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강 : 전쟁의 원인 : 국가 및 사회적 차원 (5) 정책 결정 이론 (Decision Making Theory)
George W. Bush meeting with the National Security Council in the Situation Room, the White House, Washington D.C., U. S. / 2006. 7. 5
Condoleezza Rice (1954~) (앞 왼쪽 여성)
20th United States National Security Advisor
美 제20대 국가안보보좌관 (2001. 1. 22~2005. 1. 25)
George W. Bush (1946~) (앞 오른쪽)
43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제43대 美 대통령 (2001. 1. 20~2009. 1. 20)
President Barack Obama hosts a meeting of his National Security Council in 2016, the White House, Washington DC, U. S.
Barack Obama (1961~) (뒤쪽 가운데)
44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제44대 美 대통령 (2009. 1. 20~2017. 1. 20)
우리들은 그동안 사람들, 집단들이 대단히 합리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정책 결정 과정을 연구한 학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연구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국가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게 될 심각한 정책 결정 과정도 순수하게 합리적인 맥락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의 발견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252
Graham T. Allison (1940~)
American political scientist
and Professor at the John F. Kennedy School Of Government at Harvard.
역사상 아주 유명한 정책 결정인 쿠바 미사일 사건에 대해 연구한 하버드 대학의 앨리슨(Graham T. Allison) 교수는 쿠바를 봉쇄하기로 한 정책은 미국 고위급 관료들이 국가 이익을 위해 진지하게 심사숙고한 결과로 나온 정책이기보다는 미국 정부 내의 각 부서, 예로써 CIA, 국무부, 국방부, 해군, 공군, 육군 등이 자기 부서의 이익을 위해 상호간 치고 받으며 싸운 결과 나오게 된 산물이라고 주장했다.[Graham T. Allison, The Essence of Decision : Explaining the Cuban Missile Crisis (Boston : Little Brown, 1971)] 3차 세계대전의 문턱을 넘을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 국가안보 정책 결정에 참여한 미국의 고위급 관리들이 국가의 이익보다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싸웠다는 사실은 놀랍지만 수긍할 만한 일이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253
Essence of Decision by Graham T. Allison
: Explaining the Cuban Missile Crisis (1971)
Essence of Decision by Graham T. Allison & Philip Zelikow
: Explaining the Cuban Missile Crisis (1999)
결정의 엣센스 : 쿠바 미사일 사태와 세계 핵전쟁의 위기 (2005. 6. 13)
결정의 본질 : 누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가? (2018. 9. 15)
'피할 수 없는 전쟁 : 미국과 중국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
Destined for War by Graham T. Allison
: 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s Trap? (2017. 5. 30)
Over 2,000 Results for "JFK assassination books"
John F. Kennedy 대통령의 암살을 주제로 다룬 책 검색 결과
1963년 11월 Kennedy가 암살된 이후
57년 동안 2,000권이 넘게 발행
JFK's War with the National Security Establishment by Douglas Horne
: Why Kennedy Was Assassinated (2014. 9. 10)
냉전이 고조되었던 그 당시
케네디의 관점이 국가안보기구의 생각과 대단히 달랐다는 것이
케네디가 암살된 원인이라고 주장한 책
1) 각하의 결정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독재국가의 경우 최고 정치지도자는 독단적으로 정책을 결정한다. 정책 결정이 전쟁과 평화에 관한 국가안보의 차원이던 일상적인 생활에 관한 결정이던 간에 독재자는 국민의 견해를 경청하거나 자기를 보좌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경청하기보다는 자기의 독선에 의해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하는 것이다. 국민의 교육문제, 건강문제, 세금 문제, 경제 발전 등 여러 가지 차원의 문제는 물론 전쟁과 평화라는 국가 존망에 관한 사안도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히틀러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며 이라크의 후세인은 정책 결정을 위한 회의 도중 자신의 말을 거역하는 각료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2002년 10월 후세인은 이라크 국민 100%의 지지로 대통령에 다시 당선되어 세상을 웃겼다. 북한의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253~254
대통령학 (199. 3. 5) by 함성득
함성득 咸成得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국 텍사스(오스틴)대 존슨정책대학원 석사
미국 카네기 멜론대 하인츠 정책대학원 박사
미국 레이건 대통령 공공정책 연구소 책임연구원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Ernst & Young 펠로
고려대 교수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SBS 펠로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회 간사위원
현재 (사)한국대통령학연구소 소장
저서
After Development : The Transformation of the Korean Presidency and Bureaucracy (Georgetown University Press, 1997).
《대통령 비서실장론》 (나남. 2002)
《대통령 당선자의 성공과 실패》 (나남, 2012) 등 17권
민주주의 국가들의 경우도 유사하다···
한국의 이 같은 정치 상황을 분석한 함성득 교수는 이 같은 한국의 대통령제를 '제왕적(帝王的) 대통령제'라고 명명하고 잇다. 미국 대통령의 권력이 점차 막강해지는 현상을 분석한 아더 슐레진저(Arthur Schlesinger)도 미국의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묘사했다.[Arthur M. Schlesinger, The Imperial Presidency (New York : Easton Press, 1988)]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255
Arthur M. Schlesinger Jr. (1917~2007)
American historian, social critic, and public intellectual
The Imperial Presidency (2004. 8. 12 / 초판 : 1973) by Arthur M. Schlesinger Jr.
The Cycles of American History (1986) by Arthur M. Schlesinger Jr.
미국 역사의 순환 (1993. 11. 5) 정상준, 황혜성 역
David Halberstam (1934~2007)
Historian, Wright, Journalist
Halberstam characterized as insisting on
"brilliant policies that defied common sense" in Vietnam
often against the advice of career U. S. Department of State employees.
The Best and the Brightest (1973) by David Halberstam
최고의 인재들
: 왜 미국 최고의 브레인들이 베트남전이라는 최악의 오류를 범했는가 (2014. 1. 27)
The Best and the Brightest라는 말은 미국의 엘리트들이 좋은 의미에서, 국가를 위해 탁월한 정책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엉터리 같은 정책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비꼬기 위해 사용됨으로써 유명해진 말이다.
데이비드 할버스탐(David Halberstam)은 월남전에 미국이 참전한 과정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이 책을 저술했는데 그렇게 똑똑하고 잘난 수재들이 어떻게 그토록 바보 같은 결정을 내렸는가 하고 탄식한 책이다.[David Halberstam, The Best and the Brightest (New York : Barrie and Jenkins, 1973)]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258
(4) 정책 결정 과정 : 인간이 만든 조직의 불완전성과 전쟁
2) 집단사고(Groupthink)로 도출된 외교 정책의 문제점
잘난 사람들이 모여서 황당무계하고 바보 같은 정책결정을 내리게 되고,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파탄상태를 초래하는 경우가 상당히 흔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전쟁과 평화에 관한 외교정책이 파탄난 경우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미국의 학자가 있다.
예일 대학교의 어빙 재니스(Irving Janis) 교수는 미국의 외교 정책에 왜 그렇게 오산(誤算, miscalculation)에 의한 재앙적 정책결정이 자주 발생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 같은 오산은 어떻게 미국 외교 정책에서 재난(災難, fiasco)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엉망진창사태들을 초래했는가의 역사적 사실을 연구주제로 삼았다. 재니스 교수는 중요한 미국의 외교정책 결정 과정 중 상당 경우에 정책 결정이 정말로 한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Irving Janis, Groupthink : Psychological Studies of Policy Decisions and Fiascoes (2nd. ed ; New York : Houghton Miffin Company, 1983)]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258
Groupthink (1982) by Irving L. Janis
Groupthink played a major role in the fiascoes
of Pearl Harbor, Vietnam, Watergate-and
could be operating in your own organization.
Irving Janis (1918~1990)
a research psychologist at Yale University
and a professor emeritus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Groupthink (집단사고, 集團思考)
이 용어는 1972년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에 의해 "응집력이 높은 집단의 사람들은 만장일치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며, 다른 사람들이 내놓은 생각들을 뒤엎지 않으려하는 일종의 상태"로 규정하고 있다.
집단사고로 인해서 세계사에선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되었는데, 대표적인 집단사고로 인한 사고에는 미국의 피그스만 침공(Bay of Pigs) 실패, 챌린저 우주 왕복선 폭발 사고 등이 있다.
Bay of Pigs Invasion 피그스만 침공
1961년4월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미국이 훈련한 1,400명의 쿠바 망명자들이 미군의 도움을 받아 쿠바 남부를 공격하다 실패한 사건이다. 미국 정부는 1960년부터 이 침공을 계획하고 자금을 제공했다.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직에 오른 지 석달도 안된, 1961년 4월에 작전이 개시됐다.
미 중앙정보국(CIA) 주도로 쿠바 망명자 1500여 명을 동원해 쿠바 침공에 나선 미군은 소련의 훈련을 받고 무장한 쿠바군에게 격퇴됐다. 미군은 불과 사흘 만에 1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1천여 명이 생포되는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다.
카스트로 정부는 1961년 12월 몸값으로 5300만 달러를 받은 뒤에야 당시 사로잡은 1113명을 풀어줬다.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케네디는 미군이나 그 밖의 직접적인 개입을 부정했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쿠바에서의 주권침해행위에 대한 비판을 받게 되었고, 쿠바와 미국간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었다.
이 사건은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를 가져오게 된다.
피그만 침공사건
1960년 3월 당시 닉슨 부통령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미국에 망명한 쿠바인들을 훈련시켜 쿠바로 침투시켜 카스트로에 대항하는 게릴라전을 전개하자는 계획을 보고한 바 있었고,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CIA에 이 계획의 추진을 지시한 바 있었다. 비밀리에 이 작업을 진행한 CIA는 1960년 말, 게릴라 부대가 아니라. 직접 정규전을 전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침략을 감행할 수 있는 군사력을 양성하고 있었다. 이 비밀 계획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도 보고조차 되지 않았다.
1961년 1월, 대통령에 취임한 지 2일째 되는 날 케네디는 당시 CIA 국장 및 합참의장으로부터 쿠바 침공에 대한 보고를 받앗다. 케네디 행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은 그 후 8일 동안 매일 아이젠하워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책에 대해 비공식적인 토론을 전개하였다. 이 회의에는 3군 참모총장도 모두 참여했다. 1961년 4월 초, 케네디 대통령이 참가한 회의에서 중요한 보좌관 전원은 CIA의 쿠바 침공 계획에 찬성하고 이를 승인하였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263~264
1961년 4월 17일 1,400명 정도로 구성된 쿠바인 망명자들의 부대는 미국 공군과 CIA의 지원을 받아 쿠바의 피그만 해변, 늪지대를 향해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공격작전은 하나도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공격 첫날, 보충용 탄약과 물자를 싣고 오기로 된 네 척의 화물선 중 단 한 척도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 두 척은 카스트로의 전투기에 의해 격침당했고 나머지 두 척은 도망쳐 버렸다. 둘째 날, 침공군은 잘 무장된 카스트로군 2,000명에게 꼼짝없이 포위되었다. 셋째 날, 살아남은 1,200명 정도 되는 침공군은 모두 카스트로의 감옥에 처넣어졌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264
케네디 대통령은 실패의 소식을 듣고 경악했으며, '어떻게 우리가 이토록 바보 같은 결정을 내렸단 말인가?'라며 후회했다.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케네디 대통령에게 똑같은 질문을 퍼부었고 이는 케네디를 더욱 분노하게 하였다. 며칠 후 CIA 국장은 사표를 냈다. 7년 후 국방장관직을 떠난 맥나마라는 당시 케네디 대통령에게 제대로 조언하지 못했던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공식적으로 고백했다. 천재라고 칭송되던 사람들이, 어떤 상황이 나타날지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앗다는 사실이 그저 경악스럽고 놀라운 일이었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265
David D. Rusk (1909~1994)
54th United State Secretary of State
美 제54대 국무장관 (1961. 1. 21~1969. 1. 20)
Robert S. McNamara (1916~2009)
8th United States Secretary of Defense
美 제8대 국방장관 (1961. 1. 21~1968. 2. 29)
McGeorge Bundy (1919~1996)
6th United States National Security Advisor
美 제6대 국가안보보좌관 (1961. 1. 20~1966. 2. 28)
Richard N. "Dick" Goodwin (1931~2018)
Presidential advisor, Writer
Robert F. Kennedy (925~1968)
64th United States Attorney General
美 제64대 법무장관 (1961. 1. 20~1964. 9. 3)
우리 편은 모두 우리 계획대로 될 것이고 적은 아예 상대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극단적 낙관론에 근거한 작전 계획이었다. 미국은 1,200명의 생포된 포로들의 식량과 의약품 비용으로 5,3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수모도 당했다. 쿠바의 피그만은 그 지형상으로 보아 침공하기 아주 나쁜 지역이며, 후퇴하기도 아주 고약한 곳이다. 침략할 장소의 지도를 대충이라도 훑어보았다면 어느 누구도 이 지역을 공격지점으로 삼지 않았을 것이다. 지도조차 펴놓지 않은 채 침공 계획을 결정했다는 말인 것이다.
새로운 정부의 자신에 찬 젊은 대통령이 이끄는 케네디의 각료들은 집단으로서 모종의 환상을 형성하였다. '우리 대통령, 그리고 우리들이 결정하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OK다. 우리들이 정하는 결정은 운명적으로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환상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잇었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266~267
재니스 교수는 외교정책상 대실패의 경우 그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 적어도 7가지의 문제점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첫째, 정책 결정 집단에서 이루어진 토론에서 고려 대상으로 간주된 대안의 숫자가 일반적으로 아주 적었다. 어떤 경우는 단 두 가지 대안만을 놓고 토론을 벌인 적도 있었다. 전쟁과 평화에 관한 중대사를 결정하기 위해서라면 가능한 모든 대안이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터인데 그러하지 못했다.
둘째, 정책 결정 집단의 구성원들은 성취되어야 할 목표를 조사해 보지 않았고, 그들이 택한 정책이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셋째, 정책 결정 집단은 다수가 먼저 선호한 정책 대안에, 혹시 보이지 않는 문제점 혹은 위험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
넷째, 정책 결정자들은 다수에 의해 불만족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어 고려 대상에서 일찍이 배제된 정책 대안에 대해 혹시 그들이 간과한 것은 없는지, 또는 그 대안을 택함으로서 희생을 줄이는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닌지 등에 관한 고려를 전혀 하지 않았다.
다섯째, 정책 결정 집단의 멤버들은 여러 가지 대안들이 어떤 이해 득실을 가지고 있는지를 심도 있게 분석,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정보와 견해를 경청하려 하지 않았다.
여섯째, 정책 결정 집단은 정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편견(bias)을 보였다. 정책 결정자들은 자신들이 애초에 결정한 정책대안을 보강, 보완시켜주는 사실들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했으며 자신들이 택한 정책의 잘못을 나타내 보이게 하는 정보들은 무시하고자 애썼다.
일곱째, 정책 결정자들은 그들이 채택한 정책이 관료들에 의해 집행되는 과정에서 당면할 문제점, 야당에 의해 사보타주(sabotage)당할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아무리 잘된 계획이라도 집행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잇다는 점들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260~262
집단 사고 때문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량한 정책 결정이 발생한 경우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
(1) 정책 결정 집단의 결속력(Cohesiveness)이 대단히 높았으며 ;
(2) 정책 결정 과정에 너무나 결함이 많았다는 사실이 나타났다.
즉 '우리'라는 느낌(we feeling)을 가지는 사람들끼리 소수가 모여서 정책을 결정할 경우 혹은 정책 결정을 위해 필요한 제반 표준적인 과정과 절차를 무시한 경우 진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잡한 정책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262
케네디 대통령은 피그만 침공 사건의 실패를 교훈 삼아 이듬해인 1962년 10월 제3차 대전 직전까지 다가갔던 쿠바 미사일 사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쿠바 사태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에게 특별한 부탁을 했다. '너는 다른 멤버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무조건 그 말을 꼬투리 잡고 물고 넘어지는 역할을 담당하라'라는 것이었다. 정책 결정 과정에 이처럼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물고 넘어가는 사람의 역할을 '악마의 초혼(Devil's Advocate, 惡魔의 招魂)'이라 부른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269
Overconfidence and War by Dominic D. P. Johnson
: The Havoc and Glory of Positive Illusions (2004. 10. 29)
둘째 아들 (오른쪽)
John F. Kennedy (1917~1963)
35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美 제35대 대통령 (1961. 1. 20~1963. 11. 22)
셋째 아들 (왼쪽)
Robert F. Kennedy (1925~1968)
64th United States Attorney General
美 제64대 법무장관 (1961. 1. 20~1964. 9. 3)
막내 아들 (가운데)
Edward "Ted" Kennedy (1932~2009)
United States Senator from Massachusetts
美 상원의원 (1962. 11. 7~2009. 8. 25)
Thirteen Days by Robert F. Kennedy
: A Memoir of the Cuban Missile Crisis (1969)
Robert F. Kennedy (925~1968)
64th United States Attorney General
美 제64대 법무장관 (1961. 1. 20~1964. 9. 3)
JFK의 아버지
Joseph P. Kennedy Sr. (1888~1969)
United States Ambassador to the United Kingdom
영국 주재 미국 대사 (1938. 3. 8~1940. 10. 22)
첫째 아들
Joseph Patrick Kennedy Jr. (1915~1944)
U. S. Navy lientenant
美 해군 장교
Noblesse oblige (프랑스어)
프랑스어로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한다.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Awj7OjaJKj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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