작 | 고야 | 1810 ~ 1820년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 고야 | 1820 ~ 1823년

 

 

 

거인 | 고야 | 1818 ~ 1825년

 

 

 

| 진위 논란에 휘말린 그림 「거인」

 

고야의 그림 중 「거인」은 고야의 사후, 진위 논란이 있었는데, 그림 한 귀퉁이에서 'AJ' 라는 이니셜이 보여 고야가 아닌 제자 아센시오 훌리아 (Asensio Julia)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그래서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이 X레이 검사와 화법 연구 끝에 고야의 작품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영국의 미술사학자 나이젤 글렌디닝 등 많은 전문가가 이 그림에 쓰인 기법이나 구성으로 보아 고야의 그림이 맞다고 평했다. 또한 'AJ' 는 작가 이니셜이 아닌 재고 기호 중의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곤봉 결투 | 고야 | 1820 ~ 1823년

 

 

 

두 노인 | 고야 | 1820 ~ 1823년

 

 

 

| 옷 벗은 마하 vs. 옷 입은 마하

 

고야가 그린 유명한 그림 중 두 작품은 「옷 벗은 마하」와 「옷 입은 마하」라고 알려진 의문의 한 여인을 그린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여인이 옷을 벗은 버전과 옷을 입은 버전이 있는데, 스페인 재상의 애첩을 그린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며 그 재상이 두 개의 그림을 겹쳐두고 도르래를 달아서 그림을 번갈아 봤다고 한다. 한편, 고야는 알바 공작부인과 스캔들이 있었다. 그녀의 전신 초상화인 「알바 공작부인」을 보면 그녀가 손가락으로 '오직 고야 (Solo Goya)' 라는 땅바닥에 쓰인 글씨를 가리키고 있다.

 

 

 

옷 벗은 마하 | 고야 | 1795 ~ 1800년

 

 

 

옷 입은 마하 | 고야 | 1800 ~ 1807년

 

 

 

알바 공작부인 | 고야 | 1797년

 

 

 

DAY 040 Neoclassicism (1760 ~ 1830)

신고전주의

18세기의 유행 신고전주의

 

 

 

음악의 우화 | 부셰 | 1764년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 다비드 | 1784 ~ 1785년

 

 

 

소크라테스의 죽음 | 다비드 | 1787년

 

 

 

찰스 존 크라울의 초상 | 바토니 | 1761 ~ 1762년

 

 

 

| 신고전주의의 탄생

 

신고전주의는 18세기 초 화려하고 향락적이며 귀족 취향인 로코코 양식에 대한 반발로, 당시 혁명 분위기와 '고전주의로 돌아가자. 고대 로마적 덕성을 다시 세우자' 는 욕구로 인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후 신고전주의 또한 낭만주의가 나타나며 뒤로 물러나게 된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